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성경에 나오는 예수의 산상수훈에 대해 들어보신 적이 있을 것입니다.
예수를 따르던 제자와 군중들을 이끌고 산에 올라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까닭과 예수의 제자가 되려고 하는 이들이 해야 할 일에 대해 이야기하시는 대목입니다.
이 산상수훈은 '성서 중 성서'라고도 불리울 정도로 기독교인들에게 중요한 예수의 가르침이며, 초대교회에서부터 지금까지 기독교인들의 윤리규범으로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그 중 평화에 대해 언급한 대목이 있어 소개하려고 합니다.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하느님의 아들이 될 것이다.
옳은 일을 하다가 박해를 받는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마태복음 5장 9절,10절 / 이하 모두 공동번역)
기독교인이라면 하느님의 아들이 되며, 하늘 나라가 나의 것이 되는 것 이상 더 바라는 것은 없습니다.
위로를 받거나(4절), 땅을 차지하거나(5절), 만족하게 되거나(6절), 자비를 입는 것(7절)들도 물론 귀하지만 하느님의 아들이 되는 것에 비할 바가 되지 않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평화를 위해 일하라고 말씀하셨고, 그 일이 얼마나 귀한 일인가 하는 것을 직접 말씀해 주셨습니다.
지난 19일 기독교인인 부시 미국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부시는 미 군수업체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군비확장 주의자이며, 9.11 테러 이후 아프카니스탄과의 전쟁을 벌이고, 2002년을 전쟁의 해로 규정하는 등 평화보다는 전쟁과 더 가까운 인물입니다.
게다가 북한을 이란, 이라크와 함께 ‘악의 축’으로 지목하는 등 여차하면 한반도에서의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밝혀,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으로 인해 조성되던 남북 화해 기조에 찬물을 끼얹고 있는 장본인입니다.
부시가 분명 성경에 손을 얹고 대통령 선서를 했으며, 스스로도 기독교인임을 주장하는 이상 성경에 기록된 예수의 산상수훈을 다시 한번 읽어보라고 권하는 게 같은 기독교인으로서 합당한 도리라 판단이 되지만 적당한 방법이 없어 시간만 보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마침 한국교회를 이끌어 가는 두 축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와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이 지난 주 부시대통령의 방한에 맞추어 부시와 관련된 성명을 각각 발표했습니다.
일개 교인의 힘으로 어찌 할 수 없어 안타까웠던 일을 한국의 종교지도자들이 나서서 해 준다는 사실에 반가워 두 단체의 성명을 찾아 읽었습니다.
우선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자문기구인 한국기독교원로회의는 "전쟁으로는 평화를 만들 수 없습니다"라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하였습니다.
"전쟁으로는 평화를 만들 수 없습니다"로 시작된 성명은 "전쟁을 위한 대량 살상 무기 생산"에 반대하며 북한 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대량살상무기의 축소를 요구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한다’는 예수그리스도의 말씀을 부시 대통령은 신앙으로 받아들이기를 권고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KNCC는 2월 19일 성공회 대성당에서 ‘부시 대북강경정책규탄 기독인대회’를 열어 "한민족의 생존이 걸려있는 문제를 제멋대로 발언하는 오만한 부시 행정부의 행태를 엄히 규탄"하고 우리 정부에도 "민족의 '자존'을 지키고 '자주성'을 백분발휘"하기를 촉구했습니다.
평화를 위해 옳은 일을 하고자 하는 기독교단체와 원로들의 노력을 보며 같은 기독교인으로서 작은 긍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한기총의 성명서를 찾았습니다.
“축구 국가대표팀 응원단 '붉은악마'의 개명을 촉구”한 19일의 성명서에 이은 20일 부시와 관련된 성명서의 제목은 뜻밖에도 “부시 미국 대통령의 신사참배를 규탄한다”였습니다.
“부시 미국 대통령의 신사참배는 개인적으로는 기독교인으로서 우상숭배의 죄를 범하였고, 세계 지도자로서의 역사관에 물음표를 던지지 않을 수 없다”는 한기총의 성명을 몇번이나 다시 읽으면서도 고개를 갸웃거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붉은악마의 명칭에 대한 일부 기독교단체의 거부감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부시 미국 대통령의 신사참배 역시 여러가지 면에서 지적되어야 할 문제임에는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군비확대와 미사일 방어체제(MD)의 무리한 추진으로 국가간 긴장을 고조시키고, 한반도에 전쟁의 위기를 몰고 온 부시의 언행에 대해 한마디 언급도 없이, 남의 나라에서 행한 신사참배에만 목소리를 높이는 것을 기독교인 뿐만 아니라 기독교를 믿지 않는 이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심히 걱정스러웠습니다.
부시가 기독교인이라 같은 기독교인으로서 우상숭배에 대한 지적을 했다고 주장한다면, 성경에 기록된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게 될 하느님의 날(미가 4장 3절)을 방해 하는 부시의 행위에 대해서는 왜 입을 다무는 지 되묻고 싶습니다.
어쩌면 부시가 믿는 예수와 한기총의 목사님들께서 믿는 예수와 제가 믿는 예수는 서로 다른 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땅에 전쟁을 몰아내고, 우리 기독교인들을 평화의 사도로 쓰시기를 원하시는 것이 제가 믿는 예수의 모습입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 참 평화를 주시러 오신 분이라는 것이 저의 믿음입니다.
부시의 신사참배에만 목소리를 높이시는 한기총의 목사님들께 교인의 자격으로 묻습니다. 예수께서 지금 이 땅에 오신다면 전쟁을 획책하는 부시와, 신사참배하는 부시 중 어느 쪽을 더 엄히 꾸짖으실까요?
기독교인으로서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은 진정 어떤 모습일까요?
목사님들의 믿음 속에 계신 예수의 모습은 과연 제가 믿는 예수와 같은 분인가요? 같은 기도교인으로 솟구쳐오르는 서글픔과 답답함을 억누르며, 목사님들의 대답을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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