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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평화의료연대' 제3기 베트남진료단 발대식 ⓒ 오마이뉴스 조호진 |
"새로운 천년을 맞이한 인류의 미래는 결국 전 세기의 제국주의의 참혹한 수탈과 그로 인한 전쟁의 수렁에서 벗어나지 못할 듯합니다. 언제나 진정한 평화가 도도한 강물처럼 흘러갈까요?"
'베트남 평화의료연대' 이한우 회장은 미국의 전쟁협박에 의해 세계평화가 여전히 위협받고 있는 21세기를 우려했다. 아울러 베트남과의 진정한 화해보다 시장잠식을 앞세운 한국의 교류태도를 문제삼으며 이렇게 덧붙였다.
"베트남을 잠재력이 큰 시장으로만 인식하며 '한류'라는 정체도 없는 모호한 괴물을 앞세워 자본주의적 수탈을 도모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김대중 대통령이 베트남 인민들에게 피해 입힌 것에 대해 사과를 했음에도, 역사적 진실을 밝히는 일에는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단지 물적 교류에만 치중하고 있는 것 같다."
양심적인 치과의사들이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의 양민학살을 사죄하기 위해 3년째 진료활동을 준비하며 진정한 화해를 시도하고 있다.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이하 건치)'는 23일 오후 7시 이 의사회 강당에서 회원 4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3기 베트남진료단 발대식을 가졌다. 양국의 비극적 역사를 씻기 위한 발대식은 여느 의료봉사단 발대식과 달리 숙연한 분위기로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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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마이뉴스 조호진 |
한국군에 의해 저질러진 학살현장 조사를 위해 베트남 각 마을을 방문했던 '나와 우리' 김현아 공동대표는 이날 강연에서 1968년 한국군에 의해 136명의 민간인이 학살된 '하미마을' 사연과 한국 참전전우회 지원으로 만들어진 위령비를 소개했다.
김 대표는 또 최근 베트남 방문러시에 대해 "30년 전에 총과 칼과 수류탄을 들고 베트남엘 갔다면 지금 우리는 무엇을 가지고 베트남에 가는가"라고 반문하며 "정부 지원금과 달러와 의료장비를 가지고 간다고 해서 그들에게 감사를 강요하는 것은 또 다른 폭력이나 다름없다"며 베트남의 문화와 정서를 이해할 때 진정한 화해가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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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평화의료연대 이한우 회장 ⓒ 오마이뉴스 조호진 |
이들 치과의사들은 베트남에 가한 한국군의 잘못과 역사적 진실이 밝혀진 토대 위에서 반성과 화해가 이루어져야 하며 진료활동은 이를 위한 기초적인 실천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전민용 건치 집행위원장은 베트남 진료활동의 의미에 대해 "베트남 진료사업은 올바른 역사의식과 책임의식을 정립할 기회이며 미·일 등 타국과의 과거사에 대한 올바른 태도를 가질 수 있는 기회다"며 "국내에 들어와 있는 외국인 노동자 등 타 민족에 대한 태도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다"고 정리했다.
지난 2000년부터 2차례 베트남 현지에서 의료활동을 펼쳐온 이 치과의사회는 5000여 명의 베트남인들에게 무료 치과진료 봉사와 한국군에 의해 학살된 양민 위령제를 가졌다.
치과의사, 산부인과의사, 한의사 등 80여 명으로 제3기 진료단을 구성한 '베트남 평화의료연대'는 다음달 16일부터 24일까지 베트남 꽝 아이성 빈선현을 방문해 진료활동을 펼칠 예정이다.
이와 함께 '평화의료연대'는 '국제민주연대-베트남전 진실위원회' '나와 우리'와 공동으로 오는 6월 29일 국립극장에서 '제2회 한-베트남 평화예술제'를 개최할 계획이다.
다음은 베트남 하미마을에 세워진 위령비 전문이다
'1968년 음력 1월 26일 학살당한 135명의 동포들을 기리다'
역사책은 기록하기를 바다와 강이 어우러진 디엔증은 남농권의 자손들이 호안선산맥을 넘어 남으로 남으로 땅을 열어 지금으로부터 500년 전 국가의 기억을 세웠다. 주민들은 하미에 마을을 세우고, 쟁기질을 하고, 고기를 잡으러 나가고, 채소를 가꾸며 평화롭게 살았다. 하늘이 조용하고 땅이 평화로울 때까지는.
그런데 검은 구름이 몰려오고, 천둥번개가 치며 그들이 왔다. 그들은 땅을 황폐하게 하고, 파도를 일으키고, 주민들을 전략촌에 가두고, 주민들로 하여금 마을을 버리고, 고향을 버릴 수밖에 없게끔 만들었다.
그들은 우리에게 칼로 창자를 끊는 아픔을 주었다. 주민들은 땅과 강과 바다를 잃고, 쟁기질을 하고 생선을 잡던 작업까지 모두 잃었다. 그 악독함을 어찌 다 말하리. 머리는 땅으로 굴러떨어지고, 피가 강처럼 흐르고, 마치 마른 머리카락이 듬성듬성 빠지듯이 야자수 잎이 파괴되고 황폐해졌다. 눈물이 연못을 만들고, 한순간 사원이 재로 변하고, 하야(Ha Gia) 숲은 앙상한 뼈만 남았다. 캐롱(Khe Long) 선착장에는 시체들이 쌓였다.
1968년 이른 봄, 음력 1월 26일 청룡병사들이 미친 듯이 와서 양민을 학살했다. 하미마을 30가구 중에 135명이 죽었다. 피가 이 지역을 물들이고, 모래와 뼈가 뒤엉켜 섞이고, 집들은 불타고, 불에 그을린 시신들이 얼키고 설키고, 개미들이 불탄 시신들을 갉아먹고, 피냄새가 진동했다. 폭풍이 한바탕 몰아치고 간 그것보다 더했다.
무너진 집에서는 늙은 어머니들과 아버지들이 신음하며 죽어갔고, 아이들은 두려워 공포에 질렸다. 도망친 사람들은 총에 맞아 죽었고, 아기가 죽은 어머니에게 기어가서 젖을 먹었다. 더 끔찍한 것은 탱크로 무덤을 파헤친 것이다. 어둠은 이 지역을 덮었다. 풀이 시들고 뼈가 말랐다. 원혼은 잠들지 못하고 여기 저기 뒹굴고 분노는 푸른 하늘에까지 닿았다.
그러나 하늘은 암흑이었다가도 언젠가는 밝는다. 우리 고향이 다시 평안 속으로 돌아오고 행복을 일군 지 25년. 디엔증의 땅에도 단감자가 자라고, 벼가 푸르고, 수확을 이루고, 바다와 강에는 생선과 새우도 풍부하다.
당이 길을 이끌어가고 황량한 벌판을 개척해나갔다. 과거의 전장이었던 이곳에 이제 고통은 줄어들고 있고, 한국인들은 다시 이곳에 찾아와 과거의 한스러운 일을 인정하고 사죄한다. 그리하여 용서의 바탕 위에 이 비석을 세웠다.
우리는 인도적인 인의로 고향의 발전과 협력을 열어갈 것이다. 이 모래사장과 포플러 나무들이 양민학살을 기억할 것이다.
당지구 정권과 디엔증 주민들이 바칩니다. 경신년 가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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