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속 마을 작은 학교의 졸업식 풍경

간디학교, "당신과 보낸 시간들을 아름답게 기억합니다"

등록 2002.02.24 15:18수정 2002.02.26 12:32
0
원고료로 응원
'희망의 아침을 여는 이' 간디학교의 두 번째 졸업식이 열렸다. 하루 전날까지 운동장의 모래알을 실어 올리던 바람도 잠잠한 23일 오후. 간디학교에서 기르는 강아지들도 몰려드는 사람들 속에 귀여움을 한껏 떨었다.

▲졸업식 2부 행사를 마친 뒤 졸업생과 재학생, 학부모, 교사들이 한 곳에 모여 기념 사진을 찍었다. ⓒ오마이뉴스 윤성효
멀리 지리산의 능선이 보이는 산청 둔철산 자락에 자리잡은 간디학교. 모처럼 간디인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간디학교는 학생과 교사, 학부모, 졸업생 모두를 '간디인'이라 부른다.

간디학교는 이번에 중학교 16명(1명 수료), 고등학교 20명이 졸업했다. 고등학교 졸업생 17명은 대학에 진학하고, 외국 어학연수와 진학 준비가 각각 한 명씩이며, 나머지 한 명은 사회에 진출했다. 사회에 진출한 학생은 처음부터 대학에 진학하지 않기로 했다는 것이다.

졸업식 풍경, 졸업장 내용이 인상적

▲졸업식은 농악대를 졸업생들이 입장하면서 시작되었다. ⓒ오마이뉴스 윤성효
간디학교 졸업식은 3부로 나눠 열렸다. 1부 졸업생들의 손 본뜨기, 2부 졸업식, 3부 축하 한마당 순서로 진행된다. 사람들은 2부 졸업식에 맞춰 몰려 들었다. 군의원, 학생들이 정기적으로 봉사 활동을 가는 성심원, 인근 외송마을 사람들, 산청군 신안면장 등이다. 학부모들은 서로 잘 아는 듯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운동장에 마련한 졸업식장은 단촐했다. 단상도 없이 마이크대만 세워져 있었다. 졸업생과 내빈을 위해 마련한 의자가 전부였다. 재학생과 학부모들은 돌계단에 이리저리 앉았다.

재학생들은 농악대를 앞세워 입장했다. 고개를 숙이기도 하고, 하얀 이를 드러내고 웃기도 하고, 심하지는 않지만 서로 장난을 치기도 했다. 학부모와 후배들에게 손짓을 하기도 했다.


▲교사 한 명과 졸업생 한 명이 짝을 이뤄 졸업장을 주고받았다.ⓒ오마이뉴스 윤성효
간디학교도 여느 학교의 졸업식처럼 학사보고, 졸업장과 상장 수여, 격려사, 노래 등의 순서로 진행되었다. 그러나 그 내용에 있어서는 많이 달랐다. 졸업장은 양희창 교장이 내용을 읽고 전체 교사들이 나와 학생들에게 전달했다. 그리고 학부모들은 '약속의 반지'를 만들어 졸업생들에게 끼워주었다.

간디학교의 졸업장 내용이 인상적이었다. "우리는 당신과 보낸 시간들을 아름답게 기억하며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지는 당신의 앞길에 뜨거운 박수를 보냅니다. 사랑과 자발성을 실천할 간디인으로 당당하게 살아가길 기원합니다."


졸업식날 받아 책상 서랍에 바로 들어가는 졸업장이 아니라 책상 앞에 두고 되새겨볼 만한 내용이었다. 졸업장은 교사들이 만들었는데, 한 교사는 "지난해 졸업장보다 잘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성심원, 환경운동연합 등에서 상장과 상품 수여

▲학부모들은 졸업생들에게 '약속의 반지'를 선물로 전달했다. ⓒ오마이뉴스 윤성효
모든 졸업생들이 상을 받았다. 간디학교와 관련 있는 기관이나 단체에서 상장과 상품을 들고와서 시상했다. 중학생들이 매주 3시간씩, 고등학생들도 틈틈히 봉사 활동을 하는 나환자촌인 성심원에서 '봉사상'을 시상했다. 성심원 백안젤로 수사가 학생들의 손을 잡으며 상장과 상품을 전달했다.

진주환경운동연합에서 '녹색상', 한마음공동체에서 '공동체상', 진주청소년인권연대에서 '인권상', 큰들문화예술센터에서 '창조상'을 시상했다. 환경운동을 열심히 한 학생, 공동체 생활의 모범을 보인 학생, 인권단체에서 활동한 학생, 도자기 만들기 등 예술 활동에 두각을 나타낸 학생들이 상을 받았다.

학교법인 '녹색학원' 이사장상, 학교운영위원장상, 교사대표상, 동창회장상도 주어졌다. 이날 상을 받은 학생들은 모두 까닭이 있었다. 한 학생이 소개될 때마다 그 사연을 소개되었는데, 지켜보는 사람들마다 웃음짓거나 고개를 끄득이며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양희창 교장이 졸업장 내용을 읽고 있는 모습. ⓒ오마이뉴스 윤성효
'우수논문상' 4명의 학생이 소개되었다. 동기생의 얼굴을 일기로 그린 학생, 수학공부의 실태를 적나라하게 표현한 학생, 천년염색을 배워 우리가 할 수 있는 천년염색을 정리한 학생, '녹색관광'이라 하여 생태적 관광을 통해 농촌 살리기의 대안을 제시한 학생 등이다.

재학생들은 "졸업"을, 졸업생들은 "꿈꾸지 않으면"이란 노래를 불렀다. 노래를 부르는 동안 재학생과 졸업생들은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머리를 노랗게 물들인 학생, 귀걸이를 한 학생, 어깨까지 머리를 기른 남학생도 숙연한 분위기였다.

짧은 격려사 속에 깊은 내용 담아

간디학교 졸업식의 격려사는 짧으면서도, 어른이고 아이들이고 할 것 없이 말을 잘 한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양희규 이사장은 졸업생들에게 "새로운 길에 들어서게 되면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갖게 된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그렇다. 길이 없다고 갈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지 갈 수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아무런 일이라도 소신껏 하고, 두려울 게 없다는 생각으로 살아 달라"라고 말했다.

▲교사들이 졸업장을 전달한 뒤 포옹과 악수를 나누기도 했다.ⓒ오마이뉴스 윤성효
재학생을 대표하여 한송욱 학생이 선배들에게 인사말을 했다. "지금도 식당에서, 교실에서 함께 할 것 같다. 소중하고 늘 보고싶은 사람들로 남을 것이다. 언제 어디를 가든 건강하고 행복하시라. 간디인으로 영원히 남자"라고.

'간디인'들은 졸업 기념 사진을 찍는 것으로 2부 졸업식 행사를 마쳤다. 단체 기념 사진을 찍기까지 모이는 시간이 30여분 걸렸지만, 누구 한 사람 짜증내지 않았다.

3부 '졸업식 축하 한마당'은 강당에서 열렸다. 여느 학교 졸업식에서 볼 수 없는 모습이다.

졸업생과 학부모의 노래 공연에 이어 재학생들도 노래를 불렀다. 졸업생과 재학생들이 모두 한마디씩 했다. 서로에게 다하지 못한 말을 비롯해, 깊은 추억으로 남아 있는 일들까지 들추어가며 말을 이어갔다. 가족처럼 말이다.

간디학교 양희창 교장, 학부모 대표 배봉환 씨의 격려사가 인상적이었다. 간디학교 졸업생이 아니더라도 졸업을 맞아 새로운 출발을 앞두고 있는 이들이 한번쯤 되새겨볼 만한 내용이라 옮겨 놓는다.

▲졸업식이 열리는 운동장 한켠에서 낮잠을 즐기는 강아지 두 마리. 강아지들도 아이들을 닮아서 그런지 무척 평온해 보였다. ⓒ오마이뉴스 윤성효
간디학교 양희창 교장 격려사 = 사랑한다는 말을 미처 하지 못한 채 이별하는 연인같은 마음입니다. 우리는 함께 삶을 나누었습니다. 정이 많이 들었습니다. 이 교정에는 여러분의 눈물과 환희가, 좌절과 희망이 어려 있습니다. 먼훗날 여러분의 자녀들의 손을 잡고, 그토록 멀게 느껴졌던 기숙사 길을 오르내리면서 여러분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얘야, 이 길에는 내 젊은 날의 사랑과 우정, 기쁨과 슬픔이 모두 담겨 있어."

행복하게 살아 주십시오.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두려워하지 않고, 떳떳하고 아름답게 자신을 지키며 이웃과 희망을 나누는 간디인이 되어 주십시오. 보이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진리 속에서 참 자유를 누리는 눈물 많은 참사람이 되어 주십시오. 다른 학교로 진학하는 간디중학생 여러분, 우리는 여러분을 결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

이곳에서의 추억을 간직하고 열심히 살아 주십시오. 가치 있는 삶을 추구하며 보이지 않는 희망을 함께 만들어주셨던 학부모님, 여러분은 이 학교의 주인입니다.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달려와주셨던 그 열정과 사랑을 우리는 기억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지현이, 재원이, 혜주, 경근이, 동환이, 지은이, 은혜, 재은이, 바우, 영교, 늘샘이, 지선이 미현이, 고운이, 혜정이, 은아, 현정이, 용환이 찬송이, 지훈이, 영찬이, 그리고 인표, 성하, 원균이, 재현이, 경탁이, 정은이, 기흥아. 간디는 너희들이 그리워하는 고향이 되고 함께 진리의 길을 걸어가는 인생의 동반자가 되도록 노래할 거야. 사랑합니다. 희망의 아침을 열어놓겠습니다.

▲'졸업'이라는 노래의 피켓. ⓒ오마이뉴스 윤성효
학부모 대표 배봉환 씨 격려사 = 2002년 2월 23일. 겨울의 끄트머리에서 우리 간디학교는 '졸업식'이라 부르는 새로운 시작을 위한 마침 의식을 거행하고 있습니다. 제 몸에 마디를 지어 곧게 자라는 푸른 대나무처럼 또 한번의 매듭을 지으며 우리는 조금씩 키가 커지는 것을 느낍니다.

지난해 세계는, 참된 사랑을 외면한 힘의 논리가 정의의 이름으로 치르는 전쟁을 지켜보아야 했습니다. 우리 학교로서는 교육 재정을 쥐고 있는 공권력이 법의 이름으로 가하는 고통을 견뎌내야 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우리는 서로 힘을 합쳐 그야말로 '허가받지 못한 희망'의 싹을 지키며 한 해를 버텨왔고 새로운 희망의 씨앗을 다시 뿌리고 있습니다.

누군가 교육은 공동체의 꽃에 해당한다고 했습니다. 우리 학교 졸업생 하나가 미당 시인을 비판한 말대로 뿌리와 줄기가 튼튼하지 못하면 어떻게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겠습니까? 올해에도 교육의 주체인 학생과 선생님, 학부모들과 선의를 가진 모든 분들이, 공동체 정신으로 하나가 되어 어려움을 이겨내고 참된 교육의 꽃을 피워야 하겠습니다.

오늘 졸업에 즈음하여, 먼저 우리의 꿈나무인 졸업생 여러분들에게 축하를 드립니다. 또한 이 자리를 빛내주시고자 숲 속 마을 작은 학교를 찾아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무엇보다 우리 자녀들을 훌륭하게 키워주신 선생님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언제 보아도 어리게만 보이는 아이들을 산중에 두고 온 뒤, 우리 학부모들은 저마다 다른 삶의 자리에서 벌어먹고 사느라 바쁜 중에도, '그리운 것은 다 산 너머에 있다'는 시인의 말처럼, 마음은 늘 이 산으로 향했습니다.

ⓒ오마이뉴스 윤성효
"산을 항상 푸르게 젊게 해주는 건, 산에 항상 솔바람 소리 흐르고 있기 때문 아닐까? 산이 항상 정다운 건, 산 위에 항상 구름 떠가는 푸른 하늘이 있기 때문 아닐까?" 나태주 시인의 이 시구를 빌려 저는 이렇게 노래하고 싶습니다.

"또한 산을 항상 푸르게 젊게 해주고, 산이 항상 정다운 것은, 솔바람 소리처럼 구름 떠가는 푸른 하늘처럼 우리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이 산에 살고 있기 때문 나일까?"하고 말입니다.

올해는 임오년, 말의 해이지요. 영국 속담에 '말을 타지 않으면 떨어질 일도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흔히들 인생은 치열한 경주라 냉혹한 승부사처럼 내달려야 한다지만, 우리는 그 길을 한 걸음 한 걸음 음미하며 천천히 여행하겠습니다. 언젠가 그 길의 끝에 이르러, 경남 산청 신안면 외송리 122번지, 고향처럼 낯익은 주소가 되어버린 이 터전에 대한 변함없는 애정으로 다시 한번 이렇게 노래하고 싶습니다.

"내 죽어 묻힐 곳도 바로 여기, 흐르는 굴름 보며 솔바람 소리 들으며, 아랫녘 마을 대숲 바람 소리로 전해지는, 사람들 왁자지껄 살아가는 내력 짐작해 알며, 내 죽어 묻힐 곳은, 구름 일등으로 잘 보이고, 솔바람 소리 일등으로 잘 들리는 곳, 여기... 여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톡톡 60초

AD

AD

AD

인기기사

  1. 1 파업하는 급식 노동자들에게 아이들이 건넨 말, 세상이 변했다 파업하는 급식 노동자들에게 아이들이 건넨 말, 세상이 변했다
  2. 2 "용지 부족 50곳·투표 중지 22곳"...노태악 선관위원장 사퇴 "용지 부족 50곳·투표 중지 22곳"...노태악 선관위원장 사퇴
  3. 3 '부실선거' 논란 속 드는 의문, 왜 선관위원장은 대법관이어야 하나 '부실선거' 논란 속 드는 의문, 왜 선관위원장은 대법관이어야 하나
  4. 4 민주당은 선거 때 대체 뭘 한 건가…수상한 전조 현상 민주당은 선거 때 대체 뭘 한 건가…수상한 전조 현상
  5. 5 환멸스러웠던 평택을 아귀다툼, 서울 우경화...그나마 희망적인 건 환멸스러웠던 평택을 아귀다툼, 서울 우경화...그나마 희망적인 건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