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의 행복지킴이, 클로버

추억 속의 꽃

등록 2002.03.29 19:10수정 2002.03.29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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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은 사람에게 도움을 많이 줍니다. 먹거리가 되어주기도 하고, 병을 고쳐주기도 합니다. 상처받은 마음을 어루만져주기도 하고요. 우리 집 클로버는 내게 작은 행복을 주고 있습니다. 내가 처음 클로버와 만난 건 3년 전 봄날입니다.

"아니, 저것은?"
어느 날 저녁, 나는 화분 가게 앞을 지나다가 클로버 화분을 발견했습니다. 클로버는 분홍색 꽃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분홍색 꽃을 바라보니 문득 일본에서 지내던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당시 나는 클로버를 키웠고, 놀랍게도 클로버는 분홍색 꽃을 피웠습니다. 분홍색 클로버 꽃을 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분홍색 꽃은 이국생활의 외로움을 달래 주었고, 현해탄으로 띄워보내는 편지 속의 주인공도 되었습니다.


"어떡하지?"
2년 8개월의 일본 생활을 마치고 귀국할 때 클로버를 두고 떠나려니 마음이 쓰라렸습니다. 고민 끝에 한국으로 클로버를 가져가기로 결심했고, 출국 전날 클로버 알뿌리를 조심스레 캔 다음 비닐 봉지에 싸서 가방 깊숙히 숨겼습니다. 몰래 식물을 밀반출하다가 걸리면 쇠고랑을 찰지도 모르니까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공항 검색대를 지났고, 무사히 한국으로 클로버를 밀반입(?)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하늘을 날아갈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습니다. 하늘이 무너져내리는 일이 생겼습니다. 이삿짐을 정리하고 방을 구하는 통에 클로버 알뿌리가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한동안 슬픔 속에서 지냈는데, 그러다 그날 우연히 분홍색 클로버 꽃을 발견한 것입니다.

나는 지갑을 탈탈 털어 클로버 화분을 샀습니다. 그리고 마치 보물이라도 얻은 양 아내에게 화분을 자랑했고, 옛이야기도 들려주었습니다. 클로버는 신혼 초 지하에 구한 방을 아름답게 만들어주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집들이 때 처형이 말했습니다.
"이 꽃. 너무 예쁘다!"
처형도 분홍색 클로버 꽃을 처음 본 듯했습니다. 나는 큰맘먹고 처형에게 클로버 알뿌리를 나눠주었습니다. 클로버는 다시 알뿌리를 늘려 꽃을 피울 테니까요. 그런데 알뿌리를 다쳤는지 클로버는 더 이상 꽃을 피우지 않았습니다.

"다시 꽃이 필까?"
나는 초조한 마음으로 포기가 반으로 줄어든 클로버를 바라보았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이따금 물을 주고 꽃이 피기를 소망하는 것이었습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던가요? 클로버는 다시 가지를 쳤고 꽃대도 자라났습니다. 마침내 햇살 맑은 날 분홍색 꽃을 피웠습니다. 꽃은 더없이 아름다웠습니다.

잘 자라던 클로버는 딸아이가 태어난 뒤로 수난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우는 딸아이를 안고 클로버 곁으로 가서 "꽃 예쁘지?"하니까, 딸아이가 잎파리를 잡아뜯은 것입니다. "클로버가 아파요"하고 말해도 딸아이는 막무가내였습니다. 그 뒤로도 딸아이는 클로버를 보면 울음을 그쳤습니다. 하지만 딸아이 울음소리가 들릴 때마다 클로버 잎은 줄어들었습니다.


"저러다 벌거숭이 되겠네?"
얼마 뒤 나는 아무리 딸아이가 울어도 클로버 화분 가까이에는 가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클로버는 점차 무성해졌습니다.

클로버는 상계동에서 갈현동으로 이사올 때 따라왔고, 햇빛을 더 많이 받은 까닭인지 잘 자랐습니다. 신기하게도 지난 봄부터 지금까지 계속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꽃이 피었다가 지고 나면 다시 꽃대가 올라와 꽃을 피우는 것입니다. 상록초는 아닐 텐데 방 안에 두어서 그런지도 모릅니다.


"화분 돌려놨어?"
어느 날, 나는 화분을 보면서 아내에게 물었습니다. 화분의 클로버가 평소와 다르게 보였기 때문입니다.
"물만 주면 돼? 햇빛도 골고루 받게 해야지."
아내가 딸아이를 타이를 때처럼 말했습니다.
"......"
갑자기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아내의 말대로 내가 해온 건 물을 주는 것밖에 없었습니다. 창쪽을 향한 클로버 잎들이 햇빛을 더 달라고 아우성치는 듯이 보였습니다. 그 동안 클로버가 꽃을 잘 피운 건 아내 덕분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느덧 클로버를 만난 지 3년이 되었고, 클로버는 우리 가족의 행복지킴이가 되었습니다. 딸아이가 태어났을 때는 함께 기뻐했고, 2년 전 아버지가 다쳤을 때는 함께 슬퍼했습니다. 딸아이가 아플 때는 염려해주었고, 내가 아내랑 다툴 때는 중재자가 되어주었습니다. 어찌 클로버가 그럴 수 있으랴만, 나는 클로버를 볼 때마다 가족의 행복을 위해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다짐해왔으니까요. 이번 주말쯤에는 클로버 화분에 봄기운을 듬뿍 받은 새흙을 넣어주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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