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02.02.20 16:49수정 2002.02.20 18:03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어젯밤 늦게 성당에서 회합을 끝내고 돌아올 때입니다. 집 방향이 같은 여 교우 두 명을 태웠는데, 타자마자 안전운행을 하라는 뜻으로 기도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밤 날씨가 추워서 기도하는 그들의 목소리가 떨렸습니다.
난 시동을 걸려고 하다가 기도에 방해가 될 것 같아 잠시 기다렸습니다. 속으로 나도 기도하고 끝에 가서 "아멘" 하였습니다. 기도를 해준 그들의 마음이 무척 고마웠습니다. 함께 타고 가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평소에 가깝게 지내는 한 자매님(성당에서는 여자 신자를 보통 '자매님'이라고 함)은 2월 말까지만 낮에 하는 회합에 참석하고, 3월부터는 저녁에 하는 회합에 참석한다고 했습니다. 두 아이가 이제 어느 정도 자라서 낮에 공부를 더하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예전에 했던 어린이 학습 지도를 깊이 있게 하려는 욕심이기고 합니다.
그 자매님의 집이 가까워지자, 운전면허를 같이 땄는데 자신보다 운전을 잘한다고 말했습니다. 그 말에 난 아무 말 없이 빙그레 웃기만 했지요. 딱 3년 전에 그 자매님과 난 우연히 같은 자동차운전학원에서 만나 같이 면허를 취득했습니다.
그 자매님을 집 앞에서 내려주고 돌아오면서 한결같은 그녀의 따뜻하고 포근한 마음을 생각했습니다. 만날 때마다 늘 웃는 모습으로 대해주고, 성탄절이면 꼭 뭔가를 갖다주는 아름다운 그녀의 마음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재 작년의 일입니다. 더운 8월 어느 날 그 자매님이 사는 아파트의 한 놀이터에서 성당 다니는 남성 단원 30여명이 친목회를 가진 적이 있습니다. 그날 개 한 마리를 잡았습니다. 단원들을 비롯해 특별히 참석한 신부님도 "맛있다"며 편안하게 앉아서 대화를 나누며 먹고 있었습니다.
그 때입니다. 놀이터를 낀 아파트 담 밖에서 "가리노 형제님" 하고 날 부르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가리노'는 나의 세례명입니다. 성당에서는 남자 교우는 보통 '형제님'이라고 합니다. 놀라 고개를 들고 쳐다보니 그 자매님이었습니다. 활짝 웃는 모습으로 나를 보더니 "친목회하고 있는 거냐"며 "커피를 타 가지고 가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 자매님은 얼마 뒤에 커피를 담는 통과 종이컵을 수십 개 갖고 왔습니다. 거기에다가 가게에서 샀는지 오징어도 몇 마리 들고 왔습니다. 그 자매님 덕분에 단원들은 개고기를 먹은 뒤 맛있는 커피 한 잔씩 마실 수 있었습니다. 오징어도 술 안주로 다 먹었습니다.
그 자매님은 예전에 간단한 분식 가게를 하며, 나를 상냥하게 맞았습니다. 나에게 뿐만 아니라 우리 아이들에게도 맛있는 것을 그냥 주곤 했습니다. 지금도 우리 집 두 아이는 그 자매님을 마음씨 좋은 아줌마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작년 3월 말의 일입니다. 성당에서 큰 행사가 있었습니다. 남성은 정장, 여성은 예쁜 한복 차림으로 행사에 참여했습니다. 거의 2시간 가까이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행사가 진행되었습니다. 행사가 잘 끝난 뒤에 각 팀마다 제대 앞에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내가 속한 남성 팀도 성모상을 중심으로 해서 단체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리고 걸어나오는데 그 자매님이 내 옷소매를 잡아끌었습니다. 그리고 동료 단원에게 빨리 찍으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정말로 무척 당황했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셔터가 눌러졌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처음 있는 일입니다. 어떻게 사진이 찍혔는지도 몰랐습니다. 그로부터 한 달 뒤에 아내가 그 자매님으로부터 사진을 받았습니다. 사진을 보고 속으로 얼마나 많이 웃었는지요. 나의 모습이 뭐라고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당황해하는 빛이 역력했습니다.
재작년에 그 자매님의 아들이 영세를 받았을 때에 그녀의 부탁을 듣고 내가 대부를 서 주었습니다. 대부 서던 날에 그녀는 예쁜 글씨로 고마움을 내게 전해주었습니다. 생활에 보탬이 되는 조그만 선물도 해주었습니다. 난 대자가 좋은 신앙인으로 커나가기를 바랐습니다.
작년 10월의 일입니다. 성당 신축 기공미사를 마치고 우연히 교우 부부들 몇 명과 같이 노래방에 간 적이 있습니다. 아내는 몸이 피곤하다고 하여 일찍 집에 들어갔습니다. 평소에 노래를 좋아하는 난 그들과 같이 노래를 신나게 불렀습니다. 자매님과 그 남편도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자매님의 남편이 마이크를 들었습니다. 감미롭고 조용한 노래를 그는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 나에게로 오더니 손을 잡고 일으키는 것이었습니다. 엉겁결에 난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춤을 전혀 추지 못하는 난 얼굴이 빨개진 상태로 몸이 굳은 상태로 간신히 움직였습니다.
자매님의 깊은 신앙심에 힘입어 아들과 딸이 먼저 영세를 받고, 작년 봄에 남편까지 영세를 받아 성가정이 되었습니다. 그녀의 남편이 영세를 받을 수 있도록 여러 차례 집을 방문하여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지금도 그녀는 나에게 남편이 영세를 한 것은 다 나의 노력 덕분이라고 말합니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난 멋없이 웃기만 합니다.
작년에 성탄절을 앞두고 한 통의 전화가 집으로 왔습니다. 그 자매가 걸은 것입니다. 아내가 받더니 내게 그녀의 집에 갔다오라고 했습니다. 시골에서 부쳐 온 것이 있는데 한 상자를 우리에게 준다는 것입니다. 난 몸이 좋지 않다는 핑계를 대고 아내더러 가라고 했습니다. 가면 또 얼굴이 빨개지고 말도 제대로 못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온 식구가 그것을 반찬으로 해서 저녁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지금도 가끔 아내와 같이 그 집에 갑니다. 그녀와 남편이랑 살아가는 이야기도 많이 나눕니다. 지난번에는 그녀의 가족이 우리 집에 와서 저녁을 같이 먹기도 했습니다. 영세 받은 지 아직 1년도 되지 않았지만 그녀의 남편도 성당의 신심단체에 들어와 열심히 참석하고 있습니다.
난 그 자매님에게 '천사'라는 별명을 붙여주었습니다. 만나는 사람 모두에게 항상 웃는 낯으로 따뜻함을 전하는 그녀의 마음씨가 꼭 천사와 같기 때문입니다. 나 뿐만이 아니라 주위에서 모두 그렇게 말합니다. 그 착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그녀가 앞으로도 아름답고 예쁘게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 주위에 언제 봐도 포근한 정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 것은 큰 행복입니다. 그녀를 보면서 그런 마음을 봅니다. 그런 삶을 영위하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나도 내가 가진 것을 만나는 사람들에게 기쁜 마음으로 주고 싶습니다. 그녀를 보면서 그런 마음을 배워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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