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02.02.20 18:09수정 2002.02.20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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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도청의 목포이전 문제는 이제 시작단계에 머물러 있다. 전남도민의 70%, 광주시민의 90%가 반대하는 도청이전이 손쉽게 이루어질 수는 없겠지만 허경만 지사는 작년 10월 21일 어렵사리 도청이전 기공식을 가졌다.
국회에서 여야협상을 통해 460억 원의 이전예산을 확보하였다. 그러나 도청이전을 완료할 예정시점인 2004년까지 이전공사를 완료하려면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높고 많다. 여야 대통령 후보의 어느 누구도 전남도청을 광주에서 목포로 옮기려는 김대중 대통령과 그의 아들 김홍일 의원의 공약을 진지하게 수용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김대중 대통령의 임기는 법적으로는 2003년 2월 25일에 끝나고 사실상으로는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선출되는 2002년 4월 27일에 끝날 지도 모를 상황이기 때문이다.
전남도청 이전반대 및 통합추진위원회의 간부들에 의하면 그들이 심방해서 만난 여야 지도자의 어느 누구도 도청의 목포이전을 현시점에서 필요하고 절실한 국가적 과업이라고 인정하지 않았다고 한다. 지역경제적 관점에서 보나 발전행정적 견지의 어느 측면에서 보아도 현재 광주에 있는 도청을 목포로 이전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흔히 김홍일 의원이나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도청이전 계획을 구상 추진한 것은 김영삼 대통령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사실은 다르다. 김영삼 대통령은 전남도청이 5.18민주화운동의 투쟁현장이었기 때문에 이 장소를 5.18기념관으로 살리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하면서 도청을 다른 데로 옮기는 것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김영삼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도청이전계획을 담은 조례안이 도의회에 상정되었으나 이 안은 두 차례에 걸쳐 부결되었다. 도청이전 안이 다시 살아난 것은 김대중 대통령이 집권한 후이며 그것도 1999년 6월 30일 전남도의회의 날치기 의결로 강행된 것이다. 광주지역여론 지도층들 가운데는 지금 추진되는 도청이전 계획은 5.18기념사업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전남의 중심 축을 광주에서 목포로 옮기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고 보는 시각이 있다. 김대중 대통령이 졸업한 목포상고의 이름이 전남제일고등학교로 개명된 것도 지역의 중심 축 이동계획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한때 광주와 전남의 재통합문제가 활발히 논의되었다. 허경만 지사는 전남과 광주의 통합을 줄곧 주장해 왔다. 이러한 주장이 나온 배경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당초 허경만 지사는 전남지사 출마당시 동교동계의 공천을 얻는데 실패했다. 동교동계는 목포출신의 김성훈 당시 서울농대 교수를 추천했다. 그러나 허 지사는 민주당의 후보 경선에서 승리했다.
허 지사는 순천출신이기 때문에 도청의 목포이전을 반대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동교동의 추천을 받지 못했던 것이다. 지사에 당선된 후 허 지사는 도청을 목포로 옮기는데 앞장서라는 정치적 압력 하에 놓여 있었다. 그는 이 압력을 무력화시키는 방법으로 전남과 광주의 재 통합론을 들고 나왔다는 것이다.
오는 12월 28일 실시하는 대통령 선거가 도청이전을 추진하는 세력들에게는 전혀 고무적일 수 없다. 어느 후보도 광주 시민의 90%의 지지와 전남도민 70%의 지지를 잃으면서까지 도청이전을 지지할 리 없기 때문이다.
앞으로 각 지역별로 실시되는 후보와 시민대표들간의 토론을 거치는 가운데 도청이전계획은 소멸될 가능성이 많다. 민주당의 대선후보경선에 나선 한 유력 후보는 남악 신도시에 착공되는 도청건물은 앞으로 전남도청 제2청사로 활용하면 될 것이라는 흥미 있는 견해까지 내비치었다.
도청이전계획이 광주인들의 격렬한 반대에 봉착한 가장 큰 이유는 시민들의 의견 수렴과정을 철저히 배제했고 또 의견수렴절차가 미흡했더라도 도청이전에 따른 광주의 손실을 보상할 대안을 전혀 제시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데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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