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하는 젊음은 아름답다

<하노이 이야기 3> 어느 젊은 하노이안의 초상

등록 2002.02.20 03:25수정 2002.02.20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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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별명은 '럭비공'이다. 75년생으로 베이붐세대이며 하노이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했다. 미국에서 2년 유학. 이집트 잡지사에서 6개월 근무. 방콕의 카오산로드에서 3개월간 불법노점상. 중국에서 떠돌이생활 10개월. 몸값은 하노이의 상한가. 지금은? 하노이대학 경제학부의 '자원봉사 교수'이다. 특기사항으로는 실연경력 4번.

럭비공을 소개 받은 계기는 통역가라는 그의 명함을 받고서였다. 그와 만나기로 한 장소에서 나는 그의 화려한(?) 경력을 떠올리며 청바지에 무스를 바른 젊은이를 상상하고 있었는데, 웬 군밤장수 같은 아저씨가 나타났다. 벙거지를 벗으며 깍듯하게 인사를 하는데 보기 드문 미남형에 눈에는 총기가 총총했다.

"여기가 호치민 박물관이군요. 기다리는 동안 한바퀴 둘러봤는데 볼거리가 많습디다."

박물관 한 쪽에는 호치민이 한시로 쓴 옥중일기가 족자로 만들어져 전시되어 있고, 다른 한 쪽에는 사회주의국가 건설 시기의 그의 활동상이 다양하게 소개되어 있다. 호치민 동상이 있는 유일한 곳이다.

"둘러보기 전에는 빨간 색으로 도배를 해 놓은 줄 알았는데, 자유분방한 분위기가 마치 빠리의 퐁피두 센터 같군요."
"전 별로 맘에 들지 않습니다. 너무 모던해요."
"뉴욕이나 베이징에도 가 보셨잖아요. 공산주의 혁명가 박물관이다 그러면, 괜한 사람들도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구요. 친숙한 느낌을 주도록 꾸미는 것도 나쁘지 않은 듯한데요."
"호치민은 단순하고 소박한 삶을 살았습니다. 굳이 꾸며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엉클 호가 없었다면 지금의 베트남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나는 그의 심각한 분위기를 누그러뜨리느라 화제를 다른 쪽으로 돌렸다.

"부모님은 젊은 시절에 뭘 하셨나요? 부모님하고 세대차이를 많이 느낄 듯싶은데."
"소련에서 유학을 하셨지요. 아버님은 지리학을 공부하셨는데 늘 기타를 메고 다니셨답니다. 당시 동구권 기타연주대회에서 1등을 하신 적도 있대요. 아버님이 영국에 사셨다면 비틀즈 멤버가 되지 않으셨을까요."
"요즘은 부모세대에 대해 어떻게 느낍니까? 그 세대의 이상에 공감하기가 힘들 텐데."
"낡은 소파 같다고나 할까요. 새 것으로 갈고 싶은데 아직 돈은 없고 해서 이사 다닐 때마다 버리지도 못하고 들고 다니는 거 말이에요. 그래도 가끔 거기 앉으면 향수나 추억 같은 얘기들이 묻어나서 그냥 둘까도 싶은..."


"한국에서 제가 대학 다닐 시절엔 말이죠, 아버님 저 오늘 데모 좀 하고 오겠습니다, 했다간 그 날로 다리 몽댕이가 부러져요. 그 집 자식이 아니라 빨갱이 자식이라는 거예요. 여긴 좀 사정이 달랐을 듯싶은데 뭐 남다른 가정교육이라도?"
"사람 사는 게 뭐 그리 다르겠습니까. 누구네 집 애는 이렇다는데 너도 공부 좀 잘해서 애비 체면 좀 세워주라 그런 거였죠. 하지만 전 부모님 세대를 존경합니다. 제가 미국으로 유학 갈 무렵 아버님이 공항에서 제 손을 꼭 잡으면서 그러시더군요. 어딜 가드래도 베트남 사람이라 걸 잊지 않아야 한다."

우리는 호치민 박물관을 나와 하노이의 가장 오래된 서원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마침 점심 시간이라 거리는 음식 굽는 냄새와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로 북적대고 있었다. 노상식당에 앉아 국수를 먹는 샐러리맨들,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장기를 두는 씨클로 운전수들, 빙 둘러앉아 닭싸움을 구경하는 공사장의 인부들, 인도에 네트를 쳐놓고 제기차기를 하는 청소년들, 신나게 자전거 경주를 하는 아이들. 거리에 활기가 돌아오고 있었다.


"하노이에는 노는 사람이 없어요. 다들 뭔가 두드리고 고치고 쪼개고. 가난에 치여 살아왔을 텐데도 표정은 찌들어 있지 않거든요."
"하노이는 정말 정겨운 도시죠. 하노이를 떠나 있으면 늘 돌아오고 싶거든요. 하지만 답답할 때도 있습니다. 우연히 방콕의 카오산거리를 가 보게 되었는데 젊은 배낭족들의 천국이더라구요. 자유롭다는 게 이런 거구나 싶더군요."

그는 미국유학을 끝내고 하노이로 돌아오는 길에 방콕에 들렀다. 외국의 젊은이들도 사귈 겸 카오산에서 좌판을 벌여놓고 노점상으로 전전하다가 걸인을 하나 만났단다.

"싱카폴에서 온 젊은 애였어요. 얼마 전 뉴질랜드 애한테 가진 돈을 다 털렸대요. 갚는다고 돈을 빌려 가 놓고 감감무소식이래요. 하도 사정이 딱해서 먹여주고 재워주고 했죠. 어느날 그 친구가 싱카폴에 가야겠으니 비행기 값이 필요하다고 하더군요. 수중에는 제 비행기 값 밖에 없었는데. 난감했죠. 한데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그 친구가 돈을 갚으면 저는 인간에 대한 신뢰를 얻는 거구요. 반대의 경우엔 인간의 밑바닥을 보는 거죠. 어느 쪽이든 사람살이를 배우는 거다, 생각하고 눈 딱 감고 남은 돈을 탈탈 털어서 그 친구에게 줘 버렸죠. 속이야 많이 탔죠. 그런데 비행기 타기 전날 통장에 돈이 들어와 있더군요."

그런 인연으로 둘은 하노이에서 재회를 했다. 그 싱가폴 친구는 베트남에서 투자자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단다. 싱가폴은 베트남 해외투자국 1순위이다.

"저를 보더니 세상에 너만큼 믿을 놈은 없다, 하면서 꼭 자기 투자회사의 매니저가 돼 달라고 하더군요. 비행기 값 빌려 달라고 할 때보다 더 고민스럽더라구요. 하지만 정중하게 거절했죠. 우리는 친구 아이가, 친구 사이에 무슨 소리고. 실은 내가 갈 길은 아니다 싶었습니다."

하노이로 돌아온 럭비공은 국제회의 통역가로, 신세대 경제학도로 명성이 자자해져 여기저기서 손길이 뻗쳐 왔다. 한번은 미국의 한 투자회사로부터 이런 제의를 받은 적도 있다. 연봉 3만5천 달러에 모셔가겠다고. 하노이의 쌀국수 한 그릇은 35센트다. 그는 굴러들어온 이 호박까지도 차 버렸단다.

"친구들이 다 저 보고 미쳤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사람 마음이 얼마나 간사합니까. 제가 한 달에 수천 달러 받다가 백 달러짜리 교수직으로 옮길 수 있겠어요?"

그의 무용담을 듣는 동안 우리는 서원(Temple of Literature)에 도착했다. 중국에서 독립한 후 11세기 초에 세워진 이 서원은 우리 식으로 하면 성균관에 해당하는 곳이며 베트남 최초의 국립대학인 셈이다. 풍수가 좋은 걸까, 서원 바깥에서는 거리의 이발사 아저씨들도 짬짬이 책을 읽고 있었다.

"베트남 젊은이들에게 한 가지 놀란 게 있어요. 어쩜 그렇게 영어를 잘 하죠. 저기 저 기념품가게 아가씨 있잖아요. 고등학교밖에 안 나왔다는 데 영어실력이 보통이 아니더군요."
"베트남 언어구조와 영어와 비슷한 데가 있어 상대적으로 쉽게 배울 수 있습니다. 도이모이 이후에 영어가 외국어과목으로 도입된 덕분이죠. 사실 제가 영어를 배운 곳은 미국이 아닙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관광가이드를 했거든요. 수 천명의 외국인들과 만나면서 터득한 거죠. 영어도 영어지만 당시의 제겐 바깥세계와 접촉할 수 있었던 유일한 통로였습니다."

현재 베트남 인구는 8천만에 육박하고 있다. 그 중 절반이 전쟁이 끝난 75년 이후에 태어난 이들이다. 이들은 학교에서 받은 사회주의 교육과 현실 간의 괴리 속에서 자라난 세대이다.

"옛날 이 서원의 유생들이야 공부만 열심히 하면 과거에 급제하고 관리가 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하노이 대학교수들은 일주일에 수십 시간을 강의해야 합니다. 게다가 그들은 전쟁세대이고 유학파래야 소련과 동구권 밖에 가본 데가 없습니다. 학생들은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 가는 길을 배워 왔는데 현실은 반대로 가고 있지 않습니까."

작년에 그는 중국에 가서 10개월을 떠돌았다. 중국의 변화에 눈이 휘둥그래졌고 변화과정에서 수반되는 많은 문제들에도 직접 접했다. 그 곳에 머무는 동안 그는 하노이 바깥을 볼 기회가 없었던 그의 젊은 친구들을 위해 수시로 이메일을 보내곤 했다.

"중국에서 돌아온 직후 하노이 대학의 무보수 강의제의를 받아들였습니다. 경제학과 박사과정 학생들인데요, 다들 저보다 나이가 많습니다. 하지만 배우려는 열의로 가득 찬 그들의 눈빛을 보면 제가 제대로 길을 밟아 왔다 싶습니다. 베트남이 어디로 갈지는 이들에게 달려 있지 않습니까."

그의 차분한 목소리에 빠져 있는 동안 우리는 어느덧 하노이의 상징인 호안키엠 호수에 이르렀다. 호수 한 쪽에는 조그만 다리가 하나 걸려 있고 그 끝에는 조용한 절 하나가 자리하고 있다.

그는 이번 학기 강의가 끝나는 대로 다시 미국으로 가서 박사코스를 밟을 예정이다. 그는 이 호안키엠을 가슴에 품고 그 시간을 견뎌낼 것이다. 그가 하노이로 돌아 올 무렵이면 옛 하노이의 이름처럼 '비상을 꿈꾸는 수많은 용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하노이 이야기를 마치며> 하노이는 프라하만큼 아름다운 도시입니다. 그리고 더 정겨운 도시입니다. 하노이의 옛 모습이 고스란히 간직되어 있을 때 서둘러들 가 보시기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하노이 이야기를 마치며> 하노이는 프라하만큼 아름다운 도시입니다. 그리고 더 정겨운 도시입니다. 하노이의 옛 모습이 고스란히 간직되어 있을 때 서둘러들 가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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