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김동성 편파판정 축소보도

미국언론보다 더 미국적인 조선일보

등록 2002.02.22 08:58수정 2002.02.22 10:41
0
원고료로 응원
동계올림픽이 열리고 있는 미국의 솔트레이크에서 빚어지고 있는 잇따른 편파판정으로 상할 대로 상한 국민감정이 폭발지경에 도달하였다. 쇼트트랙 남자 1500m 결승에서 김동성이 1위로 골인하고도 심판의 실격판정으로 금메달을 놓쳤기 때문이다.

금메달은 2위로 골인한 미국의 오노 선수에게 돌아갔다. 텔레비전 뉴스와 신문들은 어이없는 편파판정에 분노하고 있으며 네티즌을 포함한 국민들의 격앙된 감정을 여과없이 전달하고 있다. 그러나 유독 조선일보는 달랐다.

다음은 각 신문들이 1면에서 다룬 22일자 관련기사의 제목들이다.

▲김동성 '金' 도둑맞았다
- 1,500m 1위골인 실격판정···女 3,000m 계주 3연패(경향)
▲쇼트트랙 女子 3000m 계주 金
- 김동성 편파판정에 실격(동아)
▲쇼트트랙 女3000m계주 金
- 1위골인 김동성 실격판정···제소키로(조선)
▲김동성 '빼앗긴' 金 쇼트트랙 1,500m
- 이해못할 走路방해 판정···美 오노가 우승(중앙)
▲빼앗긴 金, 1위 김동성 편파판정 실격(한국)
▲또··· 강탈당한 금메달
- 쇼트트랙 김동성 1위 불구 실격패···여 3000m 계주 금(한겨레, 이상 가나다順)

경향, 중앙, 한국, 한겨레는 메인 타이틀에 '도둑맞았다', '빼앗긴', '강탈당한' 등의 표현으로 사태의 본질을 정확하게 전달하고 있다.

반면에 조선을 보면 무슨 문제가 있는지 확실하게 감을 잡기 어렵게 되어 있다. 김동성이 1위로 골인했지만 실격판정으로 제소키로 했단다. 여기서 판정이 잘못되었다는 의미는 읽을 수가 없다.

게다가 메인 타이틀이 여자 계주 금메달 딴 사실이다. 금메달을 딴 것과 금메달을 빼앗긴 것과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 동아도 비슷한데 그래도 '편파'라는 표현이 들어가 있어 조금 낫다.


1면의 사진도 중앙과 한겨레는 김동성의 허탈해하는 모습을, 한국은 김동성 사진을 크게 올리고 그 밑에 상대적으로 작은 크기로 금메달을 목에 걸고 환호하는 여자 선수들의 모습을, 경향과 동아, 조선은 여자선수들의 사진을 실었다.

제목과 사진들을 종합해볼 때, 조선일보가 여자선수들 금메달 딴 사실을 부각시키면서 김동성에 대한 편파판정을 가급적 축소하려 했던 의도를 읽을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조선은 스포츠 섹션에서 <황당한 실격···선수단 강력 반발, 1위 골인 불구 '美오노 진로방해' 판정>라는 제목의 머리기사로 크게 다뤘다. 그러나 기사 어디에서도 '편파'라는 단어는 찾아볼 수 없다. '고의성 분명치 않으면 적용 않는게 관례'라는 해설이 고작이다. 좋다. '황당한 실격'이라는 표현으로 면피는 했다고 치자. 문제는 다른 데 있다.

무엇보다 1면과 스포츠섹션의 차이다. 편파판정으로 인한 '황당한 실격'이 사회적 의제냐 스포츠계의 의제냐 하는 것이다. 다른 모든 신문들이 사회적 의제로 부각시킨 반면에 조선만 유독 스포츠계의 의제로 축소시켰다는 점이다.

조선의 독자들은 1면 기사에서는 특별한 문제의식을 알아채지 못한 가운데, 스포츠엔 별 관심이 없는 독자들은 그냥 지나칠 수도 있으며, 본다 해도 스포츠계의 문제로 한정해서 인식할 가능성이 큰 것이다.

게다가 아주 고약한 부분이 있다. 김동성이 태극기를 던졌다는 것이다. 스포츠면 위 기사에서는 <金 "태극기 던진 것은 잘못">이라는 중간제목을 뽑아놓았고, 34면에는 "실격이 선언되자 들고 있던 태극기를 빙판에 던지고 있다"는 캡션과 함께 관련사진을 올려놓기까지 했다.

다른 어느 신문에도 이 대목을 문제삼지 않았다. 그 상황에서 태극기를 던졌다면 큰 잘못일까? 그런데 던진 걸까 내려놓은 걸까? 이 장면은 중앙도 옮기고 있는데 조선이 전하는 맥락과 다르다.

"김동성은 순간 이성을 잃은 듯 태극기를 빙판에 던진 후 고무패드를 발로 걷어찼다."(조선)
"김선수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태극기를 내려놓은 뒤 쓰고 있던 헬멧을 벗어던졌고, 링크에 한동안 말없이 서있다가 퇴장했다."(중앙)

어느 게 진실일까? 설령 던졌다고 치자. 그렇다고 해서 이 망연자실하고 울분이 복받치는 순간에 쫓아가서 "태극기를 던진 것에 대해 깊이 뉘우치며 국민 여러분께 사과드린다"는 대답을 얻어낸다는 게 제 정신으로 할 수 있는 일일까? 그런 것이 애국심인가? 미국 언론보다도 더 미국적인 시각으로 기사를 쓰고 편집을 한 데 대한 최소한의 도주로가 필요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한국언론정보학회 회장, 한일장신대 교수, 전북민언련 공동대표, 민언련 공동대표, 방송콘텐츠진흥재단 이사장 등 역임, 리영희기념사업회 대표. AI커뮤니케이션학회 회장,


톡톡 60초

AD

AD

AD

인기기사

  1. 1 교과서가 지운 독립운동가들... 아이들 질문에 대답 못한 이유 교과서가 지운 독립운동가들... 아이들 질문에 대답 못한 이유
  2. 2 [단독] 광주경찰청장, 장윤기 사건 일파만파에도 '휴가 미복귀' [단독] 광주경찰청장, 장윤기 사건 일파만파에도 '휴가 미복귀'
  3. 3 <김부장> 본방보다 기다렸던 공약, 이럴 줄 알았지 <김부장> 본방보다 기다렸던 공약, 이럴 줄 알았지
  4. 4 내 아이의 친생모가 남긴 편지… 그냥 둘 수 없었다 내 아이의 친생모가 남긴 편지… 그냥 둘 수 없었다
  5. 5 폭염경고 문자가 울린 날, 북한산은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폭염경고 문자가 울린 날, 북한산은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