열네살 여대생 정희의 대학생활 1년

"전 천재가 아니래요"

등록 2002.01.29 18:24수정 2002.01.30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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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과 오빠나 동아리 선배들이 '넌 천재가 아닌게 확실하다'고 말한다. 맞다. 난 천재가 아니다. 천재는 태어날 때부터 뛰어난 재주를 타고나야 한다고 하는데 난 타고난 재주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또래 아이들보다 공부하는 방법을 좀더 일찍 터득한 것 뿐이다."

김정희(14) 양의 당찬 말과 모습은 일년전 새내기 배움터에서 취재진과 카메라 공세에 곤혹스러워하며 '언니, 오빠들에게 너무 미안해요'라던 것과는 사뭇 달랐다.

지난해 이맘 때 전국 최연소 수능시험 응시자이자 대학 신입생이라는 특이함 때문에 언론공세와 유명세를 톡톡히 치른 정희 양은 열넷 소녀의 앳되고 해맑은 웃음은 여전했지만 자신의 의견을 조리있게 말하는 등 훌쩍 커버린 느낌이 들었다.

이제 3월이 다가오면 정희는 특별한 새내기가 아니라 자신보다 나이많은 후배들을 맞아야 하는 선배가 된다. 1,2학기 내내 장학금을 놓치지 않을 만큼 학과공부와 학원, 과외, 동아리 활동으로 바쁜 나날을 보냈던 정희 양.

커피숍에서 '미성년자가 커피숍 출입해도 되나?' '보호자 있으니깐 상관없지'라는 농담을 주고받으며 이 어린 여대생을 만났다.

-겨울방학인데 어떻게 보내고 있나?
"방학중에 자격증 하나 따기위해 컴퓨터학원을 다니고 있다. 지난여름 정보처리기능사 자격증 시험을 봤는데 2차 실기에서 떨어졌다. 이론은 자신있는데 실기에 너무 약하다. 아무래도 자격증 없는 것보단 있는 것이 앞으로 사회생활 하는데 유리할 것이고 이력서에도 비어있는 중,고 학력란을 취득자격증으로 메꿔야 한다. 그리고 학교다닐 때부터 했던 과외를 계속 하고 있기 때문에 좀 바쁘다."

-학비를 직접 벌고있는 것인가?
"그렇다. 부모님께 차비정도는 지원받지만 학교다니면서 부터 중학생과 초등학생들을 가르친 과외비와 장학금으로 학비와 용돈을 해결하고 있다. 과 언니들은 커피숍 아르바이트도 하지만 난 미성년자라 다른 아르바이트는 안된다. 어려서부터 용돈관리는 스스로 해왔기 때문에 특별한 경제적 어려움은 없다."


-과외와 동아리 생활하면 학업에 지장이 많을텐데 학점 공개할수 있나?
"1학기때 과에서 9등했고 2학기때 3등해서 모두 장학금 받았다. 대학생이 됐다고 긴장이 풀려서 얼치기로 학사경고받고 이런 것은 질색이다. 대학생이면 대학생답게 스스로 학업이든 뭐든 책임감을 갖고 열심히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대학생활은 만족스러운가?
"1학기 때는 정신이 없었는데 차츰 사람들과 친해지면서 재미있게 보내고 있다. 우리과는 70% 정도가 여자들인데 다들 털털하고 수더분해서 대하기가 편하고 잘챙겨준다. 그 사람들 통해서 동아리 활동도 하게됐고 좋은 사람들 많이 만났다. 어떤 사람들이 좋은 사람들인지 알게됐고. 참, 이 말은 꼭 전해주길 바란다. 과 언니 오빠들한테 정말 고맙다고...


무엇보다 큰 경험은 지난 여름에 국어교육과로 전과를 시도했다가 면접에서 떨어졌다. 개인적으로 큰 시험에서 떨어진 건 처음인데다 생각지도 못한 질문에(사자성어 맞추기) 대답을 못해서 너무 당황스럽고 정신적 공황이 상당히 컸다. 나름대로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왜 전과를 시도한 것인가?
"난 3남2녀중 둘째인데다 아버지께서 사업을 하셨기 때문에 이사도 자주다니고 좀... 무엇보다 안정된 직업을 갖고 싶다. 그런 점에서 문예창작과는 미래에 대한 뚜렷한 전망이나 직업을 세우기가 어렵다. 전과는 실패했지만 졸업하면 교육대학원에 진학하고 싶다."

-어떤 동아리에서 활동중인가?
"도시빈민연구회다. 아는사람 대부분이 그쪽에서 활동하고 역사와 시사적인 것에 관심이 많아 가입했는데 내가 알지 못했던 한국사의 빈공백을 알게됐다. 다른 동아리와 함께 농촌봉사활동도 하고 참 재미있고 다양한 경험을 했다.

지금 운동권의 색깔이 모호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더욱 한발 뒤로 물러서서 운동의 현주소를 좀더 객관적이고 정확히 볼 수 있는 시각을 준다. 요즘은 새내기들을 맞기 위해 동아리방 단장하느라 바쁘다."

-학과, 동아리 활동하면 술자리도 생길텐데 주량은?
"많이는 못마신다. 그냥 분위기에 따라 맥주 서너잔 정도. 언니 오빠들과 함께 몇차례 마셔봤는데 별로 좋은 게 아닌 것 같아서 올해부터 끊기로 했다."

-고졸 검정고시 최연소 합격하고 수시모집에서 법학과에 합격한 13살의 고혜주 양이 3월에 입학한다. 정희 양과 닮은 꼴인데 선배로서 해주고싶은 말은?
"혜주는 처음이 아니니까 사람들이 내가 입학했을 때처럼 신기하게만 보지 않을 것 같다. 아는 사람들이 '넌 천재가 아닌 것이 확실해. 이번에 들어온 아이는 어떨지 기대된다'고 농담처럼 말하고, 또 매스컴에서 혜주와 나와 만남을 주선했지만 거절했다. 어떤 특별함 보다는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대학 왕따가 제일 무섭다. 같은 학교 출신, 나이 등등 공통분모가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지식은 관심만 있다면 늦게라도 공부해서 채울 수 있지만 인간관계나 친화력은 혼자 연습하고 노력한다고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의도적으로라도 먼저가서 말붙이고 대학생활 잘하기 바란다."

-지식과 연륜에서 배어나오는 지혜는 다르다. 정희 씨는 그런 수준차이를 어떻게 극복했나?
"워낙 털털하고 먼저 말붙이는 성격인데다 언니 오빠들도 잘 챙겨주고 허물없이 대해줘서 편하게 지낼 수 있었다. 대학 1학년 또래 나이의 오빠가 있어서 나이차이에 따른 거부감은 없었고 입학하기 전부터 대학 도서관에 다녔기 때문에 낯선 느낌은 별로 없었다. 그런데도 처음 3~4개월은 좀 힘들어했던 것 같은데 그건 다른 신입생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초등학교 때도 독서토론회, 백일장에 나가 10여차례 상을 받았고 전국수학경시대회에서도 장려상을 수상했다. 공부 잘하는 비결이 뭔가?
"책 읽는 것을 좋아하고 역사에 관심이 많아서 어렸을 때부터 문화와 시사 역사서적을 많이 읽었다. 그리고 친구들보다 공부하는 방법을 일찍 터득한 것 같다.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성격에 경쟁심이 강해서 공부도 열심히 했다."

-중,고생활 6년을 뛰어넘어 대학에 일찍 진학할 만큼 남들보다 빨리 하고싶은 일이 있는가?
"아직 특별히 뭐가 되고싶다는 생각은 없다. 나이도 어리고 아직은 탐색기라고 생각한다. 많은 가능성들이 열려있기 때문에 더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하고 싶다. 이왕이면 대학에서 4년 동안 공부한 것을 사회에서 활용할 수 있는 일을 하고싶다.

내가 대학에 일찍 들어온 것은 아버지의 권유 때문이다. 허약체질은 아닌데 코피도 자주흘리고 한번 아프면 심하게 앓아눕기 때문에 꽉 짜여진 수업시간과 공부에 열중해야할 중,고등학교 생활이 불안했던 모양이다. 그리고 오빠도 검정고시를 거쳐 대학에 입학했기 때문에 결정하는데 두려움은 없었다."

-친구들에 비해 6년을 앞서 온 것인데 생활의 변화가 힘들지는 않았나?
"만약에 학교생활 6년 차이가 아니라 직장생활 6년차이라면 많은 변화와 차이가 있겠지만 학생이란 신분에서 좀 다른 공부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또래아이들과 중,고 생활을 체험하지 않았지만 청소년기까지 뛰어넘는 것은 아니다. 성장속도는 같기 때문에 똑같이 사춘기도 경험할 것이고 다만 청소년기에 어디에 있느냐가 다를 뿐이다. 내 친구들이 중.고등학교 과정을 밟는 동안 나는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준비하고 있다. 장단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이 되고싶은가?
"어떤 일이 닥쳤을 때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냉정(冷靜)한 사람이 되고 싶다."

김정희 양은 2000년 순천 남초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고입 검정고시에서 7개 과목 평균 88.8점으로 전남지역 수석합격하고, 같은해 8월 고졸 검정고시 최연소 합격, 대학 수학능력시험 299.5점을 얻어 지난해 순천대 문예창작과에 입학했다.

정희 양은 특별한 아이라는 자신에 대한 고정관념을 상당히 부담스러워했고 그것을 깨기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같은 학교에 또다른 13세 소녀가 입학한다는 것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혜주 양이 수능을 보지않고 수시로 입학했다고 하자 그러면 안될텐데 하며 걱정스러워 했다. 유독 공통점을 찾기힘든 사람들에게서 수능은 유일하게 다른 오빠, 언니들과 공유할 수 있는 공통분모이기 때문이다.

정희 양은 자신의 특별한 이력을 겸손해 했고 지식과 지혜를 구분할 줄 아는 똑똑한 소녀였다. 또한, 대학생활 1년동안 머리만 채운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경험과 역사, 많은 사람들로 가슴 한켠을 채워가는 책을 좋아하는 나이어린 평범한 여대생이 됐다.

정희 양은 영어학습지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김종혁(46) 씨와 김성미(46) 씨 사이의 3남2녀중 둘째로 오빠(20)도 검정고시를 거쳐 순천대에 합격한 뒤 자격증시험을 위해 현재 휴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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