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없고 열기없는 인천 경선
오직 이회창 대세론만 살아있더라

[정대화의 경선 관전기] 한나라당 인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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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화(seoul)등록 2002.04.15 12:09
▲인천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한나라당 경선에 참석한 선거인단.ⓒ 오마이뉴스 권우성


한나라당도 국민 경선을 시작했다. 3월 초부터 열 차례 이상 민주당 경선을 현장에서 지켜보았기 때문인지 한나라당 첫 경선을 보는 관찰자의 시각은 신기하고 어색하기만 했다. 그러나 이런 어색함이 관찰자만의 문제는 아니었던 것 같다. 첫 경선이기 때문인지 경선에 출마한 후보를 지지하는 운동원들의 몸놀림도 어색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아직 쟁점이 형성되지도 않은 상황이어서 열기가 높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숙달되지 못한 운동원들의 어색한 구호와 몸 동작이 금방 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이런 어색함은 두어 차례 경선만 치르면 없어질 그런 것이었다.

한나라당도 국민 경선을 한다. 한나라당 경선에 대해서 국민들은 무엇을 궁금하게 여길까? 아마도 세 가지가 관심사항이 아닐까 싶다. 첫째, 민주당보다 늦게 국민 경선을 시작한 한나라당이 '후발 주자'의 이득을 누릴 것인가 아니면 막내린 극장처럼 냉랭한 분위기를 맛볼 것인가?

둘째, 4-5년을 이어온 난공불락의 '이회창 대세론'이 유지될 것인가 깨어질 것인가? 이 문제는 이부영과 최병렬의 득표력에 대한 관심이기도 하다. 셋째, 민주당 경선, 특히 구체적으로 '노무현 대세론'에 대한 한나라당 후보들의 대응전략은 어떤 것일까?

물론 이 중에서도 현실적인 관심은 당연히 득표율일 것이다. 지난 대선 이후 이회창 후보가 당 총재직을 맡아 4년 이상 당을 이끌어오면서 지지기반을 조직화했다는 점 때문에 조직의 힘이 결정적인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았다. 게다가 조급한 경선 일정 때문에 최병렬 후보가 인천 경선의 연기를 주장할 만큼 다른 후보들의 준비가 취약한 것도 사실이다. 이런 점 때문에 인천 경선에 대한 대체적인 전망은 이회창 후보의 압도적 우세였다.

선거 결과는 이회창 후보의 압도적인 지지로 나타났다. 선거인단 2285명중 1402명이 참석해 61.4%의 투표율을 기록한 가운데 이회창 후보가 79.3%에 해당하는 1111표를 얻어 압도적인 1위를 했다. 인천지역에서 나름대로 선전을 기대했던 이부영 후보는 14.3%인 201표에 머물렀다. 이회창 후보와 '원조보수' 논쟁을 벌일 것으로 기대되었던 최병렬 후보는 79표를 얻어 득표율이 한 자리수인 5.6%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이상희 후보가 얻은 10표의 득표율 0.7%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일반 국민이나 선거인단이 이상희 후보를 '후보'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해석해야 하는 것일까?

인천 경선의 쟁점을 형성할 어떤 움직임도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는 이회창 후보의 압도적인 장점인 조직표가 힘을 행사할 수밖에 없다. 후보 중에는 경기나 인천 출신, 혹은 인천에서 큰 몫을 차지하고 있는 충청 출신도 없다. 경기, 인천, 충청에서 정치적 역할을 했던 후보도 없다. 바람도 없고 연고도 없는 선거, 일정상 다른 후보들을 위한 최소한의 준비기간도 없이 진행된 촉박한 일정의 선거 때문에 인천 경선은 이렇게 싱겁게 끝나고 말았다.

첫 경선을 시작하는 한나라당 인천 경선의 화두는 역시 '정권교체' 였다. 체육관 지붕 가운데 크게 걸린 "필승! 2002 정권교체"라는 공식 현수막이 이런 분위기를 잘 대변해주고 있었다. 경선장 측면에는 "이룩하자 정권교체, 보여주자 국민의 힘"이라는 현수막도 보였다. 총재가 없는 상황에서 총재권한대행을 맡고 있는 박관용 대행이 김대중 정권의 부패상을 성토하면서 "아무도 김대중 정권의 연장을 바라지 않는다"는 말로 한나라당의 정권교체 의지를 과시했다.

▲지지자들의 환호에 응답하는 이회창 후보ⓒ 오마이뉴스 권우성
후보들이 내건 구호와 개인별 현수막 역시 정권교체가 강조되었다. 이부영 후보는 "정권교체 '천적론'"과 "못살겠다 정권교체, 안되겠다 후보교체"로 내세워 정권교체를 위해서는 후보교체가 필요하다는 논리로 접근했다. 이회창 후보는 "당당한 우리 중심"과 "확실한 정권교체"를 내걸었다. 최병렬 후보는 정권교체의 주장을 더욱 구체화해서 공격의 초점을 노무현 대세론에 맞추었다. 그는 "노풍을 꺾을 사람"이라고 주장하면서 노무현 후보의 현수막을 패러디해서 자신을 "정권을 찾아올 필승카드"라고 주장했다. 유독 이상희 후보만 "과학경제 대통령"을 강조하는 등 비정치적인 접근을 보였다.

정권교체라는 화두에 가려져 있지만 눈에 들어오는 대목은 후보들간 상호비방을 자제하자는 주장이었다. 총재권한대행의 인사말이나 후보들의 연설에서, 그리고 전국 시·도 여성위원장 일동으로 내걸린 "상호 비방하지 않는 정책대결로 정권창출을 이룩합시다" 라는 내용의 현수막에서도 비방의 자제를 강조하고 있었다. 아마도 민주당 경선에서 부각된 후보간 비방을 사전에 예방하려는 노력으로 보였다.

후보 연설에 앞서 후보등록 결과를 보고하는 자리에서 후보의 이름이 거명될 때마다 선거인단의 박수가 터져나왔다. 단연 이회창 후보에 대한 박수가 가장 우렁찼다. 최병렬 후보에 대한 박수도 컸다. 연설 과정에서 나온 박수소리도 이회창 후보에게 집중되었다. 최병렬 후보는 연설 시작에 앞서 이회창 후보에게 했던 만큼의 박수를 요청하기도 했다. 과학기술을 강조하는 이상희 후보를 제외한 세 명의 후보는 모두 김대중 정권을 비판하고 노무현 대세론을 인정하면서 자신을 노무현 돌풍을 잠재울 적임자로 내세웠다.

첫 연설에 나선 이부영 후보는 연설의 첫 마디를 김대중 정권에 대한 강력한 일격으로 장식했다. 그는 김대중 정권을 일러 "심장에서 실핏줄까지 썩어버렸다"고 비판하면서 '황태자 게이트'가 시작되었다고 진단했다. 동시에 그는 정권의 부패문제에 대해 침묵하고 있는 민주당 경선 후보들의 태도에 대해서도 비판을 가했다. 나머지 연설은 이회창 후보의 대세론이 노풍에 속수무책인 대세론이라는 것과 최병렬 후보의 영남후보론은 또 다른 지역주의라며 이회창, 최병렬 두 후보를 비판했다. 결국 민주당 노풍을 막을 사람은 이부영뿐이라는 결론이다.

조직에서 앞선 이회창 후보의 연설은 비교적 조용하고 차분한 편이었다. 그는 민주당 노풍이라는 것이 "국민이 바라는 진정한 변화와 개혁의 바람"이 아니라 "정권교체를 갈망하는 국민의 압력을 회피하려는 술책"이라며 평가절하 하면서 동시에 당내에 팽배한 '패배주의적 견해'에 대해서도 일침을 놓았다. 그는 한나라당의 누가 후보가 되더라도 민주당을 이길 수 있다고 '한나라당 필승론'을 주장했다. 아울러 최근 '빌라 게이트'를 의식한듯 자신의 서민적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내용의 연설을 길게 했다. 그러나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어렵게 끼니를 때우며 자랐다는 식의 나열에 대해서 얼마나 공감할지 의문이 들었다.

최병렬 후보 역시 대통령 아들 문제를 지적하면서 아들을 구속하고 "대통령은 국민 앞에 무릎꿇고 사죄하라"고 요구했다. 게다가 그는 한나라당의 방심으로 민주당 노풍이 발생했다고 주장하면서 노풍이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일도 아니고 단순한 거품도 아니라고 강조하면서 "김대중 대통령보다 더 과격한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우리 나라는 어디로 갈 것이냐?"고 반문하면서 자신의 역할을 부각시켰다. 그는 이회창 대세론의 실종 및 당의 무대책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자신이 노풍을 막을 적임자라는 점을 반복해서 강조했다.

체육관에서 당 경선을 치른다는 점, 전자식 투개표를 한다는 점, 그밖에 대부분의 경선장 배치나 진행과정이 민주당과 유사하다는 점 때문에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경선은 외형적으로는 크게 구별되지 않았다. 그러나 가장 뚜렷하게 구별되는 것은 이런 경선의 형식이 아니라 정권 재창출을 추구하는 정당과 정권교체를 추구하는 정당의 차이였다.

이 차이 때문에 정책도 뚜렷하게 구별되었다. 민주당 경선에서는 재벌개혁, 대북정책, 언론개혁 등 김대중 정부가 추진해 온 주요 개혁정책을 승계하여 더욱 발전시키겠다는 정책이 중심을 이루었던 반면 한나라당에서는 현정부의 정책을 정면에서 반박하는 기조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 큰 차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인천 경선에서는 김대중 정권에 대한 총론적 반박은 있었지만 각 정책에 대한 각론적 접근은 거의 없었다. 이러한 차이는 민주당의 개혁성과 한나라당의 보수성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한나라당 인천 경선을 감시하고 관찰하는 과정에서 먼저 눈에 잡힌 장면은 젊은 운동원의 동원이었다. 한나라당 후보들이 민주당 국민 경선에서 효자노릇을 톡톡이 한 젊은 운동원들을 조직적으로 동원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식의 정치행사에 처음 참석해보는 젊은 운동원들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매우 난감해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한나라당이 경선장 출입을 자유롭게 한 것은 매우 좋았다. 민주당도 초기에는 자유롭게 출입하도록 했다가 춘천 경선 이후 출입을 통제해 불만을 사고 있는데, 경선장 출입이 자유로우니 경선의 진행 자체가 한결 밝아보였다. 인천 경선과 같은 시간에 치러진 민주당의 충북 경선에서 출입 문제를 둘러싸고 한바탕 소동이 있었던 것과도 비교가 되었다. 적어도 이 문제에서는 한나라당의 사고가 개방적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옥의 티라고나 할까, 후보의 선거운동원들이 실내에서 후보의 연설을 들으면서 북을 치고 환호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보의 연설을 들어야 정책을 비교 평가할 수 있는 것인 만큼 연설 시간 만큼은 서로 자제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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