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02.02.24 15:22수정 2002.02.24 17:24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흔히, 연인들이 함께 걸을만한 길을 서울시내에서 몇몇 곳을 꼽으라면 빠지지 않는 곳인 한군데 있습니다.
바로 덕수궁 돌담길이 연인들에게는 유명한 데이트코스 가운데 하나입니다.
1호선 시청역 1번출구, 혹은 2호선 시청역 12번 출구로 나오면, 광화문쪽으로 높게 둘려쳐진 덕수궁 담은, 사람 키가 훌쩍 넘을 정도로 높음에도 불구하고 답답하게 여겨지거나 권위적으로 여겨지기보다는 왠지모르게 사진 한 장 찍고 지나가고 싶을 정도로 정겨운 풍경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또한, 시청역 부근이 시청을 제하고는 고층 빌딩이 우뚝 서있어, 현재와 과거의 조화로움이 또다른 볼거리를 제공하는 듯 합니다.
정동제일교회 쪽으로 돌아가면 양쪽으로 펼쳐진 돌담길은 서울시내에서 또다른 여유로움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듯 하며, 고풍스런 풍경은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 손색이 없을 듯 보입니다.
돌담길을 따라가면, 오른편으로 정동극장 야외무대내 위치한 은은한 불빛을 풍겨내는 작은 찻집이 보입니다. 이름이 <토담>이라는 전통찻집입니다.
덕수궁이라는 장소에 어울릴 법한 찻집입니다.
문을 기준으로 양쪽으로 진열된 싸리나뭇가지, 감나무가지 등은 마치 어릴 적 시골에서 보았던 풍경을 연출해 줍니다.
살짝 문을 열고 안에 들어갔습니다. 밖에서 볼 때는 그렇게 크게 보여지지 않았는데, 안에는 30여명 정도(1층)가 앉을 수 있는 듯 보였고, 2층은 10명 정도 자리할 수 있을 듯 보였습니다.
뭐, 2층이라 해도 우리가 알고 있는 그런 2층이 아닙니다. 마치 작은 다락방을 올라가듯 2층을 올라가면, 키가 작은 저조차도 머리를 들수 없을만큼 낮은 곳에 탁자 몇개 놓아져 있는 것이 전부입니다.
하지만 특색이 있는 것은 바닥이 따뜻해서 마치 사랑방에 앉아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아늑하고 편안합니다. 백열등을 한지로 포장해 은은한 조명을 연출하는 실내는 전체적으로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기에 더없이 좋아보였습니다.
연인들끼리 서로의 사랑을 속삭이는 것도 괜찮아 보이네요. 친구들끼리 한가지 주제를 던져놓고 열띤 토론을 하기에도 괜찮아 보입니다. 전통차의 그윽한 향기를 맡으며 일상에 찌든 피로를 풀기에도 그만인 것 같습니다.
저는, 다락방 아래 구석에 있는 자리에 앉았습니다. 2층은 온돌방처럼 꾸며진 것과 다르게 1층은 의자와 탁자(테이블이란 표현은 안 어울리는 것 같아 탁자라고 표현하겠습니다.)가 놓여있습니다.
찻집 한면을 통유리로 해놓아 정동극장 야외무대쪽으로 보이는 배경은 한적한 외각의 찻집에 온듯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또한, 특색이 있는 것은 유리창에 붙어있는 메모지입니다.
"2003년, 2월 22일 이곳에서 다시 만날 수있게 해주세요..."
"열심히 살아가자!"
"000 야! 사랑해!"
"우리의 우정이 영원하길 바라며..."
메모지에 적힌 내용도 가지가지입니다. 깨알같이 쓰여진 글을 읽는 것도 색다른 재미를 느끼게 해줍니다.
창쪽의 자리 한, 일렬로된 탁자에는 책이 100여권정도 있습니다. 그 중에는 만화책도 몇몇권 보이는 군요. 그 가운데 가장 눈길이 가는 것은 <흔적이>라는 작은 책입니다. <흔적이>라는 이름에서 몇몇 분들은 눈치 챘겠지만, 이 곳을 다녀간 사람들의 이야기가 적힌 공책이랍니다.
저 역시 펜을들고 <흔적이> 2002년판(?)의 맨 마지막장을 펼쳤습니다.
다행입니다. 절반은 채워져있고, 나머지 절반은 비워져있네요.
나머지 절반에 제가 다녀온 흔적을 남겨놓았습니다. 한국인들이 어딜 가나 자신의 흔적을 남기기로 유명한데, 빈공책 한 두권을 가져다 놓은 것이 또다른 특색이 되고, 다른 이들의 삶을 느낄 수 있어 인간적인 내음이 물씬 풍기네요.
참! 차는 언제시키냐구요? 걱정하지 마세요! 이리저리 둘러보고, 이것저것 펼쳐봐도 주인아주머니께서 주문하라고 제촉하지 않습니다.
어떻게보면, 답답할텐데 여느 찻집에서 종업원이 쪼르르 달려나와 주문받는 것과는 다르게 여유가 느껴지고 넉넉함이 느껴지네요..
이 집의 주문판은 부채로 되어있습니다. 동그란 부채에 솔직히 그렇게 잘 쓰여진 글씨는 아니지만 직접 써진 글씨가 오히려 보기좋네요.
저는 "십전대보탕"을 주문했습니다. 15가지 약재를 넣고 직접 다린 약차라고 하네요...저는 이곳에서 처음 알았습니다. 흔히들 보약으로 알고 있는 십전대보탕이 차라는 것을..
아닌가요? 아니면 말죠...뭐...
저와 함께 간 친구는 솔잎차를 주문했습니다. 5분정도 지나니까 주문했던 차가 나오네요. 금새 탁자위에 십전대보탕과 솔잎차, 그리고 전통한과와 입가심으로 마실 현미녹차가 놓여졌습니다.
아! 십전대보탕을 시킨 것이 실수였던 것 같습니다. 시커먼 국물(?) 안에는 마치 야채를 썰어넣은 듯 보이는 알수없는 이상한 것들이 마치 찌게의 건더기처럼 들어있었습니다.
제 친구가 마시는 솔잎차는 은은한 녹색빛을 띄는 것이 보기에도 좋은데.. 그런데 어쩌겠습니까...이미 주문한거...그리고 약이라는데...
사발을 두손으로 잡고 살며시 입을 데고 조금씩 조금씩 삼켰습니다. 그런데 이게 왠일입니까? 김도 안나는 것이 이렇게 뜨거울 줄이야...차가 맛있다, 맛없다를 느끼기 전에 입안이 다 데어버리는 줄 알았습니다.
"순간, 옛날 죄인이 사발을 마시다 입안이 홀라당 데버리면 어쩌나"라는 생각이 문뜩 들더군요.
각설하고, 사발을 내려 논 저는 숟가락으로 조금씩 조금씩 떠먹기 시작했습니다. 생각했던 것처럼 쓰거나 그러지는 않았습니다. 첫맛은 약간 씁쓸한데, 끝맛은 고소한 맛이 나더군요.
첨에는 차만마시다가 조금 지난 후에는 차안에 들어있던 건더기를 한숟가락 퍼서 입안에 넣었습니다. 달콤쌉싸름한 맛이, 그리고 역시나 끝맛은 고소하게 입안 가득 퍼지네요. 차안에 들어있는 건더기들의 정체는 바로 대추, 호두, 땅콩같은 것들이었습니다.
친구가 마시던 솔잎차는 조금 뺏어먹었습니다. 입안 가득 퍼치는 상쾌한 느낌이 머리까지 상쾌하게 해주는 것 같네요.
차를 마시는 것에도 항상 우리몸의 건강을 생각하는 우리 선조들의 지혜로움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주문했던, 십전대보탕과 솔잎차를 다 마시고, 입가심으로 나온 현미녹차를 마셔보았습니다.
현미녹차 역시 보통 먹던 것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고소하더군요. 차안에 송송 떠있는 녹차잎과 현미가 어울려져 고소한 맛을 내는 듯 합니다.
손님들로 인해 자리가 다 채워져도 소란스럽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저마다 분위기에 맞추어, 조용조용한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또한 왁자지껄 시끄러운 여느 카페와는 다르네요.
현미녹차가 너무 고소해서 한잔 더 마신 후,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그리고 천천히 계산을 하러 나오는데, 창가쪽의 탁자위에 놓인 신기한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바로 주인아주머니가 손님들께 드리는 "차비"였습니다.
작은 그릇안을 채우고 있는 동전들과 그 위에 붙어있는 메모에는 이렇게 적혀있었습니다. "찻값을 내고 차비가 없으신 분들은 가져가세요! 단, 택시비는 사절입니다"라고 적혀져 있었습니다.
설마하니, 차비가 없어 집에 못가는 일은 없겠지만, 손님들을 배려하는 주인아주머니의 정겨움이 또다시 느껴지네요.
계산을 하고 나오는데, 아주머니께서 한과를 조금 주십니다. 서비스를 잘하지 못해 드리는 거라는 말씀과 함께...
친절하고 정겨운 아주머니를 뒤로 하고 찻집 밖으로 나오니 벌써 날이 어두워졌네요. 이제 어느 방면이라도 좋습니다. 시청쪽으로 걸어 온 길을 따라 되돌아 가셔도 좋고, 가는 방향으로 쪽 나아가 정동극장 방면으로 나가도 좋습니다.
어느쪽으로 가도 길을 따라 펼쳐진 풍경들이 멋스러우니까요...
참! 혼자는 가지 마세요...스쳐지는 가는 연인들을 보며 신세한탄 할 지도 모르니까!
덧붙이는 글 | 위 기사는 국민대 <인터넷웹진 디코>에 실렸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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