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강원도를 '보수'라 하는가?

[정대화의 경선 관전기-강원] '7표차' 칼날 승부의 함의

등록 2002.03.25 14:16수정 2002.03.27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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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호반체육관에서 노무현 후보와 이인제 후보의 악수 장면 ⓒ 오마이뉴스 이종호


7표 차의 칼날 승부. 이인제 진영에서는 돌풍을 잠재웠다는데 노무현 진영에서는 돌풍을 재확인했다고 평가한다. 이인제 진영에서는 춘천의 투표 결과에도 불구하고 부동의 1위임을 강조한다. 반면 노무현 진영에서는 2단계 대추격전을 예고하고 있다.

강원도는 대선 주자가 없는 지역이다. 강원도에는 지역감정도 없다. 천혜의 자연경관을 보유한 청정지역답게 지역감정으로부터 가장 깨끗한 곳이다. 때문에 충청이나 영남과 달리 전국적인 민심의 흐름을 읽을 수 있는 지역으로 꼽히고 있다. 경선 후보들이 '광주대첩'에 이어 강원 경선에 주력하면서 '강원대첩'이라 부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대화의 경선 관전기]
<충남> 황사 타고 날아온 승부수 '음모론'
<대전> 주인밥 67.5% 까치밥 16.5%-지지도인가 지역주의인가
<광주> 극적 이변, 그 이상의 혁명적 반전이었다
<울산> 지역성과 개혁성, 조직과 돈의 4중주
<제주> 바람은조직을 넘지 못하고

강원대첩에서 두 가지 사실이 확인되었다. 이인제 후보가 노무현 후보의 돌풍을 인정한 것이 하나다. 이 후보는 연설에서 강원도민들이 백해무익한 돌풍에 놀라지 말 것을 당부하면서 돌풍이 태백산맥을 넘지 못한다고 장담했다. 돌풍은 존재한다. 그러나 백해무익할 뿐만 아니라 결코 태백산맥을 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넘어버렸다.

또 하나, 황사와 함께 불어왔던 '음모론'이 황사가 물러가면서 잦아들고 있다. 노무현 진영에서는 황사는 진원지가 있지만 '음모론'에는 진원지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 진원지를 둘러싼 진실게임의 알맹이가 춘천에서 드러날 것으로 기대했지만, 이인제 후보는 아무 말이 없다. 단지 당과 청와대의 조치를 기다린다고만 했다. 이 전략을 이어가는 데 안팎의 부담이 있음을 짐작으로 알 수 있다.

▲노무현 후보 ⓒ 오마이뉴스 이종호
노무현 630, 이인제 623, 김중권 159, 정동영 71. 오후 6시 못미처 개표결과가 발표되자 체육관은 온통 환호성으로 가득찼다. 노무현 후보의 승리가 확인되면서 지지자들의 박수와 연호가 이어졌다. 대전과 충남을 거치면서 이인제 후보의 압도적인 득표에 억눌려있던 노무현 지지자들이 한꺼번에 일어선 것이다.


그러나, 노무현 지지자들은 너무 성급했다. 자칫 환호성이 탄식으로 변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김중권 159에 이어 노무현 후보의 득표수가 발표되는 순간 앞의 '6'자가 나오자마자 환호성이 터졌다. '6'자만으로는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일어난 행동이었다. 정동영 후보의 71표와 이인제 후보의 623표를 비교해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정동영 후보는 광주에서 54, 대전에서 54, 충남에서 39표를 얻었다. 강원에서 더 얻는다는 보장이 없었다. 노무현 지지자들이 630표라고 끝까지 들었다면 정동영 후보의 득표를 확인할 때까지는 결코 환호하지 못했을 것이다. 승패가 엇갈리는 긴박한 순간이 성급한 환호에 묻혀 지나가버린 것이다.


강원대첩은 노무현에게 값진 승리를 안겨주었다. '자신감있는 2위' 진영의 자신감이 근거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광주에 이어 재확인한 셈이다. 경합중인 이인제 후보의 비유를 빌어 표현하면, 노무현 돌풍이 이 후보의 확신에 찬 공언에도 불구하고 태백산맥을 훨훨 날아 넘어버린 셈이다. 돌풍의 존재가 확인되었으니 남은 것은 그 돌풍이 '백해무익'한지만 가리면 된다. 그 일은 후보와 지지자들의 몫으로 남겨두자.

▲이인제 후보 ⓒ 오마이뉴스 이종호
강원지역은 전통적으로 보수적인 투표 성향을 보여주었다. 원주가 유독 예외였을 뿐 강원도는 역대 선거에서 집권 여당을 지지하는 친여 성향의 흐름을 보여주었다. 강원지역의 이러한 특성이 이인제 후보의 97년 대선 특표율 및 이 후보의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정책노선과 맞물려 이 후보의 조직기반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언론사의 여론조사가 노무현 후보에게 유리하게 나오고 광주에서 소중한 승리를 획득하는 등 노무현 바람이 불면서 조직이 흔들렸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이다. 최근 지구당 위원장들의 중립적인 태도나 위원장의 뜻이 당원과 대의원들에게 잘 수용되지 않는 현상이 나타났다고 한다. 최근의 일반적인 여론동향도 노후보에게 유리하다고 했다.

따라서 강원대첩을 앞두고 바람이 조직을 넘을 것이냐, '음모론'의 맞바람이 노무현 바람을 잠재울 것이냐, 강원도가 보수적 선택을 할 것이냐 아니면 개혁적 선택을 할 것이냐는 식의 논란이 제기되었다. 결국 '음모론'의 맞바람이 멎어버린 상황에서 노무현 바람은 이인제 조직을 타고 넘어 태백산맥 정상으로 불어닥쳤다.

7표의 차이. 박빙의 승부는 노무현에게 대추격을 위한 제2의 도약을 허락했다. 대추격전은 경남, 전북, 대구에서 시도될 것으로 전망된다. 여섯 번의 경선에서 선거인단 15.6%를 소화했고 이어질 세 번의 경선에서 15.1%를 소화할 예정이다. 그러나 총득표수에서 이인제 후보는 여전히 52.6%의 부동의 1위이며, 강원대첩은 이인제 후보의 조직력이 만만치 않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반면, 강원지역의 낮은 투표율은 옥의 티라 하겠다. 평균 투표율에서 10% 가량이나 적은 67%라는 가장 낮은 투표율을 기록했다. 투표독려를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70%를 넘지 못했다. 아마도 강원지역이 매우 넓고 교통사정이 원활하지 못하다는 자연지리적 특성도 작용했을 것이다. 낮은 투표율의 후보간 유불리에 대해서도 분석이 엇갈린다. 이인제 진영에서는 조직표의 불참을, 노무현 진영에서는 국민선거인단의 불참을 강조한다.

투표율보다는 투표성향에 더 관심이 간다. 강원도민들이 노무현 후보를 선택한 것은 보수보다 개혁을 선택한 것일까? 노무현 진영에서는 강원도민들이 개혁 성향의 투표를 했다고 말한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좀 더 엄밀한 분석이 필요하다. 다만, 전통적으로 보수적인 강원도민들이 개혁적인 노무현 후보를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였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강원도의 힘'이 개혁을 선호하는 것인지.

'음모론'이 일단 물 아래로 잠적하면서 이것을 둘러싼 논쟁의 확대 재생산은 일단 중단될 것으로 예측된다. 이인제 후보가 춘천에서 정계개편론에 초점을 맞춘 대신 '음모론'에 대한 입장표명을 중단한 것은 선거전략으로서의 '음모론'에 대한 판단이 있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후속 전략에 관심이 가는 대목이다.

이미 민주당 대선경선 후보를 사퇴했지만 김중권 후보가 안정적인 레이스를 펼쳤다는 점도 주목할만하다. 김 후보는 10% 안팎의 고른 득표를 유지하면서 '안정감 있는 합리적 보수'의 지지기반을 착실하게 다져나갔다. 바닥을 맴돌던 정동영 후보의 득표가 오른 것도 예상밖의 성과다. 충남 경선 때문에 고민에 빠졌을 정 후보는 강원도에서 경선 완주를 위한 재충전을 했다고 볼 수 있다. 한국정치의 변방에 머물러 소외되어 있던 강원도가 자신을 소외시켰던 중앙의 후보들에게 할 수 있는 배려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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