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 개각과 햇볕정책에 대한 의지

박지원-임동원 라인의 재등장

등록 2002.01.30 00:48수정 2002.01.30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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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9일 청와대는 청와대 비서실의 대폭개편과 중폭의 개각을 단행했다. 그런데 여야 막론하고 요구해온 내각의 정치색 배제와 현재 각종 게이트로 고조되고 있는 부패척결 및 개혁내각이 될 것이라는 예상과는 사뭇 다른 내용이다.

그런 배경은 무엇인가? 자세히 분석해보면, 외부의 요구에 의한 피동적인 개각보다는, 새로운 화두를 던지면서 햇볕정책에 대한 애착과 레임덕을 경계하는 김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된 개각을 단행한 것이다.

내각의 경우, 몇몇 부처만 실무경력을 중심으로 새로 기용했고, 내각의 상징인 이한동 국무총리, 진념 재경부장관, 한승수 외교통상부 장관은 그대로 유임되었으며, 변화의 폭은 의외로 청와대 비서실 인사에서 더 컸다. 그러나 청와대 직속라인과 남북대화의 중심에서 묵묵히 실무를 맡아온 인물의 신임 통일부장관 기용이 어우러져 김 대통령의 의지가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가를 나타내고 있다.

이번 개각으로 드러난 권력구조는 지난 6.15 남북정상회담팀의 재가동이라는 모습이 드러난다. 당시에 임동원 외교안보통일특보가 국정원장으로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으며, 박지원 신임 정책특보는 김대중 대통령의 평양방문을 위한 밀사로서 역할을 했었다.

한편, 신임 통일부장관인 정세현 장관은 98년 베이징 차관급 회담의 수석대표였으며, 국정원장 특보시절, 햇볕정책의 전도사 역할을 했었다. 또한, 외교안보 수석에 기용된 임성준 씨는 한·미·일 3국의 대북정책조정감독그룹(TCOG)회의 대표를 맡았던 대북정세 및 주변 강국들과의 관계에 밝은 인물이다.

새롭게 짜여진 진용과 연계해서 바라볼 수 있는 것이 최근 남북관계의 동향이다. 각종 언론에서 보도한 바와 같이 북한은 아리랑 축전을 빌미로, 9.11테러 이후 미국의 강경정책에 의해 고립된 북한경제의 활로를 모색하고 있고, 이에 발맞추어 대한민국도 중국측이 월드컵 관광객의 수송을 북한철도를 이용하는 방향으로 해달라는 요청을 비롯하여 적극적인 대응을 펼치고 있다. 그리고, 최근의 보도에 따르면, 북한이 미국과의 대화를 원하고 있으며, 미국 역시 싫은 내색은 아니다. 곧 있을 부시 대통령의 방한은 그런 의미에서 남북대화와 북미회담의 재개의 시발점이 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위와 같은 시기적인 적합성은 국내의 각종 비리의혹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으며, 대선으로 인한 레임덕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는 김대중 대통령에게 그러한 문제들을 불식시키고, 정권의 마무리를 잘 진행시킬 새로운 기회로 인식된 것으로 보여진다.


국민의 정부가 집권하면서 표방한 국정의 큰 틀은 햇볕정책과 사회복지의 증진, 자유시장경제와 민주주의의 조화였다. 그 중 사회정책은 많은 국민들의 불편과 원성을 사고 있는 실정이며, 경제정책 역시 밀려오는 외국자본의 기세를 어렵게 헤쳐나가고 있는 현실이다. 그런 총체적인 어려움은 김대중 정부의 상징인 햇볕정책마저 답보상태로 이끌었다.

그런 가운데, 주가와 경제의 회복 기미가 보이고, 사회정책에 대한 반발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무디어짐에 따라 햇볕정책을 토대로 국가운영의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하려는 것이다.


사실 박지원 정책특보의 재기용은 참으로 쉽지않은 선택이었을 것이다. 민주당 내부의 반발과 부정대출의혹이 있었던 박 특보의 재기용이 정치적 부담이 큰 선택인 까닭이다. 그러나, 현재의 답보된 남북관계의 개선과 정권의 마무리를 위한 조직력 강화라는 요구들은 박 특보를 다시 기용하게 만든 것이다. 50여년간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있었던 남북관계의 가장 큰 치유책은 신뢰이고, 북측이 믿고 따라줄 수 있는 라인의 재가동인 것이다.

한편, 국내에서 김 대통령은 민주당 총재직을 사퇴했고, 대선에 관여하지 않을 뜻을 비추었는데, 정국운영의 중심인 대통령이 정치권과 무관하게 국정운영을 한다는 것은 국가원수인 대통령이 자칫 고삐 풀린 정치권을 어찌하지 못하는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으로 전락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민주당이건 정치권이건 불가근불가원하면서도 대통령으로서의 영향력을 행사하는데 필요한 인물로서, 비판을 많이 받았지만 평소 김 대통령의 심복으로서 톡톡히 역할을 해온 박 특보와 박 특보와 가까운 사이로 알려진 조순용 정무수석을 선택한 것으로 보여진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주목할 점은 임동원-박지원 라인의 재가동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김대중 대통령이 임기 안에 그동안의 햇볕정책을 확고히 정착시키고, 다음 대통령에게 북한과의 유연한 협력의 길을 터놓겠다는 의지인 것이다. 그에 따른 수순은 과거 6.15 남북정상회담을 이끈 상호 신뢰할 수 있는 인물들이 대화를 재개하고, 궁극적으로는 김정일 위원장의 서울 답방과 경의선 복원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관측된다.

전문가들의 견해에 따르면, 정세현 통일부장관이 실무형 인사인 점에서 향후 대북정책은 임동원 외교안보통일특보의 주도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그리고, 국내 정치분야에서 전면에 나서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눈총을 받는 박지원 정책특보의 경우에는 의외로 대북정책의 핫라인으로서 주로 활용되고, 국내정책부분에서는 나서지 않고 조용히 일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또한, 유엔총회의 의장인 한승수 외교통상부장관과 임성준 외교안보수석은 주변국들과의 적절한 이해조정을 위한 주요역할을 담당할 것으로 보여진다. 부시 미국대통령의 집권 후, 남북관계에 많은 영향과 간섭을 경험했던 김대중 정부로서는 주변국과의 상호이해를 조절하면서 보다 세련되게 남북관계를 진전시키려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개각과 관련한 두 야당의 반응은 그리 좋지 않은 반응들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국내문제 안에 머물러 있을 때, 정치적인 힘을 확대시킬 수 있는 한나라당과 임동원 씨의 통일부장관 해임안을 놓고 민주당과 갈라섰던 자민련에게 이번 개각은 상당히 놀랄만한 것인 까닭이다.

실제로 이회창 총재가 틈만 나면 김정일 위원장의 서울답방이 대선에 영향을 준다면서 반대해온 점, 개각 발표후 저녁에 DJP 회동이 이루어진 사실은 주목할만 하다.

햇볕정책의 산물인 정상회담은, 지난 이회창 총재의 미국방문에서도 노골적으로 김정일 위원장의 답방 반대를 표명했을만큼 한나라당이 경계하는 상징성과 폭발력을 지니고 있다.

또한, 중앙일보를 비롯한 주요언론들은 DJP 회동에서 내각제라든가, 신 3당합당, 정국개편 등이 논의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예측하고 있지만, 위와 같은 정황에 비추어볼 때, 그러한 정치적인 이야기보다는 이한동 총리의 유임과 햇볕정책의 진행에 대한 양해구하기였을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인다.

임동원-박지원 라인의 재등장은 정책적으로 자민련과 공조라는 입장을 천명해온 김 대통령이 자민련과 확실히 거리를 둔다는 것으로 보여질 수 있는 까닭에, 향후 정국운영에 있어서 캐스팅보트 역할을 하는 김종필 씨에 대한 예우 및 정책적, 정치적 공조 측면에서 교감을 나누었을 가능성인 것이다.

결국 김대중 대통령의 이번 개각은 현정부의 최대 업적으로 손꼽히는 햇볕정책의 산물인 6.15 남북정상회담의 불꽃을 살려서, 정권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향후 정국운영에서도 레임덕을 최대한 줄이면서 주도권을 확보해가려는 의지로서 초강수를 둔 것이다.

또한, 이번 개각은 정권말기에, 요동치고 있는 국내정치의 소용돌이에서 요구되는 부패척결과 정치개혁이 중요한가, 남북화해와 협력을 통한 장기적인 미래발전의 초석이 되는 것이 중요한가라는 질문을 담고 있다.

사실 지난 날을 돌이켜보면, 대북관계가 정권의 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쓰였고, 남북간의 화해무드도 예외가 아니었다. 김대중 대통령의 이번 개각이 새로운 국면전환을 위한 포석임은 분명해보인다.

그러나, 김대중 정권의 경우는 어떻게 진행할지 지켜봐야 할 것이다. 국내외 상황의 어려움으로 자칫 일회성 행사용으로 전락할 수 있었던 햇볕정책과 남북협력의 불씨를 살리려는 것이 단지 국내 정치의 주도권 확보라고 보기엔, 지난 4년동안 꾸준히 노력했었다는 것과 정치적인 부담이 큰 인물까지 재기용하는 강력한 의지를 담고있기 때문이다.

이번 개각이 비록 국내외의 개혁 및 부패척결 요구와는 다소 거리가 있어보이지만, 정권말기에 선거판의 이전투구가 예상되는 마당에 국내정치에 머물러있는 것보다, 기약할 수 없는 부패척결과 개혁보다, 남은 1년동안 확실히 할 수 있는 일을 해 나가는 것이 더 현명한 것인지, 아니면, 당면한 정치현실 속에서 야당의 주장대로 불확실한 중립내각을 구성하거나 민주당의 주장대로 선거에 유리한 내각을 구성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그런데, 이번 개각의 성패를 결정하는 중요한 변수는 북한측이 얼마나 반응하며, 주변국의 이해를 잘 조절하는가에 있는데, 최근 적십자사의 이산가족상봉 제의나 정부의 적극적 대응은 상당히 낙관하는 분위기로 보여진다.

북한측이 경제난 해소를 위해 변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가속되고 있고, 대한민국만이 북한을 경제침략의 대상이 아닌 동반자로서 인식한다는 것을 많이 알게 된 점, 지난 6.15 정상회담의 진전에 대한 북한주민들의 욕구를 계속 억누를 수만은 없다는 것이 최근의 현실이다. 그리고, 미국의 경우, 9.11테러 이후 지나치게 강경했던 것에 대한 반성과 엔론의혹 등으로 곤욕을 치르는 공화당 정권이 새로운 국면전환이 필요하며, 이번에는 보다 유화적인 모습이어야 하는 방향으로 상황이 변하고 있는 형편이다. 주변상황이 요근래 어느 때보다 희망적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적어도 남북의 화해와 협력은 민족의 장래를 위한 선택이 아니라 필연이라는 점, 부패척결과 개혁은 특정시기가 아니라 상설화되고 지속적이어야 한다는 점에서 김대중 대통령의 선택은 그 비중이 커보인다.

어찌되었건 국민이 원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평화와 발전이며, 김대중 대통령의 결정이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위해 좋은 결과를 나타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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