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의 한 문인단체가 현재 마산시에서 건립 추진 중인 문학관의 이름을 일제 때 <만선일보>에 재직해 친일 경력 시비를 일으키고, 해방 후 군부독재에 협력한 것으로 알려진 이은상(호 노산, 1903~1982)의 이름을 붙여야 한다고 주장해 논란이 일고 있다.
경남시조문학회(회장 김복근)는 지난 18일 정기모임을 갖고 "'마산문학관'을 '노산문학관'으로 해야 한다"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이같은 소식이 알려지자 시민단체는 "군부독재에 항거하며 3.15의거를 일으켰던 마산에 어울리지 않는 주장"이라며 반대하고 나섰다.
마산시 '아직 정해진 이름 없다'
마산시는 1999년부터 비슬산 기슭에 '노산문학관' 건립 계획을 세웠다. 이같은 소식이 알려지자 '열린사회 희망연대' 등 단체에서 '이은상은 친일 경력이 있다'면서 부당성을 제기했다. 이로 말미암아 지역에서는 이은상이 '친일을 했다'와 '근거가 없다'라는 주장이 맞섰다.
이런 속에 문학관 건립 예산이 배정되자 마산시가 문화관광부에 보고하면서 문학관 이름을 '노산문학관' 대신 '마산문학관'으로 하였다. 한때 논쟁이 가열되었다가 잠잠했는데, 이번에 경남시조문학회에서 결의문을 채택하는 바람에 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마산시 관계자는 "문학관 이름을 어떻게 하든 찬반 양론이 있는 게 사실이다. 문학관 건립 예정지만 정해 놓고 착공도 안한 상태다. 가칭 '마산문학관'으로 해서 시작하되 알맞은 때에 여론 수렴 절차를 거쳐 이름을 정할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저명 문인 문학적 업적 기리기 위해 '노산문학관'으로
* 경남시조문학회 주장 = 30여 명이 참석한 이날 모임에서 경남시조문학회는 “문학관은 ‘마산’이 아니라 이은상의 호를 딴 ‘노산’이라고 이름지어야 한다”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경남시조문학회는 결의문에서 “이은상의 친일은 근거가 없는데도 시에서 일부 주장을 받아들여 ‘마산문학관’(가칭)으로 이름을 정한 것은 잘못이다. 문화관광부에 '마산문학관'(가칭) 건립을 보고한 것은 자칫 이것이 정식 명칭으로 굳어질 우려가 있다”고 설명했다.
또 "노산문학관 건립 기금으로 마산문학관을 건립하는 것은 마치 정부에서 전국의 시 지역에 문학관을 건립하려는 것과 같다" "이 사업은 저명한 문인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기 위한 것이므로 평창에 이효석 문학관, 경주에 동리 목월 문학관이 있듯이 마산에는 노산문학관이 있어야 한다”는 내용도 담고 있다.
아직까지 이름이 정해지지 않았다는 데 대해, 경남시조문학회는 “건물부터 짓고 이름을 뒤에 붙이겠다는 마산시의 계획은 더 큰 화를 자초할 수 있다. 사업명을 바르게 한 뒤 당당하게 문학관을 건립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그리고 경남시조문학회는 "전국 문인 단체와 연대하여 뜻을 관철시킬 것"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3/15 의거 정신에 반하는 군부독재 협력
* 시민단체 주장 = 마산지역 시민단체 가운데 '노산문학관' 건립에 적극적인 반대 입장을 보이고 있는 단체는 '열린사회 희망연대'다.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이은상의 친일 시비를 떠나 군부독재시대를 거치며 권력에 가까이 지낸 경력이 '3.15 의거 정신'에 어긋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열린사회 희망연대' 오창욱 사무처장은 "이은상을 시조문학의 높은 봉우리로 생각하는 시조시인들이라는 점에서 보면, 일견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마산문학관'이 그들의 주도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의 세금으로 건립되는 것임을 생각할 때 번지수를 잘못 짚었다. 안타깝다"라고 말했다.
오 사무처장은 이은상에 대해, "일제와 해방, 군부독재시대를 거치면서 늘 당대 지배권력과 가까이 지내면서, 양지만을 누린 기회주의적 삶을 살았던 인물이다"라며 "특히, 3.15 의거 직전 이승만을 '국부'로 추대해야한다며 전국을 순회하던 곡학아세의 문인들 틈에 끼어 권력의 주구노릇을 했던 행위는 마산에 3.15가 있는 한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전과로 남아 있을 것이다"라며, 그를 기리는 문학관 건립은 부당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오 사무처장은 "세금으로 짓는 '마산문학관'을, 이은상 중심의 문학관으로 만드려는 모든 음모와 노력은 당장 중단되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총력안보국민협의회 의장, 국정자문위원 등 지내
* 이은상은 누구인가 = 호가 '노산(鷺山)'으로, 마산에서 태어났다. 1923년 연희전문학교 중퇴, 1926년 일본 와세다대학에 청강했다. 1931년 이화여자전문학교 교수, 1945년 호남신문사 사장을 거쳐 1950년 이후 청구대학·서울대 문리과대학·영남대 교수를 지냈다.
1954년 예술원 회원, 1959년 충무공 이순신 장군 기념사업회장, 1965년 민족문화회장, 안중근의사 숭모회 회장 등을 맡았다. 1976년 총력안보국민협의회 의장, 시조작가협회 종신회장, 1978년 예술원 종신회원, 1981년 국정자문위원에 위촉되었다.
예술원 공로상, 5·16민족상 학예부문 본상 등을 수상했고, <노산사화집> <노산시조집> <노산시문집> <이충무공 일대기> 등이 있다.
친일어용신문 <만선일보> 재직
* 이은상은 친일했나 = 이은상이 '친일을 했느냐' '안했느냐'는 단정적으로 말할 수 없다. 이은상은 친일어용신문인 <만선일보>에 재직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밝혀진 게 없다.
이와 관련하여 민족문제연구소 김민철 연구원은 '노산문학관' 논쟁이 한창이던 2001년 5월 "이은상의 '친일' 문제를 말한다"라 제목의 글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이은상은 조선어학회 사건과 관련하여 1977년 건국포장을 받았다. 1980년대 초 '친일파 연구의 선구자'였던 고 임종국 선생과 광복회가 과거 독립운동을 한 공로로 국가에서 포상을 받은 유공자 가운데 상을 받아서는 안될 사람들을 조사한 뒤 보고서를 냈다.
그 보고서에 이은상의 명단이 있다. 다른 대상자와는 달리 이은상의 항목에는 증거자료가 없이 증언 형태로만 기록되어 있었다. - 이은상은 당시 이 작업에 참여했던 이재윤 선생에게 '뭐 그 까짓 일로 그러느냐, 내가 충무공 일대기도 썼는데'라고 항의 아닌 항의를 했다. 즉 자신의 '친일 행위'를 인정하면서도 다른 일에 비하면 그 정도는 눈감아 줄 수 있지 않느냐는 원망을 실은 것이다."
또 김민철 연구원은 "사실 이은상의 친일행위는 다른 친일파들의 협력행위에 비하면 매우 소극적이고 약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친일 행위를 했다고 한다면 그것이 적극적이든 소극적이든 간에 독립운동의 명목으로 상을 줄 수는 없다. 상을 받을 만큼 독립운동을 했는가라는 문제를 따질 필요도 없이 일제에 협력한 사람에게 이 상을 준다는 것은 상의 목적 자체를 부정하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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