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 앞둔 한 여고생의 가출과 '호소'

인천 '친어머니-학원장 살해사건'의 긴 후유증

등록 2002.02.19 18:14수정 2002.02.20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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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3학년에 올라가는 '전교 1등 모범생'이 인터넷에 '어머니 살인범으로 몰린 우리 언니는 억울하다'는 호소문를 올리고 한 달여째 집을 나간 상태여서 학교당국과 친구들을 애타게 하고 있다.

▲ 고3을 앞둔 '전교 1등' 학생이 한 달째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고 있고, 학교도 결석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공희정
탄원서를 작성한 A양(18)은 지난해 11월 초 어머니 살해 혐의로 구속돼 언론으로부터 '패륜아'로 몰렸던 B양(20)의 친동생이다. 현재 인천구치소에 구속되어 있는 B양은 그의 과외선생이었던 C씨와 함께 학원장 서인철 씨 살인 사건의 공범으로 구속됐다. 하지만 수사과정에서 친어머니를 질식시켜 살해한 혐의가 추가로 밝혀져 충격을 준 바 있다.

인천 O여고 2학년생인 A양은 지난 1월 18일 어머니를 살인한 혐의로 구속된 언니 B양의 첫번째 공판이 열린 직후 가출했다. 동생 A양은 최근 "세상이 언니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내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며 서울 명동의 한 건물에 올라가 투신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A양의 담임 유 아무개 교사는 "A양은 지난 학기의 모의고사에서 전교 1등을 해 장학금을 받을 정도로 성적이 매우 우수한 학생이었고 모든 일에 열의를 가지고 행동했다"면서 "하지만 언니가 지난해 11월 구속된 후 방황을 하다가 올해 1월 18일 언니의 첫 공판 이후 학교에 나오지 않았고 집에도 들어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A양은 지난 2월 11일과 12일 학교 친구 강아무개 양에게 두 차례 전화를 걸어 "힘들다. 집에 가야 하는데 망설여진다. 사람들이 내 말을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한다. A양은 현재 천주교 인권위가 제공한 한 쉼터에서 머물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지만 정서적으로 지극히 불안정한 상태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터넷 호소문에 담긴 충격적 내용

A 양이 인터넷에 올린 호소문은 A4 용지 3장 분량이다. '가출한 전교 1등'의 호소문은 크게 3가지 점에서 충격적인 주장을 담고 있다.


▲ B양이 관련된 '학원장 살해사건'의 현장검증 사진. ⓒ 부평경찰서
첫째, 언니는 2001년 2월 9일에 숨진 어머니를 죽이지 않았고, 경찰의 고문 때문에 허위자백을 했다.

둘째, 언니는 '어머니 살해 사건' 전후 수 차례에 걸쳐 아버지로부터 성폭행을 당했고, 아버지가 경찰과 짜고 언니에게 살해 혐의를 씌우고 있다. 언니는 수감 상태인 2001년 11월 19일 아버지를 성폭행 혐의로 고소했지만 검찰은 아버지와 짜고 제대로 조사를 하지 않고 있다.

셋째, 어느 시민단체나 언론도 자신의 주장을 믿어주지 않고 있으며 이제는 정말로 죽는 길 밖에 없는 것 같다는 것.


A양의 이러한 주장은 인터넷 게시판 등을 급속히 퍼지고 있다. 네티즌들은 사법당국이 하루빨리 A양의 주장에 대한 조사를 해줄 것을 바라고 있다.

경찰-아버지 "인터넷에 올린 A양 주장은 사실과 달라"

A양의 이러한 충격적 주장에 대해 A양의 아버지와 경찰은 "사실과 다른 주장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A양의 아버지는 18일 오마이뉴스 기자를 만나 "큰딸을 성 폭행한 적이 결코 없다"고 말했다. 그는 "아내가 죽은 후 큰딸이 살인자로 의심되자 아내가 죽은 현장이었던 안방 침대에서 자보라고 했으며, 자주 가위에 눌려 힘들어하는 딸을 다독거려 준 적은 있으나 성폭행은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그럼 왜 작은 딸이 그런 주장을 인터넷에 퍼뜨리고 있느냐"고 묻자 "나도 인터넷에 실린 글을 보았는데 작은 딸은 이 사건을 왜곡하려는 그룹으로부터 세뇌 당해 이용당하고 있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A양의 아버지는 "학원장 살인사건으로 구속되어 있는 과외선생 C씨의 제자 4,5명이 신처럼 따르는 C씨를 구명하기 위해 인터넷에 글을 올려 음모를 꾸미고 있는 것"이라면서 "우리 막내딸이 어떻게 하다가 그런 지경이 됐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A양의 아버지는 또 "아이들의 주장은 처음부터 전혀 일관되지 못하다는 것은 나도 알고 경찰도 알고 검찰도 알고 있는 것"이라면서 "막내딸이 돌아온다고 해도 벌어진 부녀 사이를 어떻게 메워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또한 언니 B양 사건에 대한 수사를 담당했던 부평경찰서 측은 "A양이 인터넷에 올린 글을 보면 우리가 수사과정에서 가혹행위를 했다고 하는데, 수사 당시 기자들도 목격했지만 가혹행위는 없었다"고 말했다. 이 사건을 담당했던 한 형사는 "인터넷에 글이 퍼지자 청와대에서도 보고를 요구해왔다"면서 "수사과정이나 수사결과에 대해 지적 당할만한 일은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인천 여성의 전화 "가정폭력이 주 원인 아닌 듯...더 지켜봐야"

한편 작은 딸의 호소에 대해 그동안 상담을 맡아왔던 인천 여성의 전화는 2월 19일 '이 사건에 대한 입장'을 발표했다. 이 단체는 B,A 양 자매를 비롯한 사건 관련자를 면회-인터뷰 하고 변호인단을 선임해 활동했으나 "이번 사건이 (호소자의 주장처럼) 가정폭력이 주원인이 되어 발생한 것이 아니라는 심증을 갖게 되었다"면서 "일단 재판과정을 지켜보면서 혹시라도 우리 단체가 파악하지 못한 가정폭력과 성폭력의 정황이 드러나는지를 볼 것"이라고 다소 유보적인 입장을 보였다.

인천 여성의 전화의 한 관계자는 "B양이 법정에서 결정적인 대목에 대해 진술을 번복하고 있다"면서 "이 점도 호소자들의 호소내용을 어느 정도 신뢰할 수 있는지 시간을 갖고 검증하게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동생 A양에 의해 '구명운동' 대상이 되고 있는 언니 B양은 경찰, 검찰 조사 때와는 달리 법원 재판과정(2차심리, 2월 5일)에서 "나는 어머니를 죽이지 않았다, 그러나 학원장 서인철 씨는 내가 주도적으로 죽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B양은 경찰과 검찰 조사에서는 "내가 어머니를 죽였다, 그러나 학원장을 과외교사 C씨가 죽이는 것에는 망만 봐줬다"는 취지의 주장을 했었다. 따라서 왜 B양이 뒤늦게 진술을 180도 바꾸고 있는가에 대해서도 규명이 되어야 한다.

인천 여성의 전화는 이번에 발표한 '입장'에서 "여성인권운동단체로서 가정폭력, 성폭력 피해자의 인권보호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면서 "인터넷상에 게시된 A 양의 주장으로 인하여 이 사건에 관심 갖고 있는 분들은 재판을 한번 방청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이 사건에 대한 다음 재판은 인천지법 103호에서 2월 22일 오후 4시 30분에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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