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때문에 신혼생활 망가진 사연

부시에게 생과부보상청구 소송해야 하나?

등록 2002.02.20 18:30수정 2002.02.22 22:11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남편이 연행되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나는 이제 막 퇴근 준비를 마치고 나가려던 참이었다. 집회현장만 쫓아다니는 바람에 '집회전문기자'라는 별명이 붙은 친구가 1시간 전에 남편이 연행되었다고 가르쳐 주었던 것이다. 아울러 '너무 걱정 말라고. 부시가 온다는데 한국 사람이 이 정도 해야 않겠나'라는 친절한 말도 잊지 않았다.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지만 이내 진정시킬 수 있었다. 대학 시절부터 수없이 주변 사람들의 연행과 구속을 지켜보아왔던 경험으로 남편의 '죄'는 비교적 미미한 축에 낀다는 것, 그리 호들갑 떨 만한 일도 아니라는 것 정도는 순식간에 파악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몇 달 전부터 남편은 한 통일단체의 일꾼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나를 만나고부터 '정신차리고(?)' 1년여 직장생활도 해봤지만 '반골'의 기질은 스스로도 어쩔 수 없는지 결혼을 앞두고 옛 터전으로 돌아갔다.

덕분에 결혼과 함께 나는 한 달 전부터 졸지에 '가장'신세다. 물론 끼리끼리 뭉치게 되어 있는 이 사회의 속성상 나도 남편과 그리 다른 의식구조를 지니지 못한 탓에 돈 잘 버는 회사에는 취직하지 못했다.

결론은 우리 부부 앞에는 다른 여느 '운동권 가족'처럼 경제적으로는 조금 '암울한 미래'가 펼쳐져 있다는 뜻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아는 이들에게 '뭐 먹고 살래?'라는 걱정 섞인 빈정거림을 듣곤 하지만 다행히 낙천적인 성격을 가진 덕에 '산 입에 거미줄 치랴'라는 정신으로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다.

더구나 결혼한 지 이제 갓 한 달을 넘긴 '신혼'이라는 환경도 무시할 수 없는 법이다. 유효기간이 있는 철없는 인간들의 사랑타령일지라도 배고픈 현실은 이겨낼 수 있다, 아직은. 그런데 생각지도 않은 '태클'이 들어왔다. 아직 남들이 말하는 신혼의 단꿈도 제대로 느껴보지 못했는데, 갑작스런 남편의 연행이라니.

그의 죄라는 것은 미대사관 근처에 있는 공원에서 부시방한 반대한다고 피켓 들고 구호 외친 것이 전부였다. 서둘러 전화를 해보니 평소와 다름없는 장난기 어린 목소리가 들려온다. "여기 ㅇㅇ경찰서야. 올려면 맛있는 거 사와. (같이 연행된 사람들을 향해) 니네 뭐 먹고 싶냐? 떡볶이?"


같이 잡혀 있다는 10명 분의 떡볶이와 먹을거리들을 짊어지고 낯선 동네의 낯선 경찰서 앞 정문에 도착한 것은 오후 8시가 넘어 칼바람이 어두컴컴한 거리를 휩쓸고 있을 때였다. 연행된 남편을 '면회'한다는 생소한 첫경험과 사람을 이유없이 주눅들게 만드는 거무튀튀한 공권력의 상징 앞에 기분은 점점 나빠지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아파트 수위같이 생긴 정문의 경찰은 조사가 끝나지 않아서 면회가 안된다고 했다. 순간 그 동안 참아왔던 울분이 목구멍까지 올라와 뜨거운 떡볶이를 얼굴에 던져버린다든가, 옆에 있는 애꿎은 전경 멱살을 잡고 온갖 욕지거리라도 하고 싶었지만 뜻밖에도 입에서는 전혀 다른 말이 나오고 있었다.


"멀리서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갈 수 없잖아요... 이것만 전해주고 금방 갈께요."

철창 안이 아니라 다행이었다. 10여 분만의 실랑이 끝에 만난 남편은 철창이 아닌 구내 식당같은 곳에서 연행된 사람들과 함께 웃으며 반겨주었다. 만약 철창 안이었다면 우리를 가로막는 그 기막힌 쇠막대기들이 섬뜩한 영상이 되어 내내 나를 괴롭혔을 것이기 때문이다. 함께 잡혀온 사람들 중에는 이제 막 아기아빠가 된 선배도 있었다.

남편은 그 와중에도 여기까지 와준 내가 자랑스러운지 연신 웃어대며 옆에 앉은 한 무리의 전경들부터 음식을 일일이 나눠주었다. 그 시간까지 굶고 있던 사람들은 음식을 5분여 만에 깔끔히 먹어치웠다. 다행히 곧 이어 경찰측에서 시켜준 저녁식사가 배달되었고 동시에 짧은 면회도 끝이 났다.

앞에 쓰여진 행선지만 보고 무작정 모르는 버스에 올랐다. 우연히도 친정집으로 가는 버스가 눈에 띄었지만 웬지 탈 수가 없었다. 차창 밖을 바라보며 전철역을 찾기 위해 애쓰던 중 남편의 전화가 걸려왔다.

부시가 갈 때까지 48시간은 있어야 할 것 같다고. 그리고 여기까지 찾아와주어 고생했다고. 아마도 그는 면회 끝났다는 형사의 서슬퍼런 기세에 도망치듯 발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었던 내 뒷모습이 안타까웠을 것이다. 혼자 잠드는 것을 무서워하는 아내가 이틀밤을 어떻게 보낼지 걱정되었을 것이다.

집에 가는 동안 조금 전의 상황들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별 것 아니라 생각했던 남편의 연행. 사실 몇 년, 몇 십년씩 옥살이하는 남편을 둔 이 땅의 수많은 아내들의 고통에 비하면 내가 겪는 것은 엄살중에 '엄살'일 뿐임을 안다.

하지만 처음으로 겪는 일이기 때문일까. 하필이면 '부시' 때문에 애꿎은 신혼의 며칠이 엉망이 된 데 대한 억울함 때문일까. 막힌 싱크대 안에 쌓인 음식 찌꺼기마냥 말로 표현하기 힘든 불쾌한 기분이 더해져갔다.

아마 이 시간에 나뿐만이 아닌 수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기분을 느끼고 있으리라. 부시 오지 말라고 외치다가 연행된 사람들의 아내들, 미상공회의소에서 점거 농성했던 한총련 학생들의 어머니들. 조금은 막연했던 부시방한이라는 사건이 이런 어처구니 없는 방식으로 눈앞에 기분 나쁜 모습을 드러낼 줄은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그가 가장이 되었으니 '데모'와는 인연을 끊고 살아가리라 믿고 있는 시부모님께는 일때문에 출장갔다고 적당히 둘러대고 자리에 누웠다. 어젯밤만 해도 '여고시절'을 보며 두 주인공들이 우리랑 똑같다며 끌어안고 박장대소했었는데... 별 것도 아닌 일이라는 것은 알지만 괜히 마음은 신파극의 주인공이 돼 버린다. 처음 내 손으로 받아보는 각종 고지서들을 볼 때마다 남편의 직업이 조금만 더 '현실적'이길 바랬던 것이 미안해지기 시작했다.

그를 원망하는 마음이 생길 법도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나는 한반도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닥친 '진실'의 모습을 알고 있다. 지금은 단 '이틀'이지만 미국의 대통령에게 한국 사람들이 바보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지 않으면 이후 남편은 20년, 30년을 감옥에서 보낼 수도 있음을.

지금은 단 이틀의 이별이지만 부시가 만약 우리 땅에서 전쟁을 일으킨다면 우리의 이별은 영원하게 될 수도 있음을... 부시로 인해 고통받는 모든 사람들과 그들의 가족들에게 힘내자고 우리는 꼭 이길 거라고 마음으로 외쳐본다.

덧붙이는 글 | * 이 글은 2월18일에 겪은 일을 쓴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2월18일에 겪은 일을 쓴 것입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톡톡 60초

AD

AD

AD

인기기사

  1. 1 찌기만 해도 '천연 영양제'로 손색 없는 여름 식재료 찌기만 해도 '천연 영양제'로 손색 없는 여름 식재료
  2. 2 반칙 논란, 예매 전격 중단 된 '스파이더맨' 반칙 논란, 예매 전격 중단 된 '스파이더맨'
  3. 3 인테리어 공사 동의서 사인 받다가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인테리어 공사 동의서 사인 받다가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4. 4 "홍명보 전술 판단 돋보여" → " 스리백 고집이 화불러" "홍명보 전술 판단 돋보여" → " 스리백 고집이 화불러"
  5. 5 윤석열 징역 7년 확정... 변호인은 "씨X", 지지자들은 눈물 윤석열 징역 7년 확정... 변호인은 "씨X", 지지자들은 눈물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