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아 가지 마라, 가는 너 잡은들 멈쳐주랴”

희수를 맞으면서 보낸 편지에

등록 2002.04.30 21:44수정 2002.04.30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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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아침나절에 받은 편지 한 통이 나를 깊은 상념에 빠지게 한다.

희수(喜壽)를 눈 앞에 둔 어느 선배로부터 받은 편지이다. 양면괘지 한 장에 볼펜으로 촘촘히 눌러쓴 편지에는 간단한 인사에 이어 내가 어떤 신문에 집필하고 있는 칼럼을 읽어보신 듯 앞으로도 지역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내용의 글을 많이 쓰라는 당부가 적혔다.


말미에있는 「有不富 無不貧」이라는 한문 글귀가 눈에 뜨인다.
“있다고 부자가 아니고 없다고 가난한 것이 아니다. 믿음의 양식이 풍부해야 부자다”라는 해석도 곁들여있다.

없는 자는 상대적 빈곤을 느끼고있는 가운데 있는 자는 더욱 갖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갖가지 부정부패가 만연하여 사회는 온통 썩는 냄새로 뒤덮여있는 이때 명경지수(明鏡止水)와 같은 티없이 맑은 마음을 지닌 올곧은 선비가 있다는 것이 나의 가슴을 척척히 적신다.

일제, 여수 순천 사건, 6.25, 5.16 군사 쿠데타, 5.18 광주 항쟁 등 험난했던 역사를 가로질러왔고 실직, 가난, 굶주림, 등을 체험해왔던 그 분이 희수를 맞아 나에게 남긴 말이어서 더욱 값지게 느꼈는지도 모른다.

편지와 함께 동봉한 A4 용지 10 페이지분량의 “희수와 나”라는 복사물은 더욱 나를 옥죄인다.

“어느새 내 나이 七七에 이르니 백발과 주름살이 늘어만 가네. 세월아 가지 마라 가는 너 잡은들 멈쳐주랴.”
평생을 성실하게 살아온 그가 인생의 무상을 탓하는 독백이리라.


“청년은 희망에 살고 노인은 추억에 산다고 하였소. 조용히 과거를 회상하고 반성하면서 얼마 남지 않은 생을 위하여 마음을 비우고 깨끗하게 살아가면서 매사에 긍적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사회나 가정 생활에서도 알아도 모른척 이겨도 진척 내가 양보하면서 웃고 살아요.”一笑 一小 一怒 一老.

“三聽二思一言. 말 한마디에 천량 빚을 갚는다니 고운말 좋은 말 필요한 말만 간단히 하고 남의 말을 잘 들어주는 태도가 좋아요”


“공수래 공수거. 大慾不如無慾이라는데 不仁, 不義, 不正, 不順, 不行, 不亂들이 지나쳐 날마다 대서특필되지 않소. 이를 바로 잡기 위해서는 그 죄는 법대로 공정하게 집행되어야 하는데...”

“돈을 잃으면 일부분이요 명예를 잃으면 그 반이요 건강을 잃으면 전부를 잃은 것이라 했소. 일소 오다 건강법으로 오래 살기 바라오”
일소(一小)는 적게먹고 제철의 채소를 먹고 편식하지 않는 것을 이름이요 오다(五多)는 다동(多動), 다휴(多休), 다망(多忘), 다접(多接), 다설(多泄)이라했다.

다동은 걷기 등산 등 규칙적으로 나이에 알맞은 운동을 하는 것이고 다휴는 무리한 것을 삼가고 충분한 수면을 취하는 것이고 다망은 매사를 긍적적으로 받아들이고 마음을 비우고 사는 것이며 다접은 남녀간 다정한 분들과 자주 만나 정담을 주고받고 다설은 운동, 목욕 등을 통해 땀과 노폐물을 배설케 하는 것이다.

“눈앞에 훤히 보이는 정해진 마지막날 그날까지 마음 비우고 매사에 감사하며 몸 편히 지내다 가려 하오. 一生一死라 가는 곳은 단 한곳임을 새삼 느끼며 오직 명에 따를 뿐 고달픈 인생 길 해 저문 석양에 어둠만 찾아오네요” 라고 끝말을 적은 布衣 金甲俊 님의 편지가 이제 나이 60을 넘긴 나를 새삼 뒤돌아보게 한다.

지극히 평범한 보통 사람, 포의의 편지가 삭막한 세상, 과욕으로 얼룩져 마음의 틈새마저 살피지 못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들려주고 싶은 청량제로만 느껴지는 것을 어쩌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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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닥다리 기자임. 80년 해직후 이곳 저곳을 옮겨 다니면서 밥벌이 하는 평범한 사람. 쓸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것에 대하여 뛸뜻이 기뻐하는 그런 사람. 하지만 항상 새로워질려고 노력하는 편임. 21세기는 세대를 초월하여야 생존할 수 있다고 생각 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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