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02.02.25 20:04수정 2002.02.25 21:08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어머니의 식탁에 밥 그릇과 반찬 그릇이며 약봉지가 늘 함께 놓여 있었다. 진지 드시기 전후에 드실 약과 중간에 드실 약까지.
"어머니, 약을 진지 드시듯 하시면 속탈나요"하고 자식들은 말렸으나 소용이 없었다.
어머니는 시름 시름 앓고 계시니 병을 다스리기엔 약을 멀리할 수 없었다. 긴 병의 아버지를 돌보다가 아버지가 병 끝에 유명을 달리 하시니 어머니에게 밀렸던 피로는 병이 친구가 되어 어머니의 몸과 마음에 자리했다.
어머니의 40대와 50대에 없는 살림에도 여유가 생기게 되면 명절 음식으로 전이며 나물이며 탕으로 우리 자식 셋이 배 두드리면 바로 어머니의 기쁨이었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시니 아버지 돌아가신 집이 어머니에게는 불편하여 큰 아들 내 집 근처에 노년의 보금자리를 만드셨다.
젊은 날의 기력은 다 사라졌다. 자식들이 빼앗고 아버지가 챙겨가셨다. 명절이 되기 전에 "우리 집에 미리 오셔서 함께 계세요" 하여도 당신 몸이 불편하여 일손이 못 된다며 오지 않으셨다.
해마다 그랬고 어머니가 돌아가시던 지난 해 이때도 그랬다. 사내가 밖에 나가있다 보면 정월 보름도 잊고 살게 마련. 집에 들어서면 아내는 나를 어머니 댁으로 가게 돌려세웠다. 아내가 말하기를 "자기, 옷 갈아입지 말고 어머니 댁에 좀 다녀 와요" 하며 밥 한 사발과 나물이 담긴 그릇을 건넸다.
어머니는 경로당 가시듯 오실 만도 하건만 며느리 힘들까 걸음을 삼가셨다. 길은 그때까지 남은 눈이 얼음 되어 노인의 걸음이 아기걸음 걷듯 하셔야 하니 내가 가는 편이 마음 놓였다. 내가 한달음에 차로 모시면 금세인 것을...
한때는 한 상에 오곡밥이며 갖은 나물을 함께 달게 드시더니 옛일이 되고 말았다. 집에서 내가 내 끼니 끓여 먹겠다 하셔서 내 마음이 무거울 때 아내가 어머니를 보살펴주니 나는 금세 따뜻한 가슴이 되어 얼었던 마음을 풀었다.
오곡밥은 식혀서 먹어야 한다지만 따스한 체온을 담아 밥 한 사발을 코트 안 품에 넣고 어둠이 퍼지는 아파트 사잇길을 갔다.
"어머니 접니다.
아들왔습니다."
품에 넣은 오곡밥 한 사발과 비닐 봉지에 들어 있는 나물그릇을 꺼냈다. 별빛처럼 초롱 했던 어머니의 눈매는 세월의 바위에 눌려 작아지고 젖어있었다.
"아이고 고맙다, 어두워지는데 어찌 가려고" 하시는 어머니를 내가 품에 안았다. 그럴때는 늘 "애비야. 네게서 아기 냄새가 나" 하시던 자식의 가슴속에 계시는 어머니.
당신 드시라고 식탁에 진지 한 그릇 올려놓았습니다.
천천히 드세요. 이제 무거운 옷 같은 육신도 없으시니 날아갈 듯 가볍게 오셔서 어여 어여 드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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