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램 가격의 상승
가장 큰 변화는 역시 D램 가격이 오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D램 가격은 지난해 11월까지만 해도 1.2-1.3달러 수준이었습니다. 평균비용도 뽑지 못하는 가격이었죠.
그러나 12월 초부터 고정거래가격을 인상하기 시작해서 최근 128메가 D램 공급가격은 4.5-4.75달러입니다. 무려 네배 가까이 올라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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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디램을 주력제품인 128메가디램으로 환산해서 계산하면 하이닉스의 제조원가는 3.6-3.7달러 수준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제 팔 수만 있다면 이익을 보게 되는 거죠. 하이닉스는 현재의 D램 가격대가 그대로 유지된다면 월간 3백억원 이상의 영업흑자를 내고 경상수지도 흑자로 전환할 수 있습니다.
지난해 10월말에 하이닉스가 채권단의 지원을 요청할 때 계산 기준으로 삼았던 가격이 1달러였으니까 채권단 입장에서도 하이닉스의 생존에 대해 충분히 희망을 가질만 합니다.
거기다 그동안 채권은행들이 대폭 금리를 인하했고 출자전환을 했기 때문에 연간 이자비용도 4천억원 수준으로 줄어든 상태입니다.
이에 따라 채권단과 하이닉스 반도체는 마이크론과의 재협상에 무게 중심을 두면서도 독자생존방안을 검토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이닉스 노조도 19일 헐값 매각에 반대하며 독자생존을 지지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했습니다. 노조는 "하이닉스는 향후 반동체경기의 회복에 따라 수출 및 국내경제 회복에 절대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역량과 능력을 지닌 한국경제의 중심 기업"이라며 "독자생존을 위해 적극 투쟁할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
문제는 채권단입니다. 11월에 하이닉스 얘기를 할 때도 말씀드렸듯이 반도체, 특히 디램산업은 어마어마한 신규투자를 지속적으로 해야 하는 산업입니다. 과연 채권단이 이런 좋은 시기에 짐을 떨어버릴 것인가, 아니면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대규모의 대출을 하면서 수익을 올릴 것인가를 판단해야 하는 겁니다.
박종섭 하이닉스 사장은 "독자생존은 대안이라기 보다 항상 준비하는 기본이며 마이크론이라는 좋은 대안이 있기 때문에 협상하고 있는 것"이라며 "채권단의 의견이 분분한 만큼 현재 타결 가능성은 반반"이라고 밝혔습니다.
마이크론, "협상은 진행 중"
마이크론의 최종안(인수대금을 38억 달러에서 40억 달러로 인상)이 나왔고 하이닉스 채권단은 수정 제의를 한 상태입니다. 앞에서 독자생존론이 설득력을 얻을 만큼 상황이 좋아졌기 때문에 채권단은 당연히 조건을 바꾸려고 하겠죠.
채권단은 *신규자금을 시장금리로 지원하되 지원시 마이크론 본사가 보증할 것 *30년만기 연리 2%후순위채 4억달러의 인수는 수요할 수 없다 *마이크론이 요구한 단계적 주식매각 조건 대신 1년 내에 주식을 처분할 수 있게 해야 한다 * 주식처분제한 기간 동안 추가적인 신주발행은 중지해 달라는 내용으로 양해각서 수정안을 마련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잠깐 용어해설> 여기서 후순위채란 채권자들이 진 빚을 모두 갚은 후에야 지급을 요구할 수 있는 채권을 말합니다. 권리 행사 순서가 가장 늦다는 의미에서 후순위채라고 부르는 거죠. 당연히 돈을 못 받을 위험이 높아지니까 채권이자는 시중금리보다 훨씬 높습니다. 금융기관들이 후순위채를 많이 발행하는 이유는 국제결제은행 자기자본비율을 맞출 때 자본으로 인정받기 때문입니다.
이런 인수조건 외에도 마이크론이 비메모리 사업분야에도 소수 지분(minority stake)을 인수하라는 것도 들어 있습니다. 이것이 앞으로의 협상에서 핵심쟁점이 될텐데요. 현재까지 마이크론의 입장은 그것도 40억달러 내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겁니다.
마이크론의 신 마호니 대변인은 "협상이 계속 진행중인 것만은 사실"이라고 밝혔습니다. 최종안을 제시했으면서도 이렇게 재협상의 여지를 둔 것은 그만큼 하이닉스 인수가 수익성이 있다는 얘기겠죠.
그렇지만 마호니 대변인은 "최근 하이닉스 협상을 둘러싼 언론보도들이 혼란스러울 뿐만 아니라 종종 (협상내용과) 배치되는 면이 있다"며 불만을 터뜨렸습니다. 역시 언론들이 독소조항을 지적하고 무리한 요구라고 지적하면서 독자생존론을 제기하는 것이 마음에 걸리는 거겠죠. 마호니 대변인은 "미국기업의 경우 협상내용을 특정 언론을 통해 공개하는 것이 법으로 금지돼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삼성의 하이닉스 인수 또는 전략적 제휴
이런 상황에서 정부와 민간 양쪽에서 삼성이 하이닉스를 인수하거나 전략적 제휴를 맺어야 한다는 얘기가 나왔습니다. 우선 미래에셋증권의 보고서는 "삼성전자가 하이닉스 인수를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물론 삼성전자는 "전혀 가능성이 없는 얘기"라며 일축했습니다.
정부쪽 얘기는 신국환 산업자원부 장관의 입을 통해서 나왔습니다. 오늘 한국반도체 산업협회 주최로 열린 조찬간담회에서 "일류기업인 삼성전자와 하이닉스 반도체가 전략적 제휴를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신 장관은 지난해 4월에도 이런 제휴를 제안했었습니다.
여기에 하이닉스 주채권은행인 외환은행에서도 한마디 거든 걸로 보도되고 있습니다. "세계반도체 디램시장 1위 업체인 삼성전자가 선언적인 의미에서라도 '협력' 방침을 밝힐 경우 하이닉스는 매각협상은 물론 향후 독자생존을 택할 경우에도 큰 보탬이 될 것"이라는 거죠.
그는 또 "삼성전자의 태도로 볼 때 일부 설비의 분할매각 등에는 큰 기대를 걸고 있지 않지만 기술개발 등에서의 협력은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제휴를 하든 안하든 마이크론 쪽에는 압력이 되고 하이닉스 쪽에서는 유리하게 되는 건 분명합니다. 신 장관의 발언 이후 하이닉스의 주가가 5일만에 반등했습니다.
산자부 관계자는 "신 장관이 언급한 전략적 제휴는 업계 차원에서 기술개발 등의 분야에서 협력하자는 의미일 뿐"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축소해석의 기미가 보이죠? 사실 장관이 협상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이런 발언을 하는 것은 이례적인 거죠. 마이크론 입장에서는 당연히 항의를 할테구요.
문제는 누가 봐도 마이크론에 불리한 이런 언급이 통상마찰의 불씨가 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1년 전부터 미국 측은 회사채 신속인수 등 한국정부의 하이닉스 지원이 세계무역기구의 정부보조규정 위반이라고 항의 해왔기 때문에 이런 걱정이 단순한 기우는 아닙니다.
물론 국민경제를 좌우할 만한 사안이기 때문에 정부도 발언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방식이 툭툭 던지는 방식이어서는 곤란하다는 지적을 받을 만 합니다.
한편 간담회에 참석했던 이윤우 삼성전자 사장은 "간담회에서 (인수와 같은) 제휴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면서 "국내업체와의 제휴는 현재까지 어떤 논의도 없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그러나 파이낸셜 타임즈는 이런 부정에도 불구하고 삼성이 어떤 방식으로든 연관을 가질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하이닉스의 미래
이 문제는 전적으로 채권단과 하이닉스가 자신의 미래 수익성을 어떻게 보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여러번 말씀드렸듯이 채권단이 신규투자자금을 얼마나 기꺼이 내놓을 것인가가 결정의 핵심입니다.
파이낸셜 타임즈는 19일자 기사에서 대규모 설비투자를 감당할 수 없는 하이닉스로서는 마이크론과의 협상을 타결하는 것이 최우선과제가 될 거라고 전망했습니다. 이 기사에 따르면 하이닉스 쪽에서는 지난 월요일에 독자생존 가능성을 심각하게 토론했습니다.
그러나 하이닉스의 투자자문팀 소속인 다니넬 베렌트는 19일, 빚더미 회사가 독자 생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고 보도하고 있는데요. 한마디로 끝없는 투자비용을 댈만한 돈이 없다는 겁니다.
그러나 이런 판단도 결국은 채권단이 어떤 결심을 하느냐에 달려 있는 거죠. 물론 하이닉스가 비메모리 쪽으로 옮겨가기 위해서는 새로운 기술개발과 대대적인 투자가 선행되야 합니다만 지난 10월 22일 기사에서 말씀드린대로 중국이 따라 오기까지 남아 있는 5년에서 10년 동안은 한국경제로서는 하이닉스를 살리는 쪽이 유리합니다. 더구나 그 때보다는 훨씬 조건이 좋아지지 않았습니까? 채권단의 결단이 필요합니다.
또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서투르게 협상에 끼어들기 보다는 비메모리쪽의 기술개발을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일입니다. 우리 경제의 10년 후 운명을 좌우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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