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02.03.29 22:11수정 2002.03.30 10:21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어제 저녁 조금 늦은 퇴근을 하고 집에 들어서는데 아내는 아들에게 '생명의 소중함'을 역설하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옷을 갈아입으며 아내와 초등학교 3학년 아들의 대화는 오늘 하교 길에 사온 '병아리'에 관한 이야기였다.
20 수년 전 내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에도 학교 앞에는 봄이 되면 어김없이 병아리를 파는 아저씨가 찾아왔다. 그리고 몇 학년 때인지 기억할 수는 없지만 나도 병아리를 사와서 내 어머니의 걱정을 들으며 키우다가 얼마 후에 죽음을 맞았던 기억이 있다.
그래도 그 때는 집 밖에 나오면 흙이 있는 골목길이 있고, 어렸을 때 시골생활을 하셨던 부모님이 있었지만, 나는 내 아들이 사온 병아리를 키우는데 아무런 보탬도 될 수 없는 그런 무능한(?) 아빠다.
애완동물을 싫어하는(개, 고양이는 물론이고, 이구아나, 햄스터쯤 되면 기겁을 하는) 아내와 그 보다는 좀 낫지만 아무튼 사람만 빼고 모든 동물들을 좋아하지 않는 나는 아들녀석이 사온 병아리가 보통 골치 아픈 짐승이 아니었다.
뻔히 내다보이는 주검과 생명의 소중함을 알려주려는 아내의 노력이 저녁 내내 계속되었다. 아내는 "엄마, 아빠가 다 사무실에 가고 너희들도 밤이 되어야 집에 돌아오기 때문에 낮 시간에는 이 병아리를 누가 돌볼거냐?", "아파트에서 병아리를 키우면 밤새 삐약 삐약하고 우는 소리 때문에 이웃에 방해가 된다", "돌보고 잘 키울 수도 없으면서 호기심만을 채우기 위해서 병아리를 키우다가 죽이면 소중한 생명을 잃게 하는 나쁜 일"이라고 하면서 큰아들을 설득하였다. 하루만 키우고 병아리를 팔던 아저씨께 다시 갖다주자고...
그렇지만, 우리 부부의 걱정과 상관없이 초등학교 3학년 짜리 큰아이와 여섯 살 먹은 작은 아이는 신이 났다. 아파트 베란다에 놓인 종이상자에 담긴 어린 병아리의 부모 노릇을 하느라 바쁘다. 쌀을 플라스틱 장난감에 담아서 갖다주더니, 요플레 통을 씻어서 물을 떠다주고, 냉장고의 상치를 씻어다 주느라고 시간가는 줄 모른다.
우리 부부는 아이들을 재우며 이 병아리를 어떻게 처리할지를 고민했다. 그리고, 우선 하루만 더 키우고 하루, 이틀이면 싫증을 낼 테니까 그 때는 돌려주기로 아들녀석을 설득하기로 하였다.
바쁜 아침시간 우리 가족은 누구 하나 베란다에 있던 병아리를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직장으로, 학교로, 유치원으로 헤어졌다. 병아리를 사온 큰아들녀석이 쌀도 갖다주고 물도 떠다주고 하였지만, 제대로 먹지 못하는 것 같았다.
오늘 퇴근해서 돌아오니 역시나 하루를 넘기지 못하고 병아리는 죽음을 맞았고, 아이들은 난생 처음 '주검'을 보게되었다. 기겁을 하고 베란다에 빨래도 널지 못하고 아내는 내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당장 병아리를 도로 갖다주라는 아내를 설득할 때 만약 병아리가 죽으면 내가 치우겠노라고 약속을 했더니 늦은 퇴근을 가족들 모두가 기다리고 있었다. '시신'을 아이들에게 보여주려는 아내를 말리고, 유쾌하지 않은 기분으로 병아리 시신을 처리하였다.
20여년이 지난 오늘도 우리의 초등학교 앞 담벼락에서는 따뜻한 봄이 되면, 며칠을 살지 못하고 죽음을 맞을 기계병아리를 팔고 있다. 초등학교 코흘리개들의 300원을 벌어가기 위하여 21세기의 봄날에도 너무 쉽게 아이들에게 생명을 버리는 경험을 팔고 있다.
나의 걱정은 검은 비닐 봉지에 싸여온 병아리의 죽음을 지켜본 아들녀석이 300원짜리 생명이라고 하찮게 혹은 아무렇지도 않게 느끼게 될까봐 두렵다. 세상을 살아가며 생명에 값을 매기고 값비싼 생명과 값싼 생명을 구분하게 될까 두렵다. 생명은 값으로 따질 수 없을 만큼 소중하다는 것을 알려주어야 하는데...
20수년전 내가 사온 병아리도, 어제 오후에 아들녀석이 사온 병아리도 똑같이 그렇게 너무 쉽게 죽어버리고 말았다. 아들은 또 나처럼 얼마간은 '병아리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느끼며 살게 될지 모르겠다. 아들이 이번의 짧은 경험으로 생명의 소중함을 알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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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YMCA 사무총장으로 일하며 대안교육, 주민자치, 시민운동, 소비자운동, 자연의학, 공동체 운동에 관심 많음.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활동하며 2월 22일상(2007), 뉴스게릴라상(2008)수상, 시민기자 명예의 숲 으뜸상(2009. 10), 시민기자 명예의 숲 오름상(2013..2)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