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개혁과 선거규제법 - 소위 사이버민주주의론을 중심으로

<'인터넷 선거보도' 토론회 > 한상희 건국대 법대 교수·헌법학

등록 2002.02.21 00:44수정 2002.02.21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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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이버 사회

사이버공간이란 통신망으로 연결된 컴퓨터들을 통하여 사람과 사람들간의 의사소통이 이루어지는 가상적 공간이다. 이것은 사람과 사람의 대면행위를 전제로 하지 않은 채 상호간의 교류가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즉 현실사회에서와 같이 수많은 감각정보가 동시적으로 전달되는 아날로그의 방식이 아니라 일부분의 감각정보만이 코드로 변환되어 상호 전달되는 디지털의 방식에 의하여 상호관계가 형성된다는 점에서, off-line과는 전혀 다른 인간관계를 만들어 내고 있다. 가상적(virtual)이라는 수식어가 이 공간을 지배하는 관념으로 제기되고 있음은 바로 이 때문이다. 환언하자면, 이 사이버공간은 지금까지의 인간간의 교류방식과는 달리, 탈공간성과 탈시간성의 속성에 더하여 탈인격성과 탈형식성의 속성을 겸비함으로써 기존의 사회구조와는 전혀 다른 별개의 사회적 행위양상들을 창출해 내는, 현실세계의 구속으로부터의 해방을 구가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이러한 변화의 혜택을 정치사회 내지는 사회적 의사결정의 영역에까지 확장하고자 하는 시도들이 등장하고 있다. 전자정부의 논의나 전자민주주의(e-Democracy) 또는 원격민주주의(teledemocracy)의 모색은 바로 이러한 시도의 첨예한 본보기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논의의 과정이 사이버시대가 결과한 세 공간의 고유한 특성들을 제대로 포섭하지 못한 채, 단순히 연속이냐 아니면 단절이냐라는 식의 일도양단적 시각에서만 다룸으로써 오늘날의 사이버정치의 현상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거나 또는 현실정치와 사이버정치가 나아가야 할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글은 이러한 문제인식에서 소위 사이버민주주의의 시대적 의미와 그 헌법적 전망을 곧 닥칠 지방선거 및 대통령선거에 있어서의 법적 규제장치와 관련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위한 전 단계로서 정보화의 의미와 민주주의와의 관계를 의사소통구조의 변화양상이라는 맥락에서 검토함으로써 정보화시대에서 의미를 가지는 민주주의의 유형과 이에 따른 정치구조의 변화전망을 제시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 분석의 결과들이 각종의 선거규제법에 어떻게 반영되어야 할 것인지를 현실적 대안의 모색이라는 차원에서 검토해 볼 것이다.


2. 대의제민주주의와 전자민주주의

2-1. 고전적 민주주의의 의의와 한계

Locke나 Bentham 등에서부터 이론적으로 정리되어 오늘날 지배담론으로 남아 있는 고전적 자유주의의 관점은 민주주의를 단순한 정치적 방식(political method)의 하나로서만 파악하면서 민주주의를 목적이 아니라, 어떠한 다른 것(즉 결정 또는 통치엘리트의 선출)을 위한 수단으로서만 이해한다. 정당의 관료들을 비롯한 조직된 경영체를 운영해 나가는 인간기구(Menschenapparat ; 그는 영국의 용어법을 빌어 이를 machine이라고 표현한다)가 의원들을 강요하고 지배하는 체제의 도래를 계기로 국민투표제(plebiszit ten) 민주주의의 형성을 선언하였던 M. Weber의 논의을 비롯하여, Schumpeter가, 민주주의적 방식을“정치적 결정에 도달하기 위해 인민의 표를 얻기 위한 경쟁을 통해 결정권을 얻고자 하는 것을 그 협의내용으로 하는, 하나의 제도상의 협정이며 제도적 장치”로서 규정하고 있는 것은 이러한 고전적 민주주의의 형식성을 반영한다.


이와 같은 고전적 자유주의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민주주의는 그 자체 목적일 수가 없고 단순한 개인적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정치권력에 대한 일종의 제한 내지 견제의 수단으로 존재한다. 따라서 사회 내에서 인간들 간의 실질적 평등을 바탕으로 그들의 의사의 결집에 의거한 정책결정이라는 민주주의 개념이 아니라, 시민사회의 정치화를 기반으로 자유와 평등의 개념을 순수하게 정치적인 것으로 파악하고 자유는 국가권력으로부터의 자유로, 그리고 평등은 그 본질이 어떠하였건 사회 내에서의 표출 형태는 선거권의 평등 또는 투표권의 평등 및 시장에서의 형식적 평등으로 나타나게 된다.

하지만, D. Held가 적절히 지적하는 바와 같이 이 민주주의론은 두 가지 점에서 제한적이다. 우선, 무정형적인 선거구민들이 선택한 자가 어떻게 하여 지도자가 되는지를 설명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정당을 구성하고 활동하는 등의 적극적인 정치엘리트와 단순히 투표에만 참가하는 소극적인 자의 구획으로부터 통치자와 피치자가 결정되어 버리는 과정 자체가 문제적이다. 특히 후자의 문제는 기성의 권력관계가 시민의 대부분을 처음부터 정치과정에서 '배제'해 버리는 것이 현실이다. 그들을 정치적으로 사회화하고 참여할 수 있는 능력과 의지를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체제의 구축 그 자체가 무시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오늘날의 정당정치에서 나타나듯, 정당이나 정치지도자가 스스로 의제를 설정하고 그것으로써 선거구민들의 지지를 조작하고 동원하는 행태는, 고전적 민주주의론에서는 전혀 예상도 못하고 있다.


바로 이 점에서 형식적 합리주의에 입각한 결정 내지는 신자유주의에서 말하는 법치주의적 민주주의의 구상은, Melucci가 유효하게 비판하듯이, 절차에 의하여 권력을 은폐하는 문제를 야기한다.“결정의 요구가 증대하고 보다 향상적인 것이 될수록, 또 결정이 더욱 대량의 기술적 자료에 의존할수록, 권력은 더욱 비가시화”되는 것이다. 그래서 결정의 내용이나 이념에 관한 판단보다는 오히려 그 결정에 이르는 과정 내지는 수단의 선택과 활용에 대한 판단만이 전면에 나서며, 이러한 합리적 수단과 기술적 증거에 입각한 중립적 결정절차의 뒷면에 숨은 권력과 이해관계를 판단의 대상으로부터 제외하는 문제를 야기한다. 그래서 이 민주주의체제는 정치적 대표의 문제를 대량적 결정에 수반되는 불확실성의 감소라는 비용-편익의 분석으로 일관하게 대치하는 현상을 야기한다.

나아가 그것은 전자의 의사를 곧장 후자의 의사에 연계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전체 국민 또는 전체 이익과 결부시킴으로써 현실적으로 형성.표출되는 국민들의 욕구들을 정치엘리트의 정치적 이해관계로써 왜곡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한다. 환언하자면 대표하는 자와 대표되는 자를 단절시키고 정책결정권을 "주권적 국민"으로부터 분리, 단절시킴으로써 "with but not by the people"식의 탈정치화현상을 촉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논의는 전체이익과 부분이익을 극단적으로 대립관계속에서만 파악함으로써 대의제적 독재의 가능성 유보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소위 Weber의 선거민주주의(또는 선거독재(Held))나, Schumpeter의“정치가의 지배”로서의 민주주의라고 하는 논의가 이를 함의한다.

이 점은 대의제의 중심개념인 동일성의 원리에 대한 중대한 왜곡임과 동시에 대의제의 부수적 개념인 책임원리조차도 형해화시키는 기제를 이룬다. J. Pogi는 국대국민국가의 형성과정을 설명하면서, 대의제 민주주의체제는 "자신이 대표하는 유권자들의 관심방향을 조절함으로써 스스로 정치적 자극을 생산하기 때문에 체계 안에서 중심을 이루는 것"이라고 그 의미를 설명함으로써 이러한 가능성을 암시한다.

즉, 선출이론이나 책임이론 모두가, 정치엘리트가 전문정치의 술수에 의하여 자유위임의 구도 내에서 형성하는 "새로운 전체"로서의 '전체이익'을 산출하며, 바로 그것이 이러한 의제된 동일성의 명제에 의하여 그 민주적 정당성을 획득한다고 하는 일종의 순환논법적 체제정당화의 이데올로기에 불과하게 되는 것이다.

흔히 말하는 대의제의 위기도 엄밀히 보자면 바로 이러한 대표하는 자와 대표되는 자간의 이원주의적 단절로부터 연유하는 것이다. 대표성의 약화현상은 정치적 엘리트주의의 심화, 정당정치의 강화로부터 파생되는 것이고, 그것은 무기속위임의 원칙 및 국가이익 내지는 전체이익이라는 가상적 개념에 의하여 정당화된다.

대중사회화나 국민의 직접참정욕구의 증대, 집단이기주의의 팽배 등의 현상은 대표가 실패함에 따라 필연적으로 파생되는 개별욕구의 정치화현상을 의미함에 다름아니다. 또한 행정국가적 현상과 같은 요인들은 바로 이 대표성의 약화로 인하여 결과되는, 통치작용과 통치근거(정당성근거)의 단절로 인한 것이다. 한 마디로 대의제적 민주주의라는 것은 최소한 후기산업화사회가 등장하는 현재의 시점에서 본다면 그것은 개념필연적으로 위기와 실패에 예정되어 있던 일종의 가상적 허구에 기반한 지배이데올로기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2-2. 전자민주주의: 대의제의 보완장치

I. 개념적 지표들

오늘날 소위 전자민주주의(e-democracy 또는 tele-democracy)는 이러한 대의제의 위기국면에 있어 나름의 처방으로서의 의미를 가지고 대두되고 있다. 컴퓨터통신이나 케이블TV 등과 같은 쌍방향성의 매체를 이용하여 전자투표(e-voting), 정치.행정정보의 공개, 의견의 교환, 실시간적인 토론 등 정치적 의사결정과정에 일반시민들의 참여가 보다 직접적이고 능동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게 됨에 따라 기존의 대의제적 간접민주주의의 정치방식을 변형하거나 보완하고자 하는 논의들이 심각하게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부연하자면, 정치영역에서 정보화의 추세를 수용하여 정치사회와 시민사회를 보다 유기적으로 연결시키고, 그것을 기존의 국가정당화 메카니즘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적극 활용하고자 하는 일련의 탐색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대체로 전자민주주의는 "정보통신기반의 이용을 통하여 정치과정에 대한 시민의 참여가 이루어지는 정보사회의 민주주의"라고 정의되고 있는 것도 이러한 수준에서 타당하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대의제민주주의 내지는 고전적 민주주의의 틀을 그대로 유지한 채, 그 대의제의 위기 또는 대표의 실패에 대한 처방 내지는 교정.보완적 수준에서 정보통신기반과 그 기술을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그리고 그 과정에서 대의제 민주주의가 결여하고 있었던 광범위한 시민적 참여를 촉진하는 가장 유효하고도 가시적인 방안으로 전자민주주의가 모색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전자민주주의의 논의에는 기존의 민주주의 개념외에 몇 가지의 요소가 추가된다.

첫째, 그것은 정보통신기반을 이용하는 민주주의의 체제이다. 실시간성과 대량성, 쌍방향성, 광역성과 같은 정보통신의 특징들이 기존의 민주주의제도에서 결여하고 있었던 대표자와 피대표자의 연계성을 강화하고, 정치부분과 사회부분의 단절-특히 정보의 단절-을 보완하는 중요한 장치로 이용되고 있는 것이다.

둘째, 이 전자민주주의의 개념속에는 필연적으로 시민의 참여를 촉구하는 메시지가 내포된다. 그것은 정보통신기반이라는 하나의 과학적.기술적 성과들을 정치과정의 도구로서만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과정에 광범위한 시민적 동원이 일어날 수 있는 유효한 모티프로서 이해하고 이를 통하여 정보의 공개나 정치적 참여의 기회를 확장하는 최선의 창구로 이용하고자 하는 것이다.


II. 전자투표

A. 전자투표의 개념

전자투표(e-voting)란 아직은 공식적인 정의는 존재하지는 않지만, 넓은 의미에서 정보통신기술을 이용하여 유권자가 자신의 의결권 또는 투표권을 행사함으로써 의사결정에 이르게 하거나 또는 당선자를 결정하는 방식으로 정의할 수 있겠다. 즉, 일반적인 투표제도중 정보통신기술의 도움을 받아 그 투표자 등록에서부터 기표 및 投函(발송), 집계 및 투표결과의 확인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 전체 또는 기표 및 투함의 과정을 정보통신기술의 방식에 의하여 처리하는 투표의 방식을 의미한다고 할 것이다.

이렇게 보면 전자투표의 범주에는 가장 원초적 형태로서 미국에서 통용되고 있는 키펀칭에 의한 OCR카드에의 기표방식를 필두로, 99년 약사법개정안 처리 때 처음으로 표결방법으로 이용되었던 국회의 전자투표방식이나 지난 8월 30일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실시되었던 터치스크린에 의한 전자적 기표 및 집계시스템까지도 넓은 의미의 전자투표에 해당한다 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방법들은 여전히 기표소방식을 고수하고 있고, 따라서 유권자들이 종래 종이를 사용하여 투표권을 행사하던 것을 키보드 또는 터치스크린으로 대체하는 것에 지나지 않아 엄밀한 의미에서 새로운 투표의 방식이라고는 하기 힘들다. 오히려 그것은 기존의 투표방식에 대하여 그 작업의 효율성만 미시적으로 개선한 것이기 때문에 투표나 선거의 전과정에 어떠한 유의미한 변화를 결과하는 것이라고는 보기 힘들다.

전자적 방식 또는 정보통신기술의 도움을 받아 선거과정에서 유의미한 변화를 야기하고 있는(또는 야기할 것으로 예상되는) 투표방식은, 전자투표 중 원격지투표(tele-voting) 또는 인터넷투표(Internet-voting)의 시스템이다. 현재까지 이 시스템에 관한 체계적인 연구결과로서 거의 유일하다고 할 미국 캘리포니아의 인터넷투표제도연구팀(California Internet Voting Task Force)의 연구보고서는 인터넷투표시스템의 개념을 "투표자들이 인터넷을 통하여 선거공무원들에게 자신들이 투표한 투표지를 전달할 수 있도록 하는 전자적 기표방식(eletronic ballots)을 사용하는 선거시스템"으로 정의하고 있다.

그리고 이 원격지투표(Remote Internet Voting)는, "[선거관리공무원에 의하여] 감시되지 않는 인터넷투표기기(Internet Voting Machine)를 이용하여 인터넷을 통해 투표하는 것"을 의미하며, 이때 이용되는 컴퓨터는 반드시 국가나 주에 의해 소유되거나 선거공무원들에 의해 작동되어야 할 필요는 없다고 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는 반드시 현재의 투표제도와 동일한 수준에서 투표자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장치가 확보되어 있어야 한다는 부가적인 조건을 붙이고 있다.

B. 의미

인터넷투표 또는 그 전신으로서의 원격지투표에 관한 논의는 무엇보다도 공적 선거에 있어서의 유권자들의 참여율을 제고하기 위한 정책적 배려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정당정치의 발전과 아울러 전술한 바와 같이 정치/통치부분과 시민사회/유권자부분의 이원적 분할과 이로 인한 양자간의 간극의 확대는 대의제 자체의 정당성까지도 침해하는 수준에 이르게 되었고, 그 단적인 표현인 국가 전체에 걸쳐 나타나는 투표율의 저하현상이었다.

일례로 미국의 1986년의 선거에서는 투표율이 겨우 34%에 머물러 1942년이래 최저의 수준을 보였고 일부 남부 주의 경우에는 1798년이래 최저 수준을 나타내기도 하였다. 물론 이러한 투표율저하현상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일정한 경향성을 가지고 계속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점에서 정치층을 긴장시켰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일련의 노력도 계속적으로 이루어져 왔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원격지투표-즉 우편의 방식을 통한 부재자투표제도의 도입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우편투표제도의 성공은 급기야 인터넷투표제도의 도입론으로까지 확장되었고, 1999.12.17 미국 클린턴 대통령이 국립과학재단(National Science Foundation)에 향후 일년동안 인터넷을 통한 투표의 실행가능성에 대한 연구를 지시하면서 그 논의가 활성화되었다. 또한 올해 들어 Alaska와 Arizona 두 州에서 대통령 예비선거의 과정에 인터넷투표의 방식을 공식적으로 사용하였고, 이후 텍사스와 플로리다 등 몇 개 주에서는 해외거주자들에 대한 인터넷투표를 허용하겠다는 방침을 내놓음으로써 인터넷보팅의 확대가 미국선거제도 변화의 큰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인터넷투표의 도입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 인터넷투표제도가 가지는 효율성과 신뢰성, 그리고 경제성을 중심으로 그 장점을 내세우고 있다. 즉, 그것은 지리상 또는 시간상의 이유 등으로 선거에 사실상 참여하기 힘든 유권자들에게 손쉽게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게 해줌으로서 유권자들이 선거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하고 이를 바탕으로 참여민주주의의 확대발전이라는 민주적 이념에 기여한다고 본다.

특히 이들은 투표나 선거에 무관심한 신세대-10대 후반부터 30대까지의 젊은 세대들로 하여금 보다 적극적으로 선거과정에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효과를 가진다고 주장한다. 뿐만 아니라, 인터넷투표는 고도로 발전된 정보통신기술을 이용하여 실시간적으로 처리하기 때문에 투표결과의 처리(개표와 집계, 당선인의 확인 등)과정이 신속.정확하게 이루어지고 그 결과의 게시나 공표의 면에서도 종래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신속.정확하고 광범위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고 한다.

나아가 인터넷투표는 전자적 방식으로 기존의 정보통신망을 이용하여 별도의 추가적 설비나 비용의 부담 없이 그대로 진행될 수 있기 때문에 수많은 비용절감의 효과를 가져다 준다고 한다. 즉, 인적.물적 비용의 현저한 감축이라는 경제성의 효과를 도모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장점은 한편으로는 선거나 투표의 빈도를 더욱 높일 수 있다는 부수적인 효과까지도 도모할 수 있게 된다.

한 마디로 인터넷투표는 투표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요구되는 물적.인적 비용이 현저하게 감소된다는 경제적 효율성과 신속.정확성이라는 공정.객관성의 요인 외에도, 투표행위에 수반되는 제반의 심리적.정서적 요인들을 제거함으로써 선거과정에서 요청되는 능동적 시민들의 적극적 참여를 유발함으로써 선거를 통한 통치자.대표자와 피치자.유권자의 간극을 좁힐 수 있게 되고, 이를 통하여 대의제의 정당성위기국면을 극복할 수 있는 중요한 모티프를 발견.실천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렇게 완화된 경제적.심리적 비용으로 인하여 주민투표나 주민발안 등과 같은 직접민주제적 정치현상들을 쉽사리 산출해 낼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더 민주주의의 실천에 기여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C. 문제점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인터넷투표제가 모든 하자를 다 치유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그 자체 나름의 한계를 안고 있기도 하다.

그 중에 가장 중차대한 한계요인은 정보접근능력에 있어서의 불평등의 문제이다. 실제 Arizona주의 예비선거에서 일부 흑인인권단체 등의 주관으로 진행되었던, 선거중지를 위한 긴급가처분신청사건은 이의 한 예에 불과하다. 이들은 인터넷투표제가 시행될 경우 유권자들간의 계층별 정보접근능력의 차이로 인하여 보다 많이 투표에 임할 수 있는 계층과 그렇지 못한 계층간의 간극이 존재하고 이로써 계층별 대표의 차별화라는 불평등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물론 이 주장은 그 가처분 자체가 기각됨으로써 법적으로 승인을 받지는 못하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평등성의 기본이념으로 하는 민주주의 자체가 하자 없이 실현되었다고 하기는 힘들다.

투표의 비밀성과 직접.자유성의 확보문제는 그 다음의 문제점이다. 물론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을 통하여 극복할 수도 있는 문제이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수준에서는 ①투표자의 신원을 확인하고 ②그 자가 직접 투표하였는가를 검증하고 ③그 투표가 강요나 매수, 기망 등에 의하여 진정성을 상실하지 않았는가를 확증할 수 있는 (경제적) 방법이 존재하지 않는다. 인터넷에서의 의사소통이 가지는 특성 즉, 대면적 관계의 부재라는 현상이 이러한 제반의 투표 행태에 대한 국가적.공적 감시의 가능성을 배제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정보통신체계의 안전성(Security)의 문제는 또 다른 문제점을 제기한다. 해킹이나 바이러스(특히 Trojan Virus)의 침투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이러한 외부적 침입을 막기 위하여 망을 타고 흐르는 투표정보에 대한 암호화(encryption & decription)와 투표자의 신원확인을 위한 전자서명제도(즉 공개키와 개인키에 의한 인증장치)가 필연적으로 도입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이 암호 및 인증과정의 공정성.공명성은 각별한 요청대상이다.

하지만, 이러한 부분에 대한 일반적 권한은 국가의 정보기관(CIA나 국가정보원)에 귀속되어 있고 암호에 관한 일반적 통제권 역시 국가의 정보기관이 장악하고 있는 현실(우리나라의 경우 보안업무규정 제5조, 정보및보안업무기획조정규정 제3조 등)에서 과연 이 부분에 관한 국가적 개입의 가능성 또는 그 투명성 보장의 장치가 어떻게 확보될 수 있을 것인가는 또 다른 문제거리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증거의 문제는 부차적이면서도 선거법제의 영역에서는 간과할 수 없는 문제로 남는다. 투표지(ballot)방식의 투표와는 달리 개별 PC에서 기표작업이 이루어진다면, 차후의 선거분쟁에 대한 증거로서의 최초의 투표자취를 추적할 방법이 없어진다. 분쟁이 있는 경우 선거관리위원회의 시스템에 어떠한 내용의 입력이 있었는가는 Log파일의 검색을 통하여 추적가능하지만, 그러한 입력을 하기 위하여 유권자가 자신의 PC에서 어떠한 키를 눌렀는지에 대한 증거는 존재하지 않거나 또는 일일이 추적하기 불가능한 경우가 생긴다. 이 때 투표의 부정, 또는 개표의 부정이라는 소송상의 주장이 나올 경우 그것을 검증하거나 입증할 방법이 없어지는 것이다.

그 외에도 인터넷투표의 경우 비용이 절감된다는 주장은 기존의 기표소를 유지 관리하여야 하는 만큼 시스템구축비용이 추가로 소모되기 때문에 2중의 비용이 지출된다는 반론이나 인터넷투표에 대한 유권자 교육의 문제, 인터넷투표를 위한 각종의 Plug-in의 설치에 관한 기술적.심리적 문제, 정보초고속망의 확충 등 SOC의 문제 등이 제기된다.

III. 대의제 민주주의의 한계와 전자민주주의

고전적 민주주의 내지는 그것을 기반으로 이루어지는 대의제민주주의의 한계는 그에 대한 보완책으로서의 전자민주주의론에 그대로 이입된다. 전자민주주의 특히 전자투표제도를 중심으로 제기되는 이 기술적 혁신방안은 그 혁신으로 인하여 토대로서의 대의제민주주의를 변혁시키는 어떠한 여지도 발견되지 않기 때문이다.

전자민주주의-전자투표제도가 대의제민주주의의 보완책이 될 수 있는 것은 유권자들의 참여를 보다 활성화시킴으로써 종래 단절되었던 통치자(대표자)/피치자(유권자)의 간극을 보다 좁히는 의미는 분명 인정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활성화의 과정에서 유권자들로 하여금 보다 능동적으로 정치적 아젠다를 설정하고 수행해 나갈 수 있도록 각성시키는 효과 또한 무시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정보통신기술에 의한 의사소통의 비동기성이라는 특성을 이용하여 투표를 하는 순간까지 각 입후보자들의 정책.정견에 대한 정보를 획득할 수 있다든가, 그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의견이나 정보들을 게시판, 토론장 등에서 열람.지득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아젠다의 설정이나 입후보자의 선택, 또는 선거과정의 결정 등에 관한 권한은 여전히 선거를 주관하는 정치영역에 장악되어 있다. 환언하자면, 정치과정의 주도권은 여전히 정치엘리트를 중심으로 하는 지배계층에 집중되어 있고, 선거나 투표의 과정은 과거와 마찬가지로 정당을 중심으로 정치영역에서 부과되는 이슈들만이 주된 쟁점으로 등장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정치과정.선거과정을 통하여 수렴되는 유권자들의 의사는 그 자체 정치과정에서 유효한 의사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강제위임금지의 원칙에 의하여 대표자의 주관적 의사로 대체되고 마는, 그럼으로써 대표자의 의사와 유권자의 의사가 실질적으로 단절되고 마는 결과는 치유되지 않는다.

결국 전자투표 또는 원격지투표나 인터넷투표 그 자체로서는 후기산업화사회의 필연적 징표인 국민적.사회적 동질성의 약화현상으로부터 야기되는 대표기관의 대표성의 약화현상이라는 대의제의 위기를 극복하기에 역부족인 상황이 발생한다. 대중사회가 급격히 발전하면서, 시민사회가 재정치화되고 이에 따른 시민들의 직접적인 정치참여의 욕구가 증대하는 시대적 추세를 정치엘리트위주의 대의제민주주의의 체제를 이러한 투표제도의 변화만으로 감당하기에는 상당한 무리가 따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Melucci는 후기산업사회에서의 민주주의가 가지는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동시에 그것이 자유의 관념으로 중첩될 수 있는 틀을 마련하고 있다. 그는 후기산업사회에서의 민주주의의 딜렘마를, ① 항시적인 변화가 요청됨으로써 규칙과 절차의 안정성의 요청과 충돌하는 과 과잉가변성(surplus variability)의 딜렘마, ② 결정이 요청되는 영역의 지속적인 확대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결정을 정당화하거나 근거지우는 궁극적, 본질적 판단목표가 부재하는, 궁극적 목표의 결정불가능성(undecidability of ultimate ends)의 딜렘마, 그리고 ③ 시민적 정치참여기회를 확대하여야 한다는 요청과 다양한 사회적 욕구들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강력한 중앙집권적 계획이 수립.집행되어야 한다는 요청간의 충돌로 인한, 의존적 참여(dependent participation)의 딜렘마로 구분하면서, 바로 이러한 딜렘마에 의하여 오늘날과 같은 복합사회에서는 다양하고도 다층적인 사회적 필요와 이해관계들을 유기적이고 탄력적으로 반영하기에는 고전적.대의제적 민주주의가 역부족임을 지적한다. 그에 의하면, 정치부분의 필요성과 사회부분의 변화 간의 대립현상을 고전적.대의제적 민주주의로서는 충분히 감당해 낼 수 없게 된다.

즉, 담지자와 그들의 대표들이 분리되는 과정”또는“변화를 산출하는 행위자와 그것을 관리하고 제도화하는 자”가 서로 다르다는 사실 자체가 정치체계를 비연속적이고 분절적인 변화에 직면하게 만들고, 바로 여기서 전체체계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권력의 행사, 또는 그러한 권력을 중심으로 하는 갈등의 형성이라는 현실이 나타난다고 보고 있나는 것이다.

이러한 구분이나 분리현상은 그 본질에 있어 국가와 시민사회, 내지는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인위적인 구분-그리고 대의제에서 나타나듯 통치자와 피치자, 대표자와 유권자의 이원적 분할로부터 시작된다. 하지만, 자유를 이렇게 사적인 의미로 한

정하지 않고 전술한 바와 같이 개인이 그 존재상황에 대하여 새로운 의미를 창출하고 그로부터“새로운 정체성을 정립할 수 있는 자유”로 이해하는 경우 이 구분과 분리는 사라진다.「사적 영역」에서의 이해와 선호들은 더 이상 사적이기를 멈추고 스스로 공공영역의 주요한 부분으로 세력화되기 때문이며, 바로 이 세력화를 바탕으로 재정치화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쌍방향성과 자유성을 기본적 속성으로 하는 사이버공간의 특성은 바로 이렇게 재정치화되는 [사적 영역]의 민주주의를 형성하는 주요한 모티프를 창출해 낸다.


3. 민주주의의 새로운 전망과 사이버민주주의

3-1. 정보화시대에 있어서의 민주주의의 이념적 지표

요컨대,“자유주의적인 의미로 '고유'하거나 자기동일적인 개인과 같은 것은 없다.” 오히려, 후기산업화사회로의 진입현상이 가시화됨에 따라 "복합적 사회에서 민주주의는 개인과 사회집단들 스스로가 정체성을 획득할 수 있는 조건을 요구한다." 인간은 생활 속에서 타인들과의 관계를 형성하고 그것을 자신의 내면으로 포섭함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이루어낸다. 일종의“내면화된 관계들의 반향들(replications)과 투사(projections)”가 인간존재의 실질을 이룬다는 말이다.

여기서는 관용과 개방, 포섭의 법칙에 의한 연대적 개인들이 주축을 이루는 공동체가 분석의 초점을 형성한다. 개인의 삶은 출생으로부터 계속하여 타인과의 의사소통을 통하여 자아를 형성하고 또 그러한 관계에 자신을 적응시킨다는 점에서, 자아는 이성적 판단작용에 의하여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공동체생활 속에서 지득한 공동체적 가치 또는 그 반영으로서의 자신의 판단에 의하여 규정된다.

각각의 생활의 장은 각각의 행위자에 의하여 규정되고 또 실천된다는 사실 또는 그 요청은 민주주의의 본질적 이념인 자기지배의 이념과 결부된다. 그리고 바로 이 점에서 민주주의의 본래적 의미를 추구할 수 있다. Lefort에 의하면, 지금까지 정치를 규정하여 왔던 민주주의론에서는 주체의 정체성의 기반으로서의 차이를 탈각한 채, 단일하고 통일적인 의지라고 하는 환상을 현실화시키는 도구로서 동원되어 왔을 뿐이다. 여기서는 실존상황 속에서 개체로서의 인간이 경험하는 차이의 중요성을 무시한다. 오히려 그것으로 그러한 차이를 진실과 허위, 선과 악, 공과 사 등의 이항대립적 구획에 의하여 일방에 의한 타방의 지배를 위한 정당화근거로 삼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허위의식은 그 수정의 원리로서 다원주의를 도입하더라도 그것이 실존적 차이를 하나의 통일성으로 귀결시키고자 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는 한에서는 마찬가지의 문제를 야기한다.

따라서 민주주의를 개념지움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그것을 수단으로 파악할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하나의 목적 내지는 이념으로 포착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앞서의 민주주의는 통일성과 단일결정이라는 정치적 지배의 형성에 필요한 수단으로만 이해되기 때문에 그에 상응하는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민주주의를 그 언어에 대한 이해의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굳이 인민의 지배(demos와 kratos의 결합)라는 개념으로 규정한다면, 현대의 민주주의론에 있어서 그 두 개념(즉 인민 및 지배)에 공통되는 요소로서 항존하고 있는 자율성의 개념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인간의 본질을 이성이나 신 또는 상황 속의 행위자 등 그 어떠한 형태로 파악하건 간에 일단은 외적(상황외적 세력을 포함) 강제로부터 독립된 존재로서의 인간을 상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지배라는 관념 속에서도 이러한 자율성의 요소가 나타난다. 그것은 자기지배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Held가, 민주주의에 관한 사상적 전통을 이해함에 있어 "정치적 권위와 강제력의 자의적 행사"로부터의 보호를 그 지향목표 중의 하나로 들고 있음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보호적 의미에서의 소극적 자율성은 그 자체로서는 민주주의의 충분조건이 되지 못한다. 그것은 민주주의의 전제가 되는 인간의 삶의 조건을 어떻게 형성할 것인가의 문제를 단순히 법적 개념체계로 환원시킬 따름이다. 삶의 과정으로서 민주주의를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삶 그 자체를 각종의 법적 권리와 의무로 분해하고 그 낱 단위의 권리.의무만을 고정시켜 버리는 정체된 정치이벤트로 몰아낸다.

엄밀히 보자면, 민주주의는 이러한 자율성이 당해 인간의 정체성 획득 및 능력의 계발과 실현에 이를 때 의미를 가진다. 왜냐하면 민주주의는 단순히‘반대가 없음’ 또는‘다수가 찬성함’을 지향하는, 그래서 통일된 결정에 이르는 것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결정의 과정을 통하여 인간성이 실현됨을 목표로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민주주의는 정치가“시민으로 하여금 자신의 삶을 보다 효과적으로 형성·조직할 수 있도록 전환될 수 있는”기제를 의미한다.

민주적 과정은 구획과 배제를 앞세우는 근대적 지배의 행태들을 파괴하려는 정치의 문제이기도 하다. 바로 이 점에서 여기서의 정치는 해방적 관심을 전면에 내세운다. 그것은 Giddens의 말처럼, 전통과 관습의 고정성에서 사회생활을 해방시키고, 착취나 불편등, 억압을 보다 축소하거나 제거하는, 권력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하는 동시에 정의와 평등, 참여의 윤리를 강조한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벗어남의 상태만를 지향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사회생활과정을 재전유하고자 하는 일상적인 관심의 표현이자 그의 제도화이기도 하다.

나아가 그 어떠한 권력이나 위험에 의하여 스스로 의미를 두는 생활과정으로부터 소외되거나 배제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와 성찰에 의하여 그러한 상태를 극복하고 그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추구하고 또 실현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그래서 개인주의적인 패러다임을 넘어서서 상호주관적 자아개념(intersubjetcive conception of self)이 침윤하는 포섭과 조화, 그리고 상호존중의 이념을 바탕으로 영위되는 평화로운 생활과정, 그것이 정치화되는 것이 곧 민주적 과정인 것이다.

3-2. 사이버민주주의의 의의와 양상

이렇게 볼 때, 정보화시대에 있어서의 자유 즉, 인권과 민주주의는 그 본질에 있어 동일한 내용을 추구하게 된다. 상황속에 존재함과 그 존재함으로부터 생활함이라는 관념은 소극적으로는 어느 누구로부터도 그 현존재가 부인되거나 부정되지 않음을 의미하는 동시에 적극적으로는 그러한 상황의 유의미한 구성인자로서 자신의 삶을 이끌어 나감을 의미한다. 따라서 여기서의 인간은 그대로 수동적이거나 상황의 단순한 반영태는 되지 못한다. 상황은 비록 그 속에서의 행위자를 구속하고 또 그 행태를 한정하는 기능을 수행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행위자들을 고착시킬 수는 없다. 오히려 그 구속에 복종하는 행위자들의 행위-그 취향에 따른 선택과 실행이라는 자기인격의 실천행위를 통하여 다시금 재생산된다.

부연하자면, 행위자들은 상황의 구속이라는 제약속에서 상황을 다시 해석하고 이를 강화하거나 변개시켜 나간다. 이 점에서 상황은 행위자들의 행위대상이다. 그들의 외부적 표출행위는 매순간 연속적으로 이루어지는 재생산과정일 따름인 것이다. 여기서 행위자들의 의도는 중요하지 않다. 분명한 것은 이렇게 상황관련적 행위를 통하여 인간은 그 장 속에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며, 그 삶의 의미를 추구하는 것이다.

오늘날 민주주의론에서 참여민주주의(participatory democracy)를 넘어 심의적 민주주의(deliberative democracy)가 나름의 의미를 가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사이버공간이 가지는 특성들을 이용하여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연대적 재화(solidaristic goods), 즉 "규범을 공유하고 공동으로 만족할 수 있는 재화"를 생산하고, 상호의존과 협력을 기반으로 정치적 여론을 생산하는 시민사회를 형성할 수 있는 주요한 틀을 획득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는 그 구성원들의 생활과정에서 다른 구성원들과 다양한 관계와 유대를 형성하고 이를 통하여 자신들의 생활을 재규정 한다. 즉, 다른 구성원들과의 교류를 통하여 나름의 가치와 의미-즉, 문화를 생산하는 한편, 이를 통하여 그들은 공유된 삶을 영위하여 나간다. 그리고 그 생활의 준거는 각자가 가지는 인격과 취향, 그리고 그에 따른 선택과 학습의 과정이다. 그래서 그들은 고전적 자유주의에서 말하는 것과 같이 원자론적 개인을 바탕으로 경쟁을 중심으로 하는, 환언하자면 자신의 의지만로서 타인의 의지를 지배하고자 하는 어떠한 일방적, 획일적 결정을 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각개인간의 차이가 중요한 공동체적 삶의 動因으로 설정되고 그 차이의 삶을 인정하고 승인함으로써 상호간의 협력과 연대에 이르게 된다. 상호 공존과 공생을 위한 조건으로서의 합의를 추구하는 것이다. 바로 이 점에서 자유와 민주주의가 결합하고 또 수단으로서의 민주주의가 목적으로서의 민주주의로 전이되는 것이다.

오늘날의 심의적 민주주의논의는 바로 이러한 틀을 바탕으로 진행된다. 그것은 단순한 다수결에 입각한 결정의 산출, 또는 어떠한 결정에 대한 정당화부여장치로서의 성격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연대적 재화로서의 공유된 의미와 가치를 산출하는 것 즉, 토론과 설득을 통한 상호이해와 연대의 확장을 위한 과정으로서의 성격을 가진다. 근래에 발전하는 시민운동은 이 점을 잘 반영하고 있다. 그것은 어떠한 정치적 결정에 영향을 미치고자 하는 그래서 목적을 향한 수단으로서의 이익단체적 성격을 가진다기 보다는 오히려 구락부와 같이 동일한 생각과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연대를 바탕으로 그 생활을 공유하기 위한 장으로서의 모습을 가진다.

오늘날 정보화의 추세에 부응하여 전자민주주의론 또는 사이버민주주의론이 초미의 관심사로 대두되고 있지만, 그것이 진정으로 의미를 가지는 것은 민주주의를 향한 수단으로서의 성격을 부여할 때 그러한 것이다. 통상적으로 전자민주주의의 범주내에서 언급되는 것으로, 정보제공형과 투표형, 그리고 대화형으로 구분하지만, 보다 올바른 의미에서의 전자민주주의는 대화형-쌍방향성의 의사소통을 통한 자기지배의 실현모형이라 할 것이다.

그것은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이 단순히 의사소통의 효율성을 증진하는 수준에 머물거나, 탈공간성의 특징을 이용하여 원격지간 의사소통의 가능성을 확대하는데에 머물지 않고, 중첩적이고 개방적인 네트워크를 통하여 분산형의 정보처리 및 교환을 가능케 함으로써 다중의 의사가 실시간적으로 교류되고 또 수렴될 수 있다는 사이버공간의 특성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도 국회의원들을 중심으로 몇 번 시도된 적이 있는 이 대화형의 전자민주주의 모델은 그 우리의 경험에서 보듯이 의제설정(agenda setting)의 주도권이 정치인들에 한정되어 있다는 점에서 진정한 대화형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정보제공형 내지는 홍보선전용의 것이라는 인상이 짙다.

만일 그렇지 않다 할지라도 그것이 정치적 의사결정기제로서 기능하기에는 아직도 장애물이 적지 않은 실정이다. 특히 시민들간의 정보능력의 불균형은 오히려 일정한 시민집단들을 정치과정으로부터 소외시키는 배제의 기제로 작용할 가능성 또는 적지 않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참여민주주의의 한 유효한 유형으로 설정하고자 하는 것은, 전자민주주의나 참여민주주의가 내세우는 가장 큰 특성-직접민주주의적 요소와 교육적 요소- 때문이다. 실제 그간의 시도들이 실패하는 요인 중에 가장 큰 것이 그것을 전국적 의사결정의 수준으로 과대평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전국적 규모의 정치적 의사결정과정에서의 전자민주주의가 가지는 의미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국민들을 정치적으로 각성시키고 교육시키며 나아가 상향식의 의사결정 자체를 가능케 한다는 점은 의연히 부각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이버 스페이스의 특성상 관심대상이 되지 못하는 부분에의 참여는 거의 기대하기 어려운 만큼, 그 자체로서 모든 것을 처리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민주주의나 의사결정이 반드시 전국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그것은 소규모의 동류집단의 의사결정기제로 기능할 때 보다 효과적이다. 부연하자면, 민주주의가 단순히 국가적 의사결정장치로 머물러야 할 필연성이 없을진대, 그렇다면, 산업장에서의 의사결정이나, 동호회, 조합, 지역공동체 등의 의사결정기제로 기능하도록 활성화한다면 비유적으로 역의 "규모의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3-3. 대안적 민주주의의 예: 공동체 네트워크 운동을 중심으로

가) 공동체네트워크운동

이러한 형태의 참여민주주의 또는 심의적 민주주의를 정보통신기술의 도움으로 지역사회에 실천하고 이를 통하여 공동체를 창설하고자 하는 운동이 공동체 네트워크 운동(Community Network Movement)이다. Douglas Schuler에 의하면, 사서, 교육자, 네트워크 및 BBS운영자, 지역활동가, 사회사업가, 정부요원, 컴퓨터전문가 등이 상호 결합하여 공동체의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이를 통하여 공동체구성원들간의 의사소통을 활성화하고, 경제활동기회(economic opportunity)의 확장, 시민참여의 확대 및 교육의 증진을 도모함으로써 공동체를 다시 형성하고자 하는 일련의 운동이 이에 해당한다.

그래서 이 네트워크는 수만명 정도의 인구를 포괄하면서 공동체의식을 고양하고 지역의 의사결정과정에 참여하는 한편 열악한 처지에 놓여있는 사람들에게 경제적 활동의 기회를 마련해 주는 등의 활동을 하면서 이를 위하여 공동체지향적(community-oriented) 토론장, Q&A방식의 포럼, 정부관리나 정부가 가지는 정보에의 접근, 사회역무에 대한 접근, 전자우편, 인터넷계정 등을 제공하는 등 [one-stop shopping]의 방식의 네트워크를 구축함으로써 각종의 역무와 정보를 통합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E. Lipkin, L. Felsenstein, K. Colstad 등에 의하여 창설된 California주의 Community Memory of Berkeley는 통상 최초의 공동체 네트워크로 알려져 있는 것으로 1972년에 출발하여 70년대 중반 그 완성된 형태를 취하였다. 자동판매기 형식의 코인삽입터미널 방식을 취하고 있는 이 네트워크는, 익명성이 보장되면서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하여 지역공동체에 관한 모든 정보를 담고 있다는 점이 특징적이며 이 정보는 어느 누구의 소유로 하지 않고 공유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하지만, 보다 발전된 형태의 것은 Case-Western대학에 의하여 운영되는 Cleveland Free-Net이다. 이는 35,000명 이상의 등록회원을 가지고 있으며 하루 1만건 이상의 접속을 기록하고 있는 세계 최대의 공동체 네트워크로 알려져 있다 한다. 원래 병원에서 운영하는 보건상담네트워크에서부터 출발하여 의사, 변호사, 자동차제작.수선자 등이 소관사항에 관하여 질문에 답하고 있으며, 이러한 포럼들을 GUI화 하여 연방대법원에 관한 항목은 연방대법원 건물의 그림을 클릭하면 될 수 있도록 인터페이스를 간소화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그리고 이 운동은 점차 확대되어 현재 수많은 지역에서 이어받고 있으며, 이 지역공동체네트워크가 연합한 National Public Telecomputing Network(NPTN)은 해외에까지 그 범위를 넓히고자 노력하고 있다 한다.

그러나 이들 공동체 네트워크의 궁극적인 목표는 이 모든 과제들의 정치화이다. Seattle Community Network에 의하면 공동체네트워크를 운영하는 기본적 지표로서는 공동체결속(Community Cohesion), 각성된 시민(Informed Citizen), 교육과 훈련의 기회확대(Access to Education and Training), 강한 민주주의(Strong Democracy) 그리고 이러한 목표의 효율적 수행(Effective Process)으로 세분된다. 여기서 마지막 지표인 효율적 수행은 이러한 민주주의의 조직적.제도적 장치를 확보하기 위한 세 전략으로 구분된다:

첫째, 네트워크의 구축과 개발을 위하여 하드웨어/소프트웨어 위원회, 정책위원회, 봉사위원회등의 5개의 위원회와 조정위원회가 구성되고, FAQ's, 사업소개, 사업운영원칙, 사업내용 및 회계, 등을 간결하게 설명, 반포할 것이 요청되며, 이러한 과정에서 검열이나 프라이버시, 민원처리, 결사형성 등의 사항을 처리한다; 둘째, 온라인 공동체(On-Line Community)의 형성을 위하여 포럼을 중심으로 하는 참여의 장을 구축하도록 한다; 셋째, 네트워크 관리(Network Governance)를 위한 권한과 책임은 공유되어야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G. Graham은, 이러한 공동체네트워크운동 또는 FreeNet운동을 통하여 정보사회의 공익을 구현할 수 있는 길을 다음과 같이 추구한다: 첫째, 정보통신기술을 통하여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어야 하며; 둘째, 네트워크는 정보에의 접근뿐 아니라 컴퓨터식의 의사소통을 통하여 대화의 길을 여는 것에 주력하고; 셋째, 네트워크가 사회적 연대의 신경망(neurons of social connection)으로 작용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네트워크에의 연결 및 의사소통의 과정이 모두 개인에게 일임되어 있어야 하며; 마지막으로,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우리가 공적 생활에서 가지는 사회적 역할은 소비할 의무(duty to consume)라는 점을 자각할 것이 요구된다.

즉, 그에 있어서 공동체 네트워크의 기본적 틀은 "대표"의 원리에 입각한 사회가 아니라 개별적인 책임감에 바탕을 둔 참여의 원리가 충만한 사회로의 변환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웃과 공동의 문제에 관하여 토론하고 이해하며 그를 위하여 행동하는 것 그 자체가 공동체네트워크를 존재할 수 있도록 하는 가장 중요한 모티프가 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그는, 새로이 등장하는 보편적 대화과정에 참여하는 길이 폭넓게 열려 있다는 것은 다름 아니라 그 대화의 내용을 형성하고 운영하는 데에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고 본다. 그리고 이것이야 말로 공동체네트워크의 임무이자 목적이라고 단정한다.

나) 미네소타 전자민주주의 프로젝트

미국의 Minnesota E-Democracy는, 이러한 공동체네트워크와는 약간 다른 맥락에서 형성된 것으로, 기존의 정치기구나 정부기구, 언론매체나 영리매체, 기타 사적 부문에 더하여, 이들을 모두 포괄하는 형태의 민주주의적 의사소통체계를 구축하고자 한다. 그래서 1994년 비당파적 시민을 기반으로 정보통신네트워크를 이용하여 시민들의 민주적 참여의 기회를 확장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창립되어, 다음과 같은 다양한 목표와 업무들을 취급하고 있다.

이를 위하여 이 사이트는 메일링 리스트의 확보, 뉴스.정부.정치 및 이슈들.민주주의 등과 관련한 다양한 링크의 설치, 각종의 공개게시판 및 토론포럼의 개설, 채팅이나 뉴스그룹의 설치.연결 등의 방식을 통하여 다양한 정치적 의견들이 수렴되고 교환될 수 있는 유효한 대화의 장을 마련하고 있다. 물론 이 사이트는 그 창립취지에서 말하듯이 선거를 중심으로 형성된 것이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다양한 방식의 채널과 방식들을 통하여 단순한 결정의 위한 수단으로서의 대화나 토론이 아니라, 참여자들이 스스로 정치적 견해와 정향을 설정하고 그를 통하여 정치적 주체로서 생활해 나갈 수 있는 교육의 장으로서의 역할에 중점을 두고 있다.

다) 영국의 UKCOD

1996년 영국에서 시민들에 의하여 구축된 UKCOD(UK Citizens Online Democracy)는 다양한 정치포럼을 설치함으로써 정보의 교환 뿐 아니라 시민들에 대한 정치적 교육의 장으로서 기능하고 있다. 1997년 1월 런던지역의 지방세문제를 위한 온라인자문회의가 개최된 것을 필두로 EU 특히 유로화에의 가입문제를 중심으로 한 포럼과 1997년 총선에서 최대의 이슈가 되었던 정치개혁(constitutional reform) 및 통상문제를 중심으로 한 포럼은 광범위한 시민의 참여를 유발하였을 뿐 아니라(EU 대표자, 양대 정당을 포함한 14개의 정당이 참여함) 시민들로 하여금 정치적으로 각성, 활성화되도록 하는데에 커다란 기여를 하였다.

이 작업은 영국의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는 물론 EU의 지원을 받아 이루어진 것(그러나 정부의 개입은 최소화하고 있다)으로, 선거의 입후보자를 대상으로 10대 청소년들을 대중배심원으로 초대하여 평가하게 함으로써 대중방송의 신기원을 열었던 BBS방송의 사이버버전이라고 할 정도로 호평을 받고 있다.

3-4. 전자민주주의와 심의적 민주주의: 사이버민주주의의 실천을 위한 모색

이러한 전자민주주의에 대하여 대화와 토론을 중심으로 공동선을 추구해 나가는 심의적 민주주의를 서로 분리하면서 이들을 별도로 파악하여야 한다는 입장이 있다. Scott London이 대표적인 인물로서, 그에 의하면 양자는 다음의 표와 같은 차이를 가진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구분은 그 자신이 인정하고 있듯이 패러다임의 차이에서 연유한다. 그는 전자민주주의란 새로운 의사소통수단을 통하여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의 실천정향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면, 심의적 민주주의는 공적 토론과 협력을 통하여 공정하고도 집단적으로 공동체의 복지를 달성하고자 하는 것을 지향한다고 본다. 환언하자면, 그의 전자민주주의는 고전적 자유주의의 틀을 따라 소극적 개념으로서의 인간의 자유를 상정하고 이러한 자유의 경쟁체계-즉, 시장적 경쟁-속에서 어떠한 의사결정을 이루게 되는 과정으로서 개념화되고 있다.

반면, 그의 심의적 민주주의는 공동체주의(Communitarianism)적 개념에 따라 공동선과 공동체의 복지를 위하여 상호협력하는 윤리적 존재로서의 인간관념에 바탕을 둔다. 결국 그에 있어서는 전자민주주의와 심의적 민주주의는 상호 다른 개념적 기반위에서 형성된 것이며, 따라서 양자는 개념적으로는 결코 결합할 수 없는 어떠한 두 존재라는 의미에서 대조적인 것으로 규정된다.

하지만, 그 구분 자체가 과연 London의 말처럼 확정적이라고 하기에는 상당한 문제가 존재한다. 과연 개인의 소극적 자유와 공동체의 공동선의 추구-이 양자간에 어떠한 절대적 간극이 설정되어 있는가? 만일 인간을 원자론적 개인으로 설정할 경우에는 일단 이 명제에 나름의 신뢰를 부여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 고립된 개인의 상태를 벗어나 사회생활과정에서 형성되는 의미와 가치를 자신의 존재기반으로 삼고 그에 의거하여 자신의 자유와 가치-인격실현의 정향-를 규정하게 된다면 이는 전혀 별개의 방향으로 나아간다. 즉, 공동체의 공동선이라는 것은 현실적으로는 그 구성원들이 일정한 사회적 규범과 행위지침 또는 생활방식을 규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며 바로 이로써 인간은 자신의 자유의 의미를 포착하게 되는 것이다. Rousseau가 일반의지의 강제에 의하여 인간은 비로소 자유로울 수 있다고 하는 자뭇 역설적인 테제를 제시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 입각한다면, 자유와 공동체의 두 문제는 언제나 상극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조화되거나 또는 상호간에 존재의 조건으로 설정되는 중첩적 개념 내지는 동일개념의 다른 표상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그 한도내에서 전자민주주의와 심의적 민주주의의 접합점을 발견할 수도 있는 것이다.

London이 놓치고 있는 것은 새로운 의사소통기술의 발전으로 야기되는 민주주의담론의 문제가 그 발전으로 인하여 도달되어 있는 어떠한 현실적 상태를 설명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 기술발전을 위하여 민주주의라는 시대적.헌법적 요청을 어떠한 식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인가 하는 규범론적 정향설정의 문제라는 점이다.

실제 전자민주주의 내지는 사이버민주주의는 이미 이루어져 있는 어떠한 것은 결코 아니다. 그것은 기존의 대의제민주주의에 부가하여 또는 그것을 대체하여 존재하는, 그럼으로써 자기지배의 이상과 인격의 자유로운 발현,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모든 공동체구성원들의 인간성을 최고한도로 실천하는 어떠한 시민사회의 형성에 관한 의제설정의 함의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즉,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을 우리는 어떠한 방향을 활용할 것인가의 문제가 중요한 것이지, 그것을 범주화하여 어떤 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는 아직은 단계적으로 조급한 욕망에 불과한 것이다.

물론 이 London의 논의를 보다 신중한 측면에서 재구성한다면, 사이버공간의 등장으로 인하여 흔히 빠지기 쉬운 환상과 오류에 대한 일침으로 받아 들일 수도 있다. 쌍방향성을 말하지만, 여전히 텍스트를 기반으로 하는 인터페이스가 지배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할 때, 단발마식의 외침과 주장만이 횡행하고 상호간의 대화나 설득, 타협의 여지가 제대로 구현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 사이버공간이 GUI의 요청과 더불어 급작스럽게 WWW방식으로 정착됨으로써 발생하는 일방향성 의사소통의 문제, 정보능력의 차이의 문제 등 다양한 장애요인들이 심의적 민주주의의 형성을 가로 막는 현실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기술의 발전이 사회공동체를 형성하고 운영, 발전시킴에 있어 중요한 국면적 전환점을 제공하고 있음 또한 무시하여서는 아니된다.

이에 Masuda는 참여민주주의의 기반이 되는 전자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하여는 여섯 가지의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고 본다.:

①모든 시민들 또는 최대다수의 시민들이 결정과정에 참여하여야 한다;
②컴퓨터피아는 시너지와 상호협력의 정신으로 충만하여야 한다. 이때 시너지란 공동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하나의 관점에서 공동행위, 공동작업을 하는 것을 말하며, 상호협력이란 공동선을 위하여, 자신의 이익을 자발적으로 희생하는 것을 말한다;
③모든 관련정보는 공중에게 제공되어야 하며 사람들은 정보를 제공하여 문제해결을 위하여 자발적으로 기여할 것이 요구된다;
④모든 시민들은 문제해결방안을 실천하는 데에 협력할 것이 요청된다;
⑤갈등이 존재하는 경우에는 설득과 합의가 공동의 해결을 추구하는 방법이다;
⑥결정에 대한 반대자에 대하여는 계몽과 교육으로써 이들이 시너지와 상호협력의 정신을 배울 수 있도록 한다. 물론 Masuda의 이러한 논의의 중심에는 어떠한 정책의 결정과 그 집행이 놓여져 있지만, 그 점을 제외한다면 이러한 전제조건들은 심의적 민주주의를 실천함에 있어서도 크게 무리하지 않는 것들이다. 즉, London이 말하는 Teledemocracy와 심의적 민주주의간의 간극을 보다 좁힐 수 있는, 그래서 양자의 상호결합을 모색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A. Keskinen은, 대의제민주주의로부터 전자민주주의로 발전하는 과정을 설명하면서, 민주주의는 새로운 기술의 발전을 통하여 정치과정이 근대화되는, 그러나 여전히 권력구조는 변하지 않고 있는 개혁(reform)의 국면을 거쳐, 권력구조 자체의 변화를 야기하고 보다 많은 행위자들이 정치과정에 참여하게 되는 변혁(transformation)의 국면과 결합하고 이로써 대의제민주주의는 심의적 단계로 발전하게 된다고 한다. 여기서 변혁은 사회내에서의 정보와 권한의 재분배과정을 통하여 시민들이 자신의 생활을 지배하기 위하여 이용되는 개인적 결정권이 보다 많은 영역을 확보하게 될 때 이루어진다고 한다. 그리고 바로 이 점에서 민주주의란 평생학습의 과정이라고 정의하는 그의 민주주의관은 의미를 획득하게 된다. 그는 전자민주주의의 개념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전자민주주의는 현대적인 정보통신기술(ICT:information and communications technology)을 이용하여 인민들로 하여금 심의적 방법으로 아젠다를 설정하고 우선가치를 형성하며 중요한 정책을 결정하며 그 집행과정에 참여하는 것이다. 일면으로는 진정한 전자민주주의란 자기지배의 공적 수단을 확보하기 위하여 정보통신기술을 이용하는 것이며, 다른 면으로는 그것은 현대의 대의제 민주주의를 보다 참여적이고 심의적인 "강한" 민주주의로 변혁하기 위하여 정보통신기술을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물론 그의 논의는 대의제 민주주의에 대한 대체물로서의 전자민주주의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는 대의제 민주주의를 구성하고 있는, 정치엘리트(또는 그 집단) 중심의 권력구조를 변혁하여 사회적 행위자들이 자신의 생활을 스스로 규율할 수 있도록 하는 Barber식의 강한 민주주의로써 그 대의제 민주주의의 폐단과 위기를 극복할 것을 지향하고 있다. 대체가 아니라 변혁을 통하여 대의제와 민주주의의 본질적 이념을 동시에 구현하고자 하는 것이다.

실제 전자민주주의 또는 사이버민주주의는 현존하는 모든 것을 대체하는 전혀 새로운 방식의 민주주의로 개념화되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엄밀히 보자면 사이버민주주의의 경우 사이버공간내에서 형성되는 가상현실-가상적 정치과정을 의미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으나, 대부분의 경우 Teledemocracy라는 개념으로 설정되면서, 현실정치에 정보통신기술이 어떻게 활용되며 그 결과는 현실정치의 과정이나 구조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가 또는 어떠한 영향을 미치도록 구조화하여야 할 것인가에 집중되어 있다. 즉, 그것은 현실의 문제가 아니라 일종의 (헌법적) 당위의 문제로 설정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논의들은 이 점에 착안하면서 다양한 이론적.실천적 대안들 뿐 아니라 기술적 발전방향까지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그 논의의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확실한 점이 있다면, 그것은 민주주의의 관념이 더 이상 치자와 피치자의 이분법적 분할에 근거한 지배의 정당화조건에 머물 것이 아니라, 이 양자의 통합 내지는 유기적인 혼착(diffuse)을 통하여 다양한 삶의 조건과 의미.가치들을 생활인 스스로의 학습과 결정에 의하여 형성되고 또 집행되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자기지배'의 원칙의 실현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점이다.

3-5. 정리: 사이버공간에서의 민주주의

전술한 공동체네트워크운동이나 Minnesota E-Democracy의 예는 하나같이 어떠한 결정을 지향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전술한 전자투표 혹은 인터넷투표와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그것은 정치과정에 혼입되어서 조차 정치적 의사결정을 목표로 하기 보다는 정보의 확산과 이해(Understanding)의 공유를 지향한다. 각종의 대화와 토론의 장이 중심이 되고, 다양한 메일링리스트와 공개게시판을 바탕으로 열린 공간을 계속적으로 창출해 낸다.

여기는 시스템의 관리자와 아젠다의 설정자가 완전히 구분되어 전자는 기술적 차원에서의 서비스만을 제공할 뿐 아젠다의 설정 자체에는 아무런 권한도 의지도 갖지 않는다. 오히려 아젠다의 설정은 모든 이에게 개방되어 있으며, 이러한 개방적 운영을 통하여 보다 많은 이용자들을 대상으로 보다 많은 생활경험과 이해와 사고를 수렴해 내고자 한다.

바로 이 점에서 심의적 민주주의의 일단을 발견할 수 있다. S. London은, 현대사회의 소외 과정은 오로지 공동체 내에서의 직접정치 참여에 의해 극복되어 질 수 있는 것이며 이는 전구성원을 수백 명의 그룹 단위로 묶어 이 그룹 내에서 대표와 위원회를 선출하고(지방과 중앙의) 정치적 의제에 대해 토론하는 town-meeting방식으로 이룰수 있다고 한 E. Fromm의 [건전한 사회(Sane Society)]론을 인용하면서, 그 실천태를 1992년 미국대통령선거 당시 R. Ferro에 의하여 도입되었던 전자타운미팅홀(electronic town-meeting hall)의 예에서 추구한다.

상시적인 의사소통 메카니즘이 부재하는 미국의 정치현실에서 정치의 실패를 극복하는 대안으로 정보통신기술을 이용한 쌍방향적 의사소통과 이를 통한 시민의 능동적 정치참여에서 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 후기 산업화사회에 있어 대의제민주주의에 대한 가장 유효한 대안적 민주주의로서의 심의적 민주주의의 핵심적 요소가 되는 것이다.

심의적 민주주의는 결코 일방향적 의사결정을 추구하지 않는다. 그것은 A. Giddens의 이른바 생활정치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즉, 자아의 성찰적인 기획을 바탕으로 자아의 실현을 지향하는 정치이다. 따라서 여기서는 해방정치와 같이 대립이나 해방의 요청이 강력한 주문사항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라이프스타일을 창출하고 선택하는 변형의 정치를 말한다. 의사소통과 교류를 통하여 자아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또 이를 통하여 자아를 실현하는 창조적 의미에서의 자기지배의 원칙이 충만되는 정치영역인 것이다.

흔히들 사이버공간의 특성으로 지칭하는 무한한 자아분열의 성향-가상적 세계에서 자신의 그때 그때의 욕구에 따라 자신의 정체성을 변화해 나가는 경향-은 이러한 자아추구의 두드러진 예이다. 주어진 공간과 시간-환경-에 따라 자신의 욕구를 조절해 나가는 일련의 행위들 - 그것이야 말로 사이버 공간을 특징지우는 현상이라고 한다면, 이것이 사이버민주주의에 관철되는 또 하나의 요청이라고 명명하는 것은 그리 잘 못된 것은 아닐 것이다. 아니, 보기 나름으로는 그것이야말로 민주주의로 표현되는 정치공간에서 개인이 공동체의 유효한 구성원으로 포섭되는 가장 충분한 조건을 형성한다.

환언하자면, 구체적인 상황속에서 그와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생활하는 구체적 인간 - 따라서 상황의 차이와 인간의 차이에서 연유하는 나름의 취향의 차이 내지는 행위의 차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존중함으로써 공존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준거이자 기제로서 민주주의가 재구성되는 유효한 틀을 사이버공간이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 사이버공간은, "개인의 정체성 표현을 위한 새로운 맥락"으로서 이미 그 자리를 잡고 있다.

하지만 이때의 정체성은 단순히 개체로서의 그것이 아니라, "공통적인 관심과 유사한 특성을 가진 여러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공동체의식으로 더 뚜렷하게 나타난다." 사이버민주주의가 의미를 가지는 것은 이 점이다. 그것은 단순히 의사소통의 동시성이나 광역성, 개방성의 특징만으로써 대의제 민주주의를 극복하는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기성의 질서로부터 자유로운 욕구의 표현을 가능케 함으로써 지배와 억압의 현실에 대한 비판적 대안의 교류를 위한 공개포럼을 형성하고 나아가, 욕구를 공유하는 타자와의 적극적 연대를 도모하는 공동체로서 재구성된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의 본질적 요소를 충당하고 있다. 자신의 욕구와 의지를 자유롭게 개진하고 타자와 공유하며, 그를 통하여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실현해 나간다고 하는 일련의 확장된 자기지배의 원칙이 실천되는 가장 두드러진 장을 마련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이버공간의 등장은 우리의 민주주의관에 대한 변혁을 요구한다. 그것은 통치자와 피치자, 대표하는 자와 대표되는 자, 전체이익과 개별이익이라는 이분법적 구획을 탈피하고, 전자에 의한 후자의 절대적 우위라는 권력담론을, 자기지배와 동일성의 원리, 그리고 공동체적 연대의 이념으로 변환하는 일련의 발상전환을 의미한다. 민주주의가 권력의 정당화기제로부터 사회구성원들의 생활원리로 변혁(transformation)될 때, 즉 민주주의가 지배와 권력의 국가현상을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유기적인 공동체적 삶을 통하여 개개의 인간들이 자신의 인격을 형성하고 실천하는 일련의 장을 마련한다는 의미로 이해될 때 우리는 C. Mouffe가 말하는 '구성적(constitutive)’의미와 규율로서의 민주주의를 찾을 수 있는 것이다.


4. 전자민주주의와 선거법

요컨대, 사이버민주주의의 논의는 단순히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을 통하여 새로운 민주적 의사결정의 방식이 도입되었음에 그쳐서는 아니된다. 오히려 그것은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민주주의의 담론 자체를 변환시킴으로써, 국가적 삶과 개인적 삶의 유기적인 결합을 통하여 모든 인민들이 자신의 삶을 그때그때의 관계망 속에서 구성하는 기본적 과정을 생성하고 유지하는 동시에 또 이 과정을 통하여 구성된 인민의 삶에 의하여 다시 스스로가 재구성되는 일련의 생활과정을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변혁의 모티프로서의 전자민주주의가 거론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의 선거법(공직선거및선거부정방지법, 2001.10. 8 개정)은 이상과 같은 의미에서의 전자민주주의는 물론, 현재 진행되고 있는 정보화의 현황조차도 제대로 반영하고 있지 못하다. 그것은 여전히 대의제민주주의의 전형적인 틀을 따르고 있을 뿐 아니라, 그 운영의 방식에서도 여전히 Off-Line의 아날로그 체제만 고집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지경에서 이상에서 서술한 바와 같은 전자민주주의의 틀을 도입하고자 주장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리할 뿐 아니라, 공동체적 성격을 가지는 전자민주주의의 본질과도 자뭇 거리가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자민주주의의 개념속에서 도출될 수 있는 정보제공, 숙고, 토론이라고 하는 심의적 민주주의의 요소들은 비록 미시적 수준에서나마 얼마든지 도입(혹은 허용)가능하며, 그로 인하여 단순한 지배자와 피지배자간의 정당성의 연계만을 제공하는 이 대의제민주주의체제의 권력성을 완화시키는, 나름의 참여적 성격의 선거시스템을 구축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하에서는 이를 항목별로 간단히 살펴 볼 것이다.

4-1. 원격선거관리시스템의 부재

우리 선거법체계가 가지는 첫번째의 문제는 선거권자가 언제나 off-line상으로만 선거 및 투표의 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고정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세 가지의 영역이 존재한다. 첫째는 입후보자의 등록이나 그 관리의 문제이다. 하지만, 이는 입후보자 본인에 한정된 문제이며, 따라서 선거 전반의 운영에 미치는 영향은 그리 크지 않아 별도로 논의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그러나 둘째, 선거인명부의 공고나 열람, 이의신청, 부재자신고, 부재자신고인명부의 열람 등 투표권자의 확정과 관련한 일련의 절차와 셋째 전자투표의 문제는 보다 본격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우선 선거의 종류에 따라 선거일 28일 - 19일전의 일자를 기준으로 작성하고 그에 따라 투표권이 부여되게 되는 선거인명부 및 부재자신고의 경우 철저하게 off-line의 체제를 따르고 있다. 선거법 제5장은 이에 관한 규정들을 나열하고 있는데, 선거인명부는 중앙선관위 규칙에 따라 투표구별로 4통을 작성하고(규칙 제10조), 선거권자의 수가 1천인을 넘을 때에는 분철할 수 있게(법 제37조 제5항)하는 등 철저하게 서면주의를 취하고 있다. 물론 이는 전자적 방식에 의한 사본으로 변환될 수도 있으나(법 제46조) 그것은 선거관리기관간의 정보공유를 위한 행정적 목적에 의한 것일 뿐, 그것이 어떤 전자적 대민봉사의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 더 문제적인 것은 부재자신고나 선거인명부의 열람, 이의신청의 경우이다. 법 제40조제1항은 구.시.읍.면의 장 또는 틍.이의 장은 "장소를 정하여" 선거인명부를 열람하게 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제41조 제1항과 제42조 제1항에서는 명부에 대한 이의신청 또눈 불복신청을 "구술 또는 서면으로" 혹은 "서면으로"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부재자신고의 경우에는 반드시 서면으로 우편을 통해 하도록(법 제38조 제1항) 정하고 있다. 선거인명부에 자신이 등재되어 있는지 확인하고자 하거나, 선거인명부에 오기나 누락이 있음을 정정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당사자는 반드시 정해진 장소에 이동하여야 하는 불편을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혹은 부재자신고를 하기 위하여 부재자신고서를 작성하고 우편함에 투입하는 번거로움 또한 존재한다.

물론 이 부분에 관하여 온라인 방식으로 전환할 경우 본인확인의 문제와 타인의 개인정보보호라는 문제는 일단은 고려하여야 할 사항이기는 하다. 하지만, 현재 본인확인의 유효한 기술적 수단으로 전자서명제도가 이미 실용화되어 있을 뿐 아니라 그것이 전자상거래는 물론 전자정부법에서도 활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더 이상 심각한 걸림돌은 되지 못한다. 또한 선거인명부의 열람과정에서도 자신에 관한 정보를 열람하는 중에 우연히 타인의 정보가 노출되는 문제도 발생한다는 우려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우려는 선거인명부 자체를 off-line상의 아날로그적 책자로 발행함으로써 야기되는 문제이다. 즉, 한 면에 십수명의 선거인이 등재됨으로써 이런 문제점이 나타날 수도 있으며 이 때 심각한 개인정보유출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하지만, 선거인명부를 전자적 방식으로 작성하고 그것을 데이터베이스화함으로써 전자서명으로써 자신의 신원을 확인하는 자에 대하여 그자가 선거인명부에 등재되어 있는지, 그리고 제대로된 선거구에 귀속되어 있는지의 여부만 확인할 수 있도록 한다면 이 문제 역시 해결된다.

셋째, 전자투표제도는 오늘날 일부 정당에서 후보자경선과정에 전자투표제도를 도입하고자 하는 시도가 없지는 않다. 하지만 이 전자투표 특히 자신의 거주공간에서 직접 할 수 있는 소위 home voting은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아직은 채택하기 어려운 실정이라 본다. 전자투표로 인한 중복투표, 허위투표, 집계 및 당선인확정과정에서의 오류가능성 등의 기술적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릴레이투표.무더기투표.백지투표 등이나 투표매수, 강제투표 등 부정투표의 경험이 기억에 그대로 남아 있는 현실에서 이러한 투표문화에 대한 신뢰가 구축되기 전까지는 자칫 그 제도 자체가 투표결과의 왜곡으로 직결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4-2. 선거운동: 입은 묶이되 돈은 풀릴 수 밖에 없는…

(가) 전자민주주의와 선거

발전된 정보통신기술을 통하여 전자적 agora를 실현하고자 하는 꿈은 California Ideology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다. 쌍방향성이나 동시성, 익명성, 무한성, 자유성등 사이버공간이 가지는 특성들을 이용하여 공통의 관심사에 대하여 정보와 견해와 입장을 교환하고 스스로의 정치적 의지를 형성해나가는 것은 이미 가능할 뿐 아니라 많은 곳에서 경험하고 있는 사실임은 전술한 바 있다.

물론 이러한 전자적 agora가 그 특성상 일반성과 통일성, 단일성과 전체성을 지향하는 전국규모의 정치단위에서 그대로 실천되기에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종의 선거과정에서 이슈를 형성하고 아젠다를 구축하며, 그때 그때의 정치적 관심들을 교환하는 장으로서 사이버공간이 이용되고 이를 통하여 비록 미시적 결단에 머무르기는 하나 자신이 가지는 투표의 향방을 결정하게 하는 기회를 마련할 수 있다면 적어도 현시점에서는 유의미한 정치참여의 틀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선거의 기능이 정치지배자를 선출하거나 그에 법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외에도 국민들로 하여금 정치과정에 편입시키고 정치적 이슈에 대한 정보제공 및 교육의 기능 또한 수행한다고 보면, 가장 발달된 의사소통수단으로서의 정보통신기술 혹은 그로 인하여 구축되는 사이버공간이 선거과정에서 가지는 순기능은 결코 무시할 바 못 된다. 하지만, 이런 의미에도 불구하고 현행 선거법은 선거관리의 측면 뿐 아니라 선거운동에 있어서도 이 사이버공간을 활용하기는커녕 오히려 그 공간의 가능성을 위축시키고 억지시키는 퇴행적 구조만을 가지고 있다.

선거운동에 관하여 제한적 네가티브체제를 구축하고 있는 현행 선거법에 의하면 선거운동은 후보자등록이 끝난 때부터 선거일전일까지 할 수 있되(제59조), 선전벽보(제64조), 선거공보(제65조), 소형인쇄물(제66조), 표찰.수기 등(제68조), 신문광고(제69조), 방송광고(제70조), 방송연설(제71조), 방송시설주관 후보자연설방송(제72조), 경력방송(제73조), 방송시설주관 경력방송(제74조), 연설회(제75조 내지 제77조), 공개장소에서의 연설.대담(제79조), 단체등의 대담토론회(제81조), 언론기관의 후보자등 초청 대담.토론회(제82조 및 제82조의2), 컴퓨터통신을 이용한 선거운동(제82조의3) 등의 방법에 의하여 할 수 있다. 이 중에서 최후자 즉 언론기관의 대담.토론회는 선거운동기간전 120일 혹은 60일전부터 가능하며 나머지는 거의 선거운동기간중에만 가능하게 되어 있다.

문제는 이러한 선거운동의 방법들이 컴퓨터통신을 이용한 경우(제82조의3)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off-line의 시간적.공간적 제약하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며, 따라서 선거와 관련하여 제기되는 다양한 정치적 관심들을 선거과정에 유효하게 편입시킴에 있어 아날로그방식이 가지는 한계를 그대로 안게 된다는 점이다. 물론 보기나름으로는 일반적인 정치적 이슈들을 선거운동기간전에 온라인방식으로 제기하고 또 유권자들과 의사소통하는 것은 허용되어 있지 않느냐고 할 수 있겠지만, 그것은 대의제 민주주의체제에서 선거가 가지는 의미를 고려하지 않는 입장에 지나지 않는다. 선거와 관계없이 일반적으로 제기되는 정치적 이슈에 대한 사이버포럼 등의 경우 대체로 두 가지의 의사소통유형이 나타나게 된다.

즉, 일방소통적 의사지배구조와 동호회형 자기강화구조가 그것이다. 전자의 경우는 정치인이 매체 그 자체를 장악하면서 자기선전이나 정책홍보성의 일방향적 전달수준에 머무르거나 의제 자체가 당해 정치인의 의사에 좌우되는 양태를 보임으로써 기존의 매체방식과 전혀 다를 바 없는 상황이 되어 버린다. S. Aikens & E. Koch가 이러한 정치매체방식은 소수의 엘리뜨들이 의제설정권(agenda-setting)을 장악하고 정보의 흐름을 통제한다고 비판하면서 하향식의 정치토론의 모델은 도저히 민주적이라고 할 수 없다고 단정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후자의 경우는 C. Sunstein이 적절하게 지적하고 있다. 일정한 정치명망가를 중심으로 혹은 일정한 정치적 의제를 중심으로 우호적인 네티즌들이 집합하면서 서로 정보를 교환하고 자신들이 이미 획득하고 있는 정치적 견해나 입장들을 서로 강화시키는 일종의 집단편향성강화경향(Group polarization)이 두드러진 경우이다. 여기서는 네티즌들은 자신이 원하는 정보만을 선별적으로 취합하고 자신과 유사하거나 동일한 의견에 집착함으로써 그 토론마당에 참여하는 것 자체로부터 자신의 정치적 정체성을 확보하는 한편, 이 과정이 누적되는 와중에서 기존의 정치적 입장을 보다 극단적으로 강화해 나간다.

민주주의의 발전이라는 맥락에서 이 두 가지의 유형 모두가 바람직하지 않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선거시에는 이러한 양상은 상당히 변화될 수 있다. 여기서는 경쟁적 후보자의 존재가 대항적 입장이나 의견을 경쟁적으로 제시하고 유권자로서는 자신의 기존의 선호와 관계없이 다양한 정치적 입장.의견을 청취할 수 있는 외부적 환경이 설정된다. 소위 사상의 자유시장이 형성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마련되는 것이다. 즉 어떠한 일방적 주장에 대하여 언제나 대항적인 주장이 제시되고 또 이들이 상호 경쟁하는 체제가 형성되기 때문에 유권자의 입장에서는 다양성과 더불어 대항정보까지도 확보할 수 있음으로써 어느 누구도 의제를 장악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유권자들로서는 상호간의 경쟁과 협력.조정의 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우리 선거법에서 후보자 등의 초청대담.토론회의 장치를 나름으로 마련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선거법 제82조에서 정하고 있는 언론기관의 후보자등 초청 대담.토론회의 경우는 심의적 민주주의의 취지를 살림에 있어 그리 적합하다고 할 수는 없다. 그 대담.토론회의 주최자인 언론기관 자체가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일정한 언론권력의 담당자 내지는 지배적 위치의 여론주도자이기 때문이다. 환언하자면 선거시마다 각종의 TV방송국이나 신문사 등에서 이런 대담.토론프로그램을 방영하고 있기는 하나, 그 기회의 면에서나 기획.편집의 면에서 한정된 시간.공간적 제약하에서 한정된 의제만을 다루게 되고 그 의제의 처리과정 조차도 언론기관의 의지에 의하여 좌우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뿐만 아니라, 그 진행방식 또한 일방향적 의사소통이라는 전통적 대중매체의 한계성에 의하여 시청자들은 단순한 의사전달의 객체로만 머물 뿐, 능동적으로 의제를 제안하고 자신의 생각에 대한 후보자의 의견을 타진할 수 있는 혹은 양자간의 대담을 이끌어낼 수 있는 그 어떠한 장치도 유효하지 않다.

이에 반하여 사이버공간을 통한 대담.토론프로그램은 시.공간적 면에서의 무제약성-후보자의 일정을 감안한-과 쌍방향성, 경우에 따라서는 익명의 가능성으로 인하여 보다 원활한 대화적 상황을 다양하게 만들어낼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진다. 여기는 물론 정보격차의 문제나, 일정한 의제에 대한 집중성, 진지성, 대화방식의 긴밀성 등의 문제가 제기될 수 있으며, 더러 비전통적 방식에 의한 대담.토론이라는 점에서 갖은 시행착오가 발생할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그러한 문제에 비하여 그로부터 얻을 수 있는 효율성 즉, 다양한 채널과 의제를 통하여 사회적.정치적 갈등을 선거의 장에서 풀어나갈 수 있는, 그럼으로써 정치의 정상성을 확보할 수 있는 가능성이라는 점에서 이 사이버대담.토론회의 중요성은 결코 가볍지 않다 할 것이다.

(나) 사이버 초청대담.토론회의 가능성

이러한 장점과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우리 선거법은 일단 그 가능성을 좁혀 놓고 있다. 선거법 제82조 제1항은 후보자등의 초청 대담.토론회를 주최할 수 있는 주체를 텔레비전 및 라디오 방송시설과 정기간행물의등록등에관한법률에 의한 일반일간신문사등의 언론기관에만 한정하고, 전자를 방송법에 의한 방송사업자 혹은 종합유선방송국(제70조)에 국한시키고 있다. 따라서 선거법에서 정한 "언론기관"이 아닌 일반적인 사이버포럼운영자의 경우에는 비록 후보자의 승낙이 있다 할지라도 당해 선거와 직접 연관시켜 대담.토론회를 개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얼마전 오마이뉴스(www.ohmynews.com)가 한 후보자를 초청하여 대담회를 가지려고 했을 때 선거관리위원회에서 이를 저지한 것도 바로 이 규정에 의거한 것이다. 그러나 이 일화에는 약간의 법리상의 문제가 있다.

첫째, 선관위의 선거법 해석에 있어서의 경솔함을 들 수 있다. 선거법 제82조 제1항의 법리상의 해석론으로는 "정기간행물의등록등에관한법률에 의한 일반일간신문사등 언론기관"의 범위에는 당연히 정간물법에 의하여 등록을 필한 언론기관에 오마이뉴스가 포함되지 않는다. 동법 제2조에 의하면 언론기관은 일반일간신문이나 특수일간신문, 일반.특수주간신문, 잡지 등을 간행하는 자이며 제9호 소정의 기타간행물의 발행기관이라 할지라도 반드시 등록을 필해야 할 것을 요구한다. 이때 기타간행물은 동법 시행령 제1조의2에 의하면

①보도.논평 또는 여론형성의 목적없이 일상생활 또는 특정사항에 대한 안내.고지등 정보전달의 목적으로 발행되는 간행물,
②컴퓨터등의 전자장치에 의하여 문자등의 정보를 보거나 듣거나 읽을 수 있도록 제작된 전자적 기록매체로서 동일한 제호로 계속 제작되는 간행물,
③월 1회이하 발행되는 간행물중 제책되지 아니한 간행물을 말하는 것으로 동법 제7조에 의하여 문화관광부장관에게 등록하여야 한다.

여기서 정기간행물의 등록은 일종의 공법상의 행위적격을 획득하기 위한 전제조건이라고 보아야 하며, 따라서 오마이뉴스와 같은 경우에는 위의 ②에 해당하기는 하나 동법 제7조 소정의 등록절차를 경유하지 못함으로 인하여 최소한 공법상으로는 정간물법에 의한 언론기관이라고는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 이렇게 본다면 선관위가 오마이뉴스를 선거법 제82조상의 언론기관이 아니라는 이유로 그 대담회의 개최를 저지한 것은 일단은 유효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와 같은 해석은 합법률적일지는 몰라도 합헌적인 해석이라고는 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우선 이 선거법은 전술한 바와 같이 정보화 혹은 사이버의 시대를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제정된 것으로 이 점에서 구태의연한 내용을 담고 있다. 오늘날과 같이 사이버공간이 종래 대중매체가 차지하고 있는 것에 비견할 정도의 의사소통수단으로 활용되고 있고, 그것이 사회내적으로 하나의 제도로서 자리잡아가고 있는 상황에 대응할만한 법률적 토대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일종의 법의 흠결이 존재하는 영역이 발생한 것이다.

따라서 이 법을 집행하는 선거관리위원회로서는 이 법의 취지와 제정목적, 그리고 그 시행에 따른 정치.사회적 효과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 평가한 연후에 그 법의 적용가능성을 판단하였어야 했다. 즉, 우리 선거법은 "돈은 묶되 입은 푼다"는 취지에 입각하여 부정.부패선거를 통제하고 시민사회 수준에서 보다 건전하고 발전적인 정치포럼을 구축하고자 한다. 그래서 헌법 제21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표현의 자유 특히 그 핵심이라 할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최대한도로 발현하게 하고 이로써 헌법 제1조의 국민주권주의를 보다 실질화시킬 수 있는 가능모델로서 현재와 같은 규정방식에 이른 것이다.

중앙선관위가 2.19 사이버언론이라 하더라도 기존의 언론기관과 공동으로 대담.토론회를 개최하는 것은 허용하겠다고 결정하면서 그 이유를 "일반신문사를 통하여 공정성이 담보됨"을 들고 있음 또한 자기당착의 상황에 빠져 버린다. 정간물법상의 등록제도는 언론의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한 제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즉, 정간물법 제12조 제2항에서 보듯 정기간행물의 등록을 취소할 수 있는 사유가 부정등록이나 목적위반, 음란출판의 경우에 한정되어 있을 뿐 아니라 일간신문사의 겸영금지규정(제3조)를 제외하고는 그 어떠한 공정성담보장치도 정간물법에는 명기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공정성의 담보든 또는 어떠한 국가적 이익의 실천이든간에 그를 이유로 출판물에 대하여 국가가 규제하는 것은 헌법 제21조의 표현의 자유에 대한 중대한 침해로서 위헌이 되어 버린다. 제3조의 일간신문사의 겸영금지규정 역시 특정기업에 의한 언론의 독점을 막음으로써 여론의 다양성을 보장하기 위한 장치이지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한 장치는 아니다. 그렇다면, 중앙선관위의 이 결정은 기존의 언론사에 대한 특혜성의 신뢰 즉, 지금까지 언론기관으로 존재해 왔기 때문에 공정할 것이라는 순환논법상의 근거없는 믿음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렇다면 선거관리위원회로서는 오마이뉴스와 같이 하나의 언론기관으로서의 실체를 확보하고 있는 계속적 조직에 대하여는 그 등록여부와 관계없이 사실상(de facto) 유효한 언론기관으로 간주하고 여타의 신문.방송사와 마찬가지로 대담회를 할 수 있도록 했어야 하였다. 물론 사이버언론이라 해서 모두가 다 선거법의 취지에 부합하는 공정성을 담보하지는 않는다. 경우에 따라서는 후보자가 임시적으로 구성한 사이버포럼이 있을 수도 있고, 특정 후보자를 지지하는 세력이 그 역할을 자임하고 나설 수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사이버언론이 난립하면서 선거운동의 축을 담당하게 된다고 해서 그것 자체를 악으로 바라볼 필요는 전혀 없다. 그것이 폐쇄적 혹은 일방향적으로 운영된다면 선거법 제82조의2에서 말하는 컴퓨터통신을 이용한 선거운동의 개념으로 보면 될 것이고(물론 사전선거운동금지의 대상이 될 것이다) 허위의 사실이나 비방 등의 네가티브전략으로 나아갈 때에는 제110조 후보자등의 비방금지에 의하여 처벌하거나 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정보보호등에관한법률 제62조의 명예훼손.모욕죄로 규제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사이버공간의 개방성의 속성에 의하여 일방적 의견에 대한 대항의견이나 정보가 얼마든지 제시될 수 있을 것이며 따라서 편향적 선거운동의 가능성은 일반적인 off-line매체에 비하여 훨씬 줄어들게 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선거의 공정성이라는 요청은 선거관리과정에 적용되어야 할 다양한 이념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 그보다 더 중요한 요청이 바로 민주성을 최대한 담보할 수 있는 선거과정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이 후자의 요청이야 말로 선거의 가장 본질적이자 최고의 이념이다. 그래서 "돈이 드는 선거"와 "입을 여는 선거"를 선택하게 된다면-실제 이 양자는 상충한다- "돈이 들더라도 입을 열 수 있는 선거"를 선택하여야 한다.

선거부정의 해악보다는 민주적 심의의 장이 구축되는 것이 더욱 더 큰 것이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사이버공간을 기성정치의 영역으로 편입시키는 것 혹은 그 계기로서 사이버언론에 의한 대담.토론회를 허용하는 것은 비록 실정법의 엄격한 해석론으로는 무리가 있다 할지라도 법의 "사실상의 개정"작업을 통하여 최대한 가능한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특히 전술한 바와 같이 현생의 선거법이 정보화사회의 도래를 전혀 예정하지 못한 채 이루어진 것인 만큼, 이 부분에 관한 한, 실정법의 위반 혹은 불법의 판단의 수준이 아니라, 법의 흠결의 차원에서 파악하고 새로운 정치환경에 대한 법창설의 수준에서 새로운 시각을 가지고 접근하여야 할 것이다.


5. 결 론

이미 중앙선관위는 각 정당의 대통령선거입후보자 경선에 출마하는 자에 대한 "언론기관"의 대담.토론회의 개최를 사전선거운동의 범주에서 삭제하고 그것을 허용하기로 결정하였다. 선거법의 엄밀한 해석보다는 민주적 정치과정의 실천이라는 헌법이념적 방침을 선택한 것이다. 이와 동일한 논리가 선거법 제82조에도 적용될 수가 있다.

정보화시대가 도래하고 현 정권에서도 전자서명 1000만명 보급이라는 정책목표를 내걸고 전자정부 및 정보사회체제의 실천을 중심정책과제로 설정, 시행하고 있는 중이다. 이미 정보화가 진척되어 있는 사회.문화부분에 더하여 정부부문과 경제부문에서 정보화의 진전된 소통관계를 활용하고자 하는 노력이 범정부적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셈이다. 이제 남은 것은 정치의 정보화, 보다 정확히는 사이버공간의 정치를 현실정치의 영역으로 편입시키고 이를 통하여 off-line세계에서는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agora를 현실세계에서 실천하는 노력이다.

누차 언급하거니와 현행 선거법은 정보화사회와는 무관한 수준에서 편제된 법률이다. 환언하자면 그것은 사이버공간의 정치화라는 층위에 대하여는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일종의 법의 흠결이 존재하는 실정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이버언론이 정간물법상의 언론으로서의 요건을 갖추지 못하였다는 이유로, 또는 기성의 제도권 언론기관이 아니라는 이유로 정치의 꽃이라 할 선거의 과정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없게 하는 것은 실정법상의 법리에는 충실하되, 그 법이 추구하는 궁극의 헌법목적 - 민주주의의 실천 및 실질적 국민주권의 실천은 실정법의 이름으로 거부하는 행태에 다름이 아니다.

1990년대와 새 세기를 맞이하여 지금 세계각국에서는 정보화를 이용한 전자민주주의-그리고 그를 통한 진정한 민주주의의 가능성에 대하여 수많은 시도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같은 시대에 어느 국가보다 앞서서 정보인프라를 구축하여 선도적 정보국가를 지향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오히려 이러한 세계적 추세를 거슬러 가는 양상이 지금 현재 우리의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다. 중앙선관위도 이 점을 자각하였는지, 정기간행물법의 개정을 촉구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이 문제는 법개정여하의 문제라기 보다는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헌법이념에 대한 인식과 그 실천의지의 문제이다. 관료적 형식주의에 집착하여 진정 우리 선거법이 지향하고자 하는 그 본연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간과해버리는 행태, 그리고 그에 안주하면서 자신의 기득권적 세력보전에만 주목하는 기성언론의 무관심, 파벌적 타산에 젖어 올바른 정치과정을 생각하지 못하는 정치인, 그리고 이 권력자들의 이기적 데마고그에 무기력하게 끌려가는 유권자의 낮은 의식, 이 모든 것들이 우리 헌법을 조악한 것으로 만들고 우리 정치를 퇴행시키며 우리 시민사회의 재정치화라는 시대적 요청을 방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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