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5시 30분, 아들녀석과 저는 학교 운동장을 다섯 바퀴째 돌고 있었습니다. 오래 동안 쉬었다가 다시 시작한 아침 운동이라 운동장 다섯 바퀴 주파는 생각만큼 쉽지가 않았습니다. 직선거리로 따지면 겨우 1킬로에 불과한 짧은 거리지만 운동장의 정해진 트랙을 도는 것은 매일 같은 일상을 반복하는 것만큼이나 지루합니다. 또한 새로운 한 바퀴를 시작할 때마다 의지의 다짐 같은 것이 필요하기도 합니다.
운동장을 뛰는 동안 아들과 저는 아무 말이 없습니다. 우리는 둘이서 나란히, 그러나 언제나 혼자 뛰고 있는 셈입니다. 혼자서 의지를 다지고 혼자서 자신과 대화를 해야만 합니다. 적어도 저는 그랬습니다. 너무 배가 고프거나 너무 힘이 들 때는 아들의 존재가 의식되지 않았습니다. 그런 제 자신에 대해 깜짝 놀란 적도 있었지만 그것이 인간의 한계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내리사랑이니 아들녀석이야 더 뻔할 노릇이지만 그래도 은근히 그것이 궁금해집니다.
"힘들지? 어때, 힘들 때는 아빠가 곁에 있어도 도움이 안 되지?"
맨손 체조로 몸을 풀고 난 뒤에 철봉대로 향하면서 아들녀석에게 물어보았습니다.
"그런 것 같아요."
"혼자 뛴다는 생각은 안 들었어? 혼자라는 생각 말이야. 아빠가 있긴 해도."
저는 좀더 아들녀석의 마음을 알고 싶은 것입니다. 하지만 아들은 쉽게 표정을 잡혀 주지를 않습니다. 눈썹을 치켜 뜬 채 잠시 생각을 하는 듯하더니, 싱거운 웃음을 던지고는 저만큼 가 버리는 것입니다. 녀석은 이미 제가 묻는 질문의 함정을 간파했는지도 모릅니다.
"대학 때였을 거야. 전주 근처 부안에 변산 해수욕장이란 데가 있는데, 약 2킬로 정도 되는 바다를 헤엄쳐서 건너간 적이 있었지. 혹시 쥐가 날지도 몰라서 친구에게 튜브를 가지고 따라오라고 했는데, 그때 무엇이 가장 힘들었는지 아니?"
"그거야 모르지요."
녀석은 기억이 날 듯도 한 어느 개그맨의 몸짓과 목소리로 흉내를 내어 대답합니다.
"혼자라는 것이었어. 친구가 따라오고 있었지만, 포기를 하면 모를까 그 친구는 아무런 도움이 될 수가 없었지. 이 삼 초 간격으로 똑같은 동작을 반복하면서 파도를 타고 가는데 무엇보다도 이 바다에서 혼자라는 사실이, 그것도 한 시간 이상을 계속 혼자여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힘들었어. 이해가 가니?"
"네."
이번에는 눈빛도 목소리도 조금 전의 장난스럽던 것과는 판이하게 다릅니다.
"그런데 말이야, 끝까지 다 와서 바위에 오르자마자 쓰러지고 말았는데, 그때 무엇이 가장 나를 기쁘게 한 줄 아니?"
"……?"
"그것도 혼자라는 것이었어. 혼자서 무엇을 해냈다는 성취감 같은 거 말고, 다만 혼자서 바다에 떨어져 있었다는 것. 혼자 있는 그 시간을 이겨냈다는 것. 바로 그런 것이었지. 우리는 고독할 필요가 있는 거야. 고독할 필요가 있다는 말, 이해하지?"
"네."
아들에게 처음으로 사용한 '고독'이라는 단어입니다. 그 단어가 지니고 있는 뜻을, 그리고 인간이 고독할 필요가 있다는 그 말을 아들녀석은 이해하고 있다고 제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다시 확인하고 싶어졌습니다.
"왜 고독할 필요가 있지?"
"음, 그러니까, 혼자 있고 나면 성숙해진 느낌이 들어요."
저는 대답을 하는 아들녀석의 눈을 뚫어지라고 바라보았습니다.
"그래! 그렇지?"
저는 운동장을 걸어 나오면서 고독을 이해하고 있는 아들녀석에게 이렇게 한 마디를 더해 줍니다.
"사람이 성숙해진다는 것은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지. 그러니까 혼자일 수 있는 사람이 또 남을 사랑할 수도 있는 거야. 맞지?"
"네."
그런데 짧게 대답을 한 뒤 아들녀석의 입이 다시 열리고 있었습니다. 저 입에서 또 무슨 말이 나올까?
"아빠, 저는 외아들이잖아요. 그래서 제가 혼자 지내다 보면 혹시 이기적인 사람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해요. 저에게 그렇게 말해 주는 사람도 있고요. 그런데 아빠, 제가 이기적이에요?"
저는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사을이, 가끔 보면 학생회 예배가 끝나고 찬양집을 혼자 다 정리하고 있대. 이기적인 사람이 그럴 수 있을까?"
아들녀석은 대답대신 입이 일자로 찢어집니다.
"그런데, 가끔은 또 그런 모습이 보이기도 해. 방학 때 정식이랑 유진이랑 놀러오면 처음에는 잘 대해 주다가도 나중에는 짜증내고 그러는 거."
"그건 그래요. 혼자 있는 것이 습관이 되어 그런지 처음에는 반갑다가도 자꾸만 짜증이 나요. 애들 보내고 나면 늘 그것이 후회가 되곤 했어요. 그런데 제가 지금도 그래요? 많이 고치려고 노력했는데."
"맞아. 이번에도 보니까 동생들에게 잘 해 주더라."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들녀석의 눈이 스스르 감기더니 입이 다시 일자로 찢어집니다. 그런데 그 익살스러운 모습을 보니 방금 전 아들의 입에서 고독이란 단어가 발음된 것이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어느 것이 아들의 진짜 모습일까? 저는 그런 생각을 해보다가 곧 이런 결론을 내렸습니다. 지금 아들녀석은 아이와 어른, 두 개의 세계를 왕래하고 있는 것이라고. 그리고 인간으로서 홀로 서기 위해 고독을 연습하고 있는 중이라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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