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열 혹은 필론의 돼지

실천하지 않는 지식인의 반성 없는 자기 고백

등록 2002.05.20 04:29수정 2002.05.20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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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 채플린은 나에 대해서 알고 싶으면 내 영화를 보라고 했다. 지당한 말이다. 한 작가의 내면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그의 작품을 꼼꼼히 읽으면 된다.

이문열은 문제적인 작가다. 그는 능란한 이야기꾼인 동시에 한국문단에서 가장 보수적인 작가이기도 하다. 한국 작가로서는 드물게 그의 작품을 읽지 않고서도 그가 소설가임을 일반인들이 널리 인식하고 있는 작가이며 출간되는 소설마다 독서 시장에서 베스트셀러가 되는 작가이다. 그만큼 그는 사회적 영향력을 지니고 있는 작가이다.


'홍위병' 발언을 보아 알 수 있듯이 시시때때로 신문지상에 얼굴을 내밀어서 자신의 영향력을 확인하는 작가이다. 아무튼 그는 작가이며 '이문열 돕기 운동본부'까지 있을 정도의 문제적인 작가인 것이다.

그의 본업이 칼럼니스트가 아니라 소설가이기 때문에 그의 정신 세계의 핵심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그의 소설 세계로 들어가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의 소설 세계로의 탐험은 그의 정체성을 분명히 드러내 줄 것이라는 기대를 안고 소설을 펼져보자.

우리가 함께 읽을 작품은 그의 초기작인 '필론의 돼지'(1980년 작품)이다. 이미 텔레비전 드라마로까지 방영이 된 작품이기 때문에 이야기를 접해본 독자들이 많을 것이다.(두 텍스트의 차이는 텔레비전 드라마에서는 '군용 열차'가 아니라 '연수'를 받고 돌아오는 '사원 열차'로 나온다는 점이다.)

제대를 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청년이 있다. 이 청년은 군대를 끔찍하게 생각해서 가능하면 군용열차를 피하려고 했으나 제대 기념 술자리에서 돈을 다 써버려서 어쩔 수 없이 제대병들로 가득찬 군용열차를 타게된다. 이 청년의 관찰과 심리의 기록이 이 소설의 이야기 뼈대이다. 사건들은 외부에서 일어나지만 오로지 이 청년의 관찰로만 독자에게 보여진다.

작가의 분신으로 보이는 이 인물의 내면을 따라가면 우리는 지금의 이문열이라는 한국 소설가의 정치 의식을 엿볼 수 있다. 소설 속의 화자는 군용 객차 안에서 홍동덕이라는 훈련소 동기를 만난다. 화자는 '홍 똥덩이'라는 별명을 지녔던 동기를 관찰하고는 군대라는 곳이 무지렁이 농사꾼을 교활한 사기꾼으로 만들어 놓는 곳이라는 진술을 한다.


훈련소 시절 내내 고문관 행세를 했던 홍동덕은 군대 시절을 자랑스럽게 회상한다. 중대 보급계를 맡아서 어려움 없이 군생활을 마쳤다는 홍동덕의 말은 화자에 의해서 그가 취사병 생활을 했을 것이라고 독자들에게 알려진다. 화자는 홍동덕의 시끄러운 이야기들을 혐오한다.

홍동덕에 비해서 화자는 사단 정훈 참모부에서 근무한 병사로 소개된다. 그는 군생활은 어디나 힘들고 지불해야할 고통의 몫은 동일하다는 진술을 한다. 그리고 군생활을 몹시 치욕적인 것으로 되뇌인다. 그러나, 그의 그런 '치욕의식'은 '패배주의'에 맞닿아 있다. 세상이 다 그렇고 그런 것이며 배운 자이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다는 의식이 바로 그것이다.


소설 속에는 '검은 각반'이라고 칭해지는 해병대 병사들이 제대병 객차에 들어와서 행패를 부리는 사건이 중심 사건이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사건의 관찰과 논평은 작중 화자인 '그'의 입장에서 철저히 집약된다는 점이다.

제대병들에게 금품을 수수하는 검은 각반의 행패에 처음에는 누구도 저항하지 못한다. '그'는 그저 자리에 앉아서 모멸감을 느낄 뿐이다.

또한 홍동덕의 불평을 '그'는 혐오한다. 과연 인간은 불합리한 폭력에 저항할 수 없는 나약한 존재인가. 이런 질문을 던지면서 괴로워하는 것이 '그'의 행동 전부이다. 소설 마지막까지 '그'는 움직이지 않는다. 변함없이 사태를 관망하고 절망하는 것 뿐이다. 그러나, 그 절망은 순정한 그것인가.

소설 속에는 '검은 각반'의 횡포에 저항하는 두 사람이 나온다. 한 병사는 해병대 출신으로 '백골섬'에 있었다고 하고 각반들에게 돈을 내는 것을 거부한다. 화자인 '그'는 이 병사의 출현을 '갑작스런 영웅의 출현'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영웅은 각반들에게 투항한다. 땅개와 놀지 말고 우리와 같이 놀자는 각반들의 제안에 응한 것이다. 그러나, 이 투항은 결국 처참한 패배로 나타난다. '영웅'은 얼마 뒤에 비참한 몰골로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다른 한 병사의 저항은 다른 병사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 일으킨다. 계속적인 구타에도 불구하고 '깡마른 제대병'은 '법의 심판'을 외친다. 그러나,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까운 법이다. 흠씬 얻어 터진 '깡마른 제대병'은 결국 주저앉는다.

그러나, '깡마른 제대병'의 저항은 차안을 술렁이게 하고, 결국 검은 각반들은 제대병들로부터 집단 구타를 당하게 된다. 폭력에 대한 폭력의 저항이었다. 검은 각반들은 견디지 못하고 도망가 버리고 만다. 이때, 작중 화자의 심정이 어떤지 한 번 보자.

<약간은 후련해 하면서도, 여전히 전권(戰圈) 밖에서 그 소동을 지켜보던 그는 웬지 이번에는 허전한 마음이 되어 그런 검은 각반들의 탈주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그도 방관자였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곁에 앉은 홍동덕을 보고는 졸리운 돼지를 연상한다.

그러나, 사건은 끝나지 않았다. 검은 각반의 탈출을 막는 병사가 있었다. 그 병사는 웃통을 걷어부치고 각반들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정중한 사과를 요구한다. 각반들은 유리 조각으로 그 병사의 살을 긋는다. 그 병사의 가슴에는 커다란 상처가 생긴다. 이 끔찍한 광경은 물러나 있던 병사들의 분노를 자극한다. 검은 각반들은 제대병들의 폭력에 죽음의 공포를 느끼게 된다. 그리고 끝내 제대병들에게 사과한다.

소설의 화자인 '그'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는데 전권에 휘말리게 되었다고 진술한다. 그는 그 광경을 '망연히' 바라보면서 '잔인한 린치'라고 표현한다. 그러면서 고고하게 저 양 같이 순한 병사들 어디에서 저런 '광포함과 잔혹성'이 숨어 있을까 하고 걱정한다.

소설의 결말 부분에서 작가는 자신의 주제를 명확히 한다.

<이미 그곳을 지배하는 것은 눈먼 증오와 격앙된 감정이 있을 뿐, 대의는 없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해야할 일이 '잔인한 린치'를 말리는 것임을 알지만 그런 시도가 '무참히 묵살' 당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만둔다. 그러다가 그는 이 소동을 빠져나가고 싶어 한다.

그가 다음 객차에 옮겨 탔을 때, 헌벙이 호각 소리와 함께 도착한다. 그는 법과 진리의 도착은 언제나 늦는다고 진술한다. 그런데, 화자인 그가 혐오하는 홍동덕이 뒤이어 따라온다.

둘은 소주를 나누어 마신다. 그러나 화자는 끝까지 홍동덕과 자신을 구분짓는다. 왜냐면 홍동덕은 졸음으로 가물거리며 술을 마시지만 그는 '논 팔고 밭 팔아' 대학 공부를 시켜준 부모 덕에 '필론의 돼지' 일화를 상기한다. 풍랑을 맞은 배 안에서 우왕좌왕할 때, 현자인 필론은 돼지를 보면서 흉내를 낸다는 이야기를 떠올리면서 화자는 '필론'과 자신을 동일화시킨다.

이 짧은 소설을 보면 이문열은 불합리한 폭력에 무참히 짓밟히는 자들에게서도 멀찌감치 떨어져 나와 있고, 저항하는 자에게서도 떨어져 있고, 심지어 피해버리는 사람에게도 떨어져 나와 있다. 한마디로 그는 방관자인 것이다.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으면서도 배운 '지식'으로 사태를 방관하면서도 양심을 잃지 않는 것으로 화자를 묘사하고 있다. 그러면서 돼지 흉내를 낼 수밖에 없는 자신 또한 견디지 못해 술을 마신다.

이문열이 지금으로부터 22년전에 쓴 소설의 의식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난 증거는 현재 아무 것도 없다. 그는 철저하게 '미래에의 폐쇄와 전망의 결여' 상태에 살고 있다. 그런 상태에서 그는 지금의 '질서'에 순응할 수밖에 없다.

지금의 '질서'를 공고히 하여 '풍랑'을 맞이하지 않는 것, 설혹 '풍랑'이 온다해도 흔들림없이 방관자의 자세를 유지하는 것, 그것이 이문열의 세계관이라면 무리한 지적일까? 똑같은 순응을 보이면서도 자신은 배운 '지식인'이기 때문에 다르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든 진술이다. 이 소설은 실천하지 않는 지식인의 반성 없는 자기 고백에 다름아니다.

한 가지만 덧붙여 보자.
이 소설의 발표 연도는 광주민중항쟁이 일어났던 1980년도이고, 그는 지금보다 훨씬 젊었다.

덧붙이는 글 | 위 기사는 '하니리포터'에 실렸던 글입니다.

한재연 기자는 문화운동 커뮤니티 '즐거운 대화'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http://www.freechal.com/gongbubang76

덧붙이는 글 위 기사는 '하니리포터'에 실렸던 글입니다.

한재연 기자는 문화운동 커뮤니티 '즐거운 대화'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http://www.freechal.com/gongbubang76

이문열 : 필론의 돼지 Pilon's Pig

이문열 지음, 제이미 챙 옮김, 전승희 감수,
도서출판 아시아,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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