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자기 같은 어머니와 둥지 같은 아버지

세상을 살아갈수록 아버지와 어머니가 그립다

등록 2002.02.21 20:29수정 2002.02.21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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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다 왕자와 공주로 아이들을 키우는 세상이다.
지난 세월에도 금자동아 은자동아하고 키워낸 집안들이 있었다. 때가 되면 아이들은 자기들이 결코 왕자나 공주가 아님을 아는 순간이 온다. 왕궁도 아니면서 가는 곳마다 부딪치는 왕자나 공주는 길바닥 돌멩이나 같다. 나의 부모님은 자식들을 위해 일생을 보내셨지만 우리 남매들은 오두막집의 아이였다. 자신의 처지를 잘 알고 자랐다.

자식 사랑하는 부모마음은 어느 자식 하나 귀하지 않은 자식이 없다. 아이들을 버린듯 놓아 키우셨던 골목길 안의 아버지 어머니였다. 아이들이 자라날 때 학교를 보내면서 어머니가 우리를 위해 학교에 오셨던 날이 기억이 나지를 않는다. 선생님을 만나려니 빈손으로 나서는 걸음이 어머니에게는 편하지 않으셨을 것이다.


나는 부모의 말을 잘 들었지만 뛰어난 아이가 아니었다. 개구쟁이여서 동네 패싸움에 앞장섰고, 아이들 머리 깨기를 오뉴월 수박 깨듯 했다. 이러니 학교 성적이 좋을 리 없었다. 그러던 나였지만 초등학교 저학년 때만 말썽 피우고 그 뒤로는 나는 날개꺾인 새였고 독니 빠진 독사였다. 어머니의 따끔한 회초리와 다독대던 손길 덕이었다.

학교를 가는 나를 지켜보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어머니는 집 앞에서 멀어져가는 아들이 신작로 끝에서 다른 길로 접어들 때까지 지켜보셨다. 학교 생활 내내 어머니의 시선은 자식들을 지켰다. 그 뒤 자식들이 결혼해서 당신들을 뵙고 갈 때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 혼자되어 자식들이 찾아 뵙고 돌아 갈 때도 그랬다.

우리를 지켜보시는 눈길에 이끌려 자식들은 다시 돌아 보고 또 보고 손을 흔들었다. 세월이 가도 우리를 감싸고 가족의 울타리에 끌어모으던 어머니는 세월과 함께 자라나는 보자기 같았다. 내가 한 뼘 자라면 보자기 더 한 뼘 늘어났다. 어머니의 그늘이었고 세상을 나서는 경계였다. 경계를 넘은 듯 하여도 보자기 속에 있었다. 우리가 비록 컸어도 우리는 어머니가 지켜주는 보자기 속에서 결코 나올 수가 없었다. 어머니가 원하는 것처럼 세상을 살아달라는 마음의 넓이였다. 어머니 옆을 떠나도 어머니에게서 벗어날 수 없었다.

아버지는 달랐다. 우리들은 초등학생 시절 내내 아버지의 품에서 잠을 잤다. 큰아들이 자라면 둘째를, 그 아이가 자라니 막내를 ...아버지의 품은 둥지였다.

어린 시절에는 아버지의 텁텁한 땀의 체취가 숨이 막히곤했다. 학교 가기를 좋아하던 아버지는 어머니 대신으로 학교에 와서 선생님을 만나셨다. 다녀가신 뒤에 선생님들이 나를 대하던 태도가 달라져서 나는 수업 중에 손을 번쩍드는 씩씩한 어린이 노릇을 톡톡하게 하였다.
우리가 학교 가는 길을 아버지가 지켜보던 날들이 내 기억에는 없다.
'다녀오너라'라며 우리를 보냈지만 우리 자식들의 코끝에는 어린 시절에 맡았던 아버지의 체취가 매달려 있었다.


내가 자라니 나는 아버지와는 형과 아우 같았다. 대학시절에 내 친구들을 함께 만나기라도 하면 술 권하고 맞담배를 권하는 확 터진 아버지였다. 친구들마저 40대의 젊은 아버지에게 감동을 느꼈다며 그 뒤 먼 훗날에 내게 말하곤했다.

아버지의 둥지 속에서 우리는 자랐고 저마다 둥지를 떠났다. 아버지는 우리에게 노년의 둥지인 당신의 집으로 둥지로 돌아오라고 강요를 한 적은 없었다. 둥지안에서 우리의 이별은 이미 약속된 것이기에.


아버지의 둥지는 언제나 같은 크기고 같은 체온이며 같은 체취였다. 우리는 둥지를 떠났어도 수시로 아버지의 둥지로 모였다. 자식들을 만나는 일이 반가운 일이었을 것이나 반갑다는 내색 없이 왔냐 하는 말로 대하셨다. 우리들은 이미 둥지를 떠난 새였으니 아버지에게는 자식들은 이미 이별을 한 존재였다. 아버지의 둥지가 우리의 크는 만큼 커져서 묶으려고 했다면 배겨내지 못하였을 일이었다.

이제 두 분 다 떠나셨다. 나는 둥지 같은 아버지가 되려 해도 보자기가 되어가고, 보자기 같은 어머니가 될법한 아내는 둥지가 되어간다.
아이들에게 정주고 미련에 연연 하니 보자기요, 세상 만사 정해진 길 따라 가는 거라고 받아들이니 둥지가 된다.

군대까지 갔다 온 아들 녀석을 아침에 깨우러 들어갔다가 아이를 품에 안기 보다 아들 품속에 파묻히고 마는 나는 보자기이면서 둥지여야 할까 보다. 생각이 많아질수록 아버지와 어머니가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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