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년 대학에 입학하면서 서울에서 살아온지 17년이 넘었다. 부모님이 헐값에 밭을 팔아 마련한 500만원으로 한칸짜리 전세방을 구하여 서울 생활을 시작한 이래 모두 열한번의 이사를 다녔다. 평균 1년 6개월을 한 집에서 산 셈이다.
용두동, 행당동, 사근동, 행당동 2곳, 청량리, 안암동, 신당동, 성내동, 상계동 2곳을 거쳐 지금은 수유동에서 살고 있다. 살았던 동네 이름을 다 기억하는 이유는 주거문제가 그만큼 뼈저린 것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학생시절에는 매년 전세가 오를 때마다 이사를 다녀야 했다. 전세살이의 설움은 물론 연탄가스 중독, 지하 셋방 시절의 침수피해 등 우여곡절도 많았다. 직장생활을 하고 결혼한 후에는 조금 안정되어 평균 2년 정도를 한 곳에서 살았고 지금은 3년째 살고 있다. 어려웠던 지난날을 대부분은 잊었고 비로소 주거생활이 안정된 느낌이었다. 그리고 몇해 전 열심히 저축하여 작은 규모이지만 내 집을 마련했었다.
그런데 집을 갖게 된 이후에도 주거문제는 또 생겼다. 장애가 있는 딸의 치료교육 문제로 내 집을 두고서도 이사할 수밖에 없었다. 다시 전세로 이사하여 지금까지 만족스럽게 지내왔는데, 문제는 지난해 전세로 주었던 집을 팔면서부터 생긴 아내의 불안감이다. 작년에 집값이 오르기 전에 손실을 감수하고 팔았었는데 이미 천여만원 이상 올라버린 것이다. 나는 그때 그집에 다시 들어갈 계획이 없었고 주택이라는 재산가치 이전에 편하게 사는 가치를 생각했기 때문에 손해라고 생각치 않았다. 물론 지금 생각하면 재산상 큰 손실이었다.
아내는 아파트가격이 1년만에 껑충 뛰어버린 요즈음 속상한 마음에서 이야기한다. "당신의 경제적 감각을 도무지 믿을 수 없다. 그때 집 팔아서 손해만 봤는데, 지금이라도 없는 돈 모아서라도 다시 사야하지 않느냐"라고... 나는 믿음이 안가는 남편이 되어버렸고 그리고 최근 돈 관리를 아내에게 맡겼다. 그러나 가장 안타까운 것은 재산 손실이나 위신의 상실 보다도 집을 다시 사자는 아내의 말이다.
내가 집을 소유하였던 2년 동안 나는 주인으로서 세입자가 원하는 가격에 계약했고 시중 전세값이 폭등하였다고 해도 법정 한도인 5%이상을 올려받을 수는 없었다. 그럴 필요도 없는 것이 전세값은 엄밀히 말하면 주택의 사용료 이전에 보증금과 대부금의 성격을 갖기에 크게 손해보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집을 팔았던 것은 주거의 가치를 우선 생각했기 때문이며, 당연히 정부는 집값 안정을 위해 노력해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내가 전세로 살던 때에 전세값 인상문제로 집주인과 다투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는 어디에 있었는가? 집주인과 세입자간의 갈등은 도대체 무엇 때문인가? 또한 요즈음 집값 폭등에 허탈해하는 내 아내의 불안감은 어디에서 온 것인가?
무엇이 이렇게 사람들을 기회주의적으로 생각하게 만들었는가! 그것은 바로 정부의 그릇된 경기부양정책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정부는 IMF하의 긴축정책과 세금부담에 의해 가장 희생이 컸던 노동자 서민대중의 생계를 등한시 해왔다. 노동자서민대중에게 생계의 핵심이 바로 주거와 물가인데, 정부는 눈에 보이는 경기부양만을 고집하고 있지 않은가? 어찌보면 정부의 정책에는 대증요업에 치우친 정치적 판단이 앞서 있으며, 자산보유계층의 이익만을 대변하는 도덕적 해이마저 느껴진다.
환난 초기 IMF의 무제한 금리요구를 수용하여 금융자산가들의 재산은 배로 불어났고, 98~99년 과도한 증시부양으로 주식시장 급등락의 후유증을 낳더니, 이제는 모든 사람들을 부동산 투기꾼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최근 서울 강남권을 필두로 한 집값 폭등과 IMF 이전에 버금가는 과도한 청약경쟁은 무엇을 말하는가? 사람들은 과거 학습효과를 통해 한몫 잡겠다는 도덕적 해이에 편승해있다. 지난 30여 년간의 인플레 악순환과 그 정점이었던 IMF의 망령이 되살아나는 듯한 아찔한 느낌이 든다.
이제 정부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세가지만 지적하고자 한다. 첫째, 과거 고성장시대 성장지상주의 환상에서 벗어나 환경친화적인 새로운 경제모델을 생각하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경제의 체력을 강화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에 대한 해답은 서민들과 노동대중의 입장에서 사고해야만 나올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양대선거와 월드컵 등을 앞둔 시점에서 정부는 장기적인 물가대책을 미리 세워야 할 것이다. 지금의 경기부양정책은 지나친 재정확대, 급격한 총수요 확대로 자칫 경기과열과 물가앙등의 악순환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셋째, 부동산가격 안정정책을 일관되게 유지해야 한다. 특히 서민생계의 골간인 주택가격안정에 전향적으로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세무조사 등 대증요법으로는 한계가 있으며, 주택에 대한 투기억제 의지와 전세가격의 법정 인상한도에 강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산업용 부동산이 안정되어 있는데도 주택가격이 크게 들먹이는 것은 참으로 우려할 만하다.
먼 훗날의 얘기겠지만 아내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는 날을 고대해 본다. "우리들 노동자서민들이 직접 세운 정부이니까 이제 정부를 믿고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될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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