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장면 한 젓가락 전쟁

<알콩달콩 우리집>

등록 2002.06.28 12:02수정 2002.07.02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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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이 아줌마가 왜 남의 딸 짜장면은 뺏어먹고 그래?"

간단하게 저녁식사 한 끼를 해결할 요량으로 중국요리를 시켜서 먹고 있는데, 짬뽕을 먹고 있던 아내가 갑자기 짜장면이 맛있어 보인다며 한 입만 달라고 다섯 살 된 딸아이를 살살 꼬시더니만, 냉큼 딸아이의 짜장면 그릇에 젓가락을 들이밀어 뺏어먹고야 마는 걸 보며 나는 그만 참지 못하고 이렇게 한 마디를 내지르고야 말았습니다.


평소의 실력으로 미루어 볼 때 어차피 딸아이는 자신의 몫으로 주어진 짜장면을 반 너머 남길 것이 거의 확실하고, 그런 짜장면을 아내가 한 젓가락 정도 뺏어먹는다 한들 문제가 될 이유는 아무 것도 없건만, '그 꼴'을 나는 결코 그냥 그대로 봐넘길 수가 없었던 겁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엄마씩이나 돼 가지고 감히 어린 딸의 밥그릇을 넘보는 꼴을 어떻게 그냥 곱게 봐줄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런 나의 지적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내는 조금도 미안해하는 표정을 짓지도 않았고, 행동 또한 전혀 위축되지 않더군요. 그러기는커녕 '내 딸 거 내가 좀 뺏어먹는데 댁이 무슨 상관이슈?'하는 표정으로 태연하게 딸아이로부터 약탈한 짜장면을 입으로 가져가서는 오물오물 맛있게도 씹어먹으며, "와~아, 정말 맛있다!" 어쩌구하며 너스레까지 떠는 것이었습니다. '너는 짖어라, 나는 먹겠다'는 식의 오만방자함이 엿보이는 한편, 해볼테면 한번 해보자는 도전의지가 물씬 풍기는 호전적인 태도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 모습이 얄미워 나는 전의를 닭벼슬처럼 곤두세우며 "무슨 엄마가 그래 어린 딸 밥그릇을 넘보냐?"고 재차 아내를 몰아세웠습니다. 그러자 아내는 딸아이가 먹으라고 해서 먹었을 뿐이라며 책임을 슬쩍 미루는 한편, 딸아이의 옆구리를 쿡쿡 찌르는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딸아이더러 엄마를 위해 지원사격을 좀 해달라는 의미일 겁니다.

그렇게 제 엄마에 의해 옆구리 찔림을 당한 딸아이는 이내 아내를 거들고 나섰습니다. "아빠! 엄마가 짜장면 먹은 건 내가 먹으라고 한 거예요!"하고 제법 야멸차게 제 엄마를 거들며, 무릎걸음으로 제 엄마에게 가서는 아예 찰싹 달라붙더군요.

가재는 게 편이라더니, 같은 여자라고 제 엄마 편을 들어주기로 작정을 한 모양이었습니다. 어쩌면 평소 아빠보다는 엄마하고 함께 있는 시간이 많은 만큼, 제 엄마 편에 붙는 것이 자신의 순탄한 앞날을 위해 훨씬 유리하다고 나름대로 판단을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이유야 어쨌거나 제 밥그릇을 챙겨주려고 나선 아빠의 갸륵한 마음을 저버리고, 엄마 편에 서 버린 딸아이 덕분에 나는 난감한 처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배은망덕하게도 엄마 편에 붙어 버린 딸아이로 인해 숫적인 열세에 처하게 된 것도 문제지만, 딸아이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시작한 싸움에서 내가 명분으로 삼은 딸아이가 적군의 위치에 서고 말았으니, 나로선 난감할 수밖에요.

그래서 숫적인 열세라든가 싸움의 명분을 만회하기 위해서는 딸아이를 꼬셔 내 편에 서게 해야 한다는 판단이 든 나는 이때부터 어린 딸아이를 상대로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엄마가 돼가지고 한창 자랄 나이의 어린 딸이 맛있게 먹고 있는 짜장면을 뺏어먹는 건 나쁜 행동이고, 나쁜 행동을 한 엄마 편을 드는 건 잘못된 것이다라는 식의 설득작업에 들어간 것이죠.


그러나 제 엄마 아빠를 닮아 '한고집'하는 편인 딸아이는 거듭되는 나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요지부동 제 엄마 편을 들기로 한 마음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일단 엄마를 편 들기로 결심한 이상 배신은 있을 수 없다는 식이었죠. 딸아이가 끝내 자기 편을 들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던 듯, 옆에서 그런 나와 딸아이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아내는 얄밉게도 '흥, 그것 봐라!'하는 표정을 짓고 있더군요.

결국 그렇게 딸아이를 꼬셔 내 편에 서게 하는 '작업'에 실패한 나는 아빠를 배신한 딸과 딸로 하여금 아빠를 배신토록 만든 아내가 얄미운 나머지, 마지막으로 우리 집안에서 사용되는 유일한 욕이자 최고의 욕인 '나쁘쟁이'를 동원해 "엄마는 나쁘쟁이야!"하고 한마디 톡 쏘아주며 분풀이에 나서 보았지만, 끝까지 손해만 보고 말았습니다.

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엄마는 나쁘쟁이 아니예요!"하고 눈에 쌍심지를 돋우는 딸아이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힌 데다가, 그 다음엔 두 개의 입을 합쳐 쌍포를 이룸으로써 위력을 배가시킨 아내와 딸아이의 "아빠는 정말 나쁘쟁이야!"하는 욕이 내게로 쏟아져 날아왔기 때문입니다. 되로 주고 말로 받은 격이라고나 할까요?

짜장면 한 젓가락 뺏어먹은 것을 빌미삼아 아내를 상대로 벌인 나의 전쟁은 그렇게 끝이 나고 말았습니다. 제 밥그릇을 지켜주려던 갸륵한 아빠를 배신한 딸 때문에 숫적인 열세를 안은 데다가, 싸움의 명분으로 삼았던 딸아이가 적군이 됨으로써 싸울 명분마저 잃고, 여자라는 공통분모와 서로간의 이해관계 등을 바탕으로 연합전선을 형성한 우리집 여자들의 쌍포 공세에 밀려 처참한 패배를 기록하고 만 것이죠.

잠시동안이지만 그렇게 치열했던 서로간의 공방전이 모두 끝나고 난 뒤, 아내는 마치 나보고 보라는 듯이 딸아이를 꼬셔서는 전리품인 양 또 한 젓가락의 짜장면을 뺏어먹었습니다. 그 모습이 얄미워 나는 뭐라고 한마디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렸지만, 자고로 패장은 유구무언이라 하였으니 참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승패는 병가지상사고 청산이 다하지 않는 한 땔감 마를 걱정은 없다 하였으니, 언젠가 설욕할 날도 있을 것이라는 굳은 믿음으로 위안을 삼으며 말이죠.

덧붙이는 글 | ※맞춤법상으론 '자장면'이 옳을지 몰라도, '자장면'이란 단어에서는 '짜장면' 맛이 나지 않아 일부러 '짜장면'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양해를 부탁 드립니다.

덧붙이는 글 ※맞춤법상으론 '자장면'이 옳을지 몰라도, '자장면'이란 단어에서는 '짜장면' 맛이 나지 않아 일부러 '짜장면'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양해를 부탁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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