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02.02.28 01:42수정 2002.02.28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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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가 고장이 나서 고치는 아저씨를 불렀다. 내 눈에는 고장이었으나 전문가의 눈에는 단추 몇 번 누르면 해결되는 일이었는지 10분도 안 되어 해결이 되었다.
나는 그래도 한 삼십 분은 걸릴 줄 알고 차한 잔 대접했는데 너무 일찍 끝나서 아저씨는 돈을 받기가 쑥스러운 모양이었다.
그 무슨 말씀을. 아무리 쉬운 것이었다 해도 나는 못 고치는 일이니 그런 생각하실 필요 없다고 말씀을 드렸다. 몇 마디 말이 오간 김에, " 혹시 아저씨는 고향이 시골이예요? "하고 물었다. 아니면 많아서 식욕을 잃어버린 고구마나 좀 드릴까 해서였다.
"시골이예요. 그런데 왜요?"
"아, 혹시나 시골이 아니시면 고구마나 좀 드릴까 하고요."
"고구마요? 말도 마이소. 우리 집에도 썩어 문드러 지는 데 아무도 안 묵습니다."
'썩어문드러'진다는 표현이 너무 가혹했으나 어쨌든 고구마가 필요 없다는 강력한 메시지로 받아들였다.
어렸을 적에는 감자에 비하면 고구마는 훨씬 맛있는 것이었다. 물론 지금도 박스떼기가 아니면 시장에서 한 봉지에 3천 원, 5천 원 하는 것을 사다가 맛있게 먹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지금은 고구마가 떨어지지도 않았는데 시댁에서 공수가 되니 그나마 하나 먹을 것도 접고 만다.
물론 시댁에는 고구마가 남아있다고 분명하게 말씀을 드리지만 무조건 막무가내로 갖다놓고 먹으라는 식이다. 일방적으로 퍼부어지는 옛사람들의 사랑의 방식이 갑갑해도 별 뾰족한 대책이 없어 몇 번 거부 하다가 그냥 주는 대로 받아 온다. 대신 빨리 처분할 길을 찾는다. 그 동안은 만만한 게 경비아저씨라 주로 경비아저씨들에게 나누어 드렸다.
그러다 올해는 좀 색다른데 주자싶어 친구가 관계하고 있는 모 불교 단체에 주려고 멜을 띄웠다. 고구마 받아줄래 했더니 공양주 아주머니께 물어보고 답을 해주었다.
"공양주 아주머니가 지금은 필요 없다 카더라. 그리고 괜한 택배비 없애가며 멀리 보낼 생각 말고 주변에다 풀어라."
그 말도 일리가 있어 아이를 핑계로 사귄 아기 엄마들에게 1차로 나누어주었다. 그러고도 남아서 동네의 혼자 사시는 듯한 연로한 (모르는) 할머니에게 지나치다 슬쩍" 할머니 혹시 고구마 좀 드릴까요?"했더니, " 아이구 주면 좋지요." 하고 냉큼 응수해 오셨다.
"할머니 그러면 마늘도 좀 드릴까요?"
"뭘, 아기 엄마나 먹어요."
"아니. 저희집엔 많아서 그러니 부담 갖지 마세요. 내친김에 금방 갖다 드릴께요."
말을 마치고 후련한 기분으로 돌아서 걷는데 할머니는 잠시만 기다리라고 하셨다. 어쩐 일인가 했더니 비닐 봉지 하나를 손에 들고 나오셨는데 속에는 사탕이 들어 있었다.
"아기 줘요. 줄게 이것밖에 없어서.."
그러시지 않아도 된다고 손사래를 쳐도 그러는 게 아니라면서 막무가내로 주셨다. 덕분에 아이는 사탕을 원 없이 먹게 되었다. 물론 나 또한 원하는 사람들에게 고구마를 나눠줄 수 있어 속이 후련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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