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주구검(刻舟求劍)의 '자살 사이트'

생명의 존엄성 경시, 세상 얕보는 무치한 행동

등록 2002.03.28 14:00수정 2002.03.28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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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때, '사의 찬미(死의 讚美)'란 노래를 부른 윤심덕(尹心悳·1897∼1926)은, 우리나라 최초의 성악가이자 연극배우로 등장했다. 빼어난 미모와 지성을 겸비한 그녀는, '신(神)이 시기하는 목소리'라고 당시 언론들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을 만큼, 인기가 하늘 높은줄 모르고 절정으로 치솟았던 것이다.

그런 그녀가 1926년 8월 4일 새벽 4시, 일본 '시모노세키(下關)'에서 부산(釜山)으로 향하는 관부연락선 덕수호(德壽號)를 타고 귀국하던 중, 일제시대 지식인으로 손꼽혔던 김우진(金祐鎭·1897∼1926)과 함께, 먼동이 터오는 현해탄 앞바다에 몸을 던져 비련의 정사(情死)로 갑자기 생을 마감했으니 세상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 윤심덕의 애인이자 극작가였던 김우진은 유부남으로써, 그냥 사랑의 불장난으로 동반자살한 주인공쯤으로 세인들에게 각인 돼 있지만, 사실 그는 근대연극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천재문사였다.

이렇게 당대의 두 지성이 서로 부둥켜 안고 30세의 나이로 짧은 인생을 마감한 것은, 아주 그때로선 커다란 충격적 사건이었다.

일본의 경우를 보면 에도시대(江戶時代·1653∼1868)에 관습과 규범의 속박으로 인해, 젊은 남녀의 정사가 많았는데, 아마 일본에 유학을 했던 윤심덕으로서는 그 영향을 많이 받아 유부남과의 이루지 못할 사랑을 정사로 끝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 후, 국내에서는 '정사'가 연극과 소설의 소재로 빈번하게 사용되기 시작했고, 현대에도 심심치 않게 매스컴에 오르는 사건으로 '자살'의 한 유형으로 남아 있다.

'정사'는 말 그대로 사랑하는 남녀가 함께 그 뜻을 이루지 못할 때라든가, 또는 다른 사정으로 말미암아 함께 자살(自殺)하는 것을 뜻한다. 자살은 자발적, 또는 의도적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행위다.


'정사'와는 거리가 좀 있지만, 세계 정신분석학자들은 자살에 대한 연구를 이미 종교적, 철학적, 그리고 사회학적인 측면에서부터, 심리적, 생물학적인 측면에 이르기까지, 자살자의 정신 심리를 연구대상으로 삼았는가 하면, 유전생물학적 입장에서도 자살을 설명하는 학자도 있다.

그러나 사회문화적 입장에서 자살을 분석한 프랑스의 사회과학자 에밀 뒤르켐(Emile Durkheim·1858∼1917)은, 1897년 '자살론(원제:Le Suicide)'이란 저서를 통해, 개인의 자살동기 유형을 사회의 안정성이나 가치규범에 연관시켜, "근대사회에서 현실과 타협하지 못한 사람들이 시도하는 이기적(利己的) 자살", 또는 이기적 자살과는 반대로 "현실사회에 너무 밀착되어 발생하는 이타적(利他的) 자살", 무통제적으로 사회에 융화되는 것이 차단되거나 와해됨으로써 "행동의 일상적인 기준을 상실하는 아노미(anomie)적 자살", 이렇게 3가지로 구분했다.


'아노미'라 함은, 사회의 가치관이 붕괴되고 목적의식이나 이상(理想)이 상실됨에 따라 사회나 개인에게 나타나는 불안정한 상태를 말한다. 따라서 지난 IMF가 가져다준 우리사회의 한때 'IMF형 자살'이 바로 '뒤르켐'이 분류한 '아노미적 자살'의 한 전형적인 예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천재(天才)가 아니면 자살할 수 없다는 가설(假說)도 있다. 19세기 독일의 철학자 니체(Nietzsche·1844∼1900)를 비롯해, 미국의 작가 헤밍웨이(Hemingway·1899∼1961), 네덜란드의 화가 고흐(Gogh·1853∼1890), 프랑스의 사실주의자이며 '여자의 일생'의 작가 모파상(Maupassant·1850∼1893), 1968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던 일본의 '설국(雪國)'의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1899∼1972)등이 모두 자살로 생을 마감한 천재들이었다.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것은 정상적인 사람들로서는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대게 '독한 사람'들이 자살하는 것으로 일반인들은 알고 있지만,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은 대부분 심약한 성격이라는 게 심리학자들의 공통적인 정설이다.

그런데 이제, 국내 인터넷 '자살사이트'를 통해 동반자살을 하는 사람들이 늘고 촉탁살인까지 벌어져 이 사회에 충격을 주고 있다. 일본이나 외국에서는 종종 벌어지는 일이지만 국내에서는 '자살' 관련 사이트가 등장한 이후 점점 늘어나는 추세여서 그 놀라움이 더 하다.

이슬람교·유대교·그리스도교 사회에서는 자살을 죄악으로 간주하고 있다. 성경에도 "사람이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오"라고 생명의 존엄성을 강조했고, 맹자(孟子)도, "스스로 자신을 해치는 사람과는 함께 말할 것이 못되고, 스스로 자신을 버리는 사람과도 함께 일할 수 없다"고 까지 말했다.

"이보게 젊은이들이여! '정사'도 이해하기가 어렵거늘 자살이 왠 말인가. 두 번 만나지 못하는 이 세상 넓은 시야(視野)로 바라봐야지 그렇게 각주구검(刻舟求劍)이 되어서야 쓰겠는가. 세상을 너무 얕보는 것 같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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