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노예문서에 서명했다"

임금 47만원 중 25만원이 밥값이라니…

등록 2002.03.27 18:26수정 2002.03.28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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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망가져가고 돈도 못 벌고, 우리는 차라리 죽고 싶습니다. 한국인 여러분,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제발 도와주세요."

타이어 튜브를 생산하는 동아타이어 주식회사에서 근무한다는 한 중국인 노동자의 한맺힌 절규다. 이 노동자는 거액의 계약금을 주고 한국에 돈을 벌기 위해 왔지만 얻은 것은 36시간의 연속노동과 한국에 오기 위해 진 빚뿐이라고 말한다.

이같은 내용은 양산 외국인노동자의 집(이하 양외노)이 동아타이어에서 근무하는 외국인 노동자들과의 상담을 통해 작성된 보고서가 인터넷 게시판에 유포되면서 알려졌다.

'동아타이어 사태'라는 제목으로 작성된 A4 4장분량의 이 보고서는 동아타이어에서 근무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생활 실태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동아타이어는 우리가 J(인력알선 브로커)사와 계약했던 조건은 전부 인정할 수 없으니 다시 계약서를 써야 한다고 했습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우리는 노예문서에 서명을 했던 것입니다. 유황가스가 가득한 공장에서 회사가 원하면 36시간 연속노동도 거부하지 않고... 그런데 회사는 최저임금이 42만 원에서 47만 원으로 올랐다면서 6만원의 식대비용을 25만 원으로 올렸습니다."

양외노 이지연 간사는 "동아타이어는 중국인 연수생 136명을 편법으로 고용해 불법이득을 취하고 있으며 살인적인 노동을 강요하면서도 임금을 적게 주기 위해 온갖 악랄한 방법을 쓰고 있다"며 "이같은 사실은 연수생에게 강제적으로 서명하게 한 동의각서를 보면 잘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간사는 또 "동아타이어측이 연수생들에게 부당한 숙식비 공제, 강제적 임금적립, 장시간 노동, 열악한 노동조건, 근로계약서·신분증 압류 등 기업윤리를 망각한 채 인권유린을 저지르고 있다"면서 "특히 회사측이 현지법인 연수생에 대한 법적 보호 지침이 거의 없는 점을 악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저임금 5만원 올랐다고 식대비 18만원 올려

현재 동아타이어에서 근무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은 130여 명으로 이들 대부분이 해외투자법인 산업연수생 자격으로 한국에 들어온 사람들이다.


그러나 사실상 이들 연수생들은 인력 알선 브로커인 J사에 500여만 원의 송출비를 주고 한국에 들어왔으며, 특히 이들이 한국에 도착한 후 도주해 불법체류할 우려가 있다며 담보금조로 160만 원을 더 줬다고 한다. 게다가 6명씩 한 조로 묶어 서로 도망가지 못하도록 연대보증을 설정했다고 한다.

연수생들 중 몇몇은 이런 이유로 계약을 파기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했으나 이것도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이들은 국내로 들어오기 위해 냈던 송출비용 500여만 원을 갚아야 하는데, 현재 숙식비용으로 공제하는 25만 원을 제외한 실질임금은 22만 원이다. 체류기간을 1년 더 연장해야 송출비용을 갚을 수 있는 돈이 생기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고향으로 돌아갈 수도, 현지에 남을 수도 없는 처지에 놓인 것이다.

양외노 측은 이와 관련해 지난 18일 이 회사를 임금 전액불 지급 위반과 최저임금법 위반 사항으로 노동부에 고발했다. 양외노 이지연 간사는 "이들 연수생들은 최악의 경우 1년 동안 국내에서 벌어들인 수입이 중국에서 1년 벌어들인 수입보다도 못할 수가 있다"며 "갖은 모욕과 인권유린 속에서 빚만 지고 가는 것밖에 없다"고 말했다.

동아타이어측은 이같은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이 회사 관리담당 박 모 차장은 "연수생들이 국내에 들어오기 전에 이미 송출회사(J사)와 계약을 체결한 상태이며 그들 모두 현지 계약서상에 (계약금과 담보물, 연대보증을 하는 것이) 명시돼 있는 것을 알고 들어온 것"이라며 회사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J사와 같은 인력알선 업체를 통해 들어오는 자체가 출입국 관리법에 위배되는 사항이다.

노동부 고용정책과 윤석영 담당관은 "해외투자법인 산업연수생은 인력알선 업체를 통해 들어오는 것은 불법이며, 현지 공장에서 일하지 않는 사람을 고용하는 것도 출입국 관리법에 위반되는 사항"이라고 말했다.

한편, 연수생들의 임금 중 1/3을 적립시키고, 숙식비용으로 25만 원을 공제하는 것의 사실 여부를 묻자, 그는 "연수생들의 도주와 불법체류는 회사의 책임이 있기 때문에 그들의 신분을 보장하고 회사가 불이익을 당하지 않으려면 그러한 제재조치는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또 "98년 12월 1일 이전까지는 모든 연수생들에게 일급 1만원을 지급했는데 12월 이후부터 외국인 노동자들에게도 노동관계법을 적용시켜 최저임금을 지급하다보니 경쟁력이 떨어져 어쩔 수 없이 기숙사 관리비, 식대비용으로 25만원을 공제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시민단체가 주장하는 부당한 노동으로 인한 인권유린과 근로계약서 압류, 신분증 압류 등은 사실 무근이라고 주장했다.

연수생으로 들어온 외국인 노동자 불법체류자 양산

동아타이어는 자동차용 튜브, 재생타이어, 후랩, 트레드, CMB 등을 만드는 종합고무제품 제조회사로, 이 분야에 독보적인 기업으로 알려져 있다. 노동집약적인 3D업종 중 하나인 이 회사는 내국인의 이직률이 높아 심각한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다.

정부는 이같은 3D업종에 대한 인력난을 해소하기 위해 외국인 노동자들을 연수생 자격으로 불러들여 기술을 습득하거나 단순 노무작업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외국인 노동자 연수생은 중소기업 중앙회를 거쳐 들어오는 일반 연수생과 해외투자법인 산업연수생으로 현지 회사에서 근무하는 사람 중 현지기업의 기술력 제고를 위해 국내 모기업으로 기술연수를 위해 들어온다. 그러나 이렇게 국내로 들어온 노동자들 중에 많은 수가 현장에서 이탈해 불법체류자로 전락하다보니 사회적인 문제가 되고 있다.

산업자원부 최남호 사무관은 "인력난 해소를 위해 들어온 중국인, 몽골, 방글라데시 노동자들이 현재까지 1700명 정도가 이탈한 상태"라며 "우리나라는 불법체류자에 대한 관리가 느슨하다보니 불법체류자가 많이 양산되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구인난이 심각한 기업들은 외국인 노동자들을 불법체류자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연대보증과 같은 편법을 쓰고 있다. 연수생들은 국내 노동여건이 좋지 않아도 하소연 할 곳이 없는 처지이다보니 열악한 환경에서 장시간의 노동을 강요당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인력알선 브로커들을 통해 입국한 외국인 노동자들은 국내에 들어오기 전부터 송출비용과 각종 연대보증으로 몇 백만 원의 빚을 떠안게 된다. 게다가 열악한 환경에서 장시간 지속되는 노동으로 몸과 마음이 피폐해지고 심지어 심각한 병에 걸리기도 한다.

이와 관련 양외노측은 "이같은 문제로 양산지방노동사무소와 부산출입국관리소에 시정을 요구했으나, 제대로 관리·감독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앞으로도 이같은 노동력 착취가 계속되는 한 선진국은 물론이고 월드컵과 부산 아시안게임과 같은 국제적인 행사는 속빈 강정에 불과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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