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의 3.1절 격문
"미국상품 불매로 빼앗긴 자존심 찾자"

분당 야탑동....오프라인으로 확산되는 네티즌 분노

등록 2002.02.28 11:06수정 2002.03.02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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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당 야탑동 일부 아파트에 붙은 3.1격문 ⓒ 유정희


온라인에서의 분노가 오프라인까지 넘쳐 흐르고 있다.
김동성 선수의 금메달 박탈 사건에 분노하는 네티즌들에 의해 인터넷상에서 펼쳐지고 있는 미국제품 불매운동이 오프라인으로 확산되고 있다.

3.1절 독립기념일을 이틀 앞둔 2월 27일 오후 성남시 분당구 야탑동 현대 장미마을 아파트의 일부 엘리베이터 안에는 A4용지 1장으로된 '제2의 3.1운동' 격문이 붙여졌다. <정정당당 코리아, 위풍당당 코리아, 맥도날드 불매운동>이라는 제목의 이 격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1919년 3월 1일은 일제에 굴복하지 않고 우리의 자존심을 지키고자했던 그날입니다. 2002년 3월1일은 미국에 의해 실추돼버린 우리의 자존심을 지키는 날로 만듭시다."

이 격문은 이번 동계올림픽에서 우리 선수들이 당한 상처와 희망의 좌절을 되새기고 있다.

이번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에서 여러분도 김동성 선수가 금메달을 빼앗긴 것을 아시다시피, 심판들의 편파적인 판정에 의해 우리 선수들은 부당한 대우를 받은 것도 모자라 미국의 방송사와 신문사들은 우리의 가슴에 또 한번의 상처를 주게 되었습니다. 이와같은 횡포로 인해 4년동안 열심히 훈련해온 우리 선수들의 희망이 좌절되고 말았습니다.

격문은 이어 지금은 '미국에게 뭔가 보여줘야 할 때'라고 불매운동 동참을 호소한다.


진정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메달 하나가 아니라 잃어버린 코리아의 자존심과 상처받은 어린 선수들의 밝은 웃음입니다. 코리아를 약소국으로 보며 무시하는 미국을 향해 뭔가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생각해낸 것이 불매운동이며 '나 하나쯤이야'가 아닌 '내가 아니면 안돼'라는 생각으로 동참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지금이야말로 코리아의 힘을 보여줄 때입니다. 천천히 달아올라 오랫동안 그 열을 간직하는 뚝배기와 같은 근성을 우리 모두 실천해봅시다.


이 격문은 하단에 '불매운동 목록 상품'으로 9개 분야 63개를 나열했다.

이들 중에는 음식점 13개(맥도날드, 버거킹, 파파이스, KFC 등), 커피전문점 3개 (스타박스 등), 음료 7개(코카콜라 등), 기타식음료 12개 (켈로그 등), 생활용품 6개(암웨이 등), 화장품 11개(바비 브라운 등), 의류 12개(폴로 등), 가방 3개(레스포쎅 등), 기타 1개(월마트) 등이다.

이 격문은 맨 마지막에 "당신이 한국인임이 자랑스럽습니다. 대한민국, 사랑합니다"라고 적고 "정정당당 Corea인은 이 벽보를 낙서, 훼손하지 않습니다"라고 덭붙였다.

▲분당 야탑동 일부 아파트에 붙은 벽보와 성남시에서 3.1절을 기리기 위해 내건 태극기ⓒ 유정희


27일 낮에 붙여진 것으로 보이는 장미마을 아파트 801, 802, 803동의 엘리베이터 6곳에 붙여진 격문에는 28일 오전 10시 현재까지 어떤 낙서도 없었고 훼손되지 않은 상태였다.

802동에 사는 이종숙 씨(35)는 "어제(27일) 저녁 퇴근하면서 엘리베이터 안에서 그 글을 봤다"면서 "인터넷에서 미국상품 불매운동을 하고 있다는 한 네티즌의 경험담을 본 적이 있는데, 내가 사는 아파트에서 이런 글을 보니 반갑고 동참해주고 싶은 생각이 난다"고 말했다.

장미마을 아파트의 경비원 김아무개씨는 "이 격문을 누가 붙였는지 알수 없다"고 말했다. 컴퓨터 글씨로 적힌 격문에는 작성 주체에 대한 표시가 전혀 없다. 이 경비원은 "스카치테이프로 붙인 것이 아니라 벽지 바르는 풀로 완전히 붙여놓았고 여러 동의 엘리베이터에 붙인 것으로 보아 마음먹고 조직적으로 한 것 같다"고 말했다.

격문은 인터넷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불매운동을 잘 알고 있는 젊은 네티즌에 의해 쓰여진 것으로 보이나 "나 하나쯤이야 하는 생각을 버리자"고 하면서 "뚝배기 같은 근성"을 강조한 점이 눈길을 끈다. 격문이 붙여진 아파트 일대를 포함한 분당구 전체 주요 대로에는 28일 아침 일찍부터 성남시에 의해 3.1절을 기리기 위한 태극기가 걸려 있다.

이 격문이 이 아파트 이외에 분당지역의 다른 곳이나 다른 도시에 붙여져 있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한편 다음 카페 등 유명 포털사이트에는 현재 100여 개가 넘는 미국제품 불매운동 동호회가 만들어지고 있으며 오마이뉴스를 비롯해 주요 언론사 사이트 게시판 등에는 미국제품 불매 호소문이 계속 오르고 있다.

▲사이버일지매에서 제작한 불매운동 공식포스터 ⓒ 사이버일지매
다음에 개설된 '부당한 대우에 항의하는 사이트' <사이버일지매>는 '3.1 불매운동'을 추진하겠다면서 네티즌들에게 이렇게 호소하고 있다.

우리 네티즌들이 한번 해봅시다. 정치니 경제니 그런 거 하는 사람들한테 맡기지 말고 우리가 여론을 형성합시다. 이미 이번 올림픽에서 우리는 우리 네티즌들의 역량을 확인했습니다. 네티즌들의 사이버시위가 결국엔 우리 언론들을 선도했고, 네티즌들의 움직임에 언론이 따라오도록 만들었습니다. 이번 3.1 불매운동은 온라인상의 네티즌들이 오프라인을 움직이는 중대한 시도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네티즌 한 사람 한 사람이 역사적으로 중대한 시점에서 일을 한다고 생각하시고 모두가 '네티즌대표'라는 생각으로 이번 일을 추진합시다.

이 사이트는 또 불매운동 대상인 미국상품들을 나열하고 "푯말같은 걸 만들어 시내 미국제품회사(맥도날드 같은)에서 시위를 하는 것도 좋고 A4 전단지를 만들어 전봇대에 붙이고 많은 사람들에게 나눠줍시다"라고 행동강령을 밝히고 있다.

따라서 분당 야탑동의 아파트 단지에 붙여진 A4전단지 격문은 이러한 네티즌들의 운동과 맥을 같이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격문이 붙어 있는 아파트로부터 약 6백여 미터 떨어져 있는 맥도날드 한 지점의 지배인은 "그런 격문이 나돌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으며 매상에도 전혀 지장이 없다"고 말했다.

그런가하면 불매운동 지역커뮤니티 사이트(http://coreanz.wo.to)의 네티즌들은 3월 1일 각 지역별로 오프라인 시위를 계획하고 있다. 이 사이트의 운영자는 게시판을 통해 "서울경기지역 회원들은 3월 1일 낮 12시 서울역에 시위를 가질 예정"이라고 밝혔다.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으로까지 자연발생적으로 번지는 미국제품불매운동이 어떻게 조직화될지, 실제로 이 운동이 어느 정도로 시민들의 동참을 이끌어낼지, 그리고 이번의 '김동성사건'이 한국인의 대미인식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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