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창 공격하는 언론에 '창'던져라

[언론-정치 소송전쟁①] 한나라당의 대(對)언론 '이중 전략'

등록 2002.06.25 14:19수정 2002.06.28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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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언론(기자)과 정치인(취재원)은 '불가근 불가원'의 관계로 불린다. 또 더러는 '불'에 비유하기도 한다. 즉 너무 가까이 하면 데이고, 너무 멀리 하면 얼어죽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언론과 정치의 소송전쟁'은 어느 한 쪽, 또는 양쪽에서 이같은 긴장관계가 파열음을 내면서부터 시작된다.

언론-정치권 간의 소송사건은 더러 있어 왔지만 최근 들어 그 횟수나 액수가 상식수준을 넘고 있어 '소송남발'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특히 최근 한나라당이 언론인 일개인의 '칼럼'을 문제삼아 거액의 소송을 낸 것은 '언론탄압'이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오마이뉴스>는 '언론과 정치의 소송전쟁'이라는 기획연재를 마련, 세 차례에 걸쳐 심층보도한다. <편집자 주>


"(정경희씨는) 그동안 계속 비슷한 논지로 글을 써왔기 때문에 언론중재위원회를 거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판단했다."

한나라당 남경필 대변인은 언론중재위원회를 거치지 않고 바로 언론인 정경희(70)씨에게 민사소송을 제기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정경희씨가 쓴 글들을 오래 전부터 눈여겨봐 왔음을 시사해주는 대목이다.

칼럼 하나에 '5억' 소송 제기

▲ 언론인 정경희 씨.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서울지방법원 남부지원 민사과에 2002년 6월 12일 소장 하나가 접수됐다. 원고는 국회 원내 1당인 한나라당, 피고는 언론인 정경희씨였다. 한나라당은 6월 3월 <한겨레> 6면에 실린 '정경희 죽비소리'(칼럼)가 이회창 대통령 후보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정경희 씨에게 5억원의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정경희 씨는 이 칼럼에서 이회창 후보에 대해 침묵하고 있는 한국언론을 질타했다. 우선 대쪽이나 귀족이란 이미지는 언론이 심어준 것이며, 이는 이회창 후보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이어 이회창 후보를 둘러싸고 논란이 되고 있는 *국세청을 통한 선거자금 모금 *며느리의 원정출산 *언론사 탈세 비호 *100평 빌라 3개층 사용 등의 의문에 언론이 눈을 감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글이 나가자 한나라당 남경필 대변인은 6일자 <한겨레> 11면을 통해 "정경희 죽비소리는 한나라당과 이회창 후보에 대한 일방적이고 의도적인 비판으로 채워져 있다"며 반론을 폈다. 반론에서 남경필 대변인은 '이회창=귀족'은 민주당 쪽에서 만든 것이며, 며느리 원정 출산,국세청 선거자금 모금, 언론사 탈세비호, 100평 빌라 3개층 사용은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곧이어 정경희씨의 '남경필 대변인의 반론에 답한다'는 글이 실리면서 이 논쟁은 일단락 되는가 싶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다. 한나라당이 남경필 대변인이 제기한 반론과 동일한 내용을 근거로 정경희씨를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낸 것이다.

한나라당이 소송을 제기하자 전국언론노동조합과 한국기자협회, 언론개혁시민연대(언개련)와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민언련) 등은 즉각 성명과 논평을 통해 "한나라당의 소송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이회창 후보에 대해 비판적인 글이 나올 수 없도록 미리 쐐기를 박으려는 시도"라며 "이런 분위기에서 만일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어떤 언론인이 곧은 소리를 할 수 있겠느냐"며 우려를 표명했다.


그러나 한나라당 남경필 대변인은 "사실이 왜곡됐고, 신문사의 입장과 칼럼은 무관하기 때문에 개인에게 민사소송을 제기했다"며 "언론탄압이라고 주장하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반박했다.

<한겨레> 조상기 편집위원장은 "현재 법무팀에서 여러 가지로 소송에 대한 검토를 진행하고 있다"며 "적극적으로 지원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에 대해 민언련 성유보 이사장은 "공적인물에 대한 '의견의 자유'를 소송을 통해 막으려는 시도는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인 만큼 시민·사회단체 전체의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면서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계획을 덧붙였다.

이회창 후보의 언론관

▲ 6월 13일 지방선거 후 기자간담회를 갖고 있는 이회창 후보. ⓒ 오마이뉴스 권우성
"문제는 단순히 한나라당이 신문 칼럼에 소송을 낸 사실에 있지 않다. 한나라당과 이 후보의 언론관이 단적으로 드러났다는 점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한겨레> 6월 19일자 사설, '한나라당의 신문칼럼 5억 소송'에 한 대목이다.

이회창 후보와 한나라당의 언론관은 한마디로 '당근과 채찍'으로 요약된다.

2000년 12월 12일자 <내일신문>에는 흥미로운 보고서가 공개됐다. 한나라당 기획위원회가 2000년 8월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향후 주요 업무 추진계획-10대 핵심과제중심'이란 10개 항목이 담긴 보고서 중 7번째 항목에는 '언론대책수립'을 위한 전략이 담겨 있었다.

이 항목은 다시 *언론사 논설 집필진 성향 파악 및 관리방안 *비정치적 잡지 *방송프로그램(여성지, 오락프로그램)활용방안 *신문분석 및 방송 모니터링을 통한 편파보도 대책 마련 등의 세부사상으로 분류됐다. 특히 언론사 논설 집필진 성향 파악 및 관리방안에는 서신, 이메일, 전화 등으로 그룹화, 총재님 관심표명 방안, 우호 언론그룹 조직화 방안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이외에도 이회창 총재의 이미지 제고 방안으로 여론 주도층 내 비토그룹 실체 파악 및 대책마련이 필요하고, 또 한편으로 여론 주도층 확보 방안으로 사회 각 분야별 리더그룹을 고정지지, 지지, 적대, 고정적대로 분류해 각 그룹별 지지세력 확보대책을 수립해야 한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었다.

이 사건을 두고 언론들은 일제히 "민주주의를 해치는 시대착오적 발상"이라고 공격했지만, 한나라당은 '모르쇠'로 일관했다. 한나라당은 전략기획팀 관계자가 자기 나름대로 만든 것일 뿐 이회창 총재는 관련 내용을 전혀 알지 못한다고 해명했다.

이 보고서에도 나타났듯이 한나라당의 언론관리는 치밀하다. 언론사 논설 집필진의 성향까지 파악해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동원 가능한 방법들을 고민한다.


한나라당은 필요하다면 기자들과 '한식구' 되기도 주저하지 않는다. 2001년 10월 보궐선거 승리 직후 국회 의원 총회장에서 이회창 총재는 인사말 서두에 이렇게 언급했다.

"특히 이번 선거 기간에 애써주신 출입기자들에게 감사드린다. 립서비스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우리 한 식구로서 너무 애쓰셨다."

이날 기자들은 의원총회에서 보궐선거 당선자들보다 더 많은 박수를 받았다. 한나라당과 이회창 대통령 후보의 '기자 챙기기'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올해 대선 후보로 확정된 뒤 특집기사를 쓴 기자들에게 직접 전화해 "수고했다"는 말을 일일이 전했다. 서청원 대표는 5월 14일 취임 이후 부장급은 물론이고 1진부터 4진까지 나누어 만찬을 베풀었다. 한나라당이 언론을 향해 뜨거운 구애작전을 펴고 있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들이다.

그러나 이회창 후보에 대해 비판적인 언론인에 대해서는 '채찍'을 꺼내기에 주저하지 않는다. '창자 발언'으로 알려진 이야기는 97년 대선 직전 한나라당을 출입하던 차장급 기자들과의 신고식을 겸한 술자리에서 오갔던 내용이다. 폭탄주가 세 번째 돌았을 때 한 언론사 기자에게 이 후보가 농담을 건넸다.

정경희는 한나라당에 찍혔다?

언론인 정경희씨가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에 대해 비판적을 글을 쓴 것은 <한겨레>칼럼이 처음이 아니다. 정경희씨는 미디어 비평지인 <미디어 오늘>의 고정칼럼인 '곧은 소리'를 통해 여러 차례 한나라당 이회창 대통령 후보의 자질을 문제삼았다. 이회창 후보의 '국세청 모금'에 대해 여러 차례 지적했다. 2001년 11월 8일 <미디어 오늘> 316호 '이상한 나라 한국'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그(이회창)에게는 '국세청 모금' 이라는 엄청난 '원죄'(原罪)가 미결상태로 걸려 있다"면서, "1997년 대통령선거 때 국가의 징세권을 앞세워 집권당 후보인 이회창씨를 위해 선거자금을 갈퀴질했던 것보다 더 심각한 '국가문란사태'는 없다"고 언급했다.

이 글에서는 언론세무조사 당시 "언론사주 구속 등 언론자유 억압을 중단하라"고 밝혔던 이회창 후보의 언론관에 대해서도 한 마디 했다.
"그(이회창)는 왜 천문학적인 액수의 탈세보다 그 범죄피의자의 구속만이 문제인지, 법의 형평, 평등은 어디로 갔는지 부터 설명했어야 했다."

정씨는 <미디어 오늘> '곧은 소리'에서 이회창 후보에게 아픈 과거인 '국세청모금'과 '총풍사건'을 비롯해, 탈세의 부도덕성보다 '언론의 자유'를 강조하는 이회창 후보의 언론관을 집요하게 공격해왔다. 한나라당이 언론중재위원회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민사소송을 제기한 배경이 바로 여기에 있다.

언론계 일각에서는 "한나라당이 이회창 후보에 대해 비판적인 글을 써왔던 정경희씨를 찍어뒀다가 민사소송을 통해 압박을 가하는 것 아니겠느냐"며 우려를 표명했다.
"내 기사 똑바로 써 줘. 그렇지 않으면 재미없어."

기자가 "그런 식으로 하면 대통령 안 돼요"라고 받아치자 이회창 후보는 이렇게 응수했다.

"잘 쓰라고. 그렇지 않으면 내 자네 창자를 뽑을 거야."

비록 술자리에서 나온 농담이었지만, 이회창 후보의 '과격한' 발언은 자신에게 비판적인 언론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그대로 드러내 보인 셈이다.

대선이 가까워 오면서 언론보도에 한나라당은 최근 상당히 민감하다. 잘못된 보도에 대해 정정보도나 반론보도를 요청하는 것은 공인의 당연한 권리지만 너무 과민하게 반응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2002년 5월 31일까지 언론중재위원회에 접수된 정치인 관련 사건 18건 가운데 6건(33.3%)이 이회창 후보와 관련된 내용이다.

특히 5월 27일 <내일신문>에 실린 만평 '16강보다 어려운 서민 되기'에 대해 반론보도문 게재를 신청했다. 만평에 대한 반론보도문 게재요구는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내일신문>은 이외에도 2월 보도한 '이회창 후보의 장남 정연씨 근화제약 주가 조작건'과 관련 한나라당에 허위사실 유포 등의 혐의로 고발조치 됐다.

공인과 언론의 자유

한나라당이 언론인 정경희씨를 상대로 제기한 민사소송은 '칼럼'에 대한 소송이라는 점에서 이채롭다. 한나라당과 이회창 후보는 한국 최대의 공인이다. 공인은 사회적 강자다. 따라서 그의 말과 행동은 당연히 언론에 감시와 비판의 대상될 수밖에 없다. 때문에 공인에 대한 논평은 그것이 명백하게 허위적 사실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면 명예훼손으로 단죄되지 않는게 일반적이다. 소송이 일반화된다면 이제 언론인들은 소송이 두려워 정치인을 비판하는 것을 주저할 수밖에 없다.

이회창 후보는 국회 대표 연설에서 정부의 언론사 세무조사와 관련해 볼테르의 경구를 인용한 적이 있다.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는 할지라도, 그 사람의 반대할 자유를 지키기 위해 싸우겠다."

다른 사람의 '사상의 자유'를 위해 싸우겠다는 이회창 후보의 약속을 많은 사람들은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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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시민은 기자다'라는 오마이뉴스 정신을 신뢰합니다. 2000년 3월, 오마이뉴스에 입사해 취재부와 편집부에서 일했습니다. 2022년 4월부터 뉴스본부장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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