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사내가 가르쳐준 삶의 지혜 4

입술에서 시작된 그들의 승리

등록 2002.06.28 11:59수정 2002.06.28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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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의사소통의 활성화 (Harmony)
니가 하고픈 말을 해!
Speak out!

2002년 월드컵 한국팀 최고의 골 세리모니를 꼽으라면 당신은 누구를 뽑을 것인가? 물론 황새 황선홍, 반지의 제왕 안정환, 유비 유상철, 설바우도 설기현. 모두 다 더할나위 없이 멋있었다.

하지만 필자는 고구마 박지성에게 그 영광을 주고 싶다. 스무 살의 막 넘긴, 앳된 얼굴의 박지성이 매미처럼 사내에게 '착~'하고 달라붙을 때 나는 하마터면 눈물이 날뻔했다.

우승 후보 포르투갈의 오른쪽 날개 콘세이상을 세워두고 골을 넣은 약관(弱冠)의 박지성은 승리의 순간, 축구선수로서 가장 영예로운 그 순간에 누가 떠올랐을까.

그건 바로 네덜란드의 사내였다. 나는 고구마의 골세레모니에서 조화(harmony)를 보았다. 그들은 붉은 악마의 미칠듯한 함성 속에서 서로 소통(疏通)하고 있었다.

사내가 부임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사내는 우리나라 선수들의 연습 경기에서 욕을 하며 불 같이 화를 냈다. 후배들은 선배들의 위엄에 눌려 지속적으로 패스를 하는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사내는 경기장에 오면 누가 선배이고 누가 후배인지 잊으라고 했다. 경기장에서는 모두 다 평등하다고 했다.

또 사내는 불공정한 판정을 하는 심판에게 항의하지 않는 선수들을 나무랐다. 왜 말하지 않는가? 왜 표현하지 않는가? 이 판정은 불공평하다고 왜 어필하지 않는가?


선수들은 변하기 시작했다. 연령 맞추어 먹던 식탁의 멤버들은 서로 뒤섞이기 시작했다. 황선홍이, 홍명보가 막내 차두리와 어울리고 소통하는 분위기가 된 것이다. 선배에 대한 존경심은 강압이나 룰에 생기는 것이 아니다. 세상의 좋은 감정들이 그렇듯 존경심은 진실로 소통할 때 이루어지는 것이다.

사내는 소통의 물꼬를 열어주었다. 그리고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의 선두에 그 자신이 섰다. 커뮤니케이션의 활성화는 놀라운 조직력으로 나타났고 애정이 가득한 골 세리모니로 나타났고 승리로 나타났다. 사내는 표현하는 것만이 전해진다, 는 걸 알고 있었다. 그리고 커뮤니케이션의 조건은 당당함이라는 것을 깨우쳐주었다.


이번 월드컵에서 슬로우 장면을 보면 발견할 수 있는 게 하나 있다. 그것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는 선수들의 입술이다. 그들은 역사의 한가운데서 서로 소통하고 있었다. 소통하는 것… 우리나라의 정치와 사회, 교육과 문화에서 그야말로 단절된 것이 바로 커뮤니케이션이 아닐까.

승리는 어쩌면 그들의 다리와 발이 아니라 입술에서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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