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서울의 자화상

돈으로 사는 행복·버려지는 도덕·실종된 가치관

등록 2002.02.21 16:44수정 2002.02.21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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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을까?
만약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다면 '무엇이 행복이고, 누가 행복한 사람'인 것을 따질 것도 없이 누구나 '과부 땡 빚'을 얻어서라도 얼른 사고 싶은 것이 '행복'일 것이다.

최근 미국 경제학회 연례대회에서 '행복의 경제학(The Economics of Happiness)'이란 흥미로운 주제로 몇 편의 논문이 발표돼 눈길을 끌었다.

특히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는가'라는 논문(Jonathan Garner and Andrew Oswald)은 약 9000여 명의 영국인을 대상으로 한 심리적 건강상태와 행복도에 대한 추적조사 결과를 실증·분석해 세인의 관심을 모았는데 먼저 결론부터 말하자면 결과는 '돈으로 행복을 살 수도 있고 스트레스도 낮출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과연 행복해지는 데 돈은 얼마나 필요한가. 영국의 경우 5만파운드(약 1억 원)가 생기면 어느 정도 행복감을 높일 수 있으며, 행복 정도가 가장 낮은 단계에서 가장 높은 단계로 옮기는 데에는 100만파운드(약20억 원)가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실 그만한 돈이면 한국에서도 충분히 행복하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을만도 하다. 더구나 요즘 몇 십 억 원의 복권에 당첨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언론에 오르내리면서 너도나도 일확천금을 노리고 '복권 사재기'를 하는 매니아들까지 생기는 것을 보면 역시 '돈으로 행복'을 사려는 사람들은 서양이나 동양이나 다를 바가 없는 모양이다.

그러나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다면 부자는 상대적으로 더 행복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그러면 부자는 과연 행복한 생활을 즐기고 있는 것일까?

영국의 학자들은 부자가 행복해지는 것은 가난한 사람이 부자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결코 쉬운 일은 아니라고 말한다. 부자가 되어도 행복해지지 않는 이유는 돈을 벌수록 번 돈을 지키고 더 키우기 위해 돈에 구속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 부자가 될수록 삶으로부터 더 많은 것을 요구받게 되고 그것을 얻을 수 없을 때는 오히려 불행해질 위험도 있다는 얘기다.

모두(冒頭)부터 장황하게 부자이야기를 꺼냈지만 사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다는 것은 단 욕심을 더 내지 않고, 다른 사람도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주며 안분지족(安分知足) 조건을 지켜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과거 우리네 조상들은 돈과 행복의 관계를 설명할 때 돈을 버는 쪽보다는 어떻게 써야 한다는 설명을 먼저 가르쳤다. 돈을 버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값어치 있게 쓸 줄 알아야 행복하다는 '정신적 행복론(精神的 幸福論)'을 먼저 강조한 것이다.

이러한 시각으로 볼때 우리 나라 15개 가문을 주제로 '5백년 내력의 명문가 이야기'란 삶의 방식을 고찰한 연구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일깨워 준다.

이 저술을 보면 명문가 집안의 공통점으로 '네가 살아야 나도 사는 상생의 원리'를 발견 할 수 있다. 유교식으로 표현하면 '좋은 일을 많이 한 집에는 반드시 경사가 있다(積善之家 必有餘慶)'는 한국식 '노블리스 오블리제'인 것이다.

예를 들어 '재산은 만석 이상 모으지 말라. 만석이 넘으면 사회에 환원하라. 사방 1백리 안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등의 가훈을 바탕으로 12대 400년 동안 계속 만석의 경제력을 유지해 온 경주 '최 부잣집'의 경륜과 철학은 오늘을 사는 현대인들에게 '돈과 행복'의 진리를 가르쳐주는 시금석이 아닌가 생각된다.

최근 '장사는 이문을 남기기 보다 사람을 남겨야 한다'는 말을 유행시키고 있는 모 방송국의 '상도' 드라마가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역설적으로 지금 우리 사회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반증한다.

그래서 그런지 마침 한 방송국에서 강남역 부근의 대로에 사람이 쓰러져 있는 상황을 연출했다고 한다. 결과는 3시간이 지나도록 아무도 도와주는 이가 없었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바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고 현재 서울의 자화상이다.

소망교회의 곽선희 목사는 성경을 인용해 '돈이 있으면 인격·도덕·지식을 갖춘 것으로 착각'하기 쉽다는 것과 '돈이면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점을 경계했다.

'돈은 많아도 마음은 가난해야 진리를 배우게 된다'는 가르침을 생각하면서 저 강남역 사거리에 쓰러져 있는 사람을 스스럼없이 다가가 도와 줄 수 있는 우리 사회의 도덕심이 회복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덧붙이는 글 | 위 칼럼은 2월 27일 '강남내일신문'에 게재될 내용입니다.

덧붙이는 글 위 칼럼은 2월 27일 '강남내일신문'에 게재될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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