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우절이다. 거짓말을 하는 날? 혹은, 거짓말을 해도 좋은 날? 날이 날인 만큼 '문학 속의 거짓말'과 '현실의 거짓말'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해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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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정일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거짓말>의 한 장면. ⓒ자료사진 |
장정일의 소설 <아담이 눈뜰 때>에는 소설가가 되기 위한 두 가지 요건이 등장한다. 그 첫째가 '여자를 좋아해야 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거짓말을 잘 해야 한다'는 것.
첫 번째 요건이야 '남자' 장정일의 주관적 판단에 의한 것이라 치부할지라도, 두 번째 것은 곰곰이 곱씹어 생각해볼 필요성이 있어 보인다. '거짓말'이 '소설가(문인)'가 되기 위한 요건이라...
희망을 주는 거짓말과 절망을 부르는 거짓말
그 속에 포함된 선의(善意) 혹은, 악의(惡意)를 기준으로 하자면, 거짓말에는 두 가지의 종류가 있다.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거짓말과 그 반대로 절망에 빠지게 하는 거짓말이 바로 그것.
문학이 가진 그 본연의 역할을 염두에 둔다면 장정일이 말한 '소설가가 되기 위한 거짓말'은 독자에게 희망을 주는 거짓말에 다름 아닐 터.
그랬다. 1906년 알렉세이 막시모비치 베슈코프(고리끼)의 <어머니>를 필두로 러시아 전역을 휩쓸었던 '사회주의 리얼리즘 열풍'은 바로 선의의 거짓말이 얼마만한 힘과 파장으로 사람들의 가슴을 흔들 수 있는지를 보여준 실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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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리끼의 <어머니> ⓒ열린책들 |
'빠벨'같은 아들을 가진 모든 어머니가 '블라소바'처럼 자신의 무지와 편견에서 깨어나 여성 혁명가로 성장하는 건 분명 아니다. 하지만 <어머니>에서 중요했던 건 현실에서 그 소설이 실현 가능한가, 아닌가의 문제가 아니었다.
고리끼와 볼세비키 지도부에겐 '스스로의 결단과 대의(大義)를 위해 몸을 던지는 희생이 있다면 인간은 누구나 위대해질 수 있다'라는 아름다운 거짓말이 필요했다. 목적의식적으로 혁명에 봉사할 사람들이 필요했다. 그 의도는 적중했고, <어머니>는 1917년 '러시아 혁명'의 도화선 중 하나로 작용한다.
작품이 쓰여진 시기가 혁명의 기운이 감돌던 때였고, 그 혁명을 준비하던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에게는 전제 군주 '짜르'의 폭정에 항거할 대중의 힘이 필요했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은 바로 이 힘의 결집을 위해 '선의로 조작된 거짓말'이었던 것이다.
희망이 없다면 희망을 만들어서라도 사람들에게 새로운 세상을 꿈꾸게 하는 것.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가장 큰 미덕이 '의도적 전망삽입'이고, 이것은 '총체적 객관성'을 중시하던 이전의 비판적 리얼리즘과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변별하는 코드다.
고리끼의 거짓말은 바로 이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그로부터 75년 후 소련 연방의 몰락과 붕괴가 이어지고, '고리끼시(市)'와 '레닌광장'도 혁명 이전의 이름으로 돌아갔지만 그 역사에 대한 평가는 1900년대 초반 고리끼의 역할과는 별개로 논의될 문제다.
비단 고리끼뿐일까? 작가들이 유포한 '선의의 거짓말'은 고통과 환멸만을 강요하는 힘겨운 세상에서 사람들을 견디게 한 진통제였고, 타는 목마름으로 허위허위 오르던 질곡(桎梏)같은 역사의 고갯길에서 만난 한줄기 소낙비 같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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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0~80년대 한국에서 창궐했던 군사독재의 '악의에 찬 거짓말'에 단호히 저항했던 김지하의 <오적>, 조태일의 <국토>, 김남주의 <조국은 하나다> 시집 표지사진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
사랑과 꿈, 낭만과 서정을 노래한 그 옛날 유럽의 시집(詩集)들도 나름의 제 몫을 해냈고, 지금은 각자의 책장 안에서 먼지 쌓인 채 낡아가고 있지만, 70~80년대 한국에서 창궐했던 군사독재의 '악의에 찬 거짓말'에 단호히 저항했던 김지하의 <오적>과 김남주의 <조국은 하나다>, 조태일의 <국토>와 김준태의 <아아, 광주여 이 나라의 십자가여>라는 제목의 시집들 또한 그러했다.
그것들은 현실에서는 요원했던 '사람이 사람답게 일하고,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꿈꾸게 했다. 그들이 부른 노래는 원체 암울했던 시대 탓에 현실감 없는 거짓말처럼 들렸지만, 시인들은 그 어두운 시절에도 자신의 시(詩) 안에서 새로운 유토피아를 만들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아름다운 거짓말쟁이'였다.
절망 부르는 현실에서의 거짓말
다시 정권 말기다. YS 정권의 말기가 김현철 게이트, 한보 게이트로 시끄럽게 마감되더니, 임기말의 DJ 정권도 '게이트' 정국에 휩싸여 있다. 이형택 게이트, 이용호 게이트, 아태재단 게이트... 이 수많은 게이트를 만든 것 역시 거짓말이다. 그러나, 이 거짓말은 문학처럼 선의가 아닌 악의에 찬 거짓을 재료로 한다는 것이 '문학 속의 거짓말'과는 다르다.
이권에 개입하기 위해, 리베이트를 챙기기 위해 혹은, 인사청탁에 관여하기 위해 일부 고위관료와 정치권의 실세들은 지속적으로 거짓말을 해왔고, 그 거짓으로 인해 곪을 대로 곪은 상처가 마침내 터진 것이다.
'힘있는 자들'의 악의적인 거짓말 앞에서 '힘없는 우리들'의 진실은 무력하기 짝이 없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슬퍼진다. 거짓이 진실을 무력화시키는 불합리한 현실 앞에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는 막막함.
거짓은 인간을 파괴하고, 인간이 발 딛고 선 세계를 희화화(戱畵化)해버렸다. 현실에서 거짓말이 주는 폐해는 이만큼이나 참담하고, 통탄스런 것이다. 무엇이 이 절망적인 현실의 거짓에서 우리를 구원할 수 있을까? 기자는 다시 문학 속의 아름다운 거짓말을 떠올린다.
이번 만우절엔 이런 거짓말을...
문학이 현실에서의 모든 상처를 치료하는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그러나, '추함을 꾸짖고, 아름다움을 추켜세워 사람들의 얼어붙은 가슴을 데워주는 것'이라는 문학 고유의 역할은 여전히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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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해 5월 박정희기념관 건립반대 1인 시위에서의 김지하 시인. ⓒ오마이뉴스 이종호 |
넝마 같고 쓰레기 같은 세상이고, 현실이다. 그러나, 살아 있는 동안 삶은 포기할 수 없는 것. 아픔과 분노만이 반복되는 삶이지만,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된다. 바로 그 포기 못할 삶을 단단히 붙잡아, 다시 살아낼 힘을 얻어내기 위해서라도 오늘은 서점으로 나가 시집 한 권을 사서 읽자. 문인들의 '아름다운 거짓말'을 만나 그들이 전하는 포근한 다독거림에 마음을 맡겨보자.
그리고, 이번 만우절엔 거짓말을 하자. 우리도 시인들처럼 아름다운 거짓말을 하자.
"김지하가 2002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됐대."
"김남주 시인의 '조선의 마음'이 중학교 교과서에 실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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