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분 모두가 승자가 되는 길

등록 2002.03.27 23:28수정 2002.03.28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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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의 국민경선 이전까지만 해도 신문의 정치면은 국민의 짜증만 불러일으켰고, 뉴스에서 정치이야기가 나오면 채널을 돌렸습니다.

하지만 국민경선이 시작된 이후 매 주말마다 펼쳐지는 각본 없는 드라마에 많은 사람들이 환호했고, 선거 때를 제외하고는 제대로 대접 받은 적 없는 국민들이 다시 한번 그 힘의 크기를 보여주는 좋은 계기가 되고 있습니다.

저희 가족도 저와 아내, 동생까지 모두 민주당 국민선거인단에 등록하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가족 중에 누가 선거인단에 뽑히든지 그날은 우리 가족 모두 경선장에서 역사의 한 장면에 참여할 예정입니다.

각종 여론조사를 통해 제대로 야당의 대선후보를 이겨본 적이 없었던 민주당도 이번 국민경선이라는 축제를 통해 누가 나가도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되찾는 계기가 된 줄로 알고 있습니다.

이처럼 국민이 정치 참여의 기회를 누리고, 정당도 국민의 관심을 유도할 수 있는 이번 국민경선은 우리나라 정치사에 큰 획을 그은 대사건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초반의 축제 분위기가 채 가라앉기도 전에 이인제, 노무현 두 후보간의 도를 넘어서는 과열경쟁으로 인한 여러 부작용으로 인해 모처럼 국민에게 희망을 안겨주고 있는 국민경선이 자칫 실패로 돌아가게 될까 두려운 마음이 듭니다.

김대중 정부의 갖은 실정으로 인해 민주당에 대한 기대를 접었다가 국민경선에 한가닥 희망을 발견하고 기쁜 마음으로 선거인단에 지원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두 유력후보께 꼭 해드리고 싶은 조언이 있어 이 글을 씁니다.


먼저 이인제 후보께 드리고 싶은 이야기입니다.

지난 4년 동안 민주당의 차기 대선후보라는 것을 단 한번도 의심해 본 일이 없으셨을 이 후보께서 지난 몇 주 동안 일어난 일에 얼마나 큰 충격을 받으셨을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같은 당 소속의 유력 대선 후보에게 '급진, 과격, 좌경'등의 올가미를 씌우려는 시도를 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행동이라 아니 할 수 없습니다.

국민경선 선거인단의 구성을 보면 기존의 민주당원과 대의원들이 절반을 차지하고 있으며, 나머지 절반도 최소한 민주당에 애정과 관심이 있는 이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따라서 이렇게 구성된 선거인단 중에 노 후보의 이념과 그의 정책을 급진 또는 좌경이라고 생각할 이들은 거의 없다고 보는 게 정확할 것입니다.

민주당의 정체성과 성경에 대한 이해가 분명한 이들을 대상으로 당내에서 펼치고 있는 색깔공세가 귀하와 민주당에 도대체 무슨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고 계시는 겁니까.

귀하의 주장대로 한나라당이 '수구적인 극우노선'의 정당임에는 분명하지만, 노 후보의 이념이나 정책도 이제껏 민주당이 보여준 중도노선에서 별로 벗어나 보이지 않습니다. 노 후보가 '급진좌경'이면 노 후보를 지지하는 수많은 국민들은 모두 좌경세력이며, 진보정당을 지지하다 최근 민주당의 국민경선에 관심을 보이는 저 같은 사람은 빨갱이라 불려야 맞을 것입니다.

이제껏 민주당만큼 색깔공세에 시달려온 정당이 또 어디 있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당의 온갖 색깔 공세를 물리치고 정권을 잡았고, 일관된 햇볕정책을 통해 색깔 공세가 얼마나 헛된 것이었는지 증명해온 것이 민주당의 지난 4년간의 모습이었다고 기억합니다.

민주당도 그렇겠지만 국민들도 그 근거 없는 색깔론에 지칠 대로 지쳐있으며 이젠 별로 관심도 없습니다. 모처럼 민주당에 쏠린 국민들의 관심과 지지에 색깔론 논쟁으로 찬물을 끼얹는 것은 민주당과 노후보에게뿐만 아니라 결과적으로 귀하께도 해가 될 것입니다.

맨주먹 하나로 500만 표를 받았던 지난 대선 때의 초심으로 돌아가서 민주당원과 국민들에게 정당한 평가를 구하고, 그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이 후보가 할 일이며 국민들은 그런 귀하의 모습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게 될 것입니다.

노무현 후보께도 한마디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번 경선은 '이인제의 조직과 노무현의 바람의 대결'이라 흔히들 이야기합니다. 자발적 팬클럽인 노사모라는 조직에서 보듯이 귀하의 국민적 인기는 누가 음모를 꾸며서 될 만한 성질의 것이 아니기에 최근의 노무현 바람은 신선한 바람이라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역으로 대통령 후보를 꿈꾸는 유력후보가 이제껏 민주당 내에서 제대로 된 조직 하나 꾸려오지 못했다는 것은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상대후보가 지도자로서의 리더쉽이나 포용력에 시비를 걸 소지가 다분히 있습니다.

몇 달 전 한 인터넷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경선의 "결과에는 승복하지만 진심으로 그를 지도자로 만들기 위해서 당원으로서 의무를 다할 것이냐 하는 데는 명확한 결론을 못 내리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도 역시 솔직하기는 하지만 이 나라 최고 지도자가 되겠다는 정치인으로서 그릇의 크기를 되묻게 합니다.

그리고 경선 초반에 이 후보의 정체성과 경선불복에 대한 공격을 통해 이 후보에게 깊은 상처를 주었습니다. 물론 이는 비난이 아닌 정당한 비판이며, 대선에 나가기 전 당내에서 충분히 검증 받아야 할 문제라고는 하지만 이로 인해 같은 당의 유력후보가 입게 될 피해를 너무도 컸습니다(그 이후 직접 유감을 표시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귀하께서 승리했을 때 과연 이 후보의 협조를 구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민주당이 정권재창출을 위해서는 귀하께서 뜻을 같이 하는 이들의 협조가 필수적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처럼 적을 만들어내는 방식은 곤란하다는 것입니다.

국민경선에 참여했던 이들이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후보가 대선후보로 결정된다 할지라도 최소한 민주당으로부터 지지를 거두지 않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민주당의 대선승리를 위해 꼭 필요한 일일 것입니다.

국민들은 여러 차레 선거를 통해 최선의 선택을 하기보다 최악을 막기 위해 차악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경우를 여러 번 경험했었습니다.
민주당을 지지하는 이들의 입장에서는 한나라당 후보라는 최악을 선택하기보다는, 경선 때 자신이 지지하지 않은 후보일망정 민주당의 후보를 선택하는 것이 차악의 선택일 수 있는 것입니다.

다소 뜻이 다르다 하더라도 경쟁자이자 같은 당의 동지인 다른 후보들을 끌어안는 모습을 보여줘야 할 것입니다.

이인제, 노무현 두 후보께 부탁드립니다.

이 후보께서는 근거 없는 음모론이나 국민의 짜증만 불러일으키는 색깔론을 접고 마지막까지 당당한 모습으로 경선에 임해 주십시오.

노 후보께서는 음모론에 대한 사과 요구 등 소모적인 다툼보다는 노 후보를 향한 국민들의 폭발적인 지지가 민주당을 향한 지지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데 더 힘을 쏟아주십시오.

민주당의 승리가 두 후보의 공동승리가 될 수 있는 방법 하나 조언해 드리며 이 글을 마치려 합니다.

민주당의 국민경선이 국민 모두가 기쁜 마음으로 참여하는 진정한 축제가 되기 위해 경선 마지막까지 두 후보께서 깨끗하고 공정한 승부가 되도록 노력해주십시오. 그리고 결과가 발표되었을 때 2위를 한 후보가 1위를 한 후보의 선거대책위원장을 맡기로 서로 약속을 하시는 겁니다.

선의의 경쟁을 통해 서로의 경쟁력을 키우고, 승부가 끝난 다음 다시 힘을 합하여 대선에 임한다면 대선에서의 승리도 그리 어렵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대선에서의 승리에 상관없이 경쟁자끼리 서로 화합하고 힘을 모으는 그 모습 하나만으로도 국민들은 정치에서 희망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두 달간의 승부가 끝난 4월 28일 두 분 모두 승자가 되느냐 아니면 패자가 되느냐는 두 분의 결단에 달려 있습니다. 두 분의 지혜로운 선택을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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