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미디어의 주인이 되어 즐겁게 TV보는 그 날을 위해

매비우스 사무실을 가다

등록 2002.02.25 00:02수정 2002.02.25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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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비우스 사무실의 TV는 모니터를 위해 주의 깊게 비판적으로 볼 때나, 다른 업무를 볼 때나, 심지어는 가벼운 회의를 할 때에도 켜져 있다. 일반 가정에서 TV를 '시청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냥 틀어놓는' 것과 마찬가지로 매비우스의 TV는 '배경 매체'로서의 성격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가 좋아하는 음악이나, 프로그램, 연예인이 나오면 TV에 집중해서 TV를 완전히 즐기는 '오락 매체'의 성격도 똑같이 갖고 있다.

막연히 이곳에서 TV는 비난의 대상이며, 방송이 공정성, 공익성을 얼마나 지키고 있는지를 감시하기 위해서만 존재할 것이라는 편견을 가지기 쉽다. 또는 즐길 때와 비판할 때가 확연히 구분되어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사는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할만 하다. 그런 사람의 행복에 있어서 돈이나 작업 환경 등이 변수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많은 사람들에게 직업은 자신의 행복을 보장해 줄 수단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일=스트레스'라는 등식은 자연스러운 것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직업 자체가 행복과 자아실현의 장이 되기를 바란다. 이러한 모순은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나 존재했겠지만, 공과 사의 분리가 확실한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러나 언제나 예외는 있는 법, "왜 이 일을 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서슴없이 "이 일이 재미있고 즐겁기 때문"이라고 대답하는 사람들 또한 어디에나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래도 즐거워

2월 19일 화요일 오전 10시. '매체 비평 우리 스스로(대표 : 김미애, 이하 매비우스)' 사무실 안은 예상외로 따뜻하다. 열흘 전 이 곳은 난로 하나와 히터 두 개를 모두 틀어놓아도 코트를 벗을 수 없을 만큼 추웠다. 사무실을 따뜻하게 만든 건 바로 새로 들여온 난로. "너무 따뜻해서 좋죠?"라고 말하며 장정선 간사(27)는 기쁨을 감추지 않는다.

매비우스의 사무실은 서대문에 위치한 꽤 오래된 건물에 있다. '계단 조심'이라고 써 있는 가파르고, 높이도 제각각인 계단을 올라가면 내 맘을 읽기라도 한 듯 (사실 만든 이 스스로 느낀 바이겠지만) "헥헥, 이제 거의 다 왔어요"라고 쓰인 종이로 된 작은 화살표가 미소짓게 한다.


그러나 해가 지고 이 화살표가 안 보일 만큼 어두워지면 이 복도와 계단은 무서운 곳이 된다. 언젠가부터 형광등 몇 개가 켜지지 않았기 때문. 올라갈 때조차 조심해야 하는 이 계단을 어두울 때 내려가는 일은 더욱 위험한 일이다. 그래서 오늘은 이 위험을 해소하기 위해 매비우스의 상근 간사 둘이 팔을 걷어부쳤다.

복도의 형광등은 너무 높이 달려 있어 의자 위에 올라서서는 손이 닿질 않았다. 가장 손쉽게 잡히는 것은 바로 뉴스를 녹화한 비디오 테잎 박스. 이것을 두 개나 더 얹어 놓고 올라서니 가까스로 형광등을 갈아 끼울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불은 켜지지 않았다. 형광등 스타트를 사다가 갈아 끼웠는데도 여전히 불은 켜지지 않았다. 알고보니 형광등이 너무 오래되서 양쪽에 끼우는 부분이 헐거웠기 때문에 접촉이 잘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방법은 바로 "테이프로 감기." 형광등을 꼭 눌러서 불이 켜지게 한 다음 테이프로 고정시켰다. 미관상 좋지 않지만 복도가 환해진 것에, 그리고 스스로의 힘과 아이디어로 해결한 것에 만족했는지 마냥 행복한 표정이다. 일하는 동안에도 짜증 한 번 내지 않고 내내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매비우스 사람들의 이 즐거운 표정은 이런 이벤트가 있을 때만이 아니다. 전날 뉴스와 두 가지 신문의 기사를 비교하며 읽는 아침 시간에도, TV를 보면서 비판적인 대화가 오가는 시간에도, 회의에 앞서 준비를 하는 시간에도 사무실에는 웃음이 가득하다.

그곳에 가면

10여 평 남짓의 사무실 한 쪽 벽면은 모니터링을 위한 4대의 TV와 4대의 비디오가 차지하고 있다. 비디오 테잎이 아주 많은데 모니터한 프로그램을 녹화한 것과 미디어 교육용으로 제작, 편집된 것들이 대부분이다. 사무실의 모든 벽면과 책상 위는 방송, 방송 비평, 언론 등에 관한 이론서들, 모니터, 성명서, 보고서, 미디어 교육 자료 등의 각종 자료집, 모아둔 신문과 잡지들로 가득하다. 특히 그동안 연구와 활동 등에서 생겨난 자료들이 많이 눈에 띈다.

"우리 나라에서는 미디어 운동에 대한 자료들이 체계적으로 문서화되어서 남겨지지 않았어요. 여러 단체들의 연구, 활동 등에 대한 자료가 통합, 정리, 보존되기는커녕 각각 단체들이 자신들의 자료마저 제대로 관리, 보존하지 못하고 거의 대부분 없어졌지요. 그나마 남은 것들은 그 안의 개인들이 무의미하게 소장하고 있다고 봐야하고요. 이렇게 남은 것들이라도 모은 건 미디어 운동의 역사로서 남길만한 데이터 베이스 구축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지요. (웃음)"

조은숙 기획부장은 장난스럽게 말했지만, 사무실 안의 많은 자료집, 문서들은 이들의 노력을 보여준다. 이것들이 나중에 중요한 미디어 운동 역사의 중요한 한 부분을 차지할 것을 믿는 것이다. 그들에게 이러한 믿음은 매비우스 활동의 가장 중요한 동력원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먼 미래에 우리 후손들은 "옛날에 우리 조상들은 미디어 주권을 얻기 위해서 노력했었다"는 사실에 이들의 자료를 근거로 대지 않을까? 터무니없는 상상을 해본다.

주체적으로 보는 TV! = 재미있게 보는 TV!

TV 비평 시민 단체에 쉽게 쏟아지는 반론 중 하나는 TV의 오락적인 기능을 너무 무시하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가뜩이나 생각할 것이 많아 피곤한 데, TV를 보면서까지 비판적인 사고를 견지해야만 하는가?" 또는 "그냥 즐기기 위해서 보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 않은가?" 하는 식의 의문들이 그러한 것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은 TV를 주체적으로 보는 것과 재미있게, 즐기면서 보는 것을 서로 상반된 것으로 보는 오해에서 비롯된다.

매비우스 사무실의 TV는 모니터를 위해 주의 깊게 비판적으로 볼 때나, 다른 업무를 볼 때나, 심지어는 가벼운 회의를 할 때에도 켜져 있다. 일반 가정에서 TV를 '시청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냥 틀어놓는' 것과 마찬가지로 매비우스의 TV는 '배경 매체'로서의 성격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가 좋아하는 음악이나, 프로그램, 연예인이 나오면 TV에 집중해서 TV를 완전히 즐기는 '오락 매체'의 성격도 똑같이 갖고 있다.

막연히 이곳에서 TV는 비난의 대상이며, 방송이 공정성, 공익성을 얼마나 지키고 있는지를 감시하기 위해서만 존재할 것이라는 편견을 가지기 쉽다. 또는 즐길 때와 비판할 때가 확연히 구분되어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TV를 보는 일반인들도 TV를 즐기면서도 주체적으로 수용하고 있음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서강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원용진 교수에 따르면 TV는 광범위한 시청자 층을 고루 만족시키기 위해서 스스로를 다의적인 내용으로 구성한다. 또 의식을 하든 안 하든 모든 수용자는 TV가 제공하는 모든 텍스트를 주어진 그대로 흡수하지는 않는다. 즉 보는 사람, 수용자가 그것을 주체적으로 해석하고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주체적으로 TV보는 일이 재미없고 머리 아픈 일이라는 등식은 성립할 수가 없다. 오히려 매비우스에서 TV보기는 '주체적으로 재미있게 TV보기'라는 등식이 더 맞겠다.

주체적으로, 그러면서 비판적으로 TV를 보는 이유!

새삼스럽게 시민 언론 단체의 필요성을 언급해야 할까? TV의 파급효과는 막대하기 때문에 이것을 장악하려는 각 계층, 단체들의 노력이 끊이질 않고 있다. 이것은 곧 TV 제작자들에게는 압력으로 다가오기 마련이다.

이 때, 이 압력의 원천을 아주 광범위하게 분류해 보면 경제력을 쥔 광고주, 정책과 법을 만들고 시행할 권력을 가진 정권, 그리고 TV를 보는 주체인 시민 등이 있다. 이들은 모두 TV가 자신의 이익이나 사상, 가치관을 대변하기를 원하므로 자기가 가진 것을 통하여 압력을 행사한다.

그런데 시민이 가진 시청률을 통한 압력 행사는 소수의 힘으로는 실현되기 어렵고, 많은 수가 모여야만 위력을 발휘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TV가 경제, 정치적 권력에 좌지우지되지 않고 시민의 방송에 대한 권리가 지켜지도록 하려면 많은 사람이 힘을 모아야만 한다. 그리고 한 목소리를 내야만 한다. 이러한 필요성에서 생기기 시작한 것이 바로 시민 단체인 것이다.

방송은 사실상 여러 가지 특권을 부여받고 있다. 그러므로 그만큼의 의무를 행해야만 한다. 그리고 방송에 대한 권리를 가진 시민은 당당히 그 의무를 행하도록 요구할 권리가 있다. 그리고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시민 단체가 이 일을 대변할 수 있고 대변해야 한다.

그리고 그 일은 방송 민주주의의 실현을 목적으로 한 만큼, 또 현실이 이 지향과는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에 진보적 성향을 띠게 된다. 우리가 쉽게 '주체적으로 TV보기'를 '비판적으로 TV보기'로 착각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들의 활동을 방송에 대한 감시와 비판, 견제라고 일컫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이다.

옳은 일을 한다는 믿음, 그것이 바로 행복의 원천


"왜 이 일을 하세요?" 난데없는 질문에 조은숙 기획부장은 "배운 게 이 거니까요"라며 웃는다. 형광등과 낡은 사무실의 추위 등 열악한 환경에 대해 늘어놓고 나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을 계속 하시는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요? 시민 단체 활동을 계속 하게 만드는 요인, 보람 같은 거요. 아니면 의무감이라든가"하면서 추궁하는 눈빛을 보내자 약간 뜸을 들인 후 대답한다.

"재미있어서 하는 거예요.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일하니까 재미있지요. 또, 나와 생각이 같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함께 일하고, 함께 술도 마시고... 그런 것도 빼놓을 수 없지요. 사실 뭐 돈이 많이 생기는 것도 아니지만 그런 재미에 이 일을 하는 거겠지요. 의무감 같은 것도 아주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진짜 이유는 내가 하고 싶으니까 하는 거라고 해야겠지요."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심할수록 삶은 괴롭기 마련이다. 자신이 하는 일이 옳다는 믿음이 있는 사람은 현실적인 보상이 적더라도, 누가 칭찬하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다. 언제나 즐거운 웃음이 있는 매비우스 사무실의 풍경은 이러한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그들은 현실을 점점 이상에 맞게 바꾸어가는 일을 해내고 있었던 것이다.

어려움 : 대중의 무관심

가장 어려운 점이 있다면? 조은숙 기획부장은 말한다.
"가장 힘들 때는 호응이 별로 없을 때에요. 사람들이 많이 모여서 호응도 많이 해주고 함께 생각도 나누고 얘기도 하고 왁자지껄하고, 그럴 때가 재미도 있고 보람도 있고 좋은데, 그렇지 않을 때도 많거든요."

역시 시민 단체에 대해 대중들의 관심이 적은 것이 가장 큰 문제이자 고민이다. 시청자 대중의 외면은 '시민 단체'로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제 생각엔 사람들이 이런 일을 너무 어렵게만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딱딱한 분위기에서 세미나하고, 조목조목 따지고 하는 것도 어렵게 느끼는 것 같고요. 또, 당장 눈에 드러나는 변화가 없기 때문에 어렵게 생각하고 포기하기도 하고요. 사실 그렇게 어려운 일만은 아닌데 말이지요. 그래서 이젠 좀 분위기를 바꿔보려고 해요. 월례포럼도 이젠 이벤트를 마련해서 쉽게 갈 생각이고, 지금은 이벤트 아이디어 때문에 고심 중이에요. 우리가 미디어 교육을 중요시하고 열심히 하려는 건 TV를 주체적으로 보는 일이 쉽고 재미있는 일이고, 우리가 시청자로서 요구하는 당연하다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지요. 그래서 특히 미래의 시청 주체인 청소년들에게 더 주목하고 있는 중이구요."

시민 단체가 아무리 떠들어봐야 방송국과 제작진이 얼마나 귀기울이겠으며, 얼마나 나아지겠는가 하는 의문이 대중들의 무관심을 조장하는 이유 중 하나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들이 하는 비판이 너무 원론적이어서 현실성이 부족하고, 일반 대중이 수용하기에 어렵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TV를 아무 생각 없이 보고 즐기는 사람들에게 이들의 이야기는 재미없다거나, 지나친 비판이라고 느끼게 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제작현실을 외면하고 있다는 비판은 이들이 노력하는 정도에 비해 훨씬 적은 결과물이 돌아오게 하는 가장 큰 요인일 것이다. 제작진과 시청자가 이들의 목소리를 완전히 외면한다면 이들의 노력이 헛수고가 될 것은 뻔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제작진의 제작 환경을 고려하여 그들에게 따끔하고 유용한 충고가 될 수 있는 비평, 일반 시청자들이 쉽게 이해하고 참여할 수 있는 비평이 필요하다. 이것은 시민 단체에게도 그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은 가장 효과적인 비평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한 명의 일반 시청자로서 방송 비평을 전문으로 하는 미디어 시민 단체 매비우스에게 이러한 역할을 요구하고 싶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방송웹진 자임(http://zime.fbc.or.kr)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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