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란 작정을 하고 돌아다니려고 한다면 그 자체가 고통일 때가 많다. 얼마 전 추자도행을 결심하고 주위에 공표를 했지만 아직도 계획을 잡지 못하고 있다. 철암행 역시 마찬가지다.
어디론가 가고 싶다고 맘 먹은 대로 다 갈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늘 삶의 언저리는 우리를 그렇게 편안하게 놔두지 않는다. 더군다나 운전면허가 없는 나로서는 그저 내킬 때 어디론가 훌쩍 떠난다는 것은 그야말로 우리 집 뒷동산에서 선녀 옷 훔치는 것보다 힘든 일일 때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방법은 있다. 꼭 움직여야 할 때를 이용하는 것이다. 8년 전 방송프로그램을 할 때 정말 지긋지긋하게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녔다. 그때야말로 쉬고 싶을 때도 움직여야 하는 서러운 일상이었으니 할 말은 없지만.
며칠 전 일 때문에 영광으로 출장을 다녀왔다. 하루 일정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나에겐 이제 여행이다. 어떤 움직임... 예전과 다른 그 어떤 움직임이다.
비가 오락가락하고 내리던 날, 서해안 고속도로는 여전히 을씨년스러웠다. 봉고차 안에서 밖을 내다보는 풍경은 깊은 바다를 보는 느낌이었고 그 속에서 가물거리며 나는 잠이 들었다. 몸이 흔들리고 나는 어디론가 가고 있다. 그저 그런 느낌을 유지하며 눈을 뜨지 않았다.
얼마가 지났을까. 입에 풀칠하기 위해 잠깐 볼 일을 보고 나는 다시 차에 올랐다. 그리고 순간 아까 오면서 보았던 물이 빠진 법성포의 앞바다 뻘 위에 서 있던 멋진 고깃배들을 떠올렸다.
사실 조수 간만의 차가 없는 동해에 살았던 터라 서해안에 바닷물이 빠지고 나간 뻘 위에 기우뚱하고 서 있는 배들을 보면 참으로 멋지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일을 마치고 늦은 식사를 하기 위해 다시 돌아온 법성포구는 이미 물이 다 찬 상태였다. 흐미... 쩝... 아까워라...
비는 부실부실 내리고 동행식구들은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그 유명한 법성포 굴비 한정식을 먹으로 식당으로 들어갔다.
아... 정말 맜있다... 쩌ㅃ쩌ㅃ...
법성포엔 채 한 시간도 못 머물렀다. 그러나 법성포에서 부슬비를 맞으며 난 그 한 시간의 6분의 1동안 안개구름에 싸여 있는 저 멀리 바라다 보이는 섬을 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잘 차려입고 멋진 여행장비를 들고 다녀야만 만족스런 여행이 되는 건 아니다. 여행은 늘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는 그 기대가 설레임으로 그리고 잔잔한 여운으로 남으면 되는 것이라는 것을...
아주 짧은 시간이었다. 내가 기록한 것은 정말 보잘 것 없지만 그 때 거기에 내가 있었고 그 날은 비가 왔으며 나를 위해 두 마리의 굴비가 희생되었다는 것 정도를 메모하고 돌아왔다.
언제 다시 갈지 모르는 법성포를 사진으로 다시 보니 기분이 묘하다.
잠깐의 기억이라서 그런지 더욱 그런 느낌이 오랫동안 내 사타구니 속을 괴롭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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