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02.03.30 17:31수정 2002.03.30 20:55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초등학교 5학년을 마치고 서울로 전학을 갔습니다. 당시 우리 시골에서는 서울이나 인천으로 전학을 가는 것이 붐이었습니다. 나도 이런 바람에 아버님의 뜻에 따라 서울로 전학을 가게 되었습니다. 당시 친구들도 서울과 인천으로 가서 형제 또는 자매, 남매끼리 자취를 하거나 일부는 친척집에서 학교를 다니기도 했습니다.
친구들에게 전학 간다는 이야기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겨울방학중에 절차를 밟아 전학을 갔습니다. 나는 소설 '봉순이 언니'의 배경이 되고 있는 아현동에 자취방을 얻어 형 둘과 자취생활을 했습니다. 자취방이라야 단칸방에 조그만 부엌이 있는 집이었습니다. 지금은 녹지로 변한 아현동의 언덕에서 서울의 자취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언덕 위에 촘촘히 지어진 집들. 겨울에 언덕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얼굴을 검게 하고 연찬을 나르는 연탄장수도 많았고 새벽에는 콩나물과 두부장수의 힘 좋은 목소리가 단잠을 깨웠습니다. 집집마다 집앞에는 다 쓴 흰 연탄이 층층이 쌓여 있었습니다.
제가 자취하는 집에서 네 가구가 모여 살았습니다. 집 주인과 신혼부부, 그리고 초등학교 다니는 아이가 있는 가족, 지금이야 전세를 살던 월세를 살던 아파트와, 다가구 주택 등이 많아 세를 산다는 느낌이 별로 없지만 예전에는 방을 얻어 사는 경우가 많아 그야말로 서로 불편한 점이 적지 않았습니다.
수도와 화장실을 공동으로 사용하는 것은 기본이었습니다. 고지대라서인지 물이 자주 끊겨 공동수도에서 물통을 들고 줄 지어 물을 길어 먹었던 기억도 납니다.
내가 자취하는 집의 부엌에는 연탄 아궁이와 조그만 초록색 찬장이 있었고 안방에는 조그만 상과 비키니 옷장이 있었습니다. 그중 자취생활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연탄이었습니다.
연탄을 아끼기 위해 구멍을 낡은 행주로 꼭 막고 썼습니다. 처음에만 불이 잘 타오르도록 열어 놓았다가 불이 붙으면 한치의 느슨함도 없이 모두 닫아 놓았을 정도였습니다. 지금이야 방안에서 보일러를 조정하면 되지만 연탄을 쓸 때라 밖으로 나가 연탄을 갈아야 했습니다. 한겨울에 연탄 갈기는 꽤나 귀찮은 일이었습니다.
새벽시간에 연탄을 갈아야 할 때는 단잠을 떨치고 일어나야 하기 때문에 보통 곤욕스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더욱이 연탄을 갈 때 호흡을 가로막는 연탄가스는 그야말로 세상에서 정말 싫은 냄새로 기억됩니다. 연탄을 갈고 나서는 독한 가스가 방으로 스며들어 한동안 창문을 열어놓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새벽에 연탄을 갈고 나서 그대로 잠이 들면 연탄가스 때문에 아침에 일어날 수 없을 정도의 어지러움을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신문 사회면에 '일가족 연탄가스에 질식사'라는 기사도 하루가 멀다하고 나왔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연탄은 정말 소중한 것이 었습니다. 당시 저에게는 추위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것으로 생각되었습니다. 연탄가는 시간을 놓쳐 연탄불을 꺼뜨리면 옆집에 부탁해 새 연탄을 갖다주고 불을 빌려 오기도 했습니다. 어느 집에서는 연탄을 도둑맞었다는 이야기도 간혹 흘러나올 정도로 꼭 필요하고 소중한 것 이었습니다.
가끔 서울의 달동네를 배경으로 TV프로그램에 연탄장수를 소재로 하는 이야기가 나오거나 기업체 직원들이 연탄을 나르며 자원봉사활동을 하는 것을 모습을 보면서 오래 전의 기억이 스칠 때가 있습니다. 아직도 연탄을 때는가 싶기도 하면서 말입니다.
연탄을 아끼기 위해 낡은 행주로 구멍을 막았던 70년대는 절약이 몸에 배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연탄이 우리의 눈에서 사라지듯 절약정신도 연탄의 흔적처럼 사라지고 있지는 않나 싶습니다.저 또한 절약을 추억의 자리로 미루고 있으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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