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글을 시작한다. 얼마 전 대한매일 백무현 화백이 문제제기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관점이다. 김상택 만평을 혹은, 시사만화가 김상택씨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는 여기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이 이 반론의 주요 논점이기도 하다. 미리 밝히자면 이 글은 적극적인 반론일 수도 있겠고, 오마이뉴스의 보도자세에 대한 비판일 수도 있다.
단순히 같은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갖는 소이기주의가 아니다.
누구보다 이 세계를 잘 알기 때문에 필요 없는 오해가 생기는 것이 답답해서 쓰는 글이다. 또 그런 화살은 언제고 나 자신에게도 날아올 수 있다. 그런 이유로 쓴다는 점에서 이 또한 이기주의라면 할말은 없지만, 반드시 짚고 넘어 가야할 문제를 두 가지 제기한다.
경기시작전에 올려진 만평
작가의 잘못인지, 인터넷 관리자의 잘못인지
경기시작 전에 우리 팀이 진 결과의 만평이 인터넷에 올려졌다는 지적이 있다. 그 지적을 말 그대로만 해석하면, '작가와 데스크는 아직 시작도 안한 경기를 졌다고 결론 내리고 그 상황에 맞추어 만평을 그리고, 데스크 눈을 통과해 인터넷에 올려지고 인쇄도 되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라. 아무리 생각 없는 사람들이라도 그런 판단력을 가지고 일간지 만드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더군다나, 7시 10분경에 올려졌다면 적어도 작업은 4시나 5시쯤엔 끝났다고 보아야 하는데 기본적인 지능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런 멍청한 판단을 내리고 실행에 옮길 사람은 없다. 그렇다면 미리 2개를 그려 놓았다고 판단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이긴 경우와 진 경우, 두 개의 만평을 그리는 것은 이번 월드컵 대회가 조간신문 시사만화가들에게 준 반갑지 않은 선물이다.
나도 그날 두 개를 그렸다. 다른 것을 그리면 되지 않겠냐고 따지실 분도 있겠지만, 시사만화가는 작가이자 기자이다. 뉴스밸류를 어디에 두는가는 일반적인 공감대가 있어야 한다. 정도의 차이가 있는데, 4강전이 있었던 날 '국민'들을 선도하고자 다른 소재를 그릴 만큼 무딘 시사만화가는 없다.
보통 야간 경기는 10시가 넘어야 끝이 난다. 이전 두 번의 한국전을 기억한다면, 사실 꼭 10시에 끝이 나라는 법도 없다. 11시를 넘기게 된다면, 그 날은 그림 그리지 말라는 말이나 다름없다. 이런 현실에서 두 가지 경우를 모두 그려놓는 것은, 그 또한 신문사 조직 내의 시사만화가로서 당연한 업무이다.
김상택씨도 두 개를 그렸을 것이고(나는 확신하지만), 이기느냐 지느냐 결과가 나오자마자 두 그림 중에 한 개가 선택되어, 인터넷이든 지면이든 나가게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진 경우의 만평이 경기시작 전에 인터넷을 통해 나갔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것은 김상택 작가 본인의 잘못이 아니라, 인터넷 관리자의 실수일 따름이다.
그런데 문성 기자가 인용한 네티즌들의 반응을 보면 이런 논리를 여지없이 무시하고 있다. 나아가 작가 개인에 대한 비난까지도 여과없이 인용했다.
"경기시작도 하기 전에 기사가 게재가 되었는데 아예 한국팀이 지기를 간절히 원하셨나보네요? 당신은 대한민국 국민이 맞습니까? 중앙일보사는 본사를 아예 독일로 옮기시지요?"(ID jukbang)
"정말 중앙일보 재밌네요. 김상택씨의 만평 정말 게르만족의 우월성과 한민족의 아둔함을 신랄하게 지적하고 계십니다. 물론 입력시간으로 보아도 가히 이런 제 의견이 틀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ID vertix)"
만평의 내용
붉은 물결 속에는 없는 객관성
"내 눈을 믿을 수 없게 만드는 만화... 정말 한국인이 그린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드는 만화... 아는 ..."(ID ommni)
"2시간 동안 사투를 벌인 우리 대표팀은 한순간에 비참해지면서 독일팀의 조롱거리가 되는군요..."(ID vertix)
축구해설가 이야기를 불쑥 꺼내야겠다. 월드컵 시작과 함께 방송3사간 '해설가전쟁'이 축구 못지 않게 치열하게 벌어졌다. 시청률에 따라 유명 해설가들에 대한 평가가 바로바로 매겨졌고, 1등한 해설가에게는 억대의 보너스까지 제공될 것이라 한다.
그러나 최고의 해설가를 가려내는 진검승부라고 보기엔 그라운드가 적절치 못했다. 기본적으로 해설자와는 이해관계가 없는 팀들간의 경기에서 해설가의 자질을 평가받는 것이 옳은 것인데, 한국전에 보인 해설가들의 선동이 좋은 해설의 판단기준이 되어버린 것이다.
시사만화가들에게도 똑같은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선동가인가 혹은, 시사만화가인가?'
다소 주관적인 판단임을 인정하면서도 주장하자면, 26일자 만평 중에 그나마 객관성을 유지했던 만평이었다. 울분을 토한 네티즌들의 반응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두 시간 동안 열심히 뛴 선수들의 땀과 열정을 무시하는 것 또한 아니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시사만화가의 한 컷이 국민들의 열광이나 슬픔의 동조 선동에 반드시 기여할 의무는 없다.
결승과 4강이 '하늘과 땅' 차이라는 표현은, 육로이동이 가능한 대구와 비행기로 가야 하는 요코하마와의 차이와 비교한 적절한 비유였다. 승자의 웃음과 패자의 뒷모습을 그려 놓은 것이 한국팀을 의도적으로 '조롱'한 내용이었는지 진지하게 되묻고 싶다.
한국편도 독일편도 아닌 제 3자의 입장에서 이 만평을 보았더라도 '한국팀이 조롱거리가 되는'식의 이해를 했을까?
다시 말하자면, 이 글은 네티즌의 의견에 대한 반론이 아니라 그것을 엮은 기사에 대한 반론이다. 이 기사가 거대조폭언론에 상처를 주고 싸움이라도 걸기 위해 올려진 기사라면 너무 세련되지 못했다.
독자의 의견쯤으로 혹은, 이런 논쟁이 있었다라는 짧은 기사만으로 충분한 것을 이전의 논쟁까지 들추어가며 주요하게 다룬 것은 미숙한 오류일 따름이다.
글을 쓴 기자가 히딩크 광신도였대도 할 말 없다. 다만 다같이 광신도가 되자고 강요할 권리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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