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둘러 온 봄을 반기는 3편의 '시'

새는 '피안'을 향해 간다... 그 피안의 이름은 '희망'

등록 2002.02.28 16:56수정 2002.02.28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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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2500여 년 전 노(魯)나라의 공자(孔子)는 이런 말을 했다.
"시를 모르는 사람과는 이야기도 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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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로 그 새들의 힘겹지만, 힘찬 날개짓에서 희망을 본 것은 비단 필자 하나만이었을까? 단언컨대 새들은 그들만의 피안(彼岸)을 향해 날아간다. 그 피안의 이름은 다름 아닌 '희망'... ⓒ영화 <위대한 비상> 중에서

그로부터 150년이 지난 후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이런 말을 덧붙였던가. "역사가 우주의 현상을 기록하는 것이라면, 시는 우주의 본질을 노래하는 것이다." 한국의 노시인(老詩人)이 여기에 잠언 하나를 보탠다. "시(詩)란 언어(言)의 사원(寺)이다."


세월이 바뀌었지만, '봄'이란 여전히 희망과 새로움을 상징하는 단어. 시인들의 역할이란 사람들을 대신해 희망의 노래를 만들어 부르고, 그 노래로 새로운 세상을 꿈꾸게 하는 것일 터. 시대가 바뀌었지만 그 역할의 중요성은 누구라서 부정할까.

누가 뭐라 해도 이제 봄이다. 밝고 어쩌면, 투명하기까지 한 봄 햇살을 온몸 가득 받으며 시집(詩集)을 펼쳐드는 모습. 오랜 시간을 이어져온 그 아름다움의 영원성을 누구라서 깨뜨릴 수 있을까?

3월 중순 개봉 예정인 영화 <위대한 비상>을 관람했다. 짧게는 2000Km에서 멀리는 남극에서 북극까지 25000Km를 연약한 날개 하나에 의지해 '자신의 힘'만으로 날아가 삶의 터전을 바꾸는 철새들의 행로를 쫓아가는 다큐멘터리.

바로 그 새들의 힘겹지만, 힘찬 날개짓에서 희망을 본 것은 비단 필자 하나만이었을까? 단언컨대 새들은 그들만의 피안(彼岸)을 향해 날아간다. 그 피안의 이름은 다름 아닌 '희망'이었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과 '세상'을 떼어 매고 날아가고픈 꿈이 사람들이라고 다를까?

3명의 빛나는 시인들이 '눈물'과 '기다림'의 겨울을 견뎌내며 힘겹게 축조한 빛나는 3편의 시를 독자들께 감히 권한다. 붉은 석양, 혹은 푸른 달빛에 날개를 적시며 희망이라는 이름의 피안을 향하는 새들의 몸부림을 담은 3장의 사진까지 함께 권한다.


정희성... 아직도 '뼈가 아픈' 봄

1945년에 태어났으니 정희성은 우리 나이로 쉰 여덟 살이다. 이순(耳順)을 목전에 둔 시인은 이미 58번의 새로운 봄을 만났다. 하지만 그에게 봄은 만날 때마다 눈이 부신 새로움이고, 가슴이 두근대는 기대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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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은 기다리는 자가 아닌, 애써 찾아 헤맨 사람에게만 온다"라는 말의 의미를 우리 이미 알고 있지... ⓒ영화 <위대한 비상> 중에서

하여, 해마다 그 계절이 도래하면 몸살을 앓고, 뼈까지 아프다. 혼곤한 몸살의 끝에서 정희성은 이렇게 봄을 노래한다. 지난해 출간된 <시를 찾아서>라는 시집에 실린 '꽃샘'이다.

봄이 봄다워지기까지
언제고 한번은 이렇게
몸살을 하는가보다
이 나이에 내가 무슨
꽃을 피울까마는
어디서 남몰래 꽃이 피고 있기에
뼈마디가 이렇게 저린 것이냐.


육십 노인에게도 모종의 희망을 기다린다는 것은 이토록 뼈마디마저 저린 일인가? 그의 몸에 피는 꽃은 과연 어떤 빛깔일까?

정희성의 뼈아픈 기다림의 끝에는 마침내 아름다운 꽃이 피리라. 그 확신의 이유가 뭐냐고? "봄은 기다리는 자가 아닌, 애써 찾아 헤맨 사람에게만 온다"라는 말의 의미를 우리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이영진... 만개(滿開)한 개나리 아래 '환한 세상'

삶은 무엇이고, 죽음은 또 무엇인가? 인간에게 죽음과 삶이란 대극(對極)의 의미가 아닌, 끌어안고 함께 가야 할,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다 말할 수 없는 것이거늘. 시인 이영진은 이 사실을 나이 사십에 깨달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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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명을 상징하는 봄꽃이 만발한 3월 아침에 아름다운 죽음까지를 떠올린다는 것. 시인이 아니면 누가 그 지난(至難)한... ⓒ영화 <위대한 비상> 중에서

생명을 상징하는 봄꽃이 만발한 3월 아침에 아름다운 죽음까지를 떠올린다는 것. 시인이 아니면 누가 그 지난(至難)한 경지에 이를 수 있을까? 밝고, 환한 노래 같은 죽음을 떠올리는 삶이란 또 얼마나 눈이 부신가? 이 시를 보라. '한천 저수지'다.

고인 물이 무겁다. 산그늘 물에 잠겨 고요하고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산들은 늙은 몸 안에서 끝없이 꽃들을 토해내고 꽃들이 떨어져 시간이 곪는다. 손가락에 든 가시는 아프지만 곪은 시간은 아프지 않아. 하늘을 헤아리지 않아도 나이 사십의 밤하늘에 별이 뜨고 더러 눈도 내리고 곪은 상처가 터져 꽃이 피더니 임종하는 법도 알 것 같아. 바람이 스쳐가는 인연도 알 것 같아. 마지막 생의 끝 시간, 그 끝에 앰뷸런스가 와 멎고 아직은 빈 채인 무덤 가에 개나리 피어 호남탄좌 가는 길가에 한순간 세상이 밝았다.

곪은 상처가 터져 피는 것이 어디 꽃뿐일까? 시 또한 그러한 것을. '바람이 스쳐가는 인연'까지도 알아차리는 혜안(慧眼)을 가진 시인 이영진.

그의 눈을 통해 우리는 보이는 세상만이 아닌, 보이지 않아서 더욱 안타까운 그리움으로 존재하는 세계까지를 볼 수 있고, 그것으로 인해 아주 잠깐 행복감까지 맛본다.

이성부... 시가 불러들이는 '봄'

지난해 '대산문학상'을 수상한 시인 이성부(60세). 민중지향적인 서정시의 정점에 서 있는 그의 시편 중 최고의 절창(絶唱)은 재론의 여지없이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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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이다. 여러분도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지 않은가? 새들처럼 오랫동안 기다려온 희망의 곁으로 날아가고... ⓒ영화 <위대한 비상> 중에서

이성부 외에 누가 있어 이런 맑고, 고운 목소리로 '기다림의 봄'을 읊조릴 수 있을까. 그의 시로 인해 진달래가 피고, 먼 산에서 새소리가 온다. 마치 애 타는 기다림의 끝을 알리는 교향곡 같다.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
어디 뻘밭 구석이거나
썩은 물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
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 판 하고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
다급한 사연 들고간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눈 부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 온다
너를 보면 눈부셔
일어나 맞이할 수가 없다
입을 열어 외치지만 소리는 굳어
나는 아무 것도 미리 알릴 수가 없다
가까스로 두 팔 벌려 껴안아 보는
너, 먼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


안타까운 기다림을 간직했던 품으로 돌아와 안길 누군가가, 그 사람으로 인해 아무 말도 먼저 할 수가 없고, 일어나 맞이하기조차 가슴이 벅찬 누군가가 당신에겐 있는가?

10여 년 전 한 문학강연에서 시인 황지우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사랑으로 인해 희망을 가질 수 있다면, 그 희망이 줄 절망까지도 사랑할 수 있다."

봄이다. 여러분도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지 않은가? 새들처럼 오랫동안 기다려온 희망의 곁으로 날아가고 싶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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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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