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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겨레21 97.1.9일치 대선후보 가상대결 여론조사 1탄. |
나는 정계개편을 바라는 네티즌으로서 노무현 공식홈페이지 '노하우'(www.knowhow.or.kr)에 1년 넘게 출입을 해왔다. 나는 줄곧 노하우를 용지 삼아 잡문을 써왔다. 글도 열심히 퍼날랐다. 노하우는 노무현이 장소를 제공하고 정치개혁을 바라는 네티즌들이 만들어 세운 사이버정부였다. 비단 나뿐이었겠는가. 노하우 사람들은 상식 혹은 희망을 화두로 이 땅에 '겸손한 권력'이 등장하는 순간을 갈망했다.
그런데 지금 우리들의 희망사항인 정계개편을 음모라고 터무니없는 주장하는 정치인이 있다. 노무현 식의 정계개편에 반대한다면 모르겠다. 이인제 고문은 허위 사실도 쟁점화해 줄 것으로 믿는 언론이 있는지, 질풍노도의 속도로 정계를 강타하고 있는 노풍에 맞서 연일 뚱딴지 같은 소리를 해대고 있다. 허위 사실에 뿌리를 둔 헛바람 정치는 오래 가지 못한다.
권불십년이라고 하지만 이인제 고문의 지난 권세 5년은 과분한 것이었다. "뒤에 음모가 있다"고 하는 음모론의 정치인은 사이비 정치인의 반열에 달아매야 한다.
나는 여기서 이인제 고문의 실체 없는 음모론에 대해서는 노하우 게시판에 새겨져 있는 펌글로 노무현의 정계개편론이 오래된 정치철학임을 물증으로 제시하겠다.
다음으로 나는 지난 대선 때 단기필마로 짧은 시간에 급부상해서 대통령감이 된 이인제 고문이 노풍에 대해서는 광기라며 히틀러까지 끌어들이는 자기부정의 모순적인 태도를 질타할 것이다. 이인제 고문도 사실은 5년 전 바람과 광기로 부상했다.
그걸 부정하려는가. "나를 키운 건 8할이 바람"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사람들이 정치인이다. 왜 그렇게 정치를 가도 가도 부끄럽게만 하는가.
사람들은 노사모(www.nosamo.org)를 잘 알지만 노하우(www.knowhow.or.kr)는 잘 모른다. 다들 노무현을 검색해서 방문을 하는 이곳은 노무현 공식홈페이지로서 좌우의 날개를 펼치는 성질 깔끔한 논객들이 즐겨 찾는 곳으로 북마크된다. 이제 노하우는 정치인 노무현의 인기 급등으로 방문객이 급증하여 접속도 잘 안될 만큼 문전성시를 이루게 되었다. 예전과 달리 민원성 글과 도배 글장난이 난무하는 걸 보면 마치 청와대가 된 느낌이 든다. 나는 거기서 지역차별정치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무더기로 만나, 국민통합과 정치사회 개혁을 주제로 많은 대화와 토론을 나눴다.
우리는 노무현의 정치 역정이나 인간 됨됨이에 반해 제발로 걸어온 문하생들이었다. 이인제 고문의 말을 빌리자면 급진 좌경인 사람들일 그들 대부분은 노무현의 정책노선에 눈높이를 맞춘 온건 진보세력이거나 합리적 보수세력이었다. 노하우 사람들은 민주노동당이나 사회당 게시판에 가면 허구한 날 한심한 보수주의자들로 구박받고 진짜 진보진영으로 귀순하라는 회유를 받고 사는 사정도 알아주기 바란다.
나는 한국정치의 판갈이를 바라는 사람으로서 이인제 고문측에서 끄집어낸 근거없는 음모론에 대해서 무책임한 정치공세에 불과하다는 근거를 갖고 있다. 상식 혹은 희망이라는 코드로 통하는 바람의 정치인 노무현 고문의 인기가 급상승해 이인제 대세론을 잠재워버리자 이인제고문 진영에서는 음모론을 유포시켰다. 새삼스럽지만 노무현은 이미 오래 전에 네티즌의 대통령이었고 대세였다. 정치인 주가를 성적 순
으로 매겨 실시간으로 반영하는 정치주식사이트 포스닥(http://www.posdaq.co.kr)에서 노무현 정치주식은 대통령주로 군림한지 오래다.
웹사이트 평가전문 랭키닷컴의 2002년 03월 22일 조사 결과에서 '노하우'는 전체 순위 842위로 2421등 하는 이인제 고문 하고 비교가 안될 정도로 노무현 지지자들은 인터넷 도처에 창궐했다.
내가 기억하는 노무현의 '정계개편론'이 언론에 등장한 건 노 고문이 언론에 해명한 지난 해 10월 이전인 7월 12일이었다. 당시 노 고문은 대구한겨레문화정보센터가 주최한 언론특강에서 '정책과 노선에 따른 정계개편'을 주장했다. 그 흔적은 노하우게시판에 "[대구mbc] 민주당의 대통령 선거후보가 결정된 뒤 정계개편 있을 것"이라는 글로 남아 있다. 게시된 글은 대구문화방송 도건협 기자의 7월 12일치 "노무현, 후보 결정뒤 정계개편 주장" 보도내용을 퍼나른 것이었다.
"노무현 고문은 오늘 오후 경북대에서 열린 네티즌을 위한 언론강좌 특강에서 지금 우리나라의 정치구도는 정책, 노선과 관계없는 비정상적인 지역구도라면서 민주당의 대선 후보가 결정된 뒤 대선 이전에 정계 개편이 이뤄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습니다." <도건협, 2001, 7,12 대구문화방송 9시 뉴스>
나는 지금 이인제 고문이 '정계개편론'을 문제삼는 것은 상대를 모르고 하는 백전백패의 경선전략이고 실체 있는 음해라고 본다. 그것이 아니면 입에 담아서는 안될 말이다.
거꾸로 나는 이인제 고문에게 따라 다니는 '경선불복 음모론'을 지난 대선과정을 역추적하여 지펴보겠다. 음모는 10cm를 웃자라지 않는다고 했는데, 특정정치인의 실체 없는 음모론은 왜 그렇게 언론에서 무럭무럭 자라나는지!
내가 알기로 2002년 '대세론'에서 '거품론'으로 정치적 위상이 점점 가라앉고 있는 이인제 후보는 97년 초만 해도 대권주자로 명함을 내밀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97년 1월9일치 한겨레21은 97년 대선가상대결 "이회창 박찬종 djp에 승산"을 표지이야기로 다루고 있다. 이때 이인제 고문은 신한국당 9룡 가운데 한 사람일 뿐 거의 비중없는 무명 정치인에 지나지 않았다.
97년 3월 20일치 대선후보 가상대결 2탄에서 이인제 고문은 후보군에서도 밀려난다. 한겨레21 6월 5일치 기사는 신한국당 8룡 안에도 들어가지 못하는 이인제 경기지사를 "오전엔 결재, 오후엔 경선운동"을 이라는 제하에 '단기필마로 중앙 정치무대에 뛰어든 지방사람'으로 소개하고 있는 정도였다. 그는 여론의 지지가 상승하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 "국민들이 변화를 원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라고
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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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사저널 97.6.19일치 확률 3%대의 이인제후보 지지도. |
비슷한 양상은 시사저널이 신한국당 대의원과 국회출입기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 한 6월 19일치 기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던 것이 6월 26일치 한겨레21은 겨우 대권후보군에 오르락내리락했던 이인제 고문이 갑자기 깜짝 놀랄 후보로 부상하여, 정권 재창출을 위해 민주계 인사들이 결집해 만든 정발협에서 이인제 지사를 대안으로 조심스레 거론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우리는 절대로 이 현상을 음모의 시각으로 이해하지 않는다.
"일반 유권자들을 상대로 한 <조선일보>와 한국갤럽의 여론조사 결과(6월16일) ‘누가 대통령 적임자라고 생각하느냐’는 문항에서 이 지사는 11.1%로 신한국당 후보 가운데 이회창 대표(16.5%)와 박찬종 고문(13.2%)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한겨레>가 실시한 신한국당 선출직 대의원들을 상대로 한 조사(6월16일)에서도 이 지사는 17.7%로 이 대표(36.6%)에 이어 2위로 나타났다.
이는 `이 지사의 대중적인 인기가 ‘대의원들의 표로까지야 연결되겠느냐 ’는 정치권의 회의적인 예상을 뒤집고 실질적인 당심으로까지 발전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같은 기사에서 한겨레21은 <이 지사의 급부상 원인은 무엇보다 지난주까지 계속됐던 텔레비전 3사의 토론회라는 데에 정치권의 분석이 일치한다. 분명한 자기 철학과 정연한 논리, 군더더기 없는 말솜씨 등이 박정희를 닮은 외모와 연결되면서 국민들에게 “똑똑한 젊은 정치인”이라는 인상을 심어줬다는 것이다. 실제로 텔레비전 토론회 직후에는 이 지사의 캠프 사무실은 “쏟아지는 격려전화로 다른 일을 하
지 못할 정도였다”고 한 관계자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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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겨레21 97,6,26일치 깜짝놀랄 이인제의 급부상? |
그리고 이른바 김심이나 의원 및 지구당위원장을 상대로 한 상층부 공략 작전이 아니라 국민을 상대로 한 하층부 공략 작전이 주효했다는 점에서 이들의 자부심은 더욱 크다>고 분석했다.
그는 집권 말기 이런저런 이유로 정치적 식물인간에 가까운 대통령으로부터 얻을 민심이 별로 없다는 것을 일찍이 깨달았다. 그 스스로 국민을 상대로 한 정치에서 실익을 챙겼다. 2002년 대권은 따논 당상이라고 '대세론'을 유포시켰던 이인제 고문은 요즘 노무현의 돌풍에 대해서 심기가 편치 않은 모양이다. 그는 노무현의 질풍노도와 같은 바람몰이를 '음모론'으로 깎아내리기에 골몰한다. 그러나 바람의 정치
에 대한 이인제 고문의 인식태도는 공정하지 못하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나는 97년 이인제 돌풍과 2002년 노무현 돌풍 사이에는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한 점이 있다고 본다. 초특급 돌풍, 20-30대 지지자 공유, 세대교체론, 광범한 부동층의 흡수, 서민형 지도자는 같은 점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광주경선에서 나타난 호남민심이 노무현에게 쏠림으로 노무현이 전국에 기반을 둔 정치인으로 낙점을 받을 가능성이 커졌다는 점은 다르다. 정치개혁을 바라는 민심은 노무현쪽으로 불어갔다. 이인제 고문의 흥행요인은 노무현에게 잠식당해 버린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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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사저널 97.10.30일치 '이회창 바꾸기 프로젝트'. |
신선하다는 평을 받았던 지난 대선 때와 비교해 보면 이인제 후보는 이회창 후보가 취했던 어법을 닮아간다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지난 대선과정에서 그 역시도 김영삼 지원설로 곤혹스러워하기도 했다. 지금 그는 그때 배웠을 법한 DJ의 노무현 지원설을 유포하고 있다. 그러나 경선대책 본부를 해체하고 링 위로 돌아온 이인제 후보가 계속해서 맞바람으로 지펴보려는 색깔시비나 음모론은 낡아빠졌다. 박수보다는 여론의 몰매를 맞을 것이다.
그가 만약 음모정치에 반대하는 깨끗한 정치인이라면 97년 대통령선거 때 이회창 바꾸기 음모가 진행될 때 명확하게 반대하는 선례를 남겼어야 했다. 97년 10월 30일치 시사저널은 여권 핵심 내부에서 극비리에 문건을 단독 입수하여 '이회창 바꾸기 프로젝트'가 진행된다는 소식을 전했다. 당시 경선에 불복하고 탈당한 이인제 고문은 2순위 구원투수 명단에 올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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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겨레21 97,8,21일치 "이인제, 미련은 무섭게 남아... |
아직까지 이인제 고문은 민주당 경선에서 1위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그런데도 그가 경선에 불복할 궁리를 하는 정치인으로 오해받는 뿌리깊은 불신감은 어디서 연유하는 것일까? 그는 지난 신한국당 경선에서 나쁜 선례를 남겼다. 97년 7월 21일 이회창씨가 2차 투표 끝에 신한국당 대통령 후보로 확정된 뒤, 이인제 고문의 정치일정은 호시탐탐 경선불복의 순간을 노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대통령선거에 출마하여 대한민국 정치사에 길이 남을 이인제학습효과를 만들어낸다.
이번 민주당 국민경선에서도 그는 중간에 경선불참 번복을 해서 나쁜 선례를 추가했다. 지금 여론 추이를 보면 그에게는 다가오는 지방 |
| ▲한겨레21 97.12.4 표지 "심장이 터질 듯한 마지막 승부" |
선거가 이회창 총재 자제분의 병역기피 의혹에 비견되는 경선불복을 위한 좋은 핑계거리일지도 모른다. 그는 계속해서 마지막 악례로 남아야 하고 떨떠름한 정치인으로 기억되어야 한다. 나는 이번 대선이 경선에 불복하는 반칙왕 정치인들의 께림칙한 행보를 종식시켜 좋은 선례로 남길 절호의 기회라고 본다. 그렇다. 이인제 학습효과에 이인제 경선효과까지 반복할 정도로 민도는 낮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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