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축' 발언 무기구매 압박용" 70%
"북-미 체육경기할 때 북한 응원" 80%

<분석> 최근 여론조사 결과로 본 국민들의 '반미감정'

등록 2002.02.20 11:02수정 2002.03.21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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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 부시 미국 대통령이 북한을 '악의 축'으로 지목한 발언을 한 이후 한반도에 '반미 감정'이 고조되고 있다. 이같은 현상은 '50년 동맹국'을 자랑해온 한반도의 남쪽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문제는 최근의 반미감정 확산 분위기가 그간 단발적으로 있어왔던 과거의 '반미'와는 그 강도와 성질을 달리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선 최근 한국사회에 몰아친 '반미'는 예전에 비해 계층,지역,성별을 떠나 고르게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과거 재야 학생운동권에 국한됐던 '반미' 의식이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마저 나오고 있어 주목되고 있다.

이 같은 경향은 최근 몇몇 언론사가 발표한 일련의 대국민 설문조사 결과에서 뚜렷하게 감지된다.

<오마이뉴스>는 조지 부시 대통령의 방한에 즈음해 문화일보·SBS, MBC, 민주당 정세분석국, 한겨레 여론조사팀, 한길리서치 등이 국민들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분석해 보았다.-<편집자 주>

우선 문화일보가 SBS와 공동으로 지난 2월15-16일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부시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과 관련 응답자 가운데 20.6%가 '북한의 변화를 촉구하는 적절한 발언이다'라고 답한 반면 73.1%가 '남북관계 및 동북아 정세에 부정적 영향을 주는 부적절한 발언이다'라고 응답한 것으로 조사됐다. 국민 10명 중 무려 7명 이상이 부시 미국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문화일보의 부시 '악의축' 발언에 대한 정기 여론조사. 18일자 1면. ⓒ 오마이뉴스
이어 문화방송도 2월18일 휴대전화 문자서비스를 통해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최근 '악의 축' 발언으로 불거진 부시 행정부의 대북 강경책에 대해 '옳다'라고 답한 응답자는 24%에 머무른 반면 '옳지 않다'라고 답한 응답자는 무려 67%에 달해 반미감정에 대한 국민들의 부정적 여론을 가늠하게 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한길리서치가 2월6-7일 양일간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부시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에 대한 의견을 묻는 질문에 대해 '적절하지 않다'고 대답한 응답자는 70.9%(다소 적절치 못했다-41.8%, 전혀 적절하지 못했다-29.1%)였다.


이 같은 반응은 연령층으로 보았을 때 상대적으로 젊은 층(20대-85%, 30대-81.5%)에서 높게 나타났으며, 직업별로는 공무원(93.1%), 사무전문직(87.4%), 자영업(84.7%), 학생(83.3%) 등의 순으로 응답했다.
반면 '악의 축' 발언이 적절했다고 동의한 응답자는 28.2%(매우 적절-7.9%, 다소 적절-20.3%)에 그쳤다.

이같은 국민들의 부정적인 대미 인식이 부시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 이후 시간이 경과됨에 따라 더욱 증폭되고 있다는 것도 주목할만한 대목이다.


한겨레 여론조사팀이 지난 4-5일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52.8%, 민주당 정세분석국의 7일 ARS 조사에서도 56.4%의 응답자들이 '악의 축' 발언에 부정적으로 답변했다. 부시 방한을 며칠 앞둔 시점에서도 '반미 감정'은 수그러들지 않고 오히려 급속히 증가한 것이다.

부시발언 부정적 인식 확산

그렇다면 이 같은 '반미감정'의 격화 요인은 무엇일까? 우선 각 언론사의 여론조사를 통해 드러나는 것은 악의 축 발언의 '불순과 배경'에 대한 국민들의 반감이다.

문화일보와 SBS가 공동 조사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들은 '부시 행정부의 강경발언이 무기구매 압박용이라는 주장에 동의'하는 응답이 69.8%(매우공감-27.3%, 어느정도 공감-42.5%)에 이르는 등 이후 우리 나라 공군이 추진중인 차세대 전투기사업(FX)에서 미국 전투기를 구매하도록 압박하려는 측면이 있다는 부분에 상당수 공감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문화방송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부시 대통령이 대북강경노선을 펴는 이유에 대해서 '무기판매 등 미국의 경제이익을 위해서'라는 응답이 전체 63%를 차지하고 있는 등 미국에 대한 반미감정을 표출되어 있음을 드러냈다.

▲한길리서치가 지난 6~7일 이틀간 국민 6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부시의 '악의축' 발언에 대한 전화 여론조사 내용 ⓒ 디자인 고정미
한길리서치가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국민 10명 중 6명은 부시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 배경은 '미국 국내 정치용'이라고 인식했다. '악의 축' 발언 배경을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60.1%가 '엔론사 파산, 중간 선거 등 미국 내 상황과 MD구축 정당성을 의식한 부시정권의 이해에서 비롯됐다'고 대답했다.

이처럼 '악의 축' 발언이 자국의 이익에 깊이 천착해 있다는 것도 문제지만, 이 발언이 한반도에 미치는 영향, 즉 국민들이 느끼는 '전쟁체감기온'의 증대도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또 부시의 악의축 발언은 햇볕정책에 따라 긍정적 여론을 자극하고, 나아가 남북문제에 대한 내정간섭으로까지 비쳐지고 있는 상항이다.

실제로 한길리서치의 설문조사 결과 부시 미국 대통령과 미 고위 관리들의 잇단 대북 강경발언으로 '전쟁 위기감'을 느끼는 국민들도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북 강경발언으로 한반도에서의 전쟁위기감을 어느 정도 느끼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52.2%의 응답자가 '전에 비해 차이가 없다'고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지만, '전에 비해 전쟁 위기감을 심하게 느낀다'는 응답자도 39.6%에 달해 다소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 디자인 고정미
자국 이해 위해 한반도 전쟁불사?

또한 '부시 대통령의 방한이 남북관계 개선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과반수 이상(57.2%)이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응답했다. 또한 응답자의 57.2%는 '대북 햇볕정책을 지지한다'고 밝혔으며, 김대중 대통령과 이회창 총재의 대북정책을 비교할 때 각각 지지도는 44.0%: 32.9%로 김 대통령의 대북정책 지지도가 다소 높게 나타났다.

문화일보와 SBS가 공동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차기 정부의 바람직한 대북정책 방향을 묻는 질문에는 '변함없이 추진'이 21.2%, '일부 수정'이 47.4%로 응답자의 68.6%가 햇볕정책이 지속돼야 한다는 입장을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25.4%의 응답자만이 '전면 재검토'를 주장했다.

일부에서는 민주당 지지도가 최근 여론조사 결과 지난 12월 19.9%보다 3.1%포인트가 상승한 23%로 나타난 것도 미국 부시 행정부의 대북 강경 발언에 대해 민주당이 비판적 입장을 견지한 데 대한 공감 여론이 어느 정도 반영됐다는 해석도 제기되고 있다.

특히 9.11테러 이후 미국의 대북강경론에 대해 36%에 달하는 국민이 '공감한다'는 입장을 밝혔던 것과는 달리 최근 들어 부시 정부의 '악의 축' 발언과 관련해서는 '부적절 했다'고 답한 국민이 73.1%에 이른다는 점에서 볼 때 부시의 발언이 대다수 우리 국민에게 부정적으로 자극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최근 일련의 사태와 이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에서는 국민들의 대북관과 대미관의 변화도 감지된다. 과거 미국은 '혈맹', 북한은 '주적'이라는 과거 냉전론적 이분법이 와해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조심스러운 분석도 가능하다.

문화방송 18일자 여론조사에서 미국이 북한을 무력 공격하려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공격을 반대해야 한다'는 응답자가 83%로 많았다. 또한 북한과 미국이 스포츠 경기에서 대결한다면 10명 중 8명이 북한을 응원하겠다고 대답한 것은 최근 미국 2002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 남자 1000m 경기에서 발생한 심판 판정의 '공정성' 시비에 따른 우리 국민들의 반감을 직접적으로 표현한 부분이라 해석해도 무방할 것으로 보인다.

이상 각 언론의 여론조사 결과를 취합해 볼 때 최근 확산되고 있는 '반미감정'은 자국의 이해를 관철시키기 위해 한반도의 전쟁까지 불사르고, 내정간섭을 일삼는 미국의 '패권주의'에 대한 반감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 같은 경향이 일회성에 그칠지, 또 한국의 대미외교정책에 향후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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