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팬과의 '벽' 허무는 로저 워터스

등록 2002.04.03 12:00수정 2002.04.04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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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대중 음악의 전설, 로저 워터스가 드디어 서울에서 공연을 가졌다.

벌써 세 번째를 맞이하는 'In the Flesh' 투어의 일환으로, 핑크 플로이드의 전 베이시스트이자 보컬리스트요, 독보적인 작곡자인 로저 워터스의 공연이 4월 2일 화요일 잠실 종합 운동장에서 열렸다.


핑크 플로이드와 로저 워터스라는 거장을 설명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들이 걸어온 거대한 자취, 우리에게 던져온 메시지와 철학을 간단 명료히 소개하려면 누구든지 큰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많은 팬들은 로저 워터스와 핑크 플로이드를 두고 이 두 개의 핑크 플로이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난감할 것이다. 로저 워터스는 과연 이기적인 뮤지션이자 가짜 핑크 플로이드에 지나지 않는 것인가, 또 누가 진짜 핑크 플로이드라는 타이틀을 차지해야 하는가(이미 오래 전 법정 소송 끝에 밴드의 남은 멤버들이 이름을 차지하게 된다. 반대의 경우라면 어제의 콘서트는 그냥 '핑크 플로이드'의 콘서트가 되었을 것이다) 등이 그것이다.

순수하게 핑크 플로이드의 팬을 자처하는 사람은 오리지널리티를 로저 워터스 개인이 아닌 핑크 플로이드 그 자체에 둘 것이고 아마도 로저 워터스가 솔로로 데뷔를 하고 밴드를 이끌며 투어를 해온 그 모든 것들이 마음에 들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그 동안 핑크 플로이드의 다른 멤버들을 통해 들어온 로저 워터스에 관한 이야기는 그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만한 여지가 많지 않은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매우 중요하고도 확실한 것은, 대중 음악사의 거대한 획을 남긴 핑크 플로이드는 로저 워터스를 포함한 핑크 플로이드였으며 그 안의 거대한 축은 바로 로저 워터스였다는데 있다. 모든 논의를 제쳐두고 워터스가 중요한 이유는 그가 바로 핑크 플로이드의 '정신'이었다는 점이다.

데이빗 길모어의 기타를 포함한 다른 멤버들의 음악적 요소 역시 빼놓을 수 없는 것이지만 핑크 플로이드의 '입'과 뜨거운 인간애를 담은 '가슴'은 워터스의 것이었다. 핑크 플로이드가 우리에게 남긴 도전적인 메시지와 휴머니즘에 기초한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 가장 아름다운 것도 인간'이라는 너무나 당연하지만 그것이 당연하지 않은 현실이기에 더욱 절실하고도 거룩하게 다가오는 숭고한 이상은 많은 이들에게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공연은 예상과 달리 30분 가량 지연이 되었다. 8시경, 드디어 밴드와 로저 워터스가 등장하여 '핑크 플로이드의 작품, 그러나 사실상 워터스 자신의 작품'이랄 수 있는 너무나도 주옥같은 클래식을 선보이기 시작한다. 모든 이들의 압도하는 명곡 In the Flesh부터 Comfortably numb에 이르기까지 2시간여에 걸친 공연 동안, 워터스는 그가 걸어온 길이 어떠했으며 우리에게 무엇을 전달하려 해왔는지 확실하게 설명해 주었다.

대부분의 락 콘서트의 경우 가장 불만스러운 부분은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중요한 부분인 사운드였다. 그러나 이번 워터스의 공연은 공연장을 360도ig로 커버하는 초대형 스피커들과 너무나도 훌륭한 사운드 시스템으로 이러한 문제를 일소했다. 키보드가 두 대, 베이스 기타를 포함한 기타가 4, 5대에 이르는 편성임에도 모든 파트가 확실하고 깨끗하게 전달이 되었으며 바닥을 통해 오금까지, 심장까지 전율케 할 정도의 완벽한 사운드였다고 할 수 있었다. 공연 후반 약간의 하울링이 계속되었던 것이 옥의 티랄 수 있었다.


밴드 역시 무척 훌륭했으며 그들에게 붙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을 정도였다. 물론 이번 공연에서 팬들이 가장 크게 느끼는 아쉬움은 오리지널 멤버의 부재일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그러한 부재를 완벽하게 메웠으며 특히 상당한 분량의 리드 보컬을 소화해낸 리드 기타리스트 체스터 케이먼은 외모, 복장, 기타 그리고 연주와 보컬에 이르기까지 흡사 오리지널 멤버인 데이빗 길모어를 빼닮아 눈길을 끌었다. 그러나 이번 공연 세션맨들의 연주가 훌륭하건 아니건을 떠나서 릭 라이트, 닉 메이슨 그리고 데이빗 길모어 이들 오리지널 멤버가 주는 존재감을 대신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한편 무대를 중심으로 양쪽에 대형 스크린이 배치되고 무대 전체를 두고는 초대형 스크린이 배치되었다. 이 초대형 스크린에는 핑크 플로이드와 로저 워터스의 철학과 메시지에 대한 많은 함의를 담은 영상이 공연 내내 계속되었는데 이를 공연에서의 감동으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핑크 플로이드의 음악과 철학에 대한 어느 정도의 선 이해가 필요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요소가 부재한 관객들은 공연이 끝날 때까지 계속된 영상은 물론, 워터스와 밴드의 퍼포먼스 등을 도무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답답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공연은 11시경, 심한 일교차를 보이며 대부분의 관객이 추위를 느낄 즈음해서 끝이 났다. 열화와 같은 성원에 이어 한 곡의 앙코르곡이 있었고 고작 한 곡의 앙코르곡으로는 성이 차지 않는 관객들은 30년의 기다림에 대한 회포를 풀고 싶어했지만 매정하게도 무대는 철수되기 시작했다. 언제나 한국을 처음 찾는 대형 뮤지션의 공연이 그러하듯이 이번 역시 '역사성' 그 자체만으로도 큰 의미를 찾을 수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로저 워터스, 더 넓게는 핑크 플로이드에 대한 더 많은 이해와 관심이 기울어지리라 기대할 만하다는 것이 더욱 큰 의미일 것이다.

이번 공연의 가장 아쉬운 점은, 기대만큼 많은 관객들이 오지 않았다는 것과 공연장을 찾은 팬들의 낮은 수준이었다. 우선 인구가 천만이 넘는 대도시에서 이 정도의 뮤지션이 첫 번째 공연을 갖는 것임에도 만 명이 조금 넘은 관객 수는 너무 적어 보였으며, 실제로 널찍하기만 한 종합운동장은 허전해 보였다.

두 번째는 민망하기만 한 관객들의 수준이었다. 꽤 많은 이들이 초대권 내지는 지인 등을 통해서 공표를 얻어 들어온 듯한데 이들은 공연을 즐기는데도 소극적이었음은 물론 1부가 끝나자 자리를 버리고 공연장을 떠나는 최악의 매너를 선보였다. 그리고 이 많은 빈 자리는 좀 긍정적으로 표현을 하자면, 공연을 적극적으로 즐기고자 하는 많은 관객들이 앞으로 몰려와 모두 메우게 된다.

그나마 상당수 사람들이 주재 외국인 혹은 교포들, 초대권 등의 형식으로 들어온 사람들로 보여서 엄청나게 비싼 티켓 값을 치르고 공연을 설레는 맘으로 기다린 끝에 입장한 순수한 한국의 팬들은 생각만큼 많지 않음을 눈치챌 수 있게 해주었다.

게다가 다른 많은 관객들이 2부가 시작되면서 자리를 버리고 앞쪽으로 몰려나오면서 공연장은 거의 아수라장이 되는데, 이를 저지하려는 진행 요원들과 결국에는 얼굴을 붉히는 일이 일어났고 무대 바로 앞쪽에서 일어나는 갑작스런 부산함에 공연은 엉망이 되어 버리는 듯했다. 다행히 진행 요원들이 사태를 수습하기는 했으나 어떠한 저항에도 완강하게 버티는 일부 관객들로 인해 결국 지정 좌석의 의미는 완전히 퇴색되고 말았다. 처음부터 스탠딩 시트로 준비를 한 것도 아니고 또 휴식 뒤에 벌어질 일이 자명한데도 이에 대한 준비가 없었던 기획사의 책임이 큰 듯하다.

로저 워터스는 이채롭게도 많은 부분의 보컬을 기타리스트와 코러스에게 맡기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들이 자신을 대신해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을 때 최대한 많은 관객과 호흡하기 위함일 것이다. 로저 워터스는 예술을 창조하는 자와 수용하는 자와의 '벽'을 허물고자 한다.

원래의 멤버들과 결별하게 된 큰 이유 중 하나도 관객과의 호흡을 차단하는 핑크 플로이드의 과도한 조명과 무대가 원인이기도 한 것처럼 그는 무엇보다도 관객과의 벽, 더군다나 숫기 없고 소극적인 한국의 팬들과의 벽을 허물기 위해 애쓰는 듯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또 다시 워터스가 한국에서 공연을 하게 될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다음 번에는 벽을 허물기 위함이 아니라 초로의 나이에 접어든 거장에 대한 넉넉한 양의 존경과 감사를 확인하기 위함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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