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02.03.05 07:41수정 2002.03.05 13:22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얼마 전 나는 생소한 법원에서 온 편지 하나를 받았다.
편지의 내용은 내가 무작위로 추출하는 배심원 후보에 뽑혔으니 참여 가능성을 통보해 달라는 것이었다. 사실 이런 통지를 받은 것이 처음은 아니다. 이민 초기에, 영어가 너무 서툴러 움직일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던 시절에도 받은 적이 있었는데 당시에는 영어가 서툴러 도저히 배심원을 할 수 없다고 통보한 적이 있었다.
일단 배심원이 되면 기본적으로 1주일 동안 참여해야 하며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여러 사람들의 말을 집중해서 듣고, 판단하고, 다른 배심원들과 토론해서 만장일치로 결정해야 하는,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나에게는 너무나 고된 작업이다. 자신이 없어 이번에도 영어를 핑계로 거절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번만은 마음의 결정이 쉽지 않았다.
이제는 이민 경력도 좀 되었고 앞으로도 계속 이런 일이 있을 텐데 그때마다 영어를 핑계로 번번히 거절한다는 것도 도리가 아니라는 생각, 더구나 다른 나라에서 건너와 사는 사람으로서 어떤 형태로든 이 나라와 국민들에게 신세를 지는 입장인데 단지 어렵고 내가 불편하다는 이유 때문에 사회 참여를 계속 회피할 수는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심사숙고 끝에 많은 어려움이 예상되지만 배심원 호출에 응하기로 했다. 아직도 영어사용이 서툴러 여전히 긴장하며 사는 처지지만 큰 맘먹고 도전해 보기로 한 것이다. 사람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재판에서 죄의 유무를 결정짓는 배심원의 큰 역할을 생각하면 잘못하는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 땅에 사는 한, 해볼 수밖에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더욱 강하게 들었다.
드디어 내가 호출된 날, 버스 시간 때문에 아침도 거르고 우여곡절 끝에 법원에 도착했다. 배심원 모이는 장소를 찾아가 제공되는 커피를 마시면서 마음을 가라앉힌 다음 접수대에 가서 참석 신고를 했다. 적당한 자리에 앉아 좌석에 비치된 배심원에 대한 간단한 소책자를 읽으며 내용을 숙지했다.
9시 30분이 되자 2명의 법원 직원이 배심원에 대한 간단한 내용이 수록된 비디오를 두 번에 걸쳐 상영하였는데 첫 화면에서 영어사용에 문제가 있는 사람은 지금 바로 배심원 취소를 요청하라는 멘트가 나왔다. 이어 이 나라에 사는 여러 인종의 사람들이 나타나 각자 자기들의 말로 같은 멘트를 반복했다(그러나 한국말은 없었다).
이 멘트를 듣는 순간 나는 마음이 또 한 번 흔들렸다. 약간 두려워지며 '지금이라도 취소 요청을 해볼까?'하는 마음이 들었다. 과연 내가 모르는 사람의 인생을 좌우할 수 있는 재판에 배심원이 될 자격이 있기는 한 건지 비관적인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 끝까지 가기로 다시 한번 마음을 다졌다.
법원 직원이 개인 사정으로 배심원 하기 어려운 사람들은 추첨에 들어가기 전에 의사표시를 해 달라고 다시 한번 고지하자 두세 명이 거부의사를 밝혔고 이윽고 그 법원 직원은 첫번째 추첨 대상인 사건에 대해 개요를 알려주었다.
1999년에 일어난 폭행사건으로 피의자와 피해자의 이름으로 보아 러시아 사람들인 것 같았다. 법원 직원은 재판 당사자들의 이름을 이야기 하며 혹시 이들을 아는 사람들은 있는지 확인을 한 다음 아무도 없자 드디어 이 재판에 들어갈 배심원 예비 명단을 추첨했는데 (당시 배심원 집결장소에는 약 130여명 가량이 있었다) 나도 이 추첨에서 당첨자 30명 중의 한 명이 되었다. 우리는 곧 바로 재판정이 있는 10번 룸으로 이동했고 10시에 비로소 그 재판에 참석할 12명의 배심원에 대한 또 한 번의 추첨이 있었다.
이때 검사나 변호인은 배심원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데 나이가 들어 보이는 한 명의 백인 여자가 거부된 것 말고는 모두 받아들여졌고 최종 당첨된(?) 12명은 옆방으로 이동하여 자신들의 대표자를 선출한 다음 배심원석에 모두 착석하였다.
마지막 추첨에서 탈락한 나머지 인원들은 이틀 후에 다시 나오라는 통보를 받고 해산하였다. 3일짜리 재판이었는데 나는 아쉬움 반, 안심 반 심정으로 법원을 빠져 나왔다.
목요일에 다시 법원으로 갔는데 이번에는 다음 날 있을 방화사건에 대한 배심원을 선발하였다. 예비추첨에서 첫번째로 내 이름이 불려졌고 30명째 호명되자 다음날 9 시 30분까지 8번 룸 앞으로 나오라며 집으로 가도 좋다는 허락(?)이 떨어졌다.
다음날은 시간이 넉넉하여 여유 있게 출석할 수 있었고 설사 배심원에 탈락하더라도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마음도 홀가분했다. 인명피해가 없는 단순한 하루짜리 재판이라는 것이 초보자인 나에게는 더 없이 좋은 기회라는 생각도 들었다. 법정에 모든 사람들이 들어서고 사건 개요 설명 다음 판사가 피고인에게 유죄를 인정하느냐고 질문 했는데 이런 경우 대부분 '무죄'라는 답변을 듣게 되는데 이 중국인 피고인이 유죄라고 하는 바람에 작은 소동이 있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재판이 무산되는구나 했는데, 판사가 피고인을 설득하여 무죄가 될 수도 있으니 재판을 계속 진행하겠다고 하게 만든, 검사, 변호인측은 물론 통역 나온 사람까지 당황시키는, 사실은 배심원 후보들까지 키득거리게 만든 이 황당한 피고인.
생긴 것은 주윤발 젊었을 때보다 더 잘생긴 호남형이 어쩌다 이역만리에서 방화범으로 법정에 서게 되었는지 같은 아시안 이민자 처지의 입장에서 측은감부터 들었다.
곧 이어 배심원 최종 추첨이 시작되었는데 이번에는 내 이름이 맨 먼저 거명되었고 나는 절차에 따라 배심원석 뒷자리 맨 끝자리로 들어가 앉았다. 이런 식으로 12명이 뽑혔고 곧 바로 옆방에 있는 배심원 방으로 가서 대표자를 뽑고(이번 경우에는 어떤 젊은 여자가 자신이 하겠다고 지원하여 금방 끝났다) 다시 법정으로 나왔다.
피고는 약 10년 전에 이민 온 과거 약사 출신의 중국인으로 딸 하나를 둔 사람으로 오랫동안 이곳에서도 공부를 하였는데 배우자가 딸을 데리고 중국에 다니러 간 사이 정신질환이 재발하여 자신이 살던 집에 방화를 한 혐의였다. 다행이 대낮에 발생한 사건이라 화재가 초기 진압되어 물적 피해가 적었고 인명피해는 전혀 없었으나 피고의 집이 옆집과 붙어 있어 불이 옮겨 붙을 수 있는 상황으로 재판을 받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화장지에 불을 붙여 방화한 것이나(심각한 방화는 신나 혹은 개솔린을 이용한다) 사건 3개월 전 정신병으로 치료를 받은 이력, 그리고 방화 동기에 대해 횡설수설하는 (중국 정보부와 마피아가 자신에게 방화를 지시했다는 둥) 것으로 보아 정상적인 정신상태에서 저질러진 것으로 보기 어려웠다.
마지막으로 배심원 룸에 모여 대표자의 무죄판결에 이의 있냐는 한마디에 모두 이의 없음을 표시하여 10초도 안돼 만장일치로 무죄를 선언하였는데, 전혀 모르는 그가 감옥에 가지 않게 되었다는 사실에 나 자신의 일처럼 매우 기뻤었다.
그와 나, 모든 것이 낯선 곳에서 어렵게 살아가는 이방인이라는 생각에 남의 일 같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비록 하루짜리였지만 색다른 경험을 하고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심각한 재판에 평범한 일반 시민들을 배심원으로 하여 죄의 유무를 가리는 이들의 방식이 놀라웠다. 악용하자면 할 수도 있고 부작용도 우려되지만 이들의 성숙한 시민의식으로 큰 탈없이 유지된다는 사실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들이 배심원 제도는 민주주의의 근간이라고 매우 강조하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재판 분위기도 상상했던 것보다 무척 편안하고 자유로웠다. 판사의 성격에 따라 다를 수도 있겠지만 한국에서 보았던 고압적이고 권위적인 언행이 전혀 없었다. (한국에서 법정에 방청인으로 가본 적이 있었는데 다시는 가보고 싶지 않은 그런 장소의 하나가 되었다.) 이번 판사는 재판관의 모습 이라기보다는 비전문가인 배심원들을 위해 진행 사안에 대해 중간중간 설명해주고 이해를 구하는 카운슬러의 모습이었다.
검사나 변호인도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였으며 참고인으로 나온 사람들도 감정 없이 사실만을 객관적으로 서술하는 등, 여러 가지 보기 좋은 것들과 색다른 것들이 많았지만 결론적으로 민주주의의 근본은 시민이라는 원칙에 충실한 이들과 이들 제도를 무리 없이 수행할 수 있도록 뒷받침 하는 성숙한 국민의식이 가장 돋보였다.
더욱 정확히는 말뿐인 민주주의 국가와의 차이를 보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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