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7월 4일 있을 유족증언대회에 참가할 강석마을의 허 용씨는 "경인년 음력 10월, 11사단 소속의 군인과 경찰들이 마을에 불을 질러 쑥대밭이 됐다"며 "그 꼴을 본 사람들은 여기서 못 살고 나가서 산다"고 말했다.
3년전 돌아가신 고 김경동씨의 아들 김수영씨는 "어깨 살은 도려내져 있었고 숨통만 붙어 50년간 약으로 버티며 살았다"고 3년 전 돌아가시기 전 아버지를 떠올린다.
이제 55세가 된 김수영씨는 당시 어린 나이였지만 마을 사람들이 죽어간 모습을 똑똑히 기억했다.
"국군들이 마을 뒤 논에다 50여명을 주욱 세워놓고 총질을 해댔고 어떤 이들은 집 마당에 엎드러 뻗쳐 하고 있다가 칼로 난자당하거나 총에 맞아 죽었다. 그들이 흘린 피가 마당에 흘러 핏물이 흥건했고 아직 목숨이 붙어 있었던 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기어나와 변소 밑에 숨어 똥물을 마시다 목숨을 겨우 이었다."
소집명령으로 국군들은 빠져나갔지만 그 때 100여가구 살던 이들은 가족과 친척을 잃고 난 뒤 다 객지로 나가 지금은 50가구도 남지 않았다.
피붙이들의 피로 흥건했던 그날
1950년 당시 14살이던 김덕초씨도 학살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공비토벌한다고 해서 지역에 조금씩 남아있던 공비들은 탈출했다.
그때 11사단이 내려와 마을을 앞뒤로 포위하고 젊은이들은 마을 뒤 논으로 데려가 집단 학살당했다. 그때 우리 큰 형님이 돌아가셨고 마을에는 한 집에 한 두 사람은 다 죽어 나갔다."
김덕초씨는 "그렇게 죽여놓고 상부에는 빨치산 토벌이라 했겠지"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52년간 단 한 번 언론에 학살사실이 공개됐지만 어떤 보상이나 답변도 받지 못한 이들은 "살아 생전에 이 문제가 해결되어야만 죽은 혼들이라도 위로할 것 아니냐"고 반문한다.
김씨는 "한 마을에서도 상호 이해가 필요한데 남한과 북한은 서로 대립상태에서 적대시하며 50년 넘게 살아왔다"며 "불행한 과거에 대해 집착하는 게 아니라 잘못된 역사를 바로 세우고자 할 뿐"이라고 말했다.
이들 강석마을 유족들은 "자기 나라 국민들을 죽여놓은 정부가 마땅히 모든 배상과 명예회복을 해줘야만 죽은 영혼들을 위로할 수 있다"고 밝혔다.
통합특별법 제정하고 국가가 배상해야
이번 한국전쟁전후 피학살자 유족증언대회는 오는 7월 4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다. 이번 증언대회는 제주 4·3범국민대책위원회, 고양금정굴사건공동대책위원회, 익산역미군폭격유족회 등 전국63개 단체 주최로 열리며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포항 미군 함포사격에 의한 학살과 마산형무소 학살, 나주 봉황면 철야마을 학살 등 전국 각지에서 학살 피해유족들이 증언이 이어진다.
각 지역에서 증언이 이어지면 충북 영동 노근리, 문경 석달마을, 함평유족회, 진도갈매기섬사건 등 그동안 이뤄진 증언과 조사를 토대로 통합특별법 제정을 위한 국가배상 및 대책위 활동 등이 보고되며 이후에는 자유증언이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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