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02.03.31 21:04수정 2002.04.01 10:53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여기저기 봄꽃이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했습니다. 백목련, 자목련, 개나리꽃, 벚꽃 등이 사람들의 시선을 붙잡습니다.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고 무덤에서 부활한 예수 그리스도를 기념하는 절기가 아니더라도, 봄은 부활의 계절임에는 틀림 없습니다. 부활의 감격과 기쁨이 있는 날에 조금은 슬픈 이야기를 하나 전해야겠습니다.
나와 함께 근무하는 직원 중에는 일곱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살아온 여직원이 있습니다. 하루는 그녀의 가족사를 들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녀가 네 살 때, 아버지가 교통사고를 당하여 3년간을 의자에만 앉아 있다가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당시 어머니는 서른을 갓 넘은 나이였고, 그녀와 4살짜리 여동생만이 남았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여동생은 "언니, 우리 집에 무슨 일이 있는가봐. 사람들이 우리 집으로 몰려와"하며 철없이 좋아했다고 합니다.
그녀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다고 했습니다. 기억나는 것이 있다면, 하루 종일 의자에 앉아 있던 아버지가 휴지를 사 오라고 200원을 주신 것과 아버지의 장례식 후 아버지가 앉아 계셨던 의자를 불에 태우던 기억이 전부라고 합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는 생업의 현장에 뛰어들었고, 오직 두 딸이 잘 자라주기를 바라는 믿음과 소망 하나 붙들고 지금까지 살아오셨다 합니다. 그렇게 살아온 인생이 어느덧 50대 중반의 나이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 동안 두 딸은 어머니의 바람대로 잘 자라서 어엿한 직장인이 되어 어머니의 든든한 언덕이 되어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슬픈 가족사를 이야기하던 그녀는 눈물을 훔치기도 하고, 말을 잘 잇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더욱 가슴 아프게 한 것은 그렇게 고생하며 살아오신 어머니가 다리가 불편해서 절룩거리며 살아왔다고 합니다. 누군가의 부축이 없으면 오래 걷지도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동사무소에 가서 장애자 판정을 받게 되면 약간의 혜택이 주어질 수 있을 거라고 이야기해주었습니다. 그녀는 어머니를 모시고 진단서를 끊기 위해 병원을 찾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의사 선생님이 하는 말이 "어머니는 소아마비가 아니라 어릴 때 발목을 다쳤는데, 치료를 제대로 하지 않아서 이렇게 된 거예요"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나는 혹시 치료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평소 이것저것 많은 도움을 받고 지내는 의사 선생님을 소개시켜주면서, 자문을 받게 해드렸습니다. 역시 치료가 가능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녀의 어머니는 "지난 50여 년 동안 소아마비로 살아온 것이 억울하다"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도 이제라도 수술을 받고 재활 치료를 받은 후 맘껏 걸으며, 뛰며 다닐 수 있게 될 것에 위안을 삼으라고 위로해드렸습니다.
그녀의 어머니는 곧 병원에서 수술을 받게 될 것입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두 딸이 모아놓은 적금을 깨고, 내가 지인(知人)들을 통해 약간의 수술비를 모금해주기로 했습니다. 화창한 이 봄은 그녀의 어머니에게도 부활의 계절이 될 것입니다. 50여 년 동안 흘려온 눈물과 고통의 시간들은 잊어버리고, 기쁨과 희망의 노래를 부르며 새싹들 파릇파릇 돋아나는 들판을 맘껏 뛰어다닐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요즘 나는 그녀의 어머니가 했다는 "소아마비가 아닌데, 소아마비처럼 살아온 인생이 억울하다"는 말을 곰곰히 되새겨 봅니다. 혹시는 나도, 참이 아닌 것을 참이라고 믿고 달려오지는 않았는지, 진정한 행복이 아닌 것을 행복이라고 여기고 살아오지는 않았는지, 진정한 삶의 목적과 가치 있는 삶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면서 허상을 좇고 살아오지는 않았는지, 미처 깨달음이 없어서 피상적인 앎에 만족하고 살지는 않았는지, 아직도 '내 삶의 억울함'은 없는지를 돌아보는 시간이 되고 있습니다.
'억울함'을 깨닫지 못하면 여전히 '억울한 삶'을 살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리고 남의 억울함도 도와줄 수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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