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 곤한 잠에 빠져있는데 꿈결인 듯 싶게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불을 켜고 시간을 보니 밤 1시가 훨씬 넘었습니다. 제자들에게 밤늦은 시간 전화가 오는 경우는 더러 있습니다. 동기생들끼리 모여 술이라도 한잔 하다가 옛 담임이 생각나 집으로 전화를 거는 것이지요. 그런 경우 대개는 수화기 저편이 떠들썩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그러기는커녕 전화 속이 쥐죽은듯이 조용하기만 했습니다.
"여보세요."
"아, 선생님 전화를 받으셨네요. 너무 늦어서 끊으려고 했는데…."
"누구신지?"
"저, 환웁니다. 밤늦게 죄송합니다."
"아니, 괜찮아. 그런데 이 늦은 시간에 어디냐?"
"여기 병원 응급실입니다."
"아니, 응급실엔 왜?"
"제 처가 지금 애기를 낳고 있습니다."
그와 몇 마디를 더 나누고 전화를 끊고 나니 아내가 누구냐고 묻습니다. 제자의 이름을 대자 아내도 알겠다는 표정입니다. 졸업한 지 15년이 다 되는 제자인데 말입니다. 그만큼 그는 유명한 제자였던 것입니다. 잠도 오지 않고 해서 서재로 들어가 해묵은 교무수첩을 꺼내어 그를 찾았습니다. 얼굴이 갸름하고 조금은 끼가 있어 보이는 그의 얼굴에 겹쳐서 추억의 몇 장면이 필름처럼 스쳐지나갔습니다.
첫 장면은 개학 첫날의 교실 풍경입니다. 저는 처음 대면하는 아이들에게 먼저 만남의 소중함에 대해서 이야기해주고, 한 해 동안 친절한 담임이 되겠다는 약속 끝에 이런 말을 덧붙였습니다.
"선생님은 이래 보여도 끈질긴 면이 있어요. 그래서 사서 고생을 하기도 하지만. 부탁해요. 절 너무 힘들게 하지는 않겠지요?"
그런데 점심을 막 먹고 난 뒤였습니다.
"저 선생님께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고개를 돌려보니 얼굴이 좀 붉어 보이는 한 아이가 머리를 긁적이며 서 있었습니다.
"그래? 이름이 뭐지?"
"김환웁니다."
저는 귀가 번쩍하여 반사적으로 자세를 가다듬었습니다. 그것은 그 아이의 담임이었던 김아무개 선생님이 저에게 귀띔을 해준 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 말을 머리 속에서 지워버리고 환한 웃음을 지으며 그 아이에게 의자를 내밀었습니다.
"무슨 얘긴데? 여기서 해도 되겠니?"
"네, 저 자퇴시켜 주십시오. 선생님은 절 못 잡습니다."
그의 자퇴 사유는 이런 것이었습니다. 그가 하도 말썽을 피우니까 그의 모친께서 용한 점쟁이에게 점을 친 모양인데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한다는 점괘가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선생님을 보니 쉽게 포기하실 것 같지 않은데 어차피 언젠가는 학교를 그만둘 걸 괜히 선생님만 고생시키는 것이 미안해서 미리 자퇴를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에게 이렇게 말해주었습니다.
"선생님을 걱정해주는 것은 고마워. 그래 그건 아름다운 생각이지. 하지만 내 자신이 귀하지 않으니까 남을 먼저 대접하는 것은 잘못된 거야. 너는 선생님이 사랑하기에도 벅찬 존재야. 자기를 사랑하지 않은 죄만큼 큰 죄가 없는 거야. 네게 네 자신을 사랑한다면 그 점쟁이의 점괘에 도전해봐. 그래서 이겨봐."
저의 진지한 태도에 그 아이의 눈이 조금씩 열리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는 더 단호해진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생님이 절 몰라서 그래요. 전 제가 생각하기에도 골치 아픈 놈입니다. 선생님이 신경 써주실 만큼 좋은 놈이 못 된단 말입니다."
그는 저를 오히려 설득하려 들었습니다. 그의 천진하면서도 타는 듯한 눈빛은 온전히 저를 향한 배려에서 나온 것이기에 눈시울이 뜨거워질 지경이었습니다.
두 번째 장면입니다. 그날 점심 시간 그 아이와 저는 학교 뒷산 양지 바른 곳에 나란히 앉아 있었습니다. 꽃샘바람이 불고 있었지만 햇볕이 있는 쪽의 잔디밭은 보드랍고 따뜻했습니다. 저는 여유를 가지려고 애쓰면서 어두웠던 저의 학창시절의 얘기 한 토막을 그에게 들려주었습니다.
"나도 내 자신이 참 소중하지 않다고 느껴지던 시절이 있었지. 그땐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이 싫어서 천장을 보면서 양치질을 하기도 했어. 왜 그랬을까하고 한참 뒤에 어른이 되어서 생각해 보았는데 좀 불만이 많았던 것 같애. 남들처럼 잘 사는 집에 태어났으면 용돈도 쓰고 싶은 대로 쓰고, 대학에도 가고, 근사한 여학생도 사귀고 말이야. 그래서 나는 울분을 삭이려고 권투를 배우기도 했지. 그냥 눈앞에 어기적거리는 것들은 다 패주고 싶었어."
다음은 그의 차례였습니다. 그는 중학교 때 잠시 학교를 그만두고 아버지를 따라 광양제철소에 다닌 적이 있다고 했습니다. 평소에는 조금도 자기에게 웃음을 주지 않던 아버지가 그때는 웃어주며 잘해주더라는 것입니다. 지금이라도 학교를 그만두고 일을 시작한다면 아버지는 좋아할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을 했습니다. 제 대답은 이랬습니다.
"그런 네 오해일 거야. 그럴 리가 없어. 나도 아들이 있는데, 아버지라면 사랑하는 아들에게 그런 마음을 품을 수는 없는 거야. 네가 성실한 모습을 보이지 않다가 일을 열심히 하니까 아버지가 기분이 좋으셨을 거야. 분명히 내 말이 맞을 거야."
이렇게 제 1라운드는 저의 판정승으로 끝이 났습니다. 그가 저에게 KO펀치를 날린 것은 그로부터 한 달쯤 지난 4월 초순경이었습니다.
세 번째 장면입니다. 저는 집단 폭행 사고 주범으로 입건되어 경찰서 유치장에 수감된 그를 찾아갑니다. 그는 고개를 숙인 채 말이 없었습니다.
"고개 들어."
"죄송합니다."
"누구에게?"
"예?!"
"선생님께 죄송한 거 다 알아. 다른 사람은 몰라도 선생님에게는 미안하겠지. 널 사랑하고 있다고 믿으니까. 바로 그거야. 네가 네 자신을 사랑한다면 넌 스스로 이런 일을 용납할 수 없는 거야. 남을 해칠 수 없는 거야. 그건 죄야. 네 동생을 누가 그렇게 집단 폭행했다면 넌 가만 있지 않겠지? 네 동생은 그만큼 너에게 소중하니까. 모든 사람에겐 다 소중한 사람이 있는 거야. 그래서 어느 누구도 남을 해쳐서는 안 되는 거야. 난 네가 누구보다도 네 자신에게 죄송한 마음을 가졌으면 해."
그는 그 사건으로 학교에서 무기정학 처분을 받습니다. 벌로 중노동을 하고 있는 그를 데리고 동산으로 데려가 잠시 쉬게 하면서 이런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넌 아직도 네 자신이 소중하다고 느껴지지 않니?"
"별로요."
"난 내 자신이 참 소중한데."
"선생님은 훌륭하시잖아요."
"환우는 안 훌륭하고?"
"제가 훌륭해요? 말도 안 돼요."
"나는 네가 선생님보다 더 귀한 것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에이 선생님도."
"선생님 같으면 친구 애인을 빼앗아 갔다고 대신 복수해주진 못했을 거야. 용기가 없어서. 넌 1학년 때 그런 적이 있다며?"
"그런 건 나쁜 짓이라고 하셨잖아요."
"나쁘긴 나쁘지, 하지만 훌륭한 면이 없는 것도 아니지. 그런데 환우야. 선생님은 자신이 소중하게 느껴지는데 넌 그렇지 못한 이유가 뭘까? 그건 어쩌면 나에겐 네가 있고 넌 아무도 없기 때문이 아닐까? 난 너에게 필요한 사람이기 때문에 내 자신이 소중하게 느껴진다는 거지. 넌 너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스스로 소중하지 않은 거고. 내 말은 이웃이 필요하다는 거야. 네가 소중해지기 위해서는. 내 말 이해할 수 있겠니?"
"예, 조금은…."
그런데 다음 순간이었습니다. 갑자기 환우의 낯빛이 변하더니 울먹이는 소리로 이렇게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선생님, 저 불량 써클에 가입했어요. 저, 어떡하면 좋아요?"
"왜 빠지고 싶니?
"예, 하지만…."
"그럼 빠져. 네 의지에 달린 거야. 내가 도와줄게."
그 후, 환우는 그의 아버지의 맹활약(?)에 힘 입어 불량 서클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영광의 상처를 입고 병원에 입원까지 하는 통과의례를 거친 뒤였지만. 환우는 그런 과정에서 아버지의 사랑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마지막 장면입니다. 어느 날 수업 시간, 그의 책상 위에는 책도 공책도 아무 것도 놓여 있지 않습니다. 책이 없는 아이는 환우 말고도 몇 명이 더 있습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이 세상에서 청소년들이 저지를 수 있는 가장 큰 죄악은 무엇일까요?"
"성폭행요."
"마약 복용요."
"마약 먹고 성폭행 하는 거요."
아이들은 농담의 천재입니다. 진실에는 그만 벙어리가 되고 말지만. 저는 칠판에 큰 글씨로 이렇게 적었습니다.
첫째,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
둘째, 책과 공책을 가져오지 않는 것.
의외라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하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저는 이렇게 말해주었습니다.
"농부 이야기를 해봅시다. 논에 모를 심었는데 그것이 자라다가 병충해도 입고 가뭄을 만나 모가 말라 갈 때 그 농부의 심정이 어떨까요? 제 살이 타는 그런 심정일 겁니다. 그런데 만약 농부가 모를 심었는데 그것이 아예 자라지 않고 성장을 멈추어버린다면 농부의 심정이 어떨까요? 모가 자라다가 병충해에 걸리면 약을 쳐주고 아니면 수확의 일부를 포기하면 그만입니다. 하지만 모가 전혀 자라지도 않고 그냥 성장을 멈추어 버린다면 이보다 더 기가 막힐 일은 없을 것입니다. 무언가 고민하고 모색해야할 청소년기의 여러분들이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빈둥거리며 하루를 보내고 있는 것을 바라보는 여러분 부모님의 심정도 이와 같을 것입니다. 오늘 책과 공책을 가지고 오지 않은 사람들은 이 말을 깊게 새겼으면 합니다."
그로부터 약 한 달이 지났습니다. 저는 칠판에 영어로 가정 혹은 집을 뜻하는 home 과 house를 써놓고 두 단어의 차이점을 공책에 적어보라고 했습니다. 물론 지난 시간에 공부를 한 내용이었습니다. 몇 분이 지난 뒤 나와서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손을 들어보라고 했더니 손을 든 여러 명의 아이들 중에 환우도 끼어 있었습니다. 아이들의 눈이 모두 환우 쪽으로 향했습니다. 저는 그를 지목했고, 그는 공책을 들고 앞으로 나와 칠판에 두 단어의 차이점을 소설을 쓰듯이 이렇게 적어나갔습니다.
home은 가정을 뜻하는 추상명사로 복수를 만들 수 없고 관사를 사용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house는 건물을 뜻하는 보통명사로 복수를 만들 수도 있고 관사를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house는 돈만 있으면 언제나 지을 수도 있지만 home은 돈이 있어도 가족들의 사랑이 없으면 지을 수 없습니다. house보다 home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저는 그렇게 쓰고 뒤로 돌아서는 환우를 힘껏 껴안았습니다. 비록 기초 수준의 영어라 해도 환우에겐 엄청난 변화가 아닐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니, 그보다도 어느덧 가정의 소중함을 체득한 그가 너무도 대견스러웠던 것입니다.
해가 바뀌어 환우는 3학년이 되었고, 또 한 해가 흘러 그 이듬해 봄이 되자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한다는 점쟁이의 점괘를 보기 좋게 물리치고 당당하게 졸업식장에 설 수 있었습니다. 그날 제 책상 위에는 그가 남긴 작은 선물꾸러미가 놓여 있었습니다. 그 동안 고마웠다는 내용의 쪽지와 함께.
제자의 변화는 교사의 밥입니다. 그것도 험준한 산을 넘어와 시장기가 느껴질 때 맛보는 고봉밥입니다. 가끔 그를 생각합니다. '교사는 있어도 스승은 없고 학생은 있어도 제자는 없다'는 말이 어디선가 들려올 때, 저는 저에게 소중한 제자였던 그를 생각합니다.
저는 너무도 성급하게 교육의 절망을 입에 담는 모든 분들께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밤늦은 시간 병원 응급실에서 "제 처가 지금 애기를 낳고 있습니다"라고 전화를 걸 수 있는 제자가 있는 한 아직은 교육에 희망은 있다고 말입니다. 아직 희망을 버릴 때가 아니라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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