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지구를 다 가져라

주거공간을 재산증식의 도구로 삼지 않았으면

등록 2002.02.25 18:59수정 2002.02.25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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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직장생활을 하던 친구가 오랜 서울생활을 접고 중소도시로 떠났다. 거의 맨손으로 상경해 결혼을 하고, 악착같은 각오로 직장생활을 해 2천만 원짜리 지하방에서 살다 10년 만에 7천만 원짜리 전세로 옮기며 스스로 대견해하던 친구였다. 몇 년 만 더 고생하면 은행대출이라도 받아 조그만 내 집이라도 장만할 수 있을 것 같다던 그 친구는, 그러나 무지막지하게 오르는 전세값을 견뎌내지 못하고 결국 지방도시행을 선택했다.

그는 근 10여 년간을 그야말로 허리띠를 졸라매고 살았는데, 살던 아파트 집주인이 5천만원이나 올려달라는 바람에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어 이삿짐을 꾸렸다고 한다. 현재 그는 중소도시에서 4천만 원짜리 전세를 구하고, 나머지 3천만 원으로 작은 화장품대리점을 열어 사장님이 되었다. 그러나 “이층독채에 방이 3개나 된다”며 자랑하지만 그의 얼굴에 씁쓸함이 묻어남은 어쩔 수 없었다.

서울의 집값이 하루가 다르게 오르고, 전세가도 폭등하다시피 했다. 20평짜리 연립주택을 소유하고 있던 한 선배는 아이들 때문에 조금 넓은 곳으로 옮긴다며 연립주택을 팔아 아파트 전세를 들어갔으나, 이젠 더 작은 평수의 집도 살 수 없다며 “언제 다시 내 집을 마련할 수 있겠느냐?”며 한숨을 내쉰다. 그러나 정부에서 부동산 경기과열을 막기 위한 조치들을 내놓자 강남에 살고 있는 또 다른 선배는 “이미 오를 건 다 올랐고 걱정 안 한다”면서 “가만히 앉아 수천만 원을 벌었다”며 행복해 했다. “요즘 아내의 표정이 어둡기만 하면 아파트 값 오른 이야기를 슬며시 꺼낸다”는 그 선배는 “그러기만 하면 금세 아내 표정이 밝아진다”고 껄껄 웃는다.

지난해 한 신문보도에서는 우리나라 장차관의 절반이 강남에 살고 있고, 정치인이나 고급공무원들도 상당수가 강남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내용이 있었다. 실제로 경제정책이니 부동산 정책이니, 조세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부처의 고위 공무원들이 상당부분 강남에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자신들이 거주하는 지역의 집값이 폭등하면 가만히 앉아서 재산이 불어나는 판국이니, 엄청난 집값상승을 은근히 즐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요즘 서울이나 수도권의 집값, 전세값 폭등은 특정지역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강남의 투기꾼들이 지역을 가리지 않고 몰려다니며 투기를 일삼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이미 집을 장만한 사람들은 날마다 집값이 오르는 소식을 접하며 행복한 노래를 부를 것이고, 어렵게 허리띠 졸라매고 마침내 내 집을 마련한 사람들도 그간의 고생을 생각하며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를 것이다.

물론 주거공간이나 토지를 재산증식의 도구로 삼지 말자면 ‘사회주의자’라고 손가락질 받을 것이 분명하다. 어떤 이는 “정신 나간 녀석”이라고 욕할 것이며, 또 어떤 이는 “네가 집을 가졌더라도 그런 소리가 나오겠는냐?”고 물어올 것이다. 하기야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기 돈으로 뭘 하든 그건 타인이 상관할 바가 아니긴 하다. 또 솔직히 내 자신이 집을 가졌다면 어서 빨리 집값이 올라 더 좋은 집을 마련할 수 있게 되길 꿈꾸지 않을 거란 자신도 없다.

그러면서도 오늘의 지나친 집값, 전세값 상승이 문제가 있다고 떠드는 것은 결코 시기심 때문은 아니다. 평범한 나라사람이 고생하며 알뜰하게 모으고 또 모아도 오르는 전세값을 장만할 수 없는 답답한 우리의 주택정책과, 이미 자신들이 살만한 충분한 공간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오로지 돈벌이를 위해 낙찰에 참여하고 입찰에 참여해 가격을 부풀려 선량한 무주택자들을 고통받게 만드는 사람들이 문제라는 것이다.

사실 이 땅의 환경이 지구라는 별에 사는 사람들 모두의 공동재산이듯, 부동산도 누구누구의 것으로 지정하고, 소유자 멋대로 개발하고 파헤치는 것이 옳지 않다는 점은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단지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제도와 시스템 때문에 특정한 사람이 아닌 사람들은 누려야 할 최소한의 권리조차 누리지 못한다면, 그것이 제대로 된 사회는 아닐 것이다. 더구나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삶이 조금씩 나아질 때 비로소 삶의 즐거움을 느낀다. 갈수록 퇴보하는 삶이라면 의욕이 떨어질 것은 분명한 일이다. 오늘의 부동산 가격 폭등이 이 땅의 수많은 서민들의 의욕을 꺾고 좌절하게 만들고 있다면 국가적으로도 전혀 득이 안된다.


비록 정책적으로 1가구 2주택을 가진 사람들에게 중과세를 하기도 하고, 다양한 정책적 제어수단을 통해 그것을 억제하려 노력하고 있지만 투기열풍은 결코 줄어들지 않고 있다. 부동산은 사놓기만 하면 무조건 돈이 된다는 인식이 신앙처럼 뿌리박혀 있고, 실제로 수도권의 경우 부동산을 사놓기만 하면 가만히 앉아서 재산이 쑥쑥 증식되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인간다운 삶, 공존의 입장에서 살펴보면 집이든 땅이든 이 땅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공동재산을 일부 개인들의 재신증식 도구로 악용된다는 것은 공존의 틀을 짓뭉개는 범죄행위나 마찬가지다. 인간들이야 원래 끝없이 탐욕을 추구하는 동물이라지만, 그 탐욕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분노가 참을 수 없는 한계에 이를 때 닥쳐올 공멸을 생각한다면 가진 자들의 욕심도 이제 줄여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정책적으로도 중과세를 비롯해 다양한 억제책을 쓰긴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막을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해야 하지 않을까. 어떤 이는 북한의 사정도 잘 모르면서 “최소한 북한에 살면 집 걱정은 하지 않겠느냐”며 분개한다. 먹을 것 못 먹고 간신히 모은 돈으로 전세방을 마련해 숨 좀 돌릴만 하면 또다시 흉기처럼 등 뒤를 노리는 전세가격은 못 가진 자를 벼랑 끝으로 내모는 협박이다. 함께 더불어 사는 삶은 그래서 가진 사람들이 과도한 욕심으로부터 스스로를 해방시키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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