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4월, 경기문화재단이 설립된 이후 지방자치단체가 설립한 문화재단이 하나둘 늘고 있다. 이에 따라 지역문화 활성화를 위한 진앙지로서 이들 문화재단의 역할과 중요성도 나날이 커져가고 있다.
2002년 2월 현재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설립된 문화재단은 경기문화재단, 강원문화재단, 제주문화예술재단 등 광역지자체부터 강릉문화재단, 부천문화재단 등 기초지자체까지 대여섯 개가 넘는 것으로 파악된다. 1997년 이후 1년 평균 1개 이상이 설립된 꼴이다.
지역문화재단 설립추세를 자세히 살펴보면, 2000년을 기점으로 급격한 증가를 보였음을 알 수 있다. 1999년 11월에 강원문화재단이, 2000년 12월에는 제주문화예술재단이 각각 설립됐으며, 부천문화재단은 지난 해 말에 현판식을 했다.
2000년은 경기도가 의욕적으로 설립한 경기문화재단의 성과가 조금씩 알려지던 즈음이다. 당시 경기문화재단의 기금 적립액은 총 600억 원 정도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기문화재단은 여기에서 나오는 이자수입과 경기도 문화진흥예산으로 경기도 내 다양한 문화예술활동을 지원했다.
이천세계도자기엑스포, 부천판타스틱영화제 등 국내외에 널리 알려진 굵직한 문화예술축제들이 급성장 할 수 있었던 배경에 경기문화재단의 전폭적(또는 부분적) 지원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은 이제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경기문화재단이 거둔 이 같은 성과는 곧장 다른 광역 지자체들이 앞다퉈 문화재단을 설립하게 만든 동기가 됐다. 물론, 강원도도 제주도도 각기 다른 그들만의 특수성이 작용했을 것임은 분명하지만, 경기문화재단의 성과에 고무 받았음을 애써 부인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지역문화재단들의 설립목적은 당연히 지역 문화예술의 발전에 맞춰져 있다. 이를 위한 다양한 사업을 펼치는 것이 재단의 주요업무다.
경기문화재단과 강원문화재단은 개별 사업들에서는 약간씩 차이를 보이지만 ▲문화예술 향유 및 창작 진흥 ▲전통문화유산 발굴·보존 ▲문화예술 정보화 및 국제교류사업 등을 주요 사업으로 설정해 놓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된다. '문화예술정책 개발'을 조금 더 강조하는 듯한 인상을 주긴 하지만, 제주문화예술재단도 비슷한 사업들을 내세운다.
가장 비슷한 점은 각 재단들이 지자체 중심으로 설립된 까닭에 도정홍보나 도의 문화예술 사업을 위탁받아 시행한다는 것이다. 이는 지역문화재단들이 지자체 행정 홍보부터 도지사의 치적을 내세우는 전시성 문화행사까지 문화예술의 발전과는 무관한 일들을 해야만 하는 위험성에 노출돼 있음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문화재단들은 몇 가지 점에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우선, 문화예술 진흥을 위한 기금이 독자적 자율성을 지니고 적립되고, 활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다는 점이다. 속된 말로 확실히 '다른 주머니'를 꿰찬 것이다. 이는 특정 권력이나 자본에 얽매이지 않고도 지역주민의 삶의 질 향상과 문화민주주의 등을 위한 다양한 문화예술 활동들을 펼칠 수 있는 길이 마련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변화다.
두 번째는 문화예술 진흥을 위한 재정이 꾸준히 증가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저금리 시대에 대한 대비책만 마련된다면, 기금적립과 이자수익의 배분을 통한 사업시행 방식은 문화예술 진흥 재원의 안정성과 점진적 증액을 보장해 준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세 번째는 문화예술 진흥을 위한 독립된 행정기구(조직)의 편제로 인한 정책효과다. 대부분의 문화재단 조직들이 지방정부로부터 독립적이지 못한 게 현실이지만, 문화예술 진흥을 주업무로 하는 지방정부의 주무부서와는 확연히 다른 역할을 하는 것 또한 엄연한 사실이다.
마지막으로 지역문화재단 설립으로 인한 인식환기 효과를 들 수 있다. 문화재단 설립은 지방정부 차원에서 문화예술 진흥의 중요성을 적극 인식하고 있음을 대내외에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기 때문에 문화예술에 대한 주민들의 인식도 제고될 수밖에 없다.
반면, 긍정성에 가려진 그늘 또한 존재한다.
아직까지 대부분의 문화재단들이 독자적 자율성을 가질 만큼 충분한 기금을 확보하고 있지는 못한 실정이다. 경기문화재단이 1000억을 겨우 넘어섰을 뿐, 다른 재단들의 경우 대부분이 경기문화재단의 1/10 수준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자체가 충분한 기금확보를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면, 홍보수단으로 문화예술을 활용하겠다는 뜻을 간접 표명한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둘째, 설립목적과 조직구성의 재검토이다. 문화재단들은 지방정부로부터 독립된 자율성을 가져야 제대로 문화예술 진흥을 위한 사업을 펼칠 수 있다. 따라서 설립목적에 명시된 도정홍보나 지자체 위임 사업시행 등의 조항을 대폭 손질하고, 조직도 이런 맥락에 따라 편제되어야 한다. 물론, 지방정부와의 유기적 협조는 필수적이지만, 자칫 도정홍보나 업적 찬양도구로 문화예술이 전락할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지 않는 한 문화예술 발전은 요원하다.
재단으로써의 역할과 기능을 다하기엔 여러 가지 조건이 아직은 열악한 기초지자체 문화재단들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문화시설 위탁운영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강릉문화재단이나 늦깎이로 출발한 부천문화재단이나 모두 아직은 미약한 수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릉과 부천의 변화는 설립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지역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문화예술인들과 자치단체, 의회 등이 합심 노력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런 노력의 결과가 더 빛나려면 문화재단이 지역 문화예술 진흥의 중심지가 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적 배려가 뒤따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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