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한 번 신문선이 돼 보는 거다"

'명 해설자' 유창선 박사의 경선 인터넷 생중계 체험기

등록 2002.03.28 18:49수정 2002.04.01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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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6일 광주 염주체육관에서 열린 민주당 광주 경선을 생중계하고 있는 <오마이뉴스> 이병한 기자(좌)와 시사평론가 유창선 박사. ⓒ 오마이뉴스 이종호

민주당 대선주자 광주 경선 생중계 기사 · 동영상 보기(3월 16일)


(오마이뉴스의 민주당 경선 동영상 생중계는 오마이뉴스가 인터넷신문이자 인터넷방송임을 선언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오는 경남(3월 30일, 토), 전북(3월 31일, 일)경선 도 동영상 생중계를 할 예정입니다. 이 글은 경선 생중계를 통해 '명 해설가'로 데뷔한 유창선 박사의 체험기입니다.)

민주당 광주 경선(16일)이 있기 사흘 전 밤, <오마이뉴스> 오연호 대표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광주 경선을 생중계하려고 하는데 같이 안 가겠느냐는 것이었다. 주말에는 그 동안 밀려서 독촉 받아온 원고들을 일거에 해결하리라 단단히 마음먹고 있던 터라 일단 망설였다. 중계라고 해봐야 그저 카메라로 연단이나 비추고 있는 그런 것일 거라고 생각한 나로서는, 밀린 원고 해결이 더 중요해 보였다.

그런데 오연호 대표는 느닷없이 축구중계 얘기를 꺼냈다. 그런 방식은 어떻겠느냐는 것이다. 새로운 발상에 일단 솔깃해 15분 후에 답을 주기로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렇다! 흉내를 한 번 내보는 거다. 신문선이 돼 보는 거다"

그러나 답을 주는 데는 채 3분도 걸리지 않았다. 전화를 끊은 내 머리 속에는 송재익과 신문선이 떠올랐다. 그렇다! 흉내를 한번 내보는 거다. 신문선이 돼 보는 것이다. 그동안 정치평론을 한답시고 이 방송, 저 방송 나가 얼마나 근엄하고 무게있는 비평들을 해왔던가.

아! 그래서 정치란 얼마나 재미없고 딱딱한 것이었던가! 정치도 한 번 축구중계처럼 재미있게 해설을 해보자. 소리도 지르고, 환성도 올리고. 어디 한번 망가져보자.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대통령후보를 제대로 뽑는데 관심을 더 갖게 된다면 그 또한 얼마나 괜찮은 일이겠는가. 그래서 나는 만사 제쳐놓고 광주로 같이 가겠다고 답했다.


<오마이뉴스>와 나의 국민경선 대장정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광주 경선 당일, 염주체육관에 도착하자 모두 18명에 달하는 오마이뉴스 기자들, 그리고 라이브투닷컴과 디지털 미동의 제작진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MBC, KBS, SBS TV와 나란히 <오마이뉴스>의 중계석이 설치되어 있었다. 아! 그것은 장난이 아니었다.

<오마이뉴스>의 기자들은 어엿한 진행자가 되었고 리포터가 되었다. 그러나 처음 생중계 마이크를 잡고 카메라 앞에선 그들은 약간은 서툴 수밖에 없었다. 사회를 맡은 이병한 기자는 연습을 하면서도 얼굴이 빨개졌다. 리포터로 나선 구영식 기자는 왜 그리 고개를 흔드는지.


나의 실수는 또 어떻고!

유창선 이제 전자투표가 실시되어 붓뚜껑에 인주를 묻힐 일이 없어졌습니다.
이병한 붓뚜껑도 인주도 없어졌습니까?
유창선 예! 붓뚜껑도 없습니다. 인주도 없습니다! 기표소도 없습니다.
이병한 기표소는 있는데요!


아뿔싸! 뒤를 돌아다보니 기표소에는 멀쩡히 하얀 천이 가려져 있었다. 그 사이에 천이 내려진 것이었다. 굳이 쓸데없는 걸 다시 물은 이병한 기자를 원망하는 수밖에 없었다. 우리들의 어설픈 현장중계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그러나 <오마이뉴스>의 기자들과 제작진들은 결코 '아름다운 꼴찌'가 아니었다. 이들은 이내 '아름다운 선두'로 질주하는 저력을 보여주었다. 난생 처음 하는 생중계임에도 한 번의 사고도 내지 않은 채 중계는 계속되었다. 처음 하는 사람들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의 일사분란함과 조직적인 움직임이 돋보였다. 내가 보기에 <오마이뉴스> 기자들의 움직임은 3대 공중파 방송사 누구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었다. 아니, 그들이 보여주지 못한 격의없음을 <오마이뉴스> 기자들은 보여주고 있었다.

"아! 이럴 때 해설자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나..."

날 한 번 제대로 골랐다. 바로 그날 광주시민들은 감동적인 정치드라마를 우리에게 선사했다. 호남의 중심부에서 영남출신의 인물을 선택하는, 망국적인 지역감정의 벽을 넘어서는 결단을 우리는 생생하게 지켜보았다.

노무현 후보 1위! 아! 이럴 때 해설자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나. 적당히만 환호하며 공정한 척해야 하나? 모르겠다. 나는 소리를 내질렀다. "아! 파란입니다! 한 편의 정치드라마란 이럴 때 쓰는 말 아니겠습니까!" 목이 터져라 내질렀다. 한국팀이 골을 넣었을 때 신문선이 내지르던만큼 나도 내질렀다.

순간 눈시울이 뜨거워짐을 느꼈다. 노무현이라는 특정 후보가 이긴 게 기쁜 것이 아니었다. 인연으로 치자면 나는 그가 사는 밥 한 그릇도 얻어먹은 적이 없다. 나를 감격시킨 것은 '영남 사람'을 기꺼이 선택한 광주시민들의 결단이었다. 천형(天刑)과도 같았던 망국적인 지역감정이 그렇게 그곳 광주에서 아래로부터 무너져 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오랜 역사 속에서 지역감정의 업보를 이고 살아온 광주시민들이 주저하지 않고 영남을 껴안는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준 것이다. 그 순간 체육관 플로어에서는 '노짱'의 지지자들이 서로 껴안고 기쁨의 울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 지난 24일 춘천 호반체육관에서 열린 민주당 강원 경선을 생중계하고 있는 <오마이뉴스> 구영식 기자(좌)와 시사평론가 유창선 박사. ⓒ 오마이뉴스 이종호

민주당 대선주자 강원 경선 생중계 기사 · 동영상 보기(3월 24일)


광주의 드라마를 잊지 못하던 우리는 지난 일요일(24일) 춘천 호반체육관에서 다시 만났다. 사회자가 이번에는 구영식 기자로 바뀌었다. 자기들이야 돌아가면서 하는 재미가 있겠지만, 나는 사회자와 다시 처음부터 호흡을 맞추어야 하는 인내를 감수해야 했다.

하지만 이제 탄력이 붙는 느낌이었다. 한두 차례의 기술적인 문제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순탄하게 생중계는 진행되었다. 현장감독을 맡은 강수연 씨의 큐 사인에 맞추어 사회자와 해설자, 그리고 리포터들은 한결 능숙하게 보조를 맞추어 나갔다.

이 날은 자원한 시민기자들까지 리포터로 나섰다. 떨리는 표정으로, 떨리는 목소리로, 그들은 감격스러운 생애 첫 데뷔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색하기로 치자면 이한기 정치팀장을 따를쏘냐. 인사말에 나선 그는 책을 읽고야 말았다.

나는 마이크 앞에서 농락을 당하고 말았다

그랬던 그가 나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중계 도중 잠시 휴식시간이 시작될 때 이한기 기자는 중계석에 있는 나에게 다가와, "힘들죠?"라고 말을 건넸다. "아! 이거 힘들어 죽겠다! 엉덩이도 아프고! 이거 중노동이다!." 나는 큰 소리로 답했다. 그때 이 기자 왈, "선배, 이거 마이크 살아있나 봐요! 선배 얘기가 생중계되고 있어요." 순간 내 얼굴의 표정이 바뀌었다. 잠시 후 "농담이예요-." 나는 마이크 앞에서 농락 당하고 말았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이 무슨 대수이겠는가. 노무현-이인제, 두 사람의 불꽃튀는 대결은 다른 모든 어색함을 덮어버리기에 충분했다. 연설도 치열한 공방. 박수소리도 백중세. 누가 이길지 정말 예측불허의 현장 분위기였다. 개표 시간을 앞두고 두 가지 멘트를 준비해야 했다. 이인제 후보가 이기는 경우, 노무현 후보가 이기는 경우, 두 가지 상황을 모두 대비해야 했다.

결과는 노무현 후보의 승리. 불과 7표 차이, 0.5%에 불과한 득표율 차이였다. 손에 땀을 쥐는 승부란 이런 것을 가리키는 것 아니겠는가. 우리는 정말 극적인 승부가 연출되는 경선만을 골라 중계하고 다니는 행운을 누리고 있었다.

독자의견에 글을 올린 한 네티즌은 우리의 생중계를 가리켜 주말연속극이라 표현했다. 주말드라마만큼 재미있다는 이야기이다. 아! 그건 이미 우리가 먼저 했던 소리였다. "정말 재미있다!" 생중계를 하면서도 이런 말이 절로 나왔다.

그래서 나는 춘천에서는 이런 말로 인사를 대신했다. "월드컵만큼이나 흥미진진한 국민경선. 월드컵 중계만큼 재미있게 보내드리겠습니다." 이 말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그 날 춘천의 호반체육관에서는 '용쟁호투'가 벌어졌고, 7표 차이의 승부는 정말 월드컵만큼이나 재미있었다. 그 속터졌던 정치가 이렇게 재미있는 것이 될 줄이야.

우리의 주말연속극은 계속된다. 네티즌들이 집안에서 정치드라마를 볼 수 있도록 우리는 접전의 현장으로 계속 달려갈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주말연속극은 인기가 있으면 횟수를 늘이며 질질 끄는 게 전통적인 수법이다. 그런데 우리의 주말연속극은 인기가 날로 높아지고 있는데도 조기 종영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생겨나고 있다. 혹, 후보사퇴나 경선불복 사태로 경선이 무너져버리는 사태가 있을지 모른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안될 일이다. 이 재미있는 드라마를 계속 보기를 원하는 국민들을 생각한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월드컵만큼 흥미진진한 국민경선. 끝까지 제대로 가야 한다. 그것이 이번에 출마한 후보들이 버려서는 안될, 국민에 대한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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